우리는 전세계가 본당의 소모임서 부터 교구 대륙간 전세계의 모든 의견을
결집하고 이를 정리하여서 2024년도 세계주교회의 2차례걸려토의하여서
결정보고서를 쓸 예정이고 이미 1차주교회의는 끝나고 10월 2차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것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것이 아니라
각교구나 본당 그리고 단체에서 각 환경에 맞도록 실천사항이 전개되어서
실천가능한 것 부터 이루워져야 할것입니다
그런입장에서 성서형제회의 집행부는 이를 인지해야 하기에
그중 주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올려봅니다
첫 번째 긴장은 영성의 결핍이다.
시노달리타스 여정은, 무엇보다 기도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여정의 진정한 인도자는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충분히 기도하고 성찰하지 못한 채 머리로만 시노달리타스 의제들을
이해하고 논의하다 보니, 한국 교회에서 시노달리타스 여정은 여전히
어떤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한 회의 정도로만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교회 구성원이 이 여정을 부담스럽게 여기거나, 실제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영성의 결핍은 시노달리타스 여정뿐 아니라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교회의 역할에도 영향을 미친다. 매우 짧은 기간에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지만,
정서적·영적 결핍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들과 함께해야 할 시대적 요청을 받고 있다. 이를 위해
하느님 백성이 먼저 말씀과 성사의 은총으로 살아가고, 기도와 신앙의 힘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 방식을 익혀야 한다.
11. 두 번째 긴장은 복음적 가난과 공동체 정신에 대한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교회의 세속화된 모습에서 발견된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개인주의, 소비주의, 물질만능주의 문화가
교회에 유입되어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예를 들어, 사제들의 개인주의
문화와 청빈을 벗어난 삶은 그들을 고립감과 외로움에 빠지게 하며,
시노달리타스 여정에서는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시각과 망설이는 태도를
보이게 한다. 수도자 역시 개인주의와 소비주의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고,
평신도들도 현대 사회의 그러한 풍조와 물질만능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으며, 이들 중에는 심지어 신앙생활을 소비생활의 일부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한국 교회는 복음적 가난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며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도록 요청받는다.
12. 세 번째 긴장은 한국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권위주의 문화이다.
이것은 하느님 백성이 공동의 사명을 인식하고,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협력하는 데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예컨대, 평신도가 단순히 사제의
보조자로 인식되어, 설령 자신들에게 어떤 주도적 역할이 주어진다 해도 맡고
있는 공동체의 관리와 임무수행에서 어려움을 겪는 평신도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한국 교회 안의 사제와 평신도 간의 경직된 수직적 관계는
대다수의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능동적 역할을 체험할 수 없게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책임이 부여되면 이들은 오히려 부담을 느끼고 회피한다.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는 한국 교회에서 간혹 전체주의적 성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합의해야 한다는 생각은
자칫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지 못하고, 소외시키거나 배제할 수 있다.
특히 의사 결정 과정에서 사제와 평신도 사이에, 혹은 사제들과 교구장
주교 사이에 충분한 의사 표현과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공동체에는
사제 중심적 혹은 주교 중심적 경향이 나타난다.
한국 사회 안에서 왜곡된 유교 문화가 교회 안에서 남성 중심 문화로 드러난다.
이는, 남성인 사제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 혹은 사제의 가부장적 태도로 나타나며,
평신도 사이에서는 왜곡된 성 역할 구분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결정은 남성이 하고 여성은 그 결정된 바를 실행하기만 한다거나,
단체의 책임자는 남성이 맡고, 여성은 드러나지 않는 봉사에 임하는
정도의 역할 구분이 존재한다. 때로는 여성 스스로 여성의 역할을 보조자로
규정하고, 같은 여성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13. 다음으로 교회 안의 약자들과 관련된 긴장이다. 한국 교회 안에서
가난한 이들, 노인들, 여성들에 대한 경청은 지속해서 제기되어왔다.
교회의 상처는 세상의 상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교회는
세상과 교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상처받은 이들의 외침을 최대한 경청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경제 성장과 함께 교세를 확장해온 한국 교회가
어느새 ‘중산층의 교회’가 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세상에서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 걷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하여 그들을 충분히 품지 못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질적으로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가난한 이들을 향한
우선적 선택 곧 구체적 영성적 돌봄 체계가 정립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