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fPnFwhaLMMI
본문은 올바른 금식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종교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가지, 구제, 기도, 금식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만 어쩌면 이 가운데 가장 육신적으로 힘든 것이 금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존경과 경의를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다 보니 금식의 원래 목적은 잃어버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같은 경우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기도하고 구제도 하다 보니 일반 백성들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간격이 생기게 마련이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존경의 벽에 갇혀버린 바리새인들은 교만해지고 백성들은 이런 외식과 거짓에 갇혀버린 바리새인들로 인해 매우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던 상황이었습니다.
참으로 육에 속한 잘못된 자아를 부정하고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한 통로로 쓰임받을 수 있는 너무나 귀한 금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금식하면 생각나는 것이 이슬람의 라마단 금식입니다. 일반 달력으로 보통 6-7월에 한달 동안 금식을 하는데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금식하다가 해가 지면 음식을 먹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한 달동안 저녁에 소비되는 식량이 1년치의 30%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굶다가 저녁만 되면 동네방네 잔치가 벌어지는데 굶다가 폭식을 하다 보니 이슬람 나라들 당뇨환자들이 일반 나라들 2-3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무슬림들 대부분 보시면 비만인 경우가 많은데 라마단 금식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금식의 원래 목적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는데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금식도 내용만 다를 뿐이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원래의 순수한 목적과 정신을 잃어버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변질되어 버린 경우는 종교나 일반세상이나 동일한 것 같습니다. 기독교도 박해를 받을 때는 순수한 모습을 지키더니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고 권력과 부가 주어지다 보니 원래의 순수한 모습을 잃어버린 경우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카톨릭의 잘못된 부분을 개혁하기 위해 개신교가 나왔습니다만 그렇다고 개신교가 다 옳은 것이 아닙니다. 기본교리는 성경적이라고 하지만 개별적으로 교회가 생존해야 하다 보니 과열경쟁이 붙고 욕심과 교만이 생기다 보니 수많은 이단이 생겨나고...사회적으로 엄청난 폐단을 가져온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카톨릭에서 이단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카톨릭의 잘못된 교리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혁해 나가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금식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자세와 태도로 금식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금식은 이미 구약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고 신약에서도 사도행전에 보시면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할 때에 교회는 금식하면서 이들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사십일을 금식하셨기 때문에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금식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그런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금식에 담긴 메시지 첫 번째는 자기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 시작하시면서 사십일 금식기도를 하신 것은 제2의 아담으로써 행하신 것인데 아담이 먹을 것으로 시험에 넘어가 실패했습니다만 그것을 회복하시기 위해 금식을 행하신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자기부정의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자아부인,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마음으로 금식하는 것입니다. 제가 청년시절에 금식을 몇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저에게는 이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떤 날은 꿈속에서 제가 물에 빠져 죽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자아부정, 자아부인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게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만 우리는 예수님의 금식을 닮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는 기도의 응답 때문입니다. 에스더서에 보시면 페르시아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하만의 음모로 전멸당하게 되었을 때 에스더가 당시 왕비로써 왕에게 나아가 구원을 간청하기 직전에 유대인 동족들에게 금식하면서 기도할 것을 명합니다.
■에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이 기도에 응답으로 유대인들이 살고 오히려 하만이 죽게 되는 결과를 성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기도하는 가운데 자아가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부인되는 은혜를 경험하시고 금식기도를 통하여 은밀한 중에 갚으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의 주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시고 세상의 죄악으로 인해 변질되지 않게 하시고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삶의 현장에서 거룩한 뜻을 이루는 자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기도의 시간을 통하여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경험을 하게 하시고 금식기도를 드릴 때에 은밀하게 갚으시는 주님의 응답을 경험하는 복된 신앙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루어주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