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3, 10, 11, 수요일, 맑음, 낙원동, 창신동,
국보 제 2 호 높이 12 m 의 "원각사지 십층석탑"<圓覺寺址 十層石塔>은 전체를 대리석으로 건조했구요 ~
형태가 특수하고 "의장"<意匠>이 풍부하여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례를 다시 찾을수 없는 "최우수 작" 이라고 합니다 !!
현재 10 층 옥개석<屋蓋石>까지 남아있고.. 그 위의 상륜부<上輪部>는 없어졌는데 ~
상부의 3 층 옥개석이 오랫동안 지상에 방치되었던 것을 1947 년 원상태로 복원한 점으로 보아 ~
"상륜부" 가 없어진 것은 오래전의 일이었던것 같다는군요 ~
기단부는 3 층으로 구성됐는데 평면은 亞 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층<層>마다 각 면석에는 여러가지 조각으로 장식 되었고 ~
1 층에는 각 면에 "용"<龍> "사자"<獅子> 와 "모란"<牡丹>"연화문"<蓮華文>이 조식<彫飾>되고 ~
2 층에는 각종의 "인물" "조수"<鳥獸>와 "초목" "궁전" 을 표현했으며.. 3 층에는 많은 "나한"<羅漢>과 "선인" 을 조각 하였답니다 ~
각면 중앙에 "12 회"<十二會>의 "불"<佛> "보살"<菩薩> "천인상<天人像>등을 조각했으며 네 귀퉁이는 원형의 석주를 모각했구요 ~
"옥개석" 층마다 "팔작지붕" 을,, 하면에 "두공"<枓栱>을 모각하였고 지붕의 기왓골등 모두 목조건축의 옥개를 그대로 모방했다네요 ~
특히, 2층 정면의 지붕은 "전각지붕" 과도 같고 더욱이 3 층은 이중의 지붕모양으로 조성되어 그 의장과 기교가 놀랍다는 겁니다 !!
이 석탑은 전면의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 석재의 "회백색" 과 잘 어울려 한층 더 우아한 멋을 낸다는 거죠 ~
전체적인 형태나 세부적인 구조, 전면에 장식된 불상의 조각등이, 고려시대 "경천사 십층석탑"<敬天寺 十層石塔 국보 제 86 호>과 ~
흡사할 뿐만 아니라 사용된 석재가 대리석 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
이 석탑의 소속 "사원"<寺院>이었던 "원각사" 는 1,465 년에 창건 되었으며 따라서 이 석탑도 창건당시 건조물로 추정된다는군요 ~
일설에 이보다 앞서 건립됐다고 하나 이 석탑이 전대인 고려시대 "경천사십층석탑" 과 너무도 흡사해 나오는 억측이라는 거죠..?
"수려"<秀麗>하고도 기교적인 면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우리나라 "탑파사상"<塔婆史上> 손꼽히는 걸작<傑作>이라고 합니다 !!
원각사 십층석탑의 옛 모습이구요 ~
"경천사 십층석탑"<敬天寺 十層石塔 국보 제 86호>은 개풍군 부소산 경천사지에 세워져 있었는데 일제가 밀반출한것을 ~
그뒤 반환하여 경복궁 회랑에 오랫동안 방치되다 국립문화 연구소에서 복원작업을 거쳐 국립중아박물관 실내에 전시되고 있답니다 ~
"원각사비"<圓覺寺碑 보물 제 3 호>는 1471 년<성종 2> 세조가 원각사 창건한 경위를 적어 세운 비석입니다 ~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분신"<分身>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 년 흥복사<興福寺> 터<址>에다 ~
군 2,100 명을 동원해 "원각사" 를 지었고 이어 1467 년 13 층 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열고 낙성식을 거행 하였으며 ~
그 전후사정을 적은 비석을 조성하게 했는데,,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을 만들고 그 등 위에 연잎을 새겨 ~
비석 몸돌을 세울 자리를 만들었으며 몸돌은 머릿돌인 "이수"<螭首>와 한 돌로 만들었구요 ~
비석의 전체 높이는 494 cm 이며,, 거북은 화강암으로,, 몸돌과 머릿돌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
당대의 문장가인 "김수온"<金守溫>이 앞면의 글을 짓고 "성임"<成任>이 그 글을 썼으며 ~
"서거정"<徐居正>이 뒷면의 글을 짓고 "정난종"<鄭蘭宗>이 그 글을 썼구요,, 연산군때 궁궐에 인접한 민가를 철거하면서 ~
원각사는 빈 절이 되었고 근대에 공원화되면서 "십층석탑" 과 "비석" 만 남아 "원각사" 의 옛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는겁니다 ~
1919, 기미년 3,1 일 독립운동의 발상지 "탑골공원" 담장에는 비폭력 항쟁의 모습을 담고있습니다 ~
1919, 2, 10, "육당 최남선" 선생이 독립선언문을 작성하였고,, 낭독은 해주 출신 "정재용" 이 했으며 ~
일제의 압박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할때,, 단상에 뛰어올라 죽음을 불사한 기개를 보인겁니다 !!
탑골공원 내에 모아둔 여러 석물들은.. 이 일대의 도시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부재<部材>들로서 ~
이중 대리석으로된 인물상 3 점은 "원각사 탑"<圓覺寺 塔>의 주위를 호위하던 "신장상"<神將像>이나 ~
"보살상"<菩薩像>으로 추정되고 "연화문"<蓮花紋>이 새겨진 "난간석"<欄干石>은 원각사 외곽을 돌린 부재로 여겨지구요 ~
현재 이곳의 석물들은 출처를 정확히 알수없는 형편이나 전통 석조물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