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실망과 절망을 할 때도 많습니다.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꿈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제의 길은 늘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아서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에게 사제를 준비했던 그 길이 100% 행복했었냐고 묻는다면, 한 30% 아니 20% 정도만 행복했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공부가 힘들었고, 기도가 힘들었고, 공동체 생활도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에 100%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데 왜 신부가 되었냐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신부가 되면 그 힘든 것이 모두 없어질 것으로 믿어서일까요? 아닙니다. 지금을 보면, 신학생 때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더 열심히 기도할 수밖에 없으며, 또 더 자유에 제약을 받습니다. 그러나 삶 안에서 2~30% 이상의 행복이 있기에, 또 그 의미 있음에 신부로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만을 위한다는 생각만으로는 순간순간 다가오는 아픔과 시련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행복은 삶 안에서 100%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100%는 하느님 나라에서만 가능합니다. 단 1%의 행복만 있어도, 충분히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에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그 모범을 오늘 우리가 지내는 ‘성모 승천 대축일’의 주인공이신 성모님에게서 보게 됩니다. 우선 ‘성모 승천 대축일’은 지상 생애를 마치신 후,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림을 받으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행복하신 분일까?’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행복은 여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 성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을 태중에 모셨기 때문에 행복하신 것일까요?
성모님의 삶은 우리가 소위 말하는 행복하다는 삶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해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고, 예수님을 낳고도 산후조리 할 시간도 없이 이집트로 피신을 가야만 했었습니다. 또 사랑하는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렸던 사건도 있었고,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들렸던 ‘미쳤다’라는 소문에 가슴 졸이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당신 품에 안기도 했습니다.
성모님의 행복은 오늘 복음의 ‘성모의 노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바로 응답하는 신앙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삶 안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행복할 수 있었고, 이것이 ‘성모 승천’이라는 커다란 영광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바로 응답하는 신앙인이 될 때, 어렵고 힘든 삶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삶의 어느 페이지에서나 기뻐하기를.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더 감사하기를(오은환).
사진설명: 성모승천
첫댓글 빠다킹(조명연 마태오)신부님 강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