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와 사랑 2 (고전 13:4-7)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 시간에는 “은사와 사랑” 두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은사에 있어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닐 뿐 아니라 도리어 그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일2:9-11에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은사를 받았어도 사랑이 없다면 퇴보를 의미할 뿐입니다.
그럼 사역자가 갖출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1.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참는다는 원어적 의미는 상대의 나쁜 감정이나 노여움에 대해 오래 견딘다는 의미입니다. 두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새 사람 되기를 참고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을 멸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셔서 구원해 주심과 같습니다.
그래서 딤전2:4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했고, 벧후3:15에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했습니다.
딤전1:13-14에도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눅 9장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52-54절) 하며 요청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못했을 때의 그들입니다. 이런 급한 성질도 사랑으로 다듬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사역자의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우리에게 맡기실 때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의 사람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용납하시듯 오래 참으며 기다리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2. 사랑은 온유하며
여기 온유는 ‘유용한, 은혜로운, 친절한’ 그런 낱말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이는 부드럽고 인자하며 친절하면서도 유익을 주는 행위입니다. 이 온유 역시 온유하게 대해주고 싶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말씀입니다.
온유란 절제 예절 품격 친절과 존중을 갖춘 인격적인 마음으로, 성령의 열매이기도 하고, 잘 갈고 닦은 훈련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마11:29을 보면 교사가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이요, 딤후2:24에는 주의 종의 갖출 첫째가는 덕목입니다.
마5:5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하셨듯 온유한 자가 승리합니다. 잠15:1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했습니다. 민 12장에 사람들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할 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했습니다.
이처럼 사역자가 사역을 감당하다 잘못도 아닌데 핍박을 당하고 권위에 도전을 받을 수 있는데 그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예수님도 그랬는데 예수님의 제자는 원래 이러려니 하며 평범하게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남이 나를 낮춘다고 내가 낮아지는 것이 아니고, 나를 높인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너무 민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주신 위치에서 묵묵히 진실하게 자기 일에 충실하면 먼저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다음은 사람들이 알아줍니다.
3. 시기하지 아니하며
여기 시기는 개역성경에는 투기입니다.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을 투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남에게 유익을 주고 축복하는 것이 사명인데 남 잘되는 것 못 보는 질투심이 있어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처럼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했던 것처럼 나는 사라져도 맡기신 양들이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배워서 남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 투기는 영의 세계에서도 있을 수 있습니다. 더 큰 능력 받고 더 크게 쓰임 받으려는 것은 좋지만 시기 질투해서는 안 됩니다. 막9:35에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나보다 네가 더 잘되라 하면서 축복해주는 사람이 더 큰 사람입니다.
4. 자랑하지 아니하며
자랑의 원문은 ‘자만, 허세 부리다’는 뜻입니다. 실재보다 부풀리고 떠벌리는 것입니다. 자랑이 두려운 것은 교만의 친구인 자만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듣는 이에게 좌절을 줍니다. 내가 잘되는 것이 큰 충격이 될 사람도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이나 나를 아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만 자랑하고 자기 부족한 것만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도 시험 주지 않고 은혜만 됩니다. 히스기야가 성전고의 보물을 자랑하다가 그 보물이 바벨론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나 축복이나 직분 자식도 자랑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자랑하는 순간 다 다 빼앗깁니다.
자랑하는 맛에 단다지만, 자랑은 죄와 같습니다. 그래서 고전5:6에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 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했습니다. 여기서 자랑을 죄로 표현하고 있어요.
당시 고린도교회는 자신이 어느 파에 속했다고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알아주는 교단, 유명한 교회, 유명한 목사가 담임하고, 또 큰 직분을 받았을지라도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남을 무시하는 행동이 됩니다.
남이 나를 높여도 지나치게 높이면 거절해야 합니다. 바울도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17절)이라고 높일 때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그에게서 그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듣기 좋게 들려서는 안 됩니다.
무디가 어느 도시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아무리 외쳐도 다른 도시에서처럼 그런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참모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다가 그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최측에서 홍보하면서 세계적인 부흥사 무디가 온다고 현수막을 도시 전체에 걸고 예수는 없고 무디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랑하고 허세 부리면 잘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버리시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직분과 은사로 충만해도 사랑하지 않으면 가치 없고 일할 수 없다는 사실 깊이 기억하면서 오늘 배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않는다는 말씀 기억하고 실천하는 하나님의 일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