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이 피기 전에
여름 들녘은 온통 초록이었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벼들이 몸을 낮추었다가 다시 일어섰다. 멀리서 바라보면 초록의 물결이 들판 끝까지 밀려가는 듯했다. 그 한가운데 연잎 하나가 넓은 품을 펼치고 있었다. 연잎 위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하얀 꽃잎 몇 장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 아직 피지 않은 연꽃 한 송이가 가느다란 줄기 끝에서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봉오리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꽃은 피어 있을 때보다 피기 직전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꽃잎 속에 감추어 둔 빛깔도, 향기도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저 단단히 여민 꽃잎 안에 이미 한 송이 연꽃이 완성되어 있다는 것을. 사람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아직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 품어 온 꿈 하나, 차마 꺼내지 못한 말 하나, 언젠가는 시작하고 싶은 일 하나가 우리 안에도 봉오리처럼 숨어 있다.
젊은 날에는 무엇이든 빨리 피어나야 좋은 줄 알았다. 남보다 먼저 도착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뒤처지는 것 같았다. 봄이면 봄꽃처럼 서둘러 피어야 했고, 여름이면 무성한 나무처럼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했다. 세상의 시계에 내 삶을 맞추느라 정작 내 안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는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계절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자연에는 서두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화가 피는 때와 연꽃이 피는 때가 다르고, 코스모스와 국화가 자신의 시간을 기다린다. 누구도 연꽃에게 봄에 피지 않았다고 늦었다 말하지 않는다. 가을에 피는 꽃에게 여름을 놓쳤다고 나무라지도 않는다. 꽃에게는 저마다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연꽃 봉오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주변의 초록이 아무리 짙어도 서두르지 않았다. 햇살을 받고 비를 맞으며 자신의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하루치 햇빛은 하루만큼 품고, 한밤의 이슬은 또 그만큼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꽃이 되어 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피지 않은 시간이 참 많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이제는 늦었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다. 어떤 문 앞에서는 나이를 헤아렸고, 새로운 길 앞에서는 남은 시간을 계산하기도 했다. ‘지금 시작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음속에서 그런 말이 고개를 들 때면 한 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연꽃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 봄부터 자신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헤아리지 않는다. 다만 피어야 할 순간을 향해 하루하루 자신을 채운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늦게 핀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늦게 피는 꽃은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해 놓은 시간표보다 조금 뒤에 피어났을 뿐, 그 꽃에게는 바로 그날이 가장 정확한 개화의 순간일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젊은 날 자신의 길을 만나고, 어떤 이는 삶의 중턱을 지나서야 오래 바라던 일을 시작한다. 누군가는 아이를 키운 뒤 붓을 들고, 누군가는 직장을 떠난 뒤 악기를 배우며, 또 누군가는 머리에 흰빛이 내려앉은 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는다. 중요한 것은 언제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마음속 봉오리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들판에 바람이 불었다. 커다란 연잎이 흔들렸다. 연봉오리도 가느다란 몸을 따라 천천히 흔들렸다.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꺾이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가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삶에는 그런 바람이 수없이 분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고, 가까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멀어지는 때도 있다. 애써 준비한 일이 뜻밖의 이유로 무산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흔들린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약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들판의 꽃과 나무를 보면 흔들리지 않는 생명은 없다. 흔들리는 것은 약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이다.
연잎 위의 하얀 꽃잎 몇 장이 바람에 살짝 움직였다. 이미 한때 피었다가 떨어진 꽃잎일 것이다. 그 곁에는 이제 막 피어날 연봉오리가 서 있었다. 한쪽에는 지나간 시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다가올 시간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풍경이 쓸쓸하지 않았다. 지는 것과 피는 것이 한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무엇 하나가 끝나야 다른 것이 시작되기도 한다. 한 시절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고, 누군가의 손을 놓은 뒤에야 자신의 두 손이 비어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비어 있는 손은 허전하지만, 다시 무엇인가를 잡을 수 있는 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잃어가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시간이다. 젊은 날에는 화려하게 핀 꽃에 먼저 눈길이 갔다면, 이제는 꽃이 피기까지 견뎠을 긴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꽃보다 줄기를 보고, 줄기보다 뿌리를 생각한다. 눈앞의 아름다움보다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시간을 헤아리게 된다. 초록 들판에 서 있으니 마음까지 초록으로 물드는 듯했다. 초록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빛이다. 꽃도 아니고 열매도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색이다. 그래서 초록 앞에 서면 이상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연꽃 봉오리도 초록 속에서 자신의 빛깔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피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일도 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아침 햇살이 연못 위에 내려앉으면 봉오리는 조용히 첫 꽃잎을 열 것이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때를 알고 피어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도 아직 그런 꽃 한 송이쯤 남아 있지 않을까.
오래 미뤄 둔 여행일 수도 있고, 쓰고 싶었던 한 편의 글일 수도 있다. 배우고 싶었던 그림이나 악기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지 못한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어느 날 아침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동네 길을 걸어 보는 일도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삶은 완성된 꽃만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피어나는 과정이 있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고,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아름답다.
나는 연꽃이 피는 순간을 보지 못했다. 그날 들판에서 만난 것은 끝내 봉오리였다. 그런데 돌아서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활짝 핀 연꽃을 보았다면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아직 피지 않은 꽃이었기에 오래 바라보았고, 기다림에 대해 생각했으며, 내 안에 남아 있는 시간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해가 조금 기울자 들판의 초록빛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연봉오리 끝에 햇살 한 조각이 머물렀다. 내일이면 조금 더 벌어질까. 아니면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할까.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꽃에게는 꽃의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에게도 그렇다. 지나간 계절이 많다고 해서 앞으로 피어날 꽃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송이는 아직 마음속 깊은 곳에서 꽃잎을 여미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초록 들판을 천천히 돌아 나왔다. 뒤돌아보니 연꽃은 여전히 피지 않은 채 바람 속에 서 있었다. 피지 않았기에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 피어날 시간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