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2
패권국이 다른 지역의 패권국을 바다를 건너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히틀러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공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강대국들은 국력의 순위에서 내리막길을 걷는 강대국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가 미국이 과거의 소련에 비해 현재 러시아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냉전 시대 미국 전략가들은 미국 외에 세 곳에 초점을 두었다. 유럽, 동북아시아, 페르시아만 지역이다. 이 세 곳은 어는 곳도 소련의 우세를 허용치 않으리라 미국은 결심했다. 소련이 만약 서유럽을 지배하게 되면, 미소 간의 세력균형은 결정적으로 미국에 불리하다. 동북아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세계적으로 부유한 일본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일본 역시 소련의 위험에 당면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페르시아만 지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석유 때문이다. 중동의 석유는 유럽과 아시아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전쟁은 단지 죽음과 파괴, 그뿐만 아니라 20세기 이후의 정복은 아무런 대가도 가져다주지 못하며, 그 결과 전쟁이란 공허한 노력일 뿐이라는 주장이 주목받는다. 이 주장은 ‘위대한 환상’의 저자 ‘노만 엔젤’이 그가 쓴 책에서 주장한다. 핵무기는 강대국 간의 전쟁 가능성을 낮추기는 했지만, 전쟁 그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지는 못했다. 핵 시대의 강대국들은 다른 강대국과 전쟁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국방비 지출이 높은 나라는 장기적으로 그 나라의 경제적 지위를 손상하게 되며 세력균형의 지위를 약화할 것이다. 따라서 부를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다른 나라의 영토를 정복하는 것보다 강대국들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공갈(blackmail)이 만약 효력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전쟁보다 좋은 일이다. 피를 흘리지 않은 채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갈만 가지고 원하는 방향으로 힘의 균형을 바꾸지 못할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화정책은 위험한 적대국을 덜 위험한 나라가 아니라 더욱 위험한 나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국가들이 힘을 늘리고 힘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는 “안보를 위한 경쟁은 강대국들이 적국들의 성공적인 행동을 모방한다.” 언급했다.
일본의 1868년 메이지유신부터 2차대전으로 패전한 시점까지 150년을 필자는 분석했다. 독일은 ‘비스마르크’가 득세한 1862년부터 ‘히틀러’가 패망한 1945년까지 소련은 ‘볼셰비키’ 혁명인 1917년부터 소련이 붕괴한 1991년까지, 미국은 1800년부터 1990년까지를 분석했다. 일본은 다른 강대국을 국내적, 국제적으로 모방하며 적대적 전략에 반응했다. 일본 지도자는 정치체제를 개혁해서 경제 군사적 측면에서 서구와 경쟁하겠다고 결심했다. “메이지유신부터 진주만 공격의 패망까지, 일본 행정부는 팽창주의였다.” 전범 재판에서 ‘이시와라 간지’ 대장은 미국 검사를 향해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당신은 ‘페리’가 우리에 한 말을 듣지 못했소?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고립정책을 믿고 있었소, 그때 당신 나라 ‘페리’가 흑 선을 타고 와, 대포로 겨냥하며 경고하길” 만약 당신이 우리와 싸우기를 원치 않으면 문호를 개방하고 다른 나라와 협상하시오. “그래서 일본은 문호를 개방하고 거래할 때, 이 나라들이 무서운 침략국이란 것을 배우게 되었소. 일본 스스로를 방위하기 위해 당신 나라를 선생으로 생각했소, 어떻게 하면 공격적이 될 수 있는가를 배웠소. 당신은 우리가 당신의 제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오. 당신은 왜 저승에 있는 ‘페리’를 소환해 그를 전범이라고 재판하지 않는 것이요?”
‘페리’에 침략 방법을 배운 일본은 1875년 한국 해안 경비병과 충돌했다. 강화도조약으로 3개 항구를 개항시키고 한국이 독립국임을 선언한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는 청과 전쟁을 선택한다. 그리고 일본은 신속히 승리를 거두고 패자에게 처절한 평화 조건을 제시한다.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중국은 요동 반도, 대만과 ‘페스카도레스’ 군도를 일본에 할양한다. 요동 반도는 만주의 일원이었고 다롄항이 중요항구였다. 1904년 러일전쟁으로 일본은 바다와 육지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1905년에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된다.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종식되고, 한반도의 일본 지배는 확립되었다. 러시아는 요동 반도를 일본에 할양하고 남만주 철도에 대한 통제권도 이양된다. 1875년 이후 일본이 장악한 사할린섬의 남반부를 일본에 할양했다.
1914년 8월1일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달 전에, 연합국(미, 영, 프, 일)에 가입한다. 그리고 독일이 점령했던 태평양 지역의 섬인 ‘먀살’군도, ‘캐롤라인’ 군도, ‘마리아나’ 제도뿐 아니라 청의 산둥반도의 ‘칭다오’를 재빨리 점령한다. 혼란에 빠진 중국은 일본에 그 도시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나 일본은 묵살한다. 1918년 일본의 외교적 야망은 ‘볼셰비키’ 혁명 와중의 소련, 혁명에 영국, 프랑스, 미국과 함께 개입한다. 7만 명의 병력으로 가장 많은 군대를 파병한다. 그리고 사할린섬 북부, 만주 북부, 동시베리아 지역을 점령한다. ‘볼셰비키’가 승리하자, 일본은 러시아에서 병력을 철수한다. 1932년 일본은 만주 독립국 건설을 지원한다.
소련과 그 제국이 몰락한 이유는 철 지난 굴뚝산업이 더 이상 세계 다른 주요 국가들의 기술적 진보와 겨룰 수가 없다는 사실에 있다. 경제 붕괴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서 결정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초강대국으로 소련의 운명은 위험했다. 제삼 세계의 경제적 손실을 감소시킴으로 서방에 우월한 기술에 접할 방안을 추구한 것이다. 그 정책은 역풍을 불러와 정치적 자유화와 민족주의에 불을 지피는 꼴이 된다. 소련 자체도 분열 몰락하게 된다. 소련 지도자는 현실원칙을 포기하기는커녕, 국제적 경쟁국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자국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을 강화했다.
미국은 1776년 대서양 연안의 13개 식민지가 합쳐 시작된 나라다. 다음 50년, 미국은 서쪽으로 역마차가 달리어, 팽창하고 태평양에 도달했다. 이때 5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1803년 미시시피강 이서 지방의 광대한 ’루지에나‘ 영토를 프랑스로부터 1,500만 달러를 주고 사들인다.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얼마 전 스페인으로부터 빼앗은 땅이다. 이 땅은 1682년부터 1762년까지 프랑스가 장악했던 곳이다. 나폴레옹은 이 딸을 팔아서 유럽에서 러시아와의 전쟁 비용에 충당했다. (국가의 지도자가 택한 가장 잘못한 정책이다. 프랑스는 본토의 몇십 배가 되는 이 땅을 잘못된 판단으로 프랑스 국민의 재산을 날린 것이다. 나폴레옹 참으로 멍청하다. 난 그가 영웅인 줄 알다 지금 보니 미래를 전혀 내다보지 못하는 프랑스에 나오지 말아야 할 지도자다) 프랑스는 바다를 건너와 영국과 경쟁할 처지는 못 된다.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빼앗았다. 다음은 텍사스가 멕시코에서 독립을 선언했고 얼마 후 미국에 편입시킨다. 다음은 영국과 태평양 북부인 ’오리건‘의 영토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멕시코에 선전포고하여 ’캘리포니아‘ 남부를 장악한다. 국경선 끝단을 정리하기 위해 멕시코로부터 소규모인 ’캐스턴‘들 매입한다. 1867년에는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한다. 이후 1848년부터는 더 이상 미국은 영토가 필요하지 않은 나라가 된다.
미국을 강화시키는 과정은 피비린내 나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 네 단계로 나누어진다.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국가의 분열을 방지하기 위한 남북전쟁
미국이 획득한 영토 대부분을 통제하던 원주민들의 소개
광대한 영토에 인간을 거수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행해진 대규모 이민
세계 최대의 경제력 건설
만약 남북전쟁에서 남군이 승리했다면 미국은 두 개의 강대국이 존재하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은 북아메리카의 대규모 영토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영토들은 미국이 분명한 운명을 충족하려 했다면 반드시 정복해야만 할 영토이다. 원주인은 보호구역에 모여 살고 인구도 45만 6천으로 줄었다. 이 중 29만 명이 미시시피강 이서지역에 살고 있다.
2023.08.15.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2
존 j.미어셰이머 지음
이춘근 옮김
김앤북스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