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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을 한눈에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믿음의 본질적인 성격과 요소들을
시각화 시켜 구체적인 신앙생활로 들어가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김온유 전도사의 믿음 시리즈
(믿음점검표 해석시리즈)
1.믿음의 영적 주목성
2.믿음의 영적 의존성
3.믿음의 영적 단순성
4.믿음의 영적 방향성
[표의 중심부분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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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주목성”문수제일교회 김온유전도사 작성글
위엣 것을 찾으라!(골3:1)
영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라!(요6:68)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는 (믿음의 눈, 영적인 눈)을 가지라! (고후4:18)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도마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주님은 도마에게 왜 믿음 없는자가 되지 말고 믿는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을까?
주님은 도마에게 믿음의 본질적 성격을 알려주셨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그래서 믿음에는 큰 확신과 담대함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이나 사역에서도 이 두 요소가 필요하다.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엡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개역개정)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의식하고 늘 예수님과 믿음으로 동행하고 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을 한다.
(벧전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우리가 그분을 바라보고 생각하라고 말을 한다.
그분이 살아계셔서 이 땅을 밟고 있지 않음에도 우리는 믿음으로 그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분을 오늘도 여전히 성령께서 그 말씀으로 증거하고 계신다.
성령께서 오늘도 주님을 나타내고 계신다.
그분을 묵상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성경말씀에 있다.
1. 성령을 통해서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4) 그(성령)가 내 영광(예수의 성품과 인격)을 나타내리니 내 것(예수)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2.말씀을 통해서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예수)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예수)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3.그의 음성을 통해서(성령의 세미한 소리) - 물론 성경말씀에 기초와 뿌리를 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현상에 주목하고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그래서 주님은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안타까워하신다(눅18)
왜냐면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할 수 있는 것이 본질적으로 믿음이기 때문이다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나는 사역을 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내려올때 버스는 지성소가 된다.
내려오면서, 기도할 때 성령이 내 영에 말씀을 주신다.
“ 너희는 이땅가운데 예수를 직접 보는것이 믿음의 가장 높은 수준이라 생가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정 높은 수준은 예수를 천국에서 만나는 것(얼굴 대 얼굴(고전12))이다.”
(고전 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천국)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이해가 되지 않아 성령님께 더 물었다.
“너희가 나의 모습과 형상을 보았다고 해서 천국가는 것도 아니고 보지 못한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것도 아니다. 천국과 지옥체험을 한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흘러 나를 잊고 또 그 마음에 영적교만 때문에 지옥에 있느니라.”
“초신자나 믿음이 뛰어난 자나 그들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은 단지 기적이고 체험이며 그들 가운데 주어진 은혜이며, 그들이 실제의 나를 구하면 언제든지 그들은 나를 만날 수있다.”
그러나 진정 예수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의 모습과 형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본질 즉 예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의 아름다움이(시27:4)고 그분의 인격을 말한다.
이것을 보는것이 진정 예수를 만난것이고 예수를 아는것이고 이렇게 영광에 이르러야 진정 천국에 이르는 성품으로 변화될 수 있다.”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그분의 성품과 인격)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골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예수)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여러분은 직접 예수를 보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말씀에서 예수를 보고 만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가 영생의 말씀임을 발견하고 오늘도 말씀안에서 그 양식을 공급받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안에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체험을 하고 계십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이 가장 큰 칭찬을 한 믿음의 인물 한명을 소개합니다
야이로 vs 백부장 둘의 믿음
*야이로
(막 5: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백부장
(마 8: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마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이 둘의 믿음의 차이를 잘보시기 바랍니다.
야이로가 믿음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안수를 해줘서 병을 치유받길 원했습니다.
믿음도 단계가 있고 수준이 있는것입니다.
그 믿음의 차이가 보이십니까?
우리는 보고 듣는 것이 있어야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것도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듣고 믿음으로 받는것입니다. 이 믿음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히1:6)
요20장에 도마에게 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는 믿음이 더 크다고 말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백부장의 믿음이 칭찬을 받았던 이유는
예수님이 생명의 말씀이시고 생명의 말씀이 능력이 있는줄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세상적인 권세를 앎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이해했습니다.
그 믿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그 믿음이 예수님을 놀래킵니다
(마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여러분의 삶 가운데 아니 모든 상황가운데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하는 동일한 백부장과 같은 믿음이 있습니까?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언니
(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예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가 백부장 같은 믿음으로 소유함을 통해
믿음이 계속 성장함을 통해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게 하고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양심에 다 죄로 느껴지며
보배로운 믿음, 정금같은 믿음을 소유하는 여러분 되길 원합니다.
(계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믿음)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다음 글은 모교회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의 글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늘 의식하는 데 문제해결이 있다고 봅니다 만일 성도님에게 예수님이 눈에 보이게 나타나시고 동행한다면 지금처럼 계율적인것에 매이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마음과 생각을 다해 사랑하면 될것입니다 보이지않는 분을 대상으로 무언가하려하니 마치 자신이 어거지로 율법적으로 하려는것 아닌가 싶은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대상으로 말하고 나누고 인도함을 받고 순종해야합니다 지금 입장에서는 이것이 아주 생소하고 불가능하다고 보실겁니다 그렇지않아요 우리가 더 주님을 원하고 주님과 만나기를 원하는것같지만 사실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머물고 함께 동거하고 동행하시기를 원하께 머 태초에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고 가운데 에덴동산에서 인간과 교제하였습니다 그때는 예베조차 없었습니다 인간이 유혹에 넘어가 불순종하여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이 되었으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한 구원을 계획하시고 그의 자손가운데 성막으로 임하셨습니다 성막에서 성전으로 변화하였고 하나님의 임재는 인간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태초이전에 계획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남과의 관계회복을 합법적으로 이루셨고 예수님을 믿는 누구나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고 사랑할수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영인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하시고 우리자신을 직접 거처와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왜인가요? 영원히 우리와 살고 우리와 함께하고싶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와 함께머물고자하는 하나님의 끝없는 열정과 장정을 볼수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믿음이 없어 그걸 잘 누리지못하고있습니다 보이지않는다고 없는것이 아니며 감지되지않는다고 부정할수없습니다 성경을 믿는다면 그분이 실제적으로 내 안에 계시고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내 마음속에 그분의 모습을 그려보세요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모습도 좋습니다 그것을 통해 내 중심이 늘 주님을 향하는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날마다 주님을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듯이 바라보는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분을 대상으로 마음을, 말을 쏟아놓으세요 친구와 우정을 쌓듯이, 연인과 달콤한 연애하듯 생각도, 말도 그분을 향해 표현하세요 성도님이 주님을 향한 어떤것도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거기에 계셨고 실존하신 분이기에 그분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행한 모든것이 당신에게 돌아옵니다 꿈,환상, 음성, 성경말씀,정황. 여러 경로를 통해 하나님 또한 당신이 표현하는대로 당신에게 사랑으로 화답할것입니다 ”
믿음의 눈(영적인 눈)을 가져라.
_ 하늘(영계)에서는 무엇인가가 벌어지고 있다
1. 기드온의 300용사중에서
사람이 두려워했던 2만 2천은 사환의 눈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 1만명은 엘리사의 믿음의 눈과 영적인 눈을 가지고 싸우는 자였다.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믿음의 눈은 환경을 초월한다.(민14장)
이런 눈이 열려야 한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주님의 안약을 달라고 기도하라.(계3장)
(왕하 6:8)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그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왕하 6:9)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왕하 6:10)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왕하 6:11)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번뇌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의 내응이 된 것을 내게 고하지 아니하느냐
(왕하 6:12) 그 신복 중에 하나가 가로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하 6:13)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왕하 6: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왕하 6:15)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 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두려움 )
(왕하 6: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요일4:4)
(왕하 6: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천사가 돕고 있다는 사실)
2. 또한 우리가 회개할 때 하늘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가?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3. 또한 우리가 하는 선지자사역, 또는 예언사역가운데서도 하늘에서(영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성경에서 생중계되고 있다.
(왕상 22:19)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영안이 열려 영계를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왕상 22: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왕상 22: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왕상 22:22)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왕상 22:23)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400인의 선지자)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왕상 22:12)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더라
그러나 실제로 400인의 예언은 잘못되었고 아람 왕은 길르앗 라못에서 죽고만다.
예언할 때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되며, 내 생각과 의식을 철저히 통제하고 비울때 올바른 예언이 될수있으며, 예언을 받는자도 좋은것만을 받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400인의 선지자는 거짓계시를 받은것 같으나 그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바른 계시였다. 단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내려왔을 뿐이다. 그들이 그렇게 예언하기를 원하였기 때문이고 , 그렇게 예언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믿음의 의존성”
문수제일교회 김온유전도사 작성글
믿는 우리는 이제 독립해야 한다
“세상과 죄에 대해서”
믿는 우리는 이제 의존해야 한다
“오직 주님만을”
믿음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주님을 신뢰함으로 의지하는 것이요,의존하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철저히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의지하고 의존하다록 우리를 다루시고 성숙시키신다.주님은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갖기위해 나의 재물과 힘과 인생을 바라보지 않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길 원하신다.
다음구절에서만 보아도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 146: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사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시 62: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잠 11:28)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믿음의 선진들도 삶을 통해 의지하고 의존할 대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한분이라고 말씀하신다.
(시 56: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고후 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내가 의지한다는 것은 근분적으로 그 대상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신뢰함의 대상이 절대적일때야만 비로소 우리안에서 진정한 신뢰가 이루어진다
우리에게 변하지 않으시고 식언치않으시며 완전하시고 절대적인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다. 그분은 또한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고 영생을 줄수있는 전능자이시다.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그분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공급받으며 그분안에서 보호받을수 있음에도 우리의 믿음은 그분께 온전히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
(마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마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마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마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베드로는 무서워했고, 두려워했고 ,의심했다
주님은 베드로를 보고 믿음이 적은자라고 꾸짖으시는 장면을 볼수있다.
평소 주님을 향한 올바른 초점과 동기와 우선순위가 오직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면,
베드로가 철저히 그분을 신뢰함으로 그분을 의지했다면 그분이 나에게 물위를 걸을 수 있는 능력을 주는 분임을 믿을 수 있었을것이다.
(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주님은 자기를 향하는 자에게 = 의지하고 = 의존하며 = 초점을 그분께 향하는자에게 그분 안에서 능력과 힘을 공급해주시는 분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파도를 보았다.
인생의 크고작은 문제(파도)가운데 주님께 고정했던 초점을 분산시키거나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들어왔고 동요가 일어난 것이다. 두려움의 영이 의심의 영이 그를 지배함을 통해 그의 시야로부터 주님이 벗어난 것이다.
처음 주님을 보았을 땐 몇걸음이라도 걸었지만 이내 가라앉고 만다
예수님 말대로 우리의 믿음이다. 믿음이 가라앉는것이다
(마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믿음은 철저히 주님을 신뢰함으로 의지하고 의존하는것이다. 내 힘으로 몇 자국 바다를 걸었던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봄을 통해 그분의 능력이 공급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슥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이 세대 가운데 분산된 초점을 오직 한곳으로 맞추고 조정하길 원하신다
오직 그분이 초점이 되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단순히 말씀이 아니라 주님이 초점되며, 단순히 기도가 아니라 주님이 초점되며 단순히 예배가 아니라 주님의 초점되는 본질의 회복을 요구하신다
우리안의 종교성을 버리고 성령 안에서 주님을 발견하기를 원하신다.
그러기위해서 진정으로 그분을 신뢰하는것이 필요한데, 이는 그분을 아는 만큼 신뢰가 쌓일것이다. 그분을 아는만큼 진정한 주님의 예배자가 될것이고. 그분을 아는만큼 신뢰하고 의존하게 될것이다
외존하는 믿음은 그분을 더 알아갈 때 생기는 것이다 무엇에 관하여 아는 지식이 아니라 목적을 추구하는 관계가운데서 말이다. 그리고 그분을 앎으로 성령안에서 큰 확신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고 무지하고 무능력하다. 만물보다 부패한것이 또한 사람의 마음이란다
그래서 주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낮추고 시험하심을 통해 우리를 연단시키고, 우리를 성숙하게 하신다. 그분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더해갈수록 의식과 무의식의 상황조차도 그분을 의존하도록 우리를 근본부터 만지시기를 시작하신다
그분은 인생을 아시므로 철저히 삶의 훈련을 통해 그분의 말씀이 영에 새겨지며 우리가 연단을 통해 그분을 의지하게끔 우리의 습관을 철저히 변화시키시길 원하신다. 다음은 엄청난 환난을 겪었던 성경저자 사도바울의 고백이다.
(고후 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행7:38절 광야교회생활)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고난이 하나님의 성숙함의 도구요
위기가 하나님의 기회요
고난 너머 감추진 축복들
궁극적으로 주님은 자신의 지혜와 사랑의 도구로써 연단을 통해 철저히 우리를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가길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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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믿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분이 통치하시며 그분이 다스리신다
나의 보좌가 아니라 그 삶과 물질의 주권을 주님께 양도하고
그분이 나의 보좌에 앉으시며 나의 주인되셔서 살아가는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없고 주인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 중심이라는 것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미 십자가에서 그분은 우리를 향한 뜻을 말씀하셨고 우리는 그분께 그분을 인정해드렸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말 그대로 이것이 그분을 나의 주와 임금과 왕으로 인정해드리고 의지하는 믿음인것이다.
하나님을부터 독립했던 하와를 보자
(창 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창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위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만(창2:16-17)을 의존했던 하와가 그 믿음이 자기 중심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하는 과정이다.
물론 하와는 주님의 말씀을 가감했다.(‘만지지도 말라’라는 말씀은 하신적이없다, ‘임의로’라는 말은 또 뺐다 - 이것은 아담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씀을 영에 새겨서 간직하지 못한 하와의 믿음을 드러내는 구절이다)
아무튼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사탄의 가라지의 말이 들어가는 순간 욕심이 잉태했고 죄가 들어왔다. 즉 하와가 다른 관점으로 선악과를 다시 주목해서 보고, 세상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들어옴에 따라 하나님처럼 될수있다는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의존적인 믿음이 싹틈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준다. 믿음의 중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자기에게로 변질되는것은 결국 믿음이 떨어지는 것이고 죽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독립해야 할것은 주님이 아니라 세상과 죄이다.
영적으로 성숙할수록 육적인 어린아이처럼 더 주님께 매달리는 것이다.
당신은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며 점검하라.
당신은 철저히 모든 것을 주님께 의지하며 나아가는가
주님께 대한 의존성은 그분을 관계속에서 철저히 아는 것을 기초로 신뢰할 때 생기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믿음의 단순성”
문수제일교회 김온유전도사 작성글
(마 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믿음의 영역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더 어린아이 같아지는 특징이 있다,
우리의 심령이 어린아이들과 같이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없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믿음은 어린아이처럼 점점 단순해져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자기를 낯주며 자기생각으로 걸러내지 않고 보는 그대로 듣는 그대로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믿음은 단순한 것이다,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방법을 보게되면 이해하기 힘들어지고 생각은 더 복잡해지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좀처럼 단순해지지 못한다
(마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위 구절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의심하였다
믿음은 혼의 영역에 속한것이 아니라 영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믿음은 사람의 지혜에 속한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신다
(고전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3: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고전 3: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고전 3: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고전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위 구절처럼 주님의 지혜는 우리의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때 이해되고 깨달아진다
믿음이 단순해질수록 내사사로운 지혜를 버리고 주님의 지혜로만 채워지는 것이다
(잠 23: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사사로운 지혜로 인해 우리마음의 높아진 생각 때문에 의심이 생긴다
믿음의 가장 큰 적은 의심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라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 베드로 물위를 걷다가 바다에 가라앉는 상황에서
(마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 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마 21: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마 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마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막 11: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막 11: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막 11: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막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태양을 멈추고, 태양을 15도 뒤로 옳기신 사건들이 오늘날같은 첨단과학시대에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일지라도 우리가 말씀한마디로 이세상을 만드신 위대한 하나님을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믿기만 한다면 더 큰일도 보게되고 경험하게 될것이다.
단순히 사도행전을 보아라.
당신은 사도행전 29장을 써내려갈 주인공이다
의심하지 않는 단순한 믿음가운데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는 그대로 듣는 그대로 믿음의 눈으로 그대로 취하고 고백하고 행한다면 당신은 위대한 일을 바라보게 될것이다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상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의심하지 말고 나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을 가질때 온전히 순종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삿 7: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삿 7:21)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삿 7: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주님은 주의 종을 통해 여러분에게 음성을 주신다
주님은 또한 세미한 음성을 여러분에게 알게 해주신다
주님은 환상과 꿈과 예언을 통해 당신에게 말씀하신다
주님은 그 외 다양한 환경과 사건을 통해 반드시 말씀하시고자 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항상 말씀하기를 원하신다. 믿으십니까?
듣는 우리의 믿음이 단순해지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의 음성과 역사하심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믿음의 방향성”
문수제일교회 김온유전도사 작성글
우리의 믿음은 믿음(초보)에서 믿음(장성))))이르러야 하고,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함을 받아야 한다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우리의 믿음은 초보에서 시작해서 장성한 분량으로 계속 자라가야 하며 성숙해져야 한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믿음의 중심이 나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살으신 그분께 이동해야 하며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믿음에 있어서 후퇴나 침륜이나 물러서는 것이나 머무르는 것은 절대 허용될수없다
오직 믿음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오직 믿음만이 세상을 이기며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위의 빨간 글자를 잘보더라도 믿음의 본질적인 성격상 방향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믿음의 방향성은 먼저 올바른 신앙의 목표와 목적이 정해져야 한다
우리 안에 참 소망과 산소망이 있어야 하고 그 소망이 우리의 믿음을 역사하게 하고 동기부여를 한다. 마라톤을 달리는 자가 라인을 끊는것이 목표이고 축구하는 자가 골을 넣는것이 목표이듯이
당신의 신앙의 목표와 목적은 무엇인가?
(딤후 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2: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주님의 군대이고 주님의 용사이다.(주님안에서 정체성을 이해하라)
우리의 목표는 모집한 자 즉,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것이고 이것은 용사라는 정체성안에서 승리하는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위해서는,
1.반드시 주님이 계신 것을 믿고
2.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심을 믿어야 하는것이다.
위 말속에 얼마나 많은 뜻이 계시되있는지 보이는가?
우리는 지식으로 입으로는 주님이 계신 것을 믿지만, 내 삶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으로 증거하는 자들이 참 많다. / 그리고 반드시 우리의 그가 상주심(소망)을 믿고 알아 그를 찾아야 하며 그 앞에 나아와야 하며 그에게 구해야 하는것이다.
(렘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믿음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고 나타내는것이다, 상주심임을 믿고 그 산소망가운데 믿음이 반응하고 역사한다.
아래구절을 보자.
(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가 말한 위 구절대로 천국이라는 , 부활이라는, 주님의 재림이라는 산 소망이 있을때 믿음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이길 수 있게 되고 믿음이 결국에 주목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시험과 환난가운데 능히 설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믿음의 선진들은 어떻게 삶 가운데 믿음의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했는지 보자.
아브라함과 그의 믿음의 족장후손들
(히 11: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히 11: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히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모세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1.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히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2.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3.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의 여자들
(히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사도바울
(행 24:15) 그들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오늘 주제로 다루고자 하는
여러분의 믿음의 방향성을 점검하기 전에
내안에 이러한 종류의 산소망이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다”
위 믿음의 선진들을 철저히 산 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히브리서에서 정의한(히11:6) 믿음의 원칙들을 살아낸 자들이다.
히브리서11장은 단순히 믿음장이 아니라 열매가 있는 순종장이다.
부활의 신앙, 재림, 천국(지으시고경영할 터가 있는 성),유업 등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것이요 주님께 속한 것들이다.
(믿음의 방향성이란 글은 내가 쓴 글 주목성 의존성 단순성에 대해 쓴글들(미니홈피참조다운가능)과 모두 서로 연관되어지고 분리될 수 없는 부분들이다. 단순히 글을 씀을 통해 4개로 이해하기 쉽도록 나누었을 뿐이다.방향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위의 믿음의 네가지 성격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좀더 깊이 사도바울의 믿음의 초점과 방향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다음 구절들을 주의 깊게 보자
(행 24:15) 그들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고후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 1: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빌 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사도바울은 철저히 부활신앙으로 살았고 천국에 대한 상에 대한 소망또한 버리지 않았지만.이것도 선하고 아름답지만 그는 근원적으로 주님을 사랑했고 주님자체에 자신의 소망을 두었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그에게는 천국이 천국인 이유가, 영생이 필요한 이유가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며 거할 수 있는 기쁨을 즐거워했고 그것을 소망을 품었던 것을 성경 곳곳 마다 찾을수가 있다 당신의 소망이 예수그리스도입니까? 이것은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분이 나의 전부요, 가장 순수한 믿음의 동기요 표현이자 고백입이다.
(골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사도바울이 고백을 더 주목하여 보면
바울의 믿음의 방향성을 이해할 수 있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바울은 정말 앞만 보았다.
그는 주님안에서 그분이 준 소망이 확실한 자였다.
소망의 확신이 그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늘 거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과 생애가운데 그분이 주신 소망이 그의 믿음을 이끌었고
지킬수 있게 만든 동기가 되었고, 그 소망으로 역사되는 믿음과 사랑이 그의 모든 주님의 일들을 강권하였다.
위 구절에서 그는 철저히 부름의 상을 위해 일했으며 면류관을 바라보았다.
또한 이 고백을 통해 신약의 대부분을 쓴 사도바울의 겸손을 볼수가 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보는 것,머무르지 않고 전진하는 믿음,옛날에 자랑하거나 미련을 갖지 않고 옛날보다 오늘을 중히 여기고 미래의 소망을 따라 오늘날 반응하는 믿음을 그느 소유했다 이것이 그가 침륜되거나 물러서거나 머무르지 않는 은혜를 공급받는 비결이었다.
겸손은 은혜를 끌어온다
믿음은 은혜의 통로를 연다.
이 서신서는 감옥안에서 세상적으로는, 이땅에서는 소망이 없었지만 그가 어디에 소망을 두고 초점을 맞추었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빌 3: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부활의 영광)
주님은 이러한 믿음의 방향성을 요구하신다.
산 소망가운데 먼저는 나의 정체성을 깨닫고, 믿음의 초점을 분명히 하고, 내 삶가운데 믿음으로 반응하며 그분께 우리가 바라보고 반응하고 행하는 것들이 그분 안에 속한것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분께 속한것이 무엇인가?
(요일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삼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2: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내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께 속한 진리, 사랑, 선, 의,등 그 외에 더 많지만 생략하겠다.
오늘날 사람의계명과 철학과 교훈들이 들어오면서 이러한 거룩한 단어들이 왜곡되고 변질되었다.
주님께 속한것들을 발견하고 고백하고 그것들을 내가 성품으로 옷입어가길 원하신다.그리하면 우리의 삶의 방향성은 천국의 길로,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것이며 그것이 아무리 좁고 험한 길일지라도 소망가운데 방향성을 왜곡되거나 흔들리지 않고 더 견고해 질것이다.
주님은 길이요 진리 자체가 되시고 우리에게 생명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의를 전가 받아 그 의를 취하고 받아들임을 통해 의인이 되었다. 의인은 당연히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복음에 있는 하나님의 의로써 믿음으로 계속 자라가게 하며, 주님의 의로 말미암아 사는 자가 되었다.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롬 1:17) 복음(말씀전체)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참고)왜 말씀전체인가?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성경은 문맥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전후문맥을 살펴보라)
(요일 2: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내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로마서에서와 같이 이런 의인은 당연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반드시 당신은 주님을 알아야 한다.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의에 대한 성령의 조명을 날마다 받아야 한다 여러분의 믿음은 그 의로 말미암아 날마다 주님 원하시는 믿음으로 성장하게 될것이다.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의인은 믿음의 방향성이 확고하다. 다음구절을 보자
(히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위 구절은 여태껏 해온 말들을 정리해주는 구절들이다.
뒤로 물러간다는 것은(침륜된다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것이다.
믿음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하니
뒤로 물러간다는 것은 믿음이 떨어진다는 소리이다.
믿음은 떨어질 수 있고 더해질 수 있는 속성이 있다
(후속으로 믿음이 떨어지는 이유와 믿음의 더해지는 방법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초점이 어긋났을때(예수님>>>파도) 물에 가라 앉았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의 방향성이 믿음의 소망이, 믿음의 초점이,
예수님께로 벗어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이땅에 소망이 맞추어져 있다면
주님은 기뻐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습관화 되고 고착화되면 양심이 무디어져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의인은 오직 영혼에 초점을 맞추고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으로 믿음의 결국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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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이 떨어지는 이유와 관련 믿음의 방향성을 연관지어 설명하는 글과 영적방향성을 돌아오게하는 회개에 대해서 추후에 올릴것이다.
맛보기로 다음구절을 보자.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부자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돈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함을 책망하신다. 돈으로 인해 탐심이 들어오고 하나님보다 이 땅가운데 부요하고자 했던 눅12장의 어리석은 부자의 탐심을 책망하신다.아브라함도 이삭도 다 부자였고 성경에는 하나님을 부요케하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고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 그분은 선하시다 성경을 볼때 균형감각을 가지고 성경66권으로 그분을 바라보는 훈련들이 필요하다.
아무튼 믿음을 떨아지게 하는 것중에 하나가
뒤로 물러가고 하나님의 씨가 말씀이 열매맺지 못하게 만드는 큰 요소중에 하나가 물질이다, 물질이다. 물질..........
다음구절을 보라.
(마 13:22) 가시 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눅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막 4: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위 내용의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 프린트 물을 기대해 주세요~!
우리는 반드시 믿음이 더해지는 법과 우리는 반드시 믿음이 떨어지는 이유를 알아
주님을 시험해야 합니다.
(엡 5: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고후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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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믿음의 영적 방향성을 돌아오게 하는것
진정한 성경적인 회개란?
죄를 인정하고 후회하는 감정이 아니라 돌아서고 마음과 생각이 즉 진리로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자동차가 도로에서 단순히 곁길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 유턴하는 것 영적인 유턴을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분의 은혜는 우리의 죄들을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 이런 발상이 나왔을까?
그분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진리의 초점에대해
알기나 알까? 영생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아는것이 하는데(요17:3)
십자가의 은혜는 죄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안정감속에 기만하며 영적안전을 도모한답시고 교단이 큰 교회에 들어가 명목상의 신자로 남을것인가?
1.죄를 승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2.한번구원을 얻었으면 영원한 구원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는가
3.이기는 자의 삶을 살수 없을만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패배와 좌절과 고난가운데 마귀에게 종노릇하며 살것인가
그분의 십자가의 능력이 이정도의 삶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그분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드는것이다.
(롬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은혜가 죄를 가려주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이길 힘을 주는 것이다.성화는 단순히 구원을 얻기위해 애쓰는 인간의 율법주의 적인 노력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통해 받게되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은혜를 알면 열매를 맺게되고 은혜를 알면 예배자된다 은혜를 알면 승리자가 된다
은혜를 알면 그 은혜가 우리를 양육하고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길수있도록 성령의 능력안에서 우리를 돕는다
(골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딛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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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너무긴 글을 올렸네요 죄송하게 다운받아 프린트 해서 보길 권장하구요 한페이지에 두부씩 넣으면 13장 나올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