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뉴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
예전 뉴질랜드의 남섬,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4계절을 보낸 적이 있다.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 묻어나는 곳이다. 퇴사하던 때, 84 킬로그램으로 몸이 불어나, 곳곳에 건강의 적신호가 켜진 상태에서 떠난 여행이었다.
학교에서 버스로 30분만 가면, 뉴 브라이튼 해변이 나오는데, 여기엔 내가 자주 가던 도서관이 있다. 왼쪽 사진이 바로 그것인데, 도서관 형태를 보면 전체를 유리창으로 처리해서 갑곶을 바라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2시간 정도 열심히 책을 읽거나 자료를 찾은 후, 머리를 식히러
피어에 나가 바닷바람을 쐬거나, 오렌지빛 저녁 노을이 질때면 해변가로 나가 산책을 하거나, 승마를 했다. 하늘기운이 어둑해질때 연을 날려도 아주 좋았다.
어느 나라를 가건, 나는 국립/공립/지역 커뮤니티 도서관을 꼭 가본다. 습관적으로. 여기엔 이유가 있다. 도서관의 장서목록과 정보 검색 기능의 수준,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독서행태와 태도에는 나라의 선진국 척도가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뉴 브라이튼 해변의 도서관이 그립다. 이곳의 빨강색 쇼파가 아주 편해 책을 읽기가 참 좋다.
오늘 대치동 도서관에서 특강을 했다. 물론 내 책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통섭(다양한 학문의 교류와 사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통섭을 위해 필요한 지식의 편집능력에 대해서 학부모님들에게 말씀드렸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은마 아파트 단지 내의 도서관 사정에 대해 들었다. 주변 환경까지. 대한민국 교육 1번지라 불리는 대치동, 많은 논술학원이 포진해있다. 수능때 실제 논술 성적은 정작 높지 않았다.(서울대 논술심사위원들이 붕어빵같이 찍어낸 답안은 낮은 점수를 주었다지. 대치동 쪽 실제 논술점수가 낮은 이유다)
더 열 받는 건, 동사무소 건물을 이용해 만든 주민 도서관에, 정작 도서관의 본원적 기능인, 책을 소장하고 신간을 구매하고, 정보검색 기능을 연결시켜서, 정보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보다, 장서실을 줄이고, 열람실을 넓혀 아이들 공부할수 있게 하라고 학부모들이 항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가 찼다. 독서실 사업주들은 열람실 축소하고 업무시간을 줄이라고 시비를 걸었다지. 학부모님들이 그건 막았단다. 참 이도저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쉽지 않다.
사단법인 작은 도서관 만들기 운동본부가 주체가 되어 일궈낸 작은 도서관 운동이 많은 결실을 맺고 있다. 대치 도서관도 그 일환이다. 강원을 비롯 산간벽지에 이동 도서관을 만들어 보내고,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매입해 도서관으로 변화를 시켜, 지역 주민들의 지역센터로 탈바꿈 시키는 일을 한단다.
지역주민을 위해 도서관을 잘 활용하기 위해, 무료강연도 열고 시인 김용택 선생님도 여기서 자녀 교육에 대한 특강을 하셨단다. "학원 보내지 말라"고 혼쭐을 내놓고 가셨다고. 논술학원 보내봐야 통조림캔 같은 답만 쓰는 아이들을 만들게 되는 행동을 왜 하느냐고 꾸짖으셨다고 한다.
통섭이란 지식이 융합되는 현상을 말한다. 앞으로의 시대는 전문
가의 시대가 아니라 날로 복잡해지는 문제를 풀기 위해, 얽히고 설킨 사실관계플 풀어내면서, 다른 분야들 사이에 생각의 다리를 놓는 편집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내 책도 그런 사고의 일차적 산물이다. 많이 부족한 점이 있는 것 누구보다 저자인 내가 잘 안다. 그래서 오늘 듣는 강의는 시즌 1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여러분의 자녀분들이 쓰는 책이 시즌 2가 되길 바란다고......
대한민국 교육 1번지란 대치동도 그 속살을 들여다 보면, 교육에 앞서있다 자부하지만, 실제 알맹이의 수준은 어떤지 회의가는 부분이 많다고, 비판어린 말도 했다. 오늘 강의 들으신 분들, 솔직히 좀 속도 상하셨을 거다.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할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교육에 대해서 민감하지만, 쏟아붓는 노력에 비해, 정작 아이들의 수준은 떨어져간다. 공대교수 친구가 미적분도 제대로 못푸는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다고 할때 마다 중학교때 고등학교 과정을 다 가르쳤다며 자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 옆집 아줌마는 교육부 장관이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시면" "옆집은 벌써 시작했는데" 이 두마디면 이 땅의 엄마들은 여지없이 학습지와 사교육의 유혹앞에 무너진다.
중학교때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면 이게 똑똑한 건가? 오늘 수업시간, 더 이상 아이들 병신으로 키우지 말라고 쓴 소리를 했다. 이제 지식을 수집하는 시대, 그걸로 학위를 받고 전문가 대접받는 시대는 끝났다고 이야기 했다. 주변이 술렁거린다. 성격이 올곧은 면이 있어서 할말은 해야 겠는데, 뒤에 도서관 관장님을 뵈니, 강성으로 목소리를 내면, 항의가 들어올까 속으로 좀 두렵기도 했다. (좋은 강연을 준비하면서 관장님도 속을 많이 끓으신단다. 기껏 좋은 강연 준비하면 무료라고 더 우습게 안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비판만 한건 아니다. 결국 이런 상황까지 벌어진 건, 철학없는 교육정책이 그 죄다. 그 속에서 슈퍼맘으로, 헬리콥터 엄마로 살아도 힘든게 이 땅의 엄마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교육에 대한 철학을 다시 새우는 일은 중요하다. 아이에게 학습을 시키기 전, 아이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고슴도치도 내 새끼는 예쁘다는 식의 태도는 지양해야겠지?) 아이에게 어울리는 적절한 지능관계와 학습, 속도와 호흡을 지켜보라고 말씀드렸다.
지식도 인디라의 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비춘다. 타인의 생각속에, 내 생각이 잉태하고 자란다. 그 섬에 가고 싶다면,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런데 다리를 놓는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게 문제다. 그러나 어쩌랴. 불안한 마음에 속전속결의 대답이 정작 아이들을 망친다는 걸. 내려놓으라고 말씀만 드리고 남우새한 모습만 갖고 돌아온 것 같다. 70여명되는 어머니들에게 행여 속 상한 강의가 아이었길 바란다.
첫댓글 우와우와 이제 강연까지 하시는군요. 정말 .. 아.. 나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와~~~ 멋지십니다... 싫어라 할거 뻔히 알면서 바른 소리하기 정말 힘들텐데....
와...멋지시네요. 글에서 홍기님의 철학이 더 강하게 느껴지네요. 요즘들어는 공교육도 사교육도 믿을건 없어보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