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님들은 예배 때 행하는 여러 순서와 활동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대부분 교인들이 주보에 적혀 있는 현재의 예배 순서가 어떻게 하여, 무슨 목적으로 정해졌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송인규 교수님이 쓰신 책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를 통해 찬송, 기도, 말씀, 헌금, 성례, 축도 등의 예배 순서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예배의 부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구원하신 후 그들을 예배로 부르십니다. 애굽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시면서 하나님은 너희로 광야에서 나에게 예배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배는 구원 받은 백성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구원하신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예배로 부르시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는 시편 등의 말씀을 가지고 회중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서 예배를 시작합니다. 때때로 회중들이 함께 응답하면서 예배로의 부름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은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께 마음과 입으로 화답하면서 예배에 참여합니다. 일반적으로 ‘예배의 부름’에 사용하는 성구는 시편 말씀입니다. 주일낮예배 때 ‘예배의 부름’에서 낭독하는 시편 말씀은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에 나오는 시편 말씀에서 몇 절을 선택하여 읽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 마음을 열고 예배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예배에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시편 95편은 우리에게 예배 때의 마음가짐을 두 단계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 단계는 그 앞에 나아가는 일입니다(2). 그 ‘앞’이란 말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의 ‘얼굴’이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면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일입니다(6). 우리는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갈 뿐만 아니라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우리의 심령이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고 새롭게 살 길로 나아갈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할 때, 단순히 예배당 안에 들어선 것만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여러 가지 예배 의식과 순서를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예배했다고 만족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일단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갔으면 우리는 그분께 ‘굽혀 절하고’ 주저 없이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주권자에 대한 절대적 순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굽히고 무릎을 꿇는 행위는 우리가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표시요, 하나님께만 충성하겠다는 엄숙한 결단을 표현한 신체적 상징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부복하여 꿇어 엎드릴 때, 왕이요, 주인이신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것이 됩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참되이 예배하려는 마음가짐인데, 또한 예배에서 가장 장애가 되는 것도 마음의 문제입니다.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섬김, 종 됨, 순종의 마음가짐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그러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시편 95편의 시인은 이런 왜곡된 마음상태에 대해 엄중히 경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 드러낸 왜곡된 마음 상태(완악함-8, 미혹-10)를 교육 자료로 제시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내면으로는 왜곡된 마음을 품은 일을 보면서 우리의 예배에 이러한 왜곡된 마음이 생기지 않게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왜곡된 마음 상태가 여러 모습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1) 외관주의입니다. 외형적 화려함, 표면상 분위기, 체면과 예의에는 신경을 쓰지만, 그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는 전혀 마음을 쏟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예배자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우리의 내면 상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2) 형식주의입니다. 모든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예배의 각 순서에는 충실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섬김의 각오, 순종과 충성의 마음가짐이 없는 것입니다. 예배의 근본정신이 무엇인지 되새기며, 각 예배 순서를 통해 영과 진리의 정신이 드러나도록 힘써야 합니다.
3) 수동주의입니다. 예배 내내 마음의 문을 닫아걸든지 아니면 매우 미온적으로 반응하는 예배자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그리스도인 모두는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4) 감상주의입니다. 예배에서의 감격을 주로 감정적인 것에만 연관시키는 것입니다. 감정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지․정․의 사이의 균형이 갖춰져야 합니다.
5) 이분주의입니다. 공적 예배에서만 예배의 정신을 강조하고 지켜 나가면서도, 일상생활에서는 그 정신을 망각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높이는 행위가 공적 예배 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도 여전히 그러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참 예배를 방해하는 이러한 왜곡된 마음상태를 잘 처리한다면,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게 될 것이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떠합니까? 그저 예배당에서 예배 의식에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 앞까지 나아가고 있습니까? 그분께 나아가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으며 종으로서 섬기고자 다짐하고 있습니까?
[함께 나눌 질문]
1. 문화공연을 관람하는 것과 예배에 참여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2. 성도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방해 요소를 제거할 구체적인 방법을 말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