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고위봉(494m)
1.산행구간 : 용장주차장-이무기능선-고위산-이영재-용장사지-용장주차장
2.산행일자 : 2022. 06.07(화요일)
3.산행거리 : 8.87km
4.산행동무 : 아내
◎ 용장 주차장(10:40)
◎ 용장골 입구(10:50)
◎ 고위산/494m/경주27(12:20)
◎ 백운재 (13:10)
◎ 이영재 (13:50)
◎ 금호봉/용장사지 갈림길(14:20)
◎ 용장사 3층석탑(14:30)
◎ 설잠교(14:50)
◎ 용장 주차장(15:20)
아침운동후 7시 넘어 집에 들어왔다.
거진 두시간 넘게 왔다 갔다 했었다.
그리고 체중을 재어보니 76.8km.....
76kg대를 보니 언제적 몸무게인지 까마득하다.
82년도 군대 제대후
그리고 담배끊을 당시 그때 몸무게로 돌아온셈이다.
안다제의 한마디가 이어지지만
어째튼 당분간 몸무게 줄이는 작업은 계속할것이고...
76kg대를 유지하도록 할것이다.
사실 지난달에 울대병원에서 피검사를의뢰했었는데 중성 지방이 높다
하여 오메가3및 약을 처방 받았다
그리고 운동좀 해라, 또 몸무게도 줄여라가 덤으로 하는 의사 이야기이다.
까짓꺼 그거 뭐라고...몸무게 줄이지 뭐
그렇게 시작한 몸무게 줄이기는 82kg에서 시작했었는데 지금 현재 77, 78 kg을 왔다 갔다 한다.
몸무게 줄이기는 진짜 힘들다.
아내는 평소와 달리 토스토 속재료(양배추등)를 굽고 있다.
물론 아침식사용이다
쥬스한잔으로 아침식사를 하던 평소식단과 달리 빵도 굽고...
그러니 아침에 먹고 남은거 싸서 산에 가자 되었다.
간식겸 식사대용으로 충분하니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산행은 경주 남산 고위봉으로다녀오자 되었는데 날씨가 변수다.
어제오후까지만 해도 비가왔고 또 동해안쪽에는 많은 비가 내려 설악산 국립공원인경우는 출입이 통제되었다는 소식이다.
하여 우산도 준비하고.....
집에서 10시 되어 출발했지 싶다.
용장 주차장이다.
텅비디시피한 주차장 몇대만이 주차되어 있다.
주차요금소는 만들어 놓았지만 주차비 받는이는 없고 문은 오픈해놓은 상황이다.
토,일요일에는 요금을 받드만은...
그리고
이따금 주변 상가 차량들만이 오가는 그런 만남의 주차장인듯 싶다.
한켠에 주차하고 곧장 출발한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대해서 안내를 해놓았다.
한국 문학 사상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라는 걸작을 창작해서 이 땅에 불후의 금자탑을 세운 김시습
강릉 김씨지만 경주를 고향처럼 생각하며 금오산과 경주를 오매불망 사랑했던 매월당 김시습
31세 때 용장사에 금오산실을 짓고, 37세까지 7년 동안을 경주에서 시를 짓고 소설을 쓰며 시대와의 불화를 달랜 조선시대 지식인이자 방랑 시인의 선구자 설잠 김시습의 관한 내용이다.
핫립세이지다.
용장골 입구이다.
탐방안내소의 문은 열려있고 직원 혼자 앉아 무언가 열중이다.
한봐도 뻔하다.
용장골 에서 이무기로 올라가는 이정표이다.
계곡을 건너올라서는길이다.
전에는 천우사 아랫길따라 오른는길이 전부였지만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이곳도 개방 해두었다.
계곡
이무기능선 입구다.
국공에서 구조요청 안내판을 세워두고 재난 취약지구라는 이유로 기상특보시 입산하지말라는게 목적이다.
이내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이따금 높은 계단길...
한줄기 땀과 함께 전망대에 올라서는데 x336.6m 이다.
커피도 한잔 하고...
계란으로 간식의 입맛을 느끼며 올라서는 이무기 능선길.
높고 낮음을 떠나서 암릉과 육산의 산길
주변이 이런길이 있다는게 참 좋은일이다.
조망
고위산이다.
494m라는.....
그런데 아무도 없다
식사를 하고 가기로 하고 백운암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앉는다.
그리고 준비한 컵라면과 빵 한조각씩....
적당히 배부름의 기분 좋은 행복을 안고 ...
일어서는데..
휴대폰이 저만큼 떨아진다.
아뿔사...
베냥 윗 주머니에 넣는다는것이 노래나 들을 욕심으로 옆 주머니에 넣었는데.....
바위를 엎드려 오르다 보니 너무 숙였나
그사이 베냥에서 빠져 암릉에 떨어지고 그로 굴러 떨어지고...
세곳이 갈라졌다.
보호용 필림을 붙혀놓았지만 그것과는 전혀 상관 없이.....
아~
돈들게 생겼다....
가자 출발이다.
나중일은 나중에 걱정하고....
백운재이다.
바닥이 빤지르 하다.
흙도 그러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지 싶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성 거렸으면....
불국사쪽
통일전 들어가는길
이영재다
임도길이다.
통일전 주차장으로, 포석장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임도길이다.
고위봉
가을이다.
가뭄으로 인해 나뭇잎이 변했다.
용장사지 갈림길이다.
금호산에 가서 약수암으로 하산하려다 오늘만 날이가 싶어 그냥 용장골로 내려선다.
용장계 탑상곡제1사지 탑부재라고 한다.
디딤돌 4매를 조립하여 받침돌을 만들고 그위에 사각형몸돌을 올려놓았다.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2019년 주변을 정비 하였다는 설명이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이다.
보물 제186호 삼층석탑이라는데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상륜부가 없고 지붕돌 일부가 깨져 완벽한 아름다움이 조금은 사라진 듯하지만 남산이라는 거대한 기단 위에 세워진 하늘 아래 첫 번째 탑이다.
2단 기단위의 3층석탑 높이는 4.4m라는 삼충석탑..
자연 암반을 다듬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산전체를 기단으로 삼아 만들었다는.....
통일신라 후기작이라 한다.
단지 윗부분이 없어진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에서 보는 삼륜대좌불의 모습이다.
마애여래좌상이다.
자연 암벽에 조각된 마애여래좌상은 단정한 이목구비가 돋보인다는 설명이다.
삼륜대좌불의 북쪽 바위의 벽면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약한 돋을새김이어서 입체감이 느껴진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에 긴귀, 꾹 다문 입술 등으로 인해 조금은 근엄해 보인다.
양 어깨에 걸친 가사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또 옷이 왼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삼륜대좌불(보물 제187호)이다.
삼륜대좌불은 원형의 대좌가 세 개 있고 그 위에 부처님이 앉아 있어 그런 이름이 붙혀졌다고 한다.
공식명칭은 용장사곡 석불좌상이다.
둥근 형태의 대좌, 이것은 초기 불교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양식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유가종(瑜伽宗)의 조사 스님인 대현(大賢)이 8세기 전반 남산 용장사에 살았다.
당시 절에는 미륵장육상이 있었다.
대현스님이 이 장육상을 돌면 삼륜대좌 위에 앉은 부처님도 스님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은 대현스님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시에 담았다.
남산의 불상을 도니 불상도 따라 얼굴 돌려 遶佛南山像逐旋
청구(대현스님)의 불교가 다시 중천에 떠올랐네. 靑丘佛日再中懸
궁중 우물물 솟구치게 한 것이 解敎宮井淸波湧
향로 한 줄기 연기에서 시작될 줄 누가 알리. 誰識金爐一炷烟
용장사지라는곳이다.
신라경덕왕때 고승 대현과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느시대에 페사가 되었는지 알수 없는데,
조선 초기 설잠스님이(김시습) 이곳에 머물며 듬오신화를 썼다고 하니 아마도 조선 중기까지 있었다는 기록이다.
돌확이다.
돌확은 곡식이나 양념을 가는 데 쓰는 연장인데 조금은 좁다는 그런 느낌이다.
설잠교이다.
신라시대에 용장사가 있었다 하여 용장골이라 불러 왔다는 이곳...
김사습이 머물며 금오산실을 짓고 유금오록에 155수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곳이며 속세를 떠나 산승으로 있으면서 단종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로 북향화를 심었던 곳이라 하여 이곳에 다리를 놓아 매월당 김시습을 기렸다하여 다리이름을 김시습의 법명을 따라 설잠교라 하였다고 한다.
용장골 입구의 출렁다리이다.
2016년 설치 되었다고 한다.
용장골 입구로 내려서려다 금오산 용장사방면으로 내려선다.
이쪽길은 처음인데 마을 안길따라 주차장하고 곧바로 연결 된다.
그리고 산길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