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필암서원 춘향제 참여기 -청로 송부종-
필암서원은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 중정(中丁) 일에 춘향제(春享祭)와 추향제(秋享祭)를 올린다.
올해는 양력 3월 24일 열렸고, 필자는 필암서원의 대축관(大祝官)으로 천정(薦定)되어 참여하였다.
제관들은 향사(享祀)를 시작하기 전 청절당(淸節堂)에 모여서 대중이 보는 앞에서 각자 강(講)을 한다.
아래 시는 필자의 졸작으로 현장에서 직접 시창(詩唱)을 했다.
世界文化遺産 筆巖書院春享祭參席有感
甲辰春享薦來呈 갑진춘향천래정
平素河西畏敬名 평소하서외경명
墨竹仁宗師下賜 묵죽인종사하사
芙蓉栗谷讚詩評 부용율곡찬시평
廓然也大公平意 확연야대공평의
淸節焉儒實踐行 청절언유실천행
周易西銘哀散失 주역서명애산실
聯抄文集喜遺瓊 련초문집희유경
筆巖石壁雕雙字 필암석벽조쌍자
書院樓亭掛九旌 서원누정괘구정
理氣之論主敬說 이기지론주경설
命圖調整始原明 명도조정시원명
畿湖道脈綿延續 기호도맥면연속
忠孝精神活潑成 충효정신활발성
二月中丁誠拜苾 이월중정성배필
胸襟渣滓掃灑淸 흉금사재소쇄청
礪山人 淸路宋富鍾 謹叩頭拜上呈
세계문화유산 필암서원 춘향제 소감을 읊다
갑진년 춘향제에 대축 망장(大祝望狀) 왔거늘
평소에도 하서 선생을 외경(畏敬)해 왔도다
묵죽도는 인종(仁宗)이 스승에게 하사하였고
부용(芙蓉)은 율곡께서 선생을 시로 표현했네
확연루 확연(廓然)이란 크고 공평한 뜻이요
청절당 청절(淸節)은 유학자의 실천 덕목일세라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과 《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는 산실 해서 슬프고
《백련초해(百聯抄解)》와 《하서집》은 보배처럼 남아서 기쁘도다
바위 석벽에는 필암(筆巖) 두 글자 새겨졌고
서원의 누정(樓亭)에는 아홉 표식[현판] 걸려있네
이기론은 〈주경설(主敬說)〉을 주장했고
〈천명도(天命圖)〉를 조정하여 시원을 밝혔네
기호 도맥(畿湖道脈)이 끊김 없이 이어져
충효 하는 정신이 활발히 이루어지소서
이월 중정 일에 정성 들여 제향하고 나니
가슴 속 찌꺼기가 싹 씻어져 개운하도다
여산인 청로 송부종 삼가 절하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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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세계문화유산 : 2019년 7월 6일. 다른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 되어 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었다.
◦필암서원(筆巖書院) : 사적 제242호로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에 있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와
고암(鼓巖) 양자징(梁子澂, 1523~1594) 두 분이 배향된 서원이다. 또 양자징은 소쇄원(瀟灑園) 주인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둘째 아들로 하서 선생의 사위다.
◦망장(望狀) : 서원(書院)이나 사우(祠宇)에서 제관을 비롯하여 어떤 직위나 바라는 바를 한지에 붓으로 써서
상대방에게 보내는 문서다.
◦평소에도 외경 해 : 김인후의 학문은 정성을 다하여 공경함을 중시하였는데, 스스로 절대로 도(道)를 안다고
자처하지 않았으며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묵죽도(墨竹圖) : 하서는 한마디로 왕자(훗날 인종)의 선생님. 세자는 그의 학문과 도덕의 훌륭함에 탄복하였고,
하서 역시 세자를 나중에라도 반드시 당우(唐虞)의 다스림을 만들 수 있을 비범한 인물로 여겨 계도(啓導)하니,
서로 뜻이 맞아 신임이 날로 두터워졌다. 인종은 본래 예술에 능하였으나 남에게 나타내 보인 적이 없었지만,
유독 김인후에게 손수 그린 묵죽(墨竹) 한 첩을 하사(下賜)하고, 김인후에게 명하여 화축(畵軸)에다 시를 지어
쓰도록 하였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根枝節葉盡精微, 石友精神在範圍。
始覺聖神侔造化, 一團天地不能違。
뿌리와 가지 마디와 잎새가 모두 다 정미하니
바위를 벗하는 정신 그 안에 들어 있도다.
성군께서 조화를 바라는 마음 비로소 깨닫노니
천지를 아우르는 그 뜻 어길 수 없나이다.
◦율곡 이이(李珥)의 하서 評 : "淸水芙蓉 光風霽月" 맑은 물에 뜬 연꽃(芙蓉)이요, 화창한 봄바람에 비 갠 뒤의 달이다.
◦실전해 슬프다 : 명종 12년(1557)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과 〈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를 지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내용이 실전(失傳)하여 안타깝다.
◦필암(筆巖) 두 글자 : 그의 출생에 관해서 붓바위(筆巖) 전설이 남아있다. 붓바위는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맥동
입구에 있는 바위로 붓모양으로 되어있다. "이 바위의 기운을 받아 하서(河西)가 태어났다"고 전한다. 영조 때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 1683(숙종9)∼1767(영조43))가 ‘필암(筆巖, 붓바위)’이라고 써서 바위에 새겼다.
◦〈주경설(主敬說)〉 : ‘마음이 일신(一身)을 주재(主宰)하나 기(氣)가 섞여서 마음을 밖으로 잃게 되면 주재자
(主宰者)를 잃게 되므로, 경(敬)으로써 이를 바르게 해야 다시금 마음이 일신을 주재할 수 있게 된다’라고
주장하여 이름하여 ‘주경설(主敬說)’을 내놓았다.
◦아홉 현판[표식] : 필암서원의 건물은 9채이고 각각 현판이 붙어있다.
◦〈천명도(天命圖)〉 : 김인후의 도학(道學) 사상(思想)은 기묘사림(己卯士林)의 의식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 의식을 사상적으로 정립하고, 후대(後代)가 이론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와 같은 사상적 정립을 이루도록 한 것이 바로 그가 만든 천명도(天命圖)였고, 정추만(정지운)의 천명도를
보고서 河西 천명도가 탄생하였다.
◦사재(渣滓) : 찌꺼기, 앙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