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뒤꿈치 상처
화장실에서 나오다 문 아래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발뒤꿈치를 다쳤다. 생각보다 아픈데다 엄살을 더해 껑충껑충 깨금발을 뛰며 비명을 질렀다. 놀란 아내는 괜찮으냐며 걱정을 한다. 아픈 중에도 다친 곳을 보니 별 흔적이 없다. 민망하다. 크게 다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는데 상처가 없으면 어떡하나. 그런대도 여전히 아프다. 조금 있으니 핏빛이 배어나고 피가 흐른다. 고맙다. 아내는 밴드를 찾아 붙여 준다고 한다. 됐다고 하고 내가 상처에 밴드를 붙였다. 약간은 따끔거리고 쓰리다.
아픔 없이 나으면 얼마나 좋을까. 많이 아프지는 않겠지만 신발 신고 벗을 때 발 닦을 때가 아플 것 같다. 생각해보니 그래도 아픈 것이 다행이다. 몸이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더 많이 다칠 수도 있고, 처치도 안 해서 세균에 감염될 염려도 있다. 예전에 들은 말로는 한센병(나병)이 무서운 것 중 하나는 감각마비 혹은 무감각으로 다치거나 손상이 와도 아픔을 느끼지 못해서 더 크고 지속적인 피해를 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신체장기 중에 간(肝)이 ‘침묵의 장기’라고 불리는데 그 기능의 칠십 퍼센트가 손상되어도 자각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각증상이 있으면 이미 늦어서 치료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픔을 느끼는 것은 상처의 발견과 치료에 큰 도움이 되니 건강에 유익한 것이다.
흔적 없이 나으면 얼마나 좋을까. 흉터가 상처의 흔적인데 관점을 바꾸면 그것도 고마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지나간 추억은 아름답게 채색되게 마련이며 흉터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 기억과 그것에 연관된 사람들을 생각나게 해 준다. 뿐만 아니라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상기시켜 주고 유사한 상황이 오면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며 설명을 해서 경각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흉터는 우리 몸에 새겨진 시각적 경고요 효과적인 예방접종이다.
작은 상처도 아물고 딱지가 떨어지기까지는 적어도 며칠이 걸린다. 이 기간도 긍정적 기간이 될 수 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순식간에 회복이 되면 다친 일 자체가 드러나지 않고 다친 부분의 소중함도 충분히 인식할 수 없다. 그 불편한 며칠 동안이 사실은 다친 부분을 집중적으로 재인식하고 귀히 여기는 기간이다. 또한 그 기간은 그 부분이 보호받고 최소한의 휴식을 취한다. 적절한 휴식은 기능을 회복하고 새로운 활력을 얻게 한다. 일상생활에서 다치는 것은 횡단보도에서 만나는 빨간 신호등이다. 빨간 신호등을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자주 만나는 것이 현실이다. 그때에는 잠깐 쉬면서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합법적인 방법이 없다. 무리 보다는 순리를 따르는 것이 상식이고 원칙이며 바른 것이다.
다쳐서 아파하면서도 자신이 밴드를 붙여 주겠다고 했을 때 왜 거절했느냐고 아내가 진지하게 묻는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 묻는 것을 보니 마음에 남아 있었나 보다. 본인은 거절당해서 상당히 서운했단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내가 하겠다고 한 것인데 오해가 생길 뻔 했다. 서로가 상대를 배려한다고 한 일인데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충분히 오해의 여지가 있다. 서로 대화가 별로 없고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면 오해한 채로 적지 않은 세월을 보내고 그 바탕위에 왜곡된 관계를 계속 쌓아 갈지도 모른다.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 모처럼 생겨난 기회에 나도 작은 도움을 주고 싶은 호의를 상대가 거절하면 서운하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받지는 않겠다는 거만함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아내에게 여러 번 설명을 했다. 앞으로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도움을 즐거이 당연하게 받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한다. 그러고 보면 웬만하면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 기꺼이 받는 것이 서로의 관계에 좋은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청탁과 비리에 따른 부작용이 너무 크니 그것은 잘 구분해야 하지만 그럴 여지가 없다면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틀 여 지나니 상처에 딱지가 앉고 생활에 지장이 없다. 이번 일을 겪고 생활주변을 돌아보니 다칠 여지가 있는 도구나 시설, 물건들의 뾰족한 모퉁이가 한둘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온가족이 다치지 않고 사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아이들이 다 성장했으니 다행이지 취학 전 아이라도 있으면 여간 마음 쓰이는 일이 아닐 것 같다. 근본적으로 생활용품을 만드는 곳에서 다칠 위험요소를 소비자편에서 최대한 고려해서 제품을 생산해 주면 좋겠다.
육체의 상처 보다 피해가 더 클 수 있는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으려면 서로의 언어나 행동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함을 알았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오해와 마음의 상처로 인해 서로의 관계가 빗나갈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상처나 오해도 생각의 관점을 긍정적으로 갖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도 있다. 매사에 조심하며 여유를 갖고 서로 소통하며 살 일이다.
첫댓글 "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내가 하겠다고 한 것인데 오해가 생길 뻔 했다. 서로가 상대를 배려한다고 한 일인데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충분히 오해의 여지가 있다. 서로 대화가 별로 없고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면 오해한 채로 적지 않은 세월을 보내고 그 바탕위에 왜곡된 관계를 계속 쌓아 갈지도 모른다.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 모처럼 생겨난 기회에 나도 작은 도움을 주고 싶은 호의를 상대가 거절하면 서운하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받지는 않겠다는 거만함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아내에게 여러 번 설명을 했다. 앞으로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도움을 당연하게 받겠다고..."
"육체의 상처 보다 피해가 더 클 수 있는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으려면 서로의 언어나 행동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함을 알았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오해와 마음의 상처로 인해 서로의 관계가 빗나갈 수도 있다. "~ 좋은 글 잘 감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