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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2장 29~38절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시선
자동차를 운전할 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일까요?
바로 계기판에 빨간색 경고등이 들어왔는데도 "별일 없겠지" 하며 무시하고 계속 달릴 때입니다. 그러다 결국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영적인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 파멸의 길로 걸어갈 때 반드시 말씀과 상황을 통해 강력한 '경고등'을 켜 주십니다. "거기서 멈추어라, 돌이키라, 회개하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 하나님이 켜 주신 가장 강력한 경고등을 받았습니다.
바로 직전 전개된 상황에서, 미가야 선지자는 아합을 향해 "이번 전쟁에 나가면 왕은 반드시 죽을 것이고 군사들은 흩어질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했습니다.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은 땅에서 왕의 기분을 맞추기 위한 말들을 짜내고 있었지만,
미가야는 영안(靈眼)이 열려 천상회의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미가야가 이르되 ...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왕상 22:19)
미가야는 하나님께서 아합의 악행(나봇을 죽인 죄 등)을 심판하시기 위해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어 400명의 선지자들을 꾀하게 하신 영적 배후를 정확히 보고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영적 실상을 보지 못하고,
미가야는 역사의 진짜 설계자이신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기에 그의 메시지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었습니다.
미가야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감옥에 갇히거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아합은 미가야의 말을 듣고 분노하여 "이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 (왕상 22:27)고 명령했습니다.
권력의 칼날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대언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목숨을 걸고 외친 백성들의 소리였기에 그 안에는 거짓이 섞일 틈이 없었습니다.
미가야가 왕 앞에 서기 전, 그를 데리러 간 사신이
"다른 선지자들이 다 좋은 말을 하니 당신도 그들과 말을 같이하여 좋게 구하소서"라며 타협을 권유했습니다. 이때 미가야는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왕상 22:14)
미가야에게는 400명의 압박이나 세상의 여론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40장 8절 (절대적인 영원성)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서머나 교회의 지도자였던 폴리갑은 로마 정부의 기독교 박해로 인해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총독은 노인이었던 폴리갑을 아껴 어떻게든 살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회유했습니다.
"한 번만 황제의 천재(Genius)에게 맹세하고, 그리스도를 저주해라. 그러면 당장 석방해 주겠다."
당시 로마의 법과 사회적 분위기는 황제 숭배가 당연한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폴리갑은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기준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역사에 남을 유명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내가 86년 동안 그분을 섬겼으나,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하신 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소? 나는 그리스도인이며, 내게는 오직 그분의 말씀만이 절대적인 법이오."
결국 폴리갑은 화형대 위에서 불타 죽으면서도 세상의 기준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 기준을 지켜내며 성도의 거룩한 귀감이 되었습니다.
존 웨슬리 (John Wesley)
"나를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으로 불러달라. 내 평생의 소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내 모든 삶과 신앙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표준으로 삼는 것이다.“
2. 자신의 안위와 목숨을 걸고 전한 메시지였기 때문
거짓은 항상 ‘대가’를 바랍니다. 400명의 선지자들은 왕에게 아첨하여 부와 명예, 권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축복을 쏟아냈습니다.
이것은 아합을 죽이려는 저주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야망을 멈추고 무릎을 꿇으라는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의 로프였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끝내 회개하지 않고 전쟁터로 직진합니다.
오늘 우리는 아합의 비참한 종말을 통해, 왜 그가 분별력을 잃고 파멸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분별력의 상실, 말씀을 '공격'으로 오해하다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왕상 22:29)
미가야 선지자의 살벌한 예고를 들었다면, 정상적인 믿음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자리에서 옷을 찢고, 전쟁을 취소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합은 29절에 나오듯 보란 듯이 군대를 이끌고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합은 영적 분별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길르앗 라못을 아람에게서 빼앗겠다'는 탐욕에 눈이 멀어 답을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길르앗 라못'은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이자,
무역로가 지나는 비옥하고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은 땅이었습니다.
과거 아람과의 전쟁에서 빼앗겼던 이 땅을 되찾는 것은 아합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이미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했던 것처럼,
아합은 눈앞의 영토 확장과 재물에 대한 탐욕이 발동하면 하나님의 뜻이나 목숨의 위험조차 안중에 들어오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아합은 철저한 현실 정치인이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지금은 전쟁에서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는 완벽한 타이밍이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사돈을 맺으며 강력한 군사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이 군대를 이끌고 친히 방문하자, 아합은 "남북 연합군이 힘을 합치면 아람쯤은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사실 아합은 이전 두 차례의 아람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승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왕상 20장).
두 차례의 전쟁 모두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승리를 약속하시며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그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왕상 20:13)
"내가 이 큰 군대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느니라" (왕상 20:28)
당시 아합과 이세벨은 이스라엘 전체에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퍼뜨려 영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악한 왕일지라도 이스라엘의 진짜 왕이자 주권자는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아합과 온 백성에게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 기적적인 승리를 주셨습니다.
즉, 아합이 예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증명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1차 전쟁(사마리아 성 포위전)에서 패배한 아람 왕과 신하들은 자신들이 진 이유를 기가 막힌 논리로 분석했습니다.
"아람 왕의 신하들이 왕께 아뢰되 그들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지라" (왕상 20:23)
아람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겨우 '산에서만 힘을 쓰는 무능한 지역 신'으로 깎아내렸습니다. 그리고 2차 전쟁(아벡 전투) 때는 평지에 군대를 집결시켰습니다.
당시 아람 군대는 땅을 가득 채웠고, 이스라엘 군대는 겨우 "염소 새끼의 두 떼"(왕상 20:27)처럼 초라했습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산의 신'으로 제한하고 모독한 아람의 교만을 꺾기 위해, 하나님은 평지 전투에서 이스라엘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어주어 아람 군대 10만 명을 하루 만에 보란 듯이 진멸하셨습니다.
아합은 이 두 차례의 엄청난 승리 이후 치명적인 착각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긴 전쟁을 "자신이 정치를 잘하고 군사력이 강해서 이긴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이번에도 당연히 이길 것이라는 군사적 자만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 400명이 왕의 입맛에 맞춰 "올라가소서, 승리하리이다!" 하고 축복을 쏟아내자,
이미 전쟁을 하고 싶어 미치겠는 아합의 마음에 400명의 집단 아첨은 "이 전쟁은 신의 뜻이다"라는 완벽한 영적 명분을 심어주었습니다.
결국 딱 한 명의 선지자 미가야가 "가면 죽는다"고 진실을 말했지만, 아합은 400 대 1이라는 숫자의 우위와 달콤한 거짓말에 영적 분별력을 완전히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마음에 이미 탐욕의 답을 100% 정해놓은 사람에게는,
그 답을 뒤흔드는 진실의 음성이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진실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이 너무 커서 진실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분별력을 잃어버린 인생은 나를 죽이는 달콤한 거짓말은 은혜로 받아들이고, 나를 살리는 하나님의 아픈 책망은 기분 나쁜 공격으로 오해합니다. 내 고집과 야망이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의 브레이크 소리가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본론 2: '변장'이라는 가면, 하나님을 속이려는 인간의 잔꾀
하나님의 경고를 짓밟고 전쟁터에 나갔지만, 아합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떨치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찜찜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 (죄를 깨닫게 하시는 역사)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렇다면 그때라도 돌이켜야 마땅한데,
아합은 기가 막힌 인간의 잔꾀를 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왕상 22:30)
아합은 왕의 옷을 벗고 일반 군사의 옷으로 '변장'을 시도합니다.
사돈 관계였던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는 왕의 옷을 입혀 적들의 표적이 되게 만들고, 자신은 비열하게 일반 군사들 사이에 숨어 목숨을 건지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의 마음 중심에는 엄청난 영적 교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죽는다고 예언하셨지? 하지만 내가 왕의 옷을 벗고 군사들 사이에 꽁꽁 숨어 있으면 하나님의 화살인들 나를 찾아내겠어? 내 변장술로 그 심판의 예언을 비껴가 주지!'
아합은 하나님을 온 우주를 감찰하시는 창조주가 아니라, 눈을 가리면 속아 넘어가는 무능한 존재로 착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아합처럼 행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 죄와 탐욕을 감추기 위해 세상의 성공이라는 가면, 바쁜 일상이라는 가면, 혹은 교회 안에서의 '경건한 척'하는 종교적 가면(변장)을 쓰고, "아무도 모르겠지, 하나님도 모르실 거야, 우연히 넘어가겠지"라며 요행을 바라지 않습니까? 그러나 죄인은 결코 자신을 가릴 수 없습니다.
잠언 16장 33절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마태복음 10장 29절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1830년대,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은 일리노이주에서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다가 동업자의 파산으로 막대한 빚을 지고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서부로 이주하던 한 가난한 이민자가 여행 경비가 부족하다며 링컨에게 찾아와 단돈 50센트를 대가로 '푸른색 쓰레기통 종이 상자' 하나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링컨은 그 불쌍한 이민자를 돕기 위해 필요도 없는 쓰레기 상자를 50센트에 샀습니다. 나중에 그 상자를 열어보았을 때, 상자 바닥에는 먼지 쌓인 책 한 권이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국의 법률가 블랙스톤이 쓴 《법학통론(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이었습니다.
가난해서 법학 책을 살 엄두도 내지 못했던 링컨은 이 ‘우연히’ 얻은 책을 밤새워 읽으며 법학을 독학했고, 결국 변호사가 되어 정계에 입문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50센트짜리 우연한 거래였지만, 하나님이 한 인생과 나라를 바꾸시기 위해 예비하신 정교한 배달이었습니다.
本론 3: 우연히 날아온 화살, 하나님의 정교한 저격
인간 아합의 계산은 완벽해 보였습니다.
실제로 아람 왕은 군사들에게 "오직 이스라엘 왕만 표적 삼아 죽이라"고 명령했고, 아람 군대는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을 아합인 줄 알고 집중 공격했습니다.
아합의 꾀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군사들 사이에 숨은 아합은 "내 잔꾀가 통했다"며 안도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성경은 역사상 가장 엄숙한 장면을 고발합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춘지라..." (왕상 22:34)
이름 모를 아람의 한 군사가 아무런 조준도 없이, 특별한 대상을 타깃으로 삼지도 않고 그저 허공을 향해 "무심코(우연히)" 활시위를 툭 당겼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100% 우연히 날아간 눈먼 화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눈먼 화살이 수만 명의 군사 중에서 정확히 누구를 찾아갑니까?
변장한 아합 왕을 찾아갑니다. 그것도 통짜 쇠로 된 갑옷이 아니라, 갑옷 조각과 조각을 이어 붙인 극히 좁은 틈새인 ‘갑옷 솔기’를 정확하게 관통합니다.
세상은 이것을 '재수 없는 우연'이라고 말하겠지만,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의 필연'이라고 부릅니다.
아람 군사는 무심코 쏘았지만, 그 화살을 쥐고 조준하여 날리신 분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아합은 변장하면 살 줄 알았고, 우연히 살아남을 줄 알았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인간이 숨겨놓은 가장 취약한 '틈새'를 기어이 찾아내어 꿰뚫으셨습니다.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 1mm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성취됩니다.
C.S. 루이스 (C.S. Lewis) "우리가 '우연히 만났다'고 말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이미 그 만남을 위해 수년 전부터 무대 장치를 준비하고 계셨다."
결론: 가면을 벗고 말씀 앞에 엎드리십시오
결국 부상을 입은 아합은 하루 종일 병거 위에서 피를 흘리며 버티다가 저녁 해가 질 무렵 비참하게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가에서 씻을 때, 개들이 와서 그의 피를 핥았습니다.
성경은 이 마지막 장면에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왕상 22:38). 과거 나봇을 억울하게 죽였던 아합을 향해 엘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심판의 말씀이 한 토막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합이 죽음의 경고 앞에서도 회개하지 못한 것은,
죄의 유혹과 환경을 끊지 못하는 완악함,
그리고 '가면을 쓰면 안전하겠지', '우연히 피할 수 있겠지'라는 영적 불감증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 앞에서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군사의 변장복이 아니라 '회개의 베옷'입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인간이 만든 얄팍한 갑옷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뿐입니다.
오늘 하루, 내 힘과 잔꾀로 인생의 안전망을 짜려는 어리석음을 내려놓읍시다.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비밀은 없습니다.
"우연히 잘 되겠지"라는 영적 안일함을 전구처럼 깨버리고, 내 삶의 굳어진 방어벽과 가면에 감춰진 죄의 '갑옷 솔기'를 주님 앞에 솔직하게 드러내며,
주의 말씀 앞에 정직하고 겸손하게 순종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