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ed to Liberal Democracy?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대런 아세모글루’의 이어지는 글이다. 사회적 지식은 과학적 지식보다 발전시키기가 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지난 200년 사이에 우리 사회의 제도적 배열과 그에 대한 견해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적 참여, 자유, 관용이 확대되었다. 이는 느린 변화 과정이었고 다시 역행하는 때도 많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조상들보다 훨씬 건강한 건 집합적 지식 덕분이다. 오늘날에는 (미국을 제외하고) 선진 산업 국가 모두에서 출생 시 기대수명이 80세가 넘는다. 19세기 영국에서는 30세가 되지 않았다. 가장 가난한 대륙인 아프리카에서도 이제는 출생 시 기대수명이 평균 63세가 넘는다.
지식은 더 나은 도구와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과학 지식만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손을 씻어야 한다는 정보, 하수와 식수가 섞이면 안 된다는 정보도 유용한 집합적 지식이다. 평범한 사람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으면서 모든 권력을 가진 군주나 냉혹한 장군에게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지식도 그렇다. 점점 복잡해지는 인간 공동체를 조율해 나가는 방법도 매우 유용한 집합적 지식이다. “지식을 과거의 경험을 통합해 가면서 인간이 환경에 대해 해온 모든 적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할 때만이, 지식의 성장과 문명의 발전이 동일한 과정이 된다.”-‘하이에크’ 주장이다.
서구 민주정이 강조하는 자치의 한 측면은 투표다. 투표는 사람들이 지배자를 몰아낼 수 있게 해주므로, 역사에서 가장 많이 남용되는 강제의 원칙이었던 지배자의 권력을 제약한다. 이에 대해, 의제 설정을 소수의 엘리트가 독점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새로운 제안이나, 아이디어를 테이블에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종합하면 자치는 과도한 권력을 통제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확립할 수 있고, 공동체의 우선순위를 실현하고 응집을 강화할 수 있으며, 정치 참여를 통한 실험과 사회적 학습이라는 필수적인 부분에서 이바지할 수 있고 공동체 단위에서 실험의 물꼬를 틀 수 있다. 오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및 자치와 시너지를 갖는다. 자유주의적 민주정은 형용모순도 아니고 사로 별개인 개념들의 집합도 아니다. 사실 정치에서 표현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에 대한 자유주의의 헌신은 어느 정도의 자치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의 자유는, 국가 구성원들의 동의 때문에 수립된 입법권이 아닌 다른 어떤 입법권 아래에도 있지 않으며, 그 입법권이 자신에게 맡겨진 신임에 따라 제정한 법률이 아니라면 누구의 의지에도 지배되지 않고 어떠한 법률에도 구속되지 않는다.”-존 로크의 사회계약론의 글이다. 또 그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고 자기는 자기 주인으로 태어났다.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누군가를 그 사람의 동의 없이 예속시킬 수는 없다. 노예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노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가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보자. “법은 일반의지의 표현이다. 모든 시민은 개인적으로, 혹은 대표자를 통해, 그것의 구성에 이바지할 권리가 있다. 법은 그것이 보호하든지 처벌하든지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일해야 한다, 모든 시민은 법의 눈앞에 평등하고 모든 공적인 명예, 지위, 고용에 그들의 역량에 따라, 그들의 미적과 능력 이외에는 다른 어떤 구별도 없이, 동등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자유주의에 공짜 점심은 없다. 19세기에 발달한 고전적 자유주의 개념은 사회계약론에 내재한 모순에 대한 반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계약론은 사회적 자유가 개인적 자유를 전적으로 덮어씌울 수 있다고 말한다. 국부론에서 스미스의 통찰은 정제 적 자유가 경쟁 시장과 결합하면, 공공선의 달성으로 이어지리라고 본 점이다. 시장의 작동에는 사적인 이기심이 결국에는 공공선에 복무하도록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저녁상에 음식을 올릴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양조인, 제빵사의 선의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신경 쓰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이 아니라 이기심 덕분에 우리의 일들을 해나갈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기보다 그들에게 득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걸인이 아니라면, 동료 시민의 자비에만 주로 의존하기로 선택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자유주의를 두려워하나? 알고 봤더니 꽤, 많은 사람들이 자유주의를 두려워한다. 아무리 조밀한 공동체라도 그 안에는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설화가 존재한다, 사회 질서나 제도가 모든 이로부터 지지받으리라, 기대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특정한 정치·경제적 요인이 자유주의에 대해 저항을 일으킬 수 있다. 특정한 정치·경제적 요인이 민주주의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키듯이 말이다. 어느 나라의 경제 성장이 민주주의가 등장하거나 유지될 확률이 높다는 증거는 없다. 인과관계는 반대 방향이다.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에 영향을 준다. 자유민주주의가 어떻게 생겨나는지와 무엇이 이것을 지지하는지에 대하여 말하자면,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정치적 과정 없이 자유민주주의가 달성되는 예는 없다.
민주적 제도는 지속적으로 위험에 맞닥뜨린다. 독재는 독재자와 그의 연합 세력에게 이득을 주고, 민주적 규범이 약화하면 부패가 생기거나 다른 강력한 경쟁자들이 권력을 갈취할 기회가 나타난다. 자유주의는 규범과 제도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늘 문화적 긴장을 불러온다. 자유주의가 전통을 존중하고 다른 공동체들의 우선순위를 전적으로 존중할 때도 그럴진대, 종종 자유주의는 그런 존중에 대대적으로 실패한다. 또한 민주정은 자신이 불러일으킨 열망과 자신이 달성하겠다고 한 약속을 실현하지 못할 때 지지를 잃는다. 따라서 사회가 때때로 비민주적인 대안으로 기우는 대는 정치·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라 사회적 이유도 있다. 더 나은 삶의 약속으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제도는 그 약속 때문에 죽게 된다. 정확히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기에 죽게 된다. 그 때문에 자유주의를 옳은 가치관 집합으로 보거나, 일반의지 사회계약으로 승인을 얻었다고 간주하는 가치관의 집합으로 볼 게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얻은 사회적 동의 위에 세우는 것이 한층 더 중요해진다.
자유주의적 과학. 18세기 유럽은 ’니콜라우스 코패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요하네스 케플러‘,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아이작 뉴턴‘, ’로버트 훅‘과 같은 자연철학자들이 과학적 진전을 이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기본적인 과학 지식을 갖지 못했고,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은 질병, 세균, 질병을 몰랐고, 세포의 속성, 예방 접종, 백신도 몰랐으며, 질소 순환, 라디오파, 전자기 과학과 화학의 대부분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도구로서 매우 기본적인 것들과 망원경, 현미경만 만들 정도였다. 무생물 에너지를 산업에 활용하지 못했다. 간단한 철강 제품 외에는 안정적인 엔진이나, 기계 제조도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두 세기 동안 모든 것이 달라졌다. 1900년대 초 유럽인들은 기본적인 화학, 유기 과학, 질병의 세균 이론, 생명체 세포 구조, 진화론, 전자기학, 유전학, 대기 중의 질소를 인공적으로 고정하는 법, 전신과 라디오, 전파를 통한 원거리 통신, 대량 에너지의 난방, 조명, 비행, 상대성, 핵물리학, 양자 역학과 알게 되었다. 과학과 과학적 방법의 승리였다.
비자유주의 사회에서도 과학은 발전한다. 냉전 시기 소비에트도 그랬고, 오늘날 중국도 그렇다. 사회주의에서 이뤄진 과학적 성과를 토대로 하고 있으며, 탐구 활동에 대한 약간의 자유와 과학자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조각조각 도입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최근의 연구를 보면, 이러한 방식은 대체로 불완전하며 그 효과도 제한적이다. 일례로 중국 학계의 연구자들은 새로운 학장이나, 정당 관계자의 임명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서, 자신의 연구를 새로 임명된 사람의 선호에 맞춰 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과학은 자유주의가 거둔 커다란 성공 가운데 하나다, 자유주의가 추구한 제도가 없었으면 과학자들은 자유롭게 사고하고 탐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연구기관은 과학, 학습, 지식의 공유로 이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데 적합한 자율성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자유주의적 개념이 없었으면 과학적 탐구를 향한 열망도 제한된다. 자유가 폭넓게 용인되지! 않으면 과학적 방법론도, 유용한 정보의 공유와 논의도 생기지 못한다. 필자는 주장한다.
2026.10.14.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2nd
대런 아세모글루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 힘 간행
첫댓글
지식의 성장과
문명의 발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