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07:27]
저희가 이리 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리저리 구르며 - 문자적인 뜻은 '빙빙 돌며'로서 하나의 원 주위를 계혹 맴돌며 춤을 추는 모습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다. 지각이 혼돈하도다. - 문자적인 뜻은 '모든 그들의 지혜는 바닥이 났다'이다. 말하자면 항해사들의 배를 조종하는 모든 기술이 무익한 상태에 처했다는 것이다.
항해사들은 지식적으로 배운 항해술과 바다를 항해해 본 경험을 가지고 능숙하게 배를 조종하기 마련인데 이제 그 능력들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파도 앞에 항새사들의 보잘것없는 지식 및 경험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파도를 명령하는 자이신 하나님께 호소하는 일뿐이다.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사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스스로 쌓은 지식과 경험으로 헤쳐 나갈 수 없는 위경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도우심을 호소하는 것뿐이다.
[렘 4: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나를 알지 못하는 우둔한 자요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단순한 지침이나 교훈에 대한 앎과는 다르다. 하나님이 백성들에 대해 '나를 알지 못한다'고 하실 때, 이 말속에는 그 백성들의 불신과 반역 및 계명에 대한 불순종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전 3: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 바울은 갑자기 주제를 전환하여 앞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하면서 줄곧 다루었던 세상 지혜의 어리석음에 대해 다시 언급한다. 따라서 이 말은 바로 앞 구절의 말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는 주제보다는 뒤따르는 말 '지혜자가 되기 위해 미련한 자가 되라'는 주제와 연결짓는 것이 타당하다
'속이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사파타토'는 현재 명령형으로서 고린도 교회 내에 자기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그릇된 행위를 하고있는 사람이 현재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정한 지혜를 세상적인 관점으로 그릇되게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서 불경건한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므로 이를 엄증하게 경고하고 있다.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 바울은 세상에 대한 미련함이 진정한 지혜라고 일깨워주고 있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뿐만 아니라 헬라인 모두가 갈망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미련함을 인식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지혜'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있는 헬라인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은 미련한 것으로 여겨지나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바울이 1:18-25에서 언급한 대로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나 이것이야말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진정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고전 3: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 앞에서 언급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지혜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이 세상의 지혜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것이라고 강력하게 선언한다(Mare). 이처럼 지혜에 대한 의의와 가치 판단의 기준이 이 세상의 것과 하나님 나라의 것이 서로다르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의 인간적 지혜를 의존하여 서로 분열과 분쟁을 일으킴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 바울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본절과 다음절에서 구약성경의 두 부분을 인용한다.
본 구절은 첫번째 부분으로 욥 5:12,13을 약간 자유스럽게 인용했다. 이 구절은 70인역의 번역을 옮기지 않고 바울이 직접 히브리어 본문에서 번역한 듯하다. '궤휼'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누르기아'는 본래 '어떤 일을 민첩하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좋은 의미로 사용된 경우도 있지만 주로 나쁜 뜻으로 사용되어 '못된 일이라면 어떻게라도 해낼 태세를 갖춘 상태'를 말한다
한편 '빠지게 하시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드랏소메노스'는 70인역에서의 '카탈람바노' 보다 강력하고 생생한 표현이다. 이 단어는 '벌린 손'을 의미하는 헬라어 '드락스'와 같은 어군으로 '탈취하다', '붙잡다'등을 의미한다. 바울은 본구절을 통하여 사람들의 궤휼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사상을 뚜렷하게 표현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자기들의 구원 계획을 세우나 오히려 그 궤휼이 그들을 얽어매도록 하여 인간의 지혜가 전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