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식과 하나가 되어
그 속에서 안정된 후에
초월하라.
M(마하라지):
'내가 있음',
현현된 브라만,
그리고 이스와라는
모두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을
깊이 숙고하고,
깨달으십시오.
이런 자리는 모든 것이
아주 자세하게 설명되는
희귀한 기회입니다.
그러니 이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십시오.
여러분은
<현현된 브라만>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참된 상태가 무엇인지
수 없이 말했지만,
여러분은
습의 힘 때문에,
몸과의
동일시 속으로
다시 떨어집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몸 동일시를
포기해야하는
단계에 왔습니다.
신체 활동은,
몸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활동과
동일시하면
안 됩니다.
Q(질문):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습니까?
M:
당신은 그 몸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그 몸이 아닙니다.
당신은
호흡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생명력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그 의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의식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의식 안에서
안정되면,
몸에 대한 표현과
몸을 통한 표현들에 대한
무심함
(dispassion, 냉정함)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포기(renunciation)이지
'의도적인'
포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일상적 의무를
소홀히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온 열의를 다해
그 일상적 의무를
수행하십시오.
Q:
몸에서 벗어난
갓난 아이의 자유를
우리가 재발견
해야 하지 않습니까?
M:
아이의 근원을
이해하십시오.
아이는,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든 산물입니다.
부모에게
의식이 있듯이
아이에게도
있습니다.
아이에게 있든
어른에게 있든
의식은
항상 같습니다.
오직
하나의 의식만
있습니다.
당신은 그 의식과 '하나'가 되고
그 안에서 '안정'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 의식을 '초월'하십시오.
저 의식이 당신의
유일한 자본(밑천)
입니다.
그 의식을
이해하십시오.
당신은
어느 정도까지
당신 자신을
알고 있습니까?
Q:
저는 참 스승의
발을 붙들었습니다.
저는
그 너머의 것은
전혀 모릅니다.
M:
당신은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참스승의 발’이
뜻하는 바를
이해해야 합니다.
움직임이
발과 더불어 시작되듯이,
움직임은
모름(no-knowingness)에서
시작하여
앎(knowingness)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 앎이 일어날 때, 그것은
참스승의 움직임입니다.
‘내가 있음’이 시작되는
저 <움직임의 근원>으로
나아가십시오.
저 움직임을
멈춘 자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참스승의 발을 붙드는 것은
<앎과 모름의 경계선>입니다.
ㅡ 《의식과 절대자》ㆍ
니사르가닷타 마하라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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