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없는 말 /김문억
1 입 밖에서 부서지는 물끼 없이 마른 말이 TV 밖으로 와르르 쏟아진다
펑크 난 이빨 사이로 튀어나온 오자투성이 직하 바이러스와 메르스 세월호가 마구 묻어 나온다 상처난 말 대가리를 물고 채널마다 날뛰면서 긴장이 팽배하고 부상당한 말 꾸러미를 치료하고 싶었지만 여론에 밀려 삭제되고 없다
기막혀 귀가 막힌다 듣는 귀도 없는 말
2 날 선 말끝에 베허 낭자한 피의 현장
혀끝에 착 달라붙어 악을 쓰던 빨간 말 군중 속을 질주하다가 낙마하여 공개사과 하고 퇴역한 말 친친 감아 기브스 하여 말을 고정시킨다 뼛속 깊이 금 간 말의 침묵 실종 신고 수색한다 엎드려 때를 기다린다 설치다가 피멍 든 말
3 입내 나는 틀니 속에서 도정되지 않은 누런 말이 마구 튀어나온다
혹은 썩은 이빨 사이로 스톱워치 없이 부서져서 못 쓰는 싸라기 말 2+1 바겐세일로 헐값에 땡처리할 때
공방전 조심하세요 다쳐도 책임 없습니다
4 말의 사망으로 화장터에 연기 오른 날
성폭행으로 뛰어내린 여중생 신상명세와 무슨 색 팬티를 입었는지 더 궁금한 종편방송 땡! 해도 나는 좋아 카메라만 돌린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어쩐다고? 엄 기자 아직 경마장에 있습니까 말에 체하고 말에 숨 막혀서 119로 후송되는 피 묻은 말 부러진 말 "여기서 방금 들어온 속보 하나 전합니다 말 채찍에 세 살 박이 의붓자식 또 죽었습니다" 어린 새끼 앞세우고 날아가는 기러기 떼 상여를 메고 끼륵끼륵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잘 가게 그래 그래! 가갸 거겨 못 배워서 억울하고 서러운 말
5 달콤한 말만 냉큼 받아먹어서 흔들리는 썩은 이빨 뿌리까지 까맣다
시뻘건 뻘로 남은 잇몸에서 새나오는 먹기 좋은 떡 헛소리와 1급장애 발 없는 말이 허공에서 절룩거리는 오! 7월에 온 크리스마스 말 세탁을 했지만 앉을 곳이 없어서 떠도는 함박눈이여!
입 닫고 암 하세요 문단속 잘 하세요
6 어렵사리 말 속에서 말을 골라 낸 시인이여!
원고지 네모 안에서 이빨을 닦는 하얀 말 정장을 하고 단단하게 영근 말씨를 심는다 말의 압정을 종이 속에 박아 놓고 색칠을 하며 물을 뿌리며 백마를 잡아타는 마침내 시인이여!
경마장 트랙을 휘달린다 입을 찾는 말소리. 김문억 시조 집<김문억 사설시조2019파루>중에서
사설시조 연작 여섯 수다 시조문학은 본디 응축된 절제미를 근본으로 하는데 현대시조에 와서 어찌하면 독자층을 더 넓혀서 시를 좋아하는 독자를 시조문학으로 끌고 올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나의 창작 기본 정신이기 때문에 해결하는 일환의 수단으로 그 동안 사설시조를 많이 쓰게 되었다 이 작품을 쓸 무렵에는 동아리 중에서 하이포 시를 추구하는 몇 몇 작가가 있어 시조를 쓰는 나와 늘 충돌하는 토론을 하게 되었다. 더 솔직히 말을 한다면 이 작품은 그네들을 조금은 의식하면서 평소의 나의 작품세계에서 일탈을 하는 글이 되고 말았다. 작가가 그런 의식을 갖고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지만 심드렁한 마음을 갖고 쓴 것 같다. 나는 어디서고 시조문학이 우월하다는 논조는 하지 않는다. 다만 시조를 시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늘 경계하는 입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