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와 산소의 운명
이 수 영
내가 다니는 산책로 중간쯤에는 언제나 잘 가꾸어진 산소가 있다.
그날도 약간의 오르막을 지나 산소가 있는 언덕에 오르니 앞서가던 산책객이 깜짝 놀라며 나를 돌아보고 소리친다.
“어, 이 산소 좀 봐!”
이상하다. 그곳은 산책객들의 중간 쉼터로 긴 나무의자가 두어 개 놓여있고, 전망이 좋아 누구나 잠깐씩 쉬어가는 곳이다. 언제 봐도 정성껏 가꾸어진 이 산소는 그 쉼터를 장식하듯 늘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태로 버려두다니. 무슨 일일까?
산소는 삼단머리 가르마를 타듯이 윗부분 한가운데를 벌초를 하다가 그냥 두고 가버렸다.
옛날 명절이 되면 남자아이의 더벅머리를 스님처럼 박박 깎던 시절 이마에서 정수리를 지나 뒤 꼭지까지 양손잡이 바리캉으로 이발을 하다가 그냥 버려둔 것과 똑같은 모양새였다. 산소의 양 옆으로는 그렇게 깎아내린 풀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고 깎이지 않은 풀들이 오히려 더 시원하다는 듯이 기세 좋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온갖 생각이 들었다. 말벌 때문이었을까? 예초기에 사람이 다쳤을까? 아니면 기계가 고장 났을까? 산소를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나는 그 산소를 보면서 내 어릴 적 성묘 하던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벌초를 하러 갈 때에는 시퍼렇게 잘 갈아놓은 낫 몇 자루를 혹시나 다칠세라 가느다란 새끼줄로 친친 동여매고 지게에는 숫돌이랑 간단한 새참까지 준비해서 산소로 향했다.
그때 그 산길은 거의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다. 나무꾼이 다니던 길, 산전을 가꾸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오가며 다듬어진 그 길은 지금의 ‘무슨 둘레 길', ‘무슨 올레길’ 이라고 이름 붙여진 길에 못지않게 아름답고 시원하게 뚫려 있는 걷기에도 좋은 길이었다.
거기에 가는 길 곳곳에 널려 있는 가을의 정경은 어린 마음에도 참 아름다웠다. 하얀 억새꽃과 빨간 망개 열매, 그리고 가까운 밭에서 고개를 숙이고 일렁대는 키 큰 수수 이삭과 익어가는 콩밭, 밭이랑 사이사이에 파란 속을 채워가는 김장용 무, 배추가 코스모스와 함께 한 폭의 수채화처럼 어우러져 있었다. 이런 모든 풍경들은 어릴 적 벌초하러 가던 길에서부터 아직도 내 가슴으로 옮겨와 오랜 세월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그림이자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 길을 지나 산소에 도착하면 농사일로 다져진 사람들의 팔뚝과 낫 끝에서 여름 내내 자란 풀들이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모습은 거의 예술이자 달인의 경지였다. 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신나게 읊어대는 그들의 노랫가락은 그렇게 흥겨울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내 고향에는 많은 집들이 산소를 돌볼 사람들이 없어졌다. 후손들은 모두 바쁘고 제각기 멀리 흩어져 있다. 그래서 시골 친척에게, 때로는 지인들에게 얼마간의 사례를 하고 벌초를 의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요즘은 지방의 농협에서 벌초 대행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나 노령화 되면서 그 일마저 할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요즘 산을 다니다 보면 곳곳의 산소들이 버려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거나, 이장을 한 자리가 흉한 몰골로 남아 있다. 조상을 섬기고 산소를 돌보는 일은 우리의 오랜 전통이고 미덕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까?
어느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얘기들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증가율은 1을 겨우 상회한다. 부부 사이에 평균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러니까 30년 정도의 한 세대가 지나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절반은 절손이 되고 남성 위주의 전통이 그대로 지속된다면 절손의 비율은 훨씬 더 높아져서 제사도 산소관리도 기대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런 상황에도 명당을 찾는 사람, 호화분묘를 조성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물론 보기에는 좋다.
도래솔들이 산소를 보고 읍을 하듯 늘어서고 위용을 자랑하는 호석이 봉분의 무게를 더한다. 아마도 높이 쌓아올린 봉토와 호석 그리고 비석을 비롯한 각종 장식이 가문의 재산과, 지위를 뽐내는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술맛이 쓰다. 아무리 전통이 그렇다 해도 시대가 바뀌면서 앞날이 훤히 내다보이는 현실에도 관습대로 이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현재의 인구 추이를 보면 한 세대 후면 절반 가구가 절손이 되고 그 속도는 더 가속화 될 것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지금 만들어 놓은 그 화려한 분묘라고 해서 그대로 남아 있을까? 결국은 많은 분묘들이 주인 없는 폐허로 버려지게 될 것이 아닌가.
근래에 와서 장묘 풍습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안 된다. 멀지 않은 장래가 훤하게 내다보이는 현실에서 관행을 쫓는 어리석음을 계속한다면 이는 후손에 대한 폭거가 아닐 것인가.
나는 오늘 벌초하다 버려진 산책로의 산소를 보면서, 그리고 얼마 후 후손이 없어 버려질 수많은 산소들이 만든 폐허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쓰린 가슴을 보듬는다. 과연 산소의 운명은 거기까지 인가?
2017. 9. 30
첫댓글 오늘 저도 가로늦게 벌초를 다녀 왔습니다. 산소의 운명이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마음에 와 닿는 무언가를 느껴 봅니다.
앞으로 십년, 오십년 백년후를 상상해 봅니다. 어느 산소든 본의 아니게 버려질 것을 장묘문화의 변화가 필요할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산소를 돌보는 후손이 얼마나 될는지 걱정스럽습니다. 우리 집안에서는 선대 조상님들의 분묘를 한 곳으로 이장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화장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잘 관리가 될지 의문입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우리문우님들 어느 글방에서보다 조상님들의 대한 효심이 대단함을 느낌니다. 옛날의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하고계신듯 하여 언연중 죄스러움을 느낌니다. 무던히도 귀여워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찾아뵌지가 아득해 눈물이 납니다. 출가외인 핑계만 대는 손녀가 되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왜 이리 가슴이 아픈지 50다된 조카에게 떠넘겨 미안함을 느낌니다.
산소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다고 봅니다. 조상숭배와 관리가 제대로 될 수 있는 다양한 쪽으로 입니다. 산 돼지 피해도 늘어 나고 있어 산돼지를 막는 일 까지 강구되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설픈현실이네요 앞으로는 옜날에는 일조천손 이라고 했는데 누군가 말했듯이 앞으로는 천조일손시대가 되기도 힘든다고 했으니 ....... 참 인생 무상이네요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백년이면 인심이 변하다고 했는 데 요새는 강산보다 인심이 디 빨리 변하는 것 같습니다. 선조에 대한 존중개념이 희박해지고 벌초를 귀찮은 노동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시대의 조류에 맞춰 변신하는 수 밖에. 시대의 변화와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벌초와 산소의 운명을 공감합니다. 그런 세태 속에서도 우리 고향은 좀 특이 합니다. 아직도 문중의 행사가 잘 이루어 지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 됩니다. 인구의 감소가 나라의 근본까지 흔들리는것 같아서 걱정하며 잘 읽었습니다.
정확한 통계인지는 모르지만, 전국에 무연고 묘가 30%나 된다는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벌초시기에 벌초행렬 차량을 보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현명한 대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산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봉분묘의 장래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조상숭배와 산림관리의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목장 등이 거론되었고요. 저희는 평장으로 하고 비석울 세웠습니다만, 그래도 산소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글 내용에 공감합니다.
조상을 숭배하고 자신의 뿌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만 지나치게 호화로운 분묘를 보면 돌아가신 분을 숭해하는 참뜻보다 재력을 과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 벌초할 후손이 없거나 후손이 있어도 돌보지 않아 방치된 분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더 늘어날 것같아 장묘문화가 새롭게 정착되어야 할것이라 생각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벌초를 해서 말끔해진 산소 주변은 참 보기에 좋더군요.. 수시로 들러 산소를 보살피는 효심 가득한 분도 보았구요.. 이제는 인구의 감소와 방치되는 분묘로 인해 장묘 문화의 개선이 필요한 때입니다.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