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살고싶은 곳 - 신기루처럼 사라진 곡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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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1.10. 01:28조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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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처럼 사라진 곡물들
산골 마을은 밭에다 조를 많이 심고, 바닷가 고을은 팥과 보리를 심는다. 들판에 있는 고을 중에서도 산과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을은 어떤 곡식이라도 잘 자란다. 목화는 영남과 호남지방 모두가 잘되어서 산골이나 바닷가를 가릴 것 없이 모두 가꾸기에 알맞다.
- 『택리지』 「복거총론」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조는 쌀, 보리 다음으로 많이 심는 곡식 중의 하나였다. 어린 시절 노란 조밥을 어찌나 많이 먹었는지 흰쌀밥을 먹고 싶어 옆집의 친구하고 바꿔 먹었던 기억이 있다. 기원전 270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는 중국 신농(神農)시대의 오곡 중에 조가 포함된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야생종을 순화하여 재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는 온난하고 건조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데 강원도와 경북, 전남, 제주도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그러나 재배면적이 자꾸 줄어들어 1963년만 해도 13만 8,600헥타르였던 것이 1983년에는 1,526헥타르로 줄어들었다.
보리는 벼과에 속하는 작물로 한자로는 대맥 大麥이라고 부르며 겨울보리와 봄보리로 구분된다. 쌀 다음으로 중요한 식량자원인 보리는 기원전 7000년경부터 재배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를 보면 주몽이 부여왕의 박해를 받아 남하할 때, 부여에 남아 있던 생모 유화가 비둘기 목에 보리씨를 묶어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가난했던 시절 꽁보리밥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요즘에는 보리밥을 먹는 사람들이 흔치 않게 되었다. 쌀의 증산과 더불어 밥으로서의 보리 사용이 줄어든 탓이다. 그러나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시 보리 재배면적이 느는 추세라고 한다.
고창 청보리밭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요즘에는 보리밥을 먹는 사람들이 흔치 않게 되었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다시 보리 재배면적이 느는 추세라고 한다.
팥은 콩과에 속하는 작물로 소두(小豆) 또는 색이 붉다 하여 적두(赤豆)라고 부른다. 『본초강목』에는 “난산을 다스리고 잉어, 붕어, 닭고기를 넣고 삶아 먹으면 젖이 잘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는 10월 5일 팥떡을 만들어 마구간에 바치고 말의 건강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요즘에도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쑤어 서로 나눠 먹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다.
목화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남부, 인도, 인도네시아, 안데스산맥 북부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인도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인도에서는 기원전 3000년, 페루에서는 기원전 2500년,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500년경에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 연간 세계 목화 총생산량은 약 1,500만 톤으로서 최대 생산국은 소련, 미국, 인도 등의 순서이다.
우리나라의 목화재배는 공민왕 12년(1363)에 문익점이 원나라에 서장관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목화씨를 얻어 붓통에 넣어가지고 와서 재배했던 것이 처음이다. 그는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 재배지를 만들었고 정천익은 3년의 시험 끝에 재배에 성공했다. 문익점의 아들 문래가 실을 만들고 손자 문영이 면포 짜는 방법을 고안하였는데 그 뒤 백 년도 되지 않아서 널리 보급되었다. 강원도, 함경남도 일부 및 함경북도를 제외한 각 지방에서 재배되었는데 특히 전라남도, 경상북도, 평안남도, 황해도가 주산지였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목화 대량산지에서 목화를 수입하고 있으며, 석유와 석탄에서 폴리에스테르를 뽑아내는가 하면 오리털을 비롯한 새털과 양털 등이 세상에 널리 퍼지면서 우리나라의 목화재배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목화시배지인 산청군 단성면 근처나 화순의 천불천탑이 있는 운주사 들머리에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을 뿐이다. 또는 극히 드물게 아파트 베란다에서 관상용 꽃으로 피어 있는 꽃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시집을 보낼 때 솜이불 한 채는 꼭 해 주던 풍습조차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반면에 강원도 영동에서 북쪽 함경도까지는 모두 목화 종자조차 없으며, 심는다고 할지라도 자라지 않는다. 강원도 영서지방 역시 기온이 낮아서 가꾸기에 알맞지 않고, 오직 원주ㆍ춘천 가까운 들에 조금씩 심으나 겨우 자랄 정도이다.
경기도 한강 이북의 산중 고을은 산이 높고 물이 차가워서 심기에 알맞지 않다. 들이 있다 하여도 어떤 고을은 심기도 하고 어떤 고을은 심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개성부만 목화재배가 성하다.
한강 남쪽 바닷가의 여러 고을과 충청도의 내포ㆍ임천ㆍ한산지역은 모두 목화 가꾸기에 적당하지 않고, 심는다 해도 땅이 단단하지 못해서 잎은 무성하게 자라지만 꽃이 피지 않는다.
한강 남쪽지방에서 바다에서 거리가 먼 지역에선 간혹 재배하나 극히 드문 편이다. 충주 근교인 괴산ㆍ연풍ㆍ청풍ㆍ단양은 제법 많이 심지만 차령 이남 고을들이 목화를 심는 데에는 미치지 못한다. 황간ㆍ영동ㆍ옥천ㆍ회덕ㆍ공주가 가장 잘되고 다음은 청주ㆍ문의ㆍ연기ㆍ진천 등 고을이 잘된다.
황해도 바닷가 고을들은 목화 가꾸기에 알맞지 않지만, 산중 고을과 들 가운데 고을은 목화 가꾸기에 알맞은 땅이어서 많이 재배한다.
평안도에는 산중 고을에는 심는 곳이 드물지만, 들판 가운데 고을에선 목화 가꾸기에 알맞지 않은 곳이 없다.
- 『택리지』 「복거총론」
그러나 이중환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조사했던 목화산지는 이제 역사 속에서나 남아 있을 뿐이고 관상용이나 전시용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서도 드넓게 펼쳐진 목화밭과 가녀린 시악시 같은 꽃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김제 청운 저수지
이중환은 들판에 있는 고을 중에서도 산과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고을은 어떤 곡식이라도 잘 자란다고 하였다. 위는 김제의 지평선이 시작되는 청운 저수지.
[네이버 지식백과] 신기루처럼 사라진 곡물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1 : 살고 싶은 곳, 2012. 10. 5.,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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