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샘터
자연에서 늪은 생명의 물이 있어 식물이 잘 자라고 여러 종류의 생명체가 서식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속 늪에는 감정선이 흐르고 있어 밖으로 표출되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감정선이 풍부한 가수가 노래하면 듣는 이들은 자극받아 감동으로 눈시울을 붉게 물들게 한다.
빡빡한 세상에 물질적 가치에만 의존하면 메마른 세상이 된다. 그로 말미암아 각박한 인심에 범죄와 마약이 만연하여 죄악으로 치닫게 된다. 그래서 음악이나 미술, 문학과 같은 예술이 필요하며 정신적인 함양을 위해 고전과 같은 인문학이 필요하다. 또한 종교가 심성에 영향을 끼쳐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도 한다.
마음속 곳간에 무엇을 채우랴. 욕심이나 물질적인 것을 채우면 일시적으로 만족감이 들겠지만, 무언가 빠진 듯한 허허한 공허를 느낀다. 그곳에 미학적이고 영적인 가치를 채워야 한다. 미학적 가치는 오감으로 느끼는 심미적 가치에 영적인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꽃을 보고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심미적 가치이지만, 그 꽃을 보고 감정에 북받쳐 우는 것은 정신적 체험의 기억이 내포된 미학적 가치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세상을 비관하며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못해 죽음을 택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는 옥상에서 죽음을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왔다. 무엇이 그를 살렸을까? 옥상 한 귀퉁이 척박한 곳에 민들레꽃이 피어 있었다. 그 꽃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화되어 죽음을 포기했다고 한다.(옥상의 민들레꽃:박완서 작)
가수가 부른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어떤 경험의 기억이 작용하여 감정으로 이입된 것이다. 문학 작품을 읽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영화를 감상하고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그러한 것이다. 예술 작품의 가치는 사람의 마음속 감정을 자극하여 마음을 움직이고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하는가 보다.
언젠가 ‘해인글방’ 이해인 수녀님을 찾아뵀다. 그분을 찾는 이들은 마음이 아프거나 우울증, 질병에 고통받는 이들이 많이 찾고 있다. 그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이 치유의 기적을 얻고 있다. 그곳을 찾은 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홀대하지 않고 반가이 맞이하고 있다. 수녀님은 그런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지 않으면 천사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수녀님의 시를 대하면 누구나 좋아하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화하는 힘이 있다. 그런 힘이 환우를 치유하는 근원이라는 것을 수녀님을 뵙고 짧은 시간이나마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꾸미지 않고 수수한 모습에 무언가 주고자 하는 마음, 그분의 고귀한 성품에 전염되어 미학적 가치를 느끼게 된다.
그런 수녀님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채움보다 베풀고 나눔이 아름답고 높은 정신적 영적 가치로 마음속 샘에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