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97]글(책) 좋아하는 사람은 “끼리끼리”
한문의 세계에는 수많은 사자성어四字成語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어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불멸의 인생독본서’논어論語에 나오는 주요 성어의 예를 들자면, 학이시습學而時習, 과유불급過猶不及, 인자무적仁者無敵, 살신성인殺身成仁, 극기복례克己復禮, 화이부동和而不同 동이불화同而不和, 군자상달君子上達, 수기안인修己安人, 일이관지一以貫之, 익자삼우益者三友,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 임중도원任重道遠, 일일삼성一日三省, 온고지신溫故知新, 군자불기君子不器, 주이불비周而不比, 회사후소繪事後素,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 군군신신君君臣臣 부부자자父父子子, 박문약례博文約禮, 낙이불음樂而不淫 등이다.
그런데 논어에 나오는 사자성어 중 나에게 딱 들어맞는 구절은 안연顏淵편 맨 끝부분에 나오는 “증자 왈 군자 이문회우 이우보인(曾子曰 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이다. 뜻인즉슨 ‘군자는 글로써 벗을 사귀거나 모으고, 벗을 통하여 자기의 부족한 인을 메운다’이다. 풀이를 하면 ‘공부하는 사람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게 마련이고, 그 친구들로 인해 인격적 감화와 지적 자극을 받는다’일 것이다. 공자의 어록이 아니고 ‘일일삼성一日三省’으로 유명한 ‘모태효자’ 증자의 말씀을 따 ‘이문출판사’나 모임의 이름을 ‘이문회’ 등으로 하는 걸 보면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닌것같다.
그렇다. 나의 생활졸문이 재밌다며 달려와 근 50년만에 만난 고교친구가 있는가하면, 2년여 전에는 어느 교수와 60대 여성이 우리집을 찾았다. 희한한 것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몇 마디 나누다보니 오랜 지기知己와 같은 낯익음이 우러나고, 그렇게 사귄 친구들은 그후 몇 년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마음이 흐른다는 것이다. 2005년말인가, 처음으로 펴낸 『백수의 월요병』을 읽고 부산에서 올라와 교보문고에서 두 권을 구입하여 내 사무실을 방문, 사인해달라고 하여 경악을 한 적도 있다. 39년생, 호는 양진養眞. 지금은 팔십을 훌쩍 넘었고, 암으로 투병 중인데도 날마다 좋은 글을 카톡으로 보내주시는 어르신이다. 그러니 굳이 자주 만나자거나 만날 필요(?)도 없다고 하겠다. 내가 위 구절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나이가 환갑을 넘었어도 ‘글로써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이상한가? 나로선 ‘1도’이상하지 않고 당연한 일인데, 아내와 몇몇 친구들은 그게 못내 신기한 모양이다. 그래서 ‘끼리끼리’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을 것이다. 좋은 책을 지은 저자를 만나는 것은 살면서 가장 신나는 일이거니와, 그분들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누는 것이 행복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 나는 그렇게 만나고 사귄 사람이 솔찬히 많다. 책 좋아하는 줄 아니까 책 보내주는 친구도 많고. 또 그래서 해피하고. 학연, 지연, 혈연이 아닌 이런 관계는 무어라 할까? 서연書緣, 책연冊緣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기연 奇緣인가? 별연別緣인가?
엊그제 전주에서 정년퇴직한 교수가 자신이 지은 따끈따끈한 책(『전라북도를 이야기하다-역사, 지리, 인물, 공간』(유영봉,윤형섭 저, 지코사이언스. 2023년 9월 발간, 318쪽, 20000원)을 가지고 우거寓居를 방문했다. 60대말 동행여성은 윤정부 시작이래 유튜브 스타가 된 심리학자 김태형님의 신간 『한국인의 마음속엔 우리가 있다』(온더페이지 2023년 6월 발간, 287쪽, 17000원)을 선물로 안고 왔다. 기막히게 좋은 일이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지금 두 권을 맹렬히 읽고 있는데, 유익하고 재밌다.
앞의 책은 전주대에서 처음 개설한 과목 「호남지역사 입문」과 「역사 지리와 공간」의 강의 내용을 묶은 것으로, 전라도의 역사를 시간이라는 종적인 축을 좇고, 전라북도만의 역사와 문화를 공간이라는 횡적인 축을 따라 살핀 책이다. 전라도, 특히 전라북도의 시공時空을 초월한 역사와 문화관련 저서이다. 17개의 테마로 진행된 강의(백두대간과 신경준, 전북의 국립-도립-군립공원, 후백제를 세운 견훤, 이성계와 제왕의 길, 경기전의 건립경위, 어진화사 채용신, 호남선 개통과 이리, 소설 <탁류>의 무대, 김주열 열사와 4.19상주 할아버지, 정읍의 옛노래 <정읍사>와 <상춘곡>, 조선 후기 명필 이삼만, 신앙이 된 진묵대사, 비화공주와 선화공주, 이매창의 삶과 문학, 호남 의병대장 이석용장군, 의로운 여인 논개)를 연속으로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료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실이 많으니, 책과 글을 좋아하는 나로서 어찌 흥미롭지 않겠는가?
두 번째 책은 한국인의 심리心理가 대체 무엇인지, 본격적인 탐구서이다. 우리의 민족성을 단 한 단어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정답은 무조건 ‘우리’라고 한다. 우리는 '너와 나'의 우리이자 '공동체community'의 우리이다. 우리집이 맞는가? 나의 집이 맞는가? 대개 우리 마누라라고 하지 나의(내) 마누라라고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를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한국인의 발전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듯하다. 김태형 학자는 단언한다. 한국인의 심리를 치밀하게 분석해 다섯 가지 ‘공통분모’를 찾아냈다고.
그 첫째가 집단주의(한국인은 일심동체와 이심전심을 추구한다)이고,
둘째가 인간중심성(한국인은 인간을 가장 사랑하며 존중한다)이다.
셋째는 비종교성(한국인은 신이 아닌 오직 인간을 위한 종교를 따른다)이고,
넷째가 도덕성(도덕적으로 살아갈 때 한국인은 비로소 행복해진다)이다.
마지막으로 낙천성(슬픔 속에서도 한국인은 해학으로 즐거움을 찾는다)을 들고 있다.
복잡한 현대사회와 과학 발달로 빚어지는 여러 현상 때문에, 누천년 동안 내려온 공통된 한국인의 (민족성)심리가 많이 훼손되거나 사라진 것같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면면히 흐르며 살아있는 ‘우리주의Uriism’의 회복만이, 우리 한국인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오랜 연구결과이고 지론인 듯하다. 우리가 ‘우리’를 완벽하게 되찾을 날은 언제일까? 나는 그것이 너무나, 몹시도 궁금하다.
그날 오후는 모처럼 기분이 좋아(요즘 쓸데없는 가을비 때문에 나락에 싹이 나는 데 좋을 일이 뭐 있었겠는가), 두 친구의 내방을 반기며 술 접대하기에 바빴다. 해창막걸리 900ml(12도) 한 병에 16000원이라는데, 기가 질리지 않은가. 그것은 약과, 같은 크기 한 병에 12만원짜리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 귀하고 비싼 막걸리를 추석명절이라고 선물한 예쁜 광주누이에게 이 글을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역시 끼리끼리, 유유상종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