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行卷第四十五
或曰:德行者, 本也;文章者, 末也. 故四科之序, 文不居上. 然則著紙者, 糟粕之餘事;可傳者, 祭畢之芻狗. 卑高之格, 是可譏矣.
抱朴子答曰:荃可棄而魚未獲, 則不得無荃;文可廢而道未行, 則不得無文. 若夫翰跡韻略之廣逼, 屬辭比義之妍媸, 源流至到之修短, 韞藉汲引之深淺, 其懸絕也, 雖天外毫內, 不足以喻其遼邈, 雖三光熠耀, 不足以方其巨細. 龍淵鉛鋌, 未足以譬其銳鈍;鴻羽積金, 未足以方其輕重. 而俗士唯見能染毫畫紙, 便概以一例, 斯伯氏所以永思鍾子, 郢人所以格斤不運也. 夫斫削者比肩, 而班狄擅絕手之名;援琴者至多, 而夔襄專清聲之稱. 廄馬千駟, 而騏騮有邈群之價;美人萬計, 而威施有超世之色者, 蓋遠過眾也. 且文章之與德行, 猶十尺之與一丈, 謂之餘事, 未之聞也. 八卦生乎鷹隼之飛, 六甲出於靈龜之負, 文之所在, 雖且貴(疑有脫文)本不必便疏, 末不必皆薄, 譬錦繡之因素地, 珠玉之托蟲奉石, 雲雨生於膚寸, 江河始於咫尺, 理誠若茲, 則雅論病矣.
又曰:應龍徐舉, 顧眄而淩雲;汗血緩步, 呼吸而千里. 故螻蟻怪其無階而高致, 駑蹇驚過己之不漸也.
若夫馳驟詩論之中, 周旋一經之內, 以常情覽巨異, 以褊量測無涯, 始自髫齔, 詣於振素, 不能得也.
又世俗率貴古昔而賤當今, 敬所聞而黷所見. 同時雖有追風絕景之駿, 猶謂不及伯樂之所禦也.
雖有宵良兼城之璞, 猶謂不及楚和之所泣也. 雖有斷馬指雕之劍, 猶謂不及歐冶之所鑄也.
雖有生枯起朽之藥, 猶謂不及和鵲之所合也. 雖有冠群獨行之士, 猶謂不及於古人也.
문행권 제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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