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게 시모음
역기를 들면서 / 김명수
삶에는 내가 들 수 있는 만큼의 무게가 있다 지나친 의욕으로 자기가 들 수 없는 무게를 들 수 있다고 과장해서도 안 되고, 자기가 들어야 하는 무게를 비겁하게 자꾸 줄여 가기만 해서도 안 되고 자신이 들어야 하는 무게를 남에게 모두 떠맡긴 채 무관심하게 돌아서 있어서도 안 된다.
공양 / 안도현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울음 서른 근.
저녁의 무게 / 마경덕
해거름에
고개를 넘어온 저녁은
쌀 두 말에서 약간 빠지는 무게
되가웃쯤 돌밭에 흘리고 온
구멍 난 자루 같은
어둑한 저녁은
서너 끼니 거른 송도 고모의 표정이어서
먼길을 걸어온 저녁이
산 하나를 또 넘는다고 할 때
먼지 낀 마루 한 귀퉁이
걸레로 훔쳐 내주고 싶은데
오늘 안으로 가야한다고
개먹은* 저녁이
반쯤 파 먹힌 달을 이고 돌아설 때,
허름한 자루를 껴안고
되가웃에도 휘청거리는 청상靑孀을 보았다
*‘자꾸 맞닿아서 몹시 닳은 것’을 이르는 말.
손의 무게 / 안희연
더는 길어지지 않는 손가락을 가졌다
막다른 곳에서만 멀쩡한 우리들
봉투를 뒤집어쓰고 얼굴이라며 즐거워한다
나의 손은 칼이었을 때의 기억을 갖고 있다
나무나 돌을 쓰다듬으면 그 안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날카로움과 부끄러움은 자주 혼동되지만
무엇이 더 물감에 가까울까
죽은 쥐의 꼬리를 밟고 있는 사람과 머리에 꼭 맞는 구멍을 가진 사람
오후에는 돌을 던져 새의 머릴 맞추는 놀이를 한다
나는 나를 실감할 수 있어 질긴 밤의 자루를 끌며 벽돌을 주워 담는 일
팔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잘려 나간 가지들에게
창문과 얼굴을 동시에 허락하기만 한다면
오늘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어서 단추를 생략해도
셔츠는 기억한다 바람의 근육이 살갗에 닿았던 순간들
얼굴을 받치고 있던 손의 무게만큼 나는 기울어질 수 있다
먼 이름과 뒤집힌 신발들이 뒤섞여 온다
검정이 투명을 입술이 말을 끝끝내 감추더라도
기다리는 무게 / 노수옥
소읍의 터미널엔
긴 음식을 짧게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돌돌말린 김밥처럼 한 번에 빨리 말린
한 사람의 주검을 떠나보냈다
부르르 떠는 여진을 남겨두고 떠난 버스
버스의 행선지는 스무 곳 남짓
오늘 떠난 사람은 저곳들 중 어디로 갔을까
반질반질한 평상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무수한 무게들이 앉았다간
천지간 같이 가벼운 평상
기다린, 기다리는 무게가 앉았다 갔을 평상
기다림과 기다림 사이 겹겹의 시간
짧은 틈은 본디 매끄럽거나 부드럽다
유연하고 빛나는 닳고 닳은 표면이
미끄러운 수면 같다
기다림도 오래 쌓이면 저렇게
반들반들하다
미끄러운 평상의 내면
이제는 그 누구도 앉지 못하는 빙판 같은
한 겹도 아니고 수억 겹 덧씌워진
잠깐의 배차 시간들
오래 앉아 있을 시간은 없었지만
차표를 든 시간이 분초로 날아간다
한 마리 나비처럼,
멀미나는 봄날 속으로
무게 / 정양
쇠창살로 얽힌 개차가 왔다
개값이 금값되는 복더위를
미처 못 기다리고 이 이른봄에
김씨는 개를 팔아치울 작정이다
앉은저울이 나오고
김씨가 먼저 저울 위에 올라선다
그렇게 사납던 개들이
개장수 앞에서는 오금을 못 편다
오들오들 떠는 개들을
김씨가 차례로 끌고 나온다
앉은저울 위에 김씨는
엉거주춤 개를 보듬고 앉아서
저울눈을 헤아린다
김씨 몸무게를 빼고
남은 무게가 개값이란다
오들오들 주인 품에 안기어
무게를 잰 개들은
저마다 주인 몸무게를 빼고
무더기로 개차에 실리어 떠나고
김씨는 다시 저울 위에 올라
혼자 무게를 잰다
마지막 무게가 저울추에 매달려
적막하게 흔들리고 있다
무게 / 박경자
겨울 숲 앙상한 가지 위에
엎질러진 허공은 공평하다
더하고 덜한 데가 없다
먼 데 능선에서 가까운 골짜기까지
높거나 낮거나
똑같은, 한 근 반이다
문제는 허공이 아니라 저 자신이라는 것
염치없이 허공 속으로 쭉쭉 뻗어 오른 갈참나무
눈치껏 팔 벌리고 몸 낮춰 적당히 허공을 견디는 층층나무
휘어지고 비틀어지며
마디 굵은 손으로 허공을 온통 혼자 견디고 있는 오동나무
등, 등
저마다 다른 무게를 견디고 있는 앙상한 가지들을 보면 안다
오늘도 허공은
제 속에 시린 바람이 지나가거나 말거나
구름 한 점 품었거나 말거나
더하고 덜한 데 없이
공평하다
견딜만하다
눈의 무게 /송재학
느티나무 가지에 앉은 눈의 무게는 나무가 가진 갓맑음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느티나무가 입은 저 흰 옷이야말로 나무의 영혼이다
밤새 느티나무에 앉은 눈은 저음부를 담당한 악기이다 그때 잠깐 햇빛이 따뜻하다면 도레미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도 보일 게다
시간의 무게 / 한경용
내가 강의하던 사유의 무게가 0
허공에 놓으면 그대로 떠서
샤갈의 그림처럼 공중부양을 하게 된다.
시간강사 20년 차 가슴도 무중력이다.
불이 붙었다고 하더라도 곧 꺼지고 만다.
빨대로 물속에 거품을 불어서 넣어도 기포가 올라오지 않으니
벌교 물방개가 보면 기막힌 사연이라고 말하겠지.
혈액도 무중력을 받으면 무게가 없어지므로
나를 불러주는 머리 쪽으로 피가 올라가
보이스 피싱을 듣게 되는 현상,
나는 우주비행사가 되어 귀가 부어
세상을 척도 하는 기준이 갑자기 카오스 세계로 몰입된다.
위아래를 구별할 방법이 없는 내가
“거꾸로 서있을 수 있다”라는 표현은 적절치 못하다.
나사를 돌리면 나사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반대방향으로 돌게 될 것이라
한 줌의 흙이면 연단 위에 피울 베고니아의 권리조차 허용 않는 허무,
시리얼로 적신 중년이 우주인이 되는
검은 비밀 봉지가 일산역 앞 포장마차에 걸려있다.
허공의 무게 / 박해람
허공의 천직은
무게를 가늠해 주는 일이다.
그 허공에 제 피붙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무들
흔들리는 것들에게는 그래서 사족이 있는지
작은 놀이터에서
딸아이와 시소를 타다가
서로의 무게가 맞지 않는 시소를 타다가
내 무게를 점점 빼앗아가고 있는
저 쪽의 싱싱한 무게.
넘치는 지금의 무게를 아무리 덜어주어도
좀처럼 가라앉지 못하는 시절이다
붕붕 날아오르려고만 하는 아이의 무게
나무 울타리 넘어 한 생을 보여주려고
아이의 무게를 빼앗는 일보다
덜어주는 일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아이는 자꾸 오르기 위해
낮은 쪽으로 내려가길 원하고
아비는 저 높은 곳이 허방인지 분간도 못하는
이 속고싶어지는 놀이
속아 주려고 해도 잘 속아지지 않는 놀이터 풍경
허공의 천직에 수고만 더 얹혀줄 뿐인 이 놀이.
무게 / 송기원 (1947~2024)
바람이 불면, 문득 무게가 그리워지네
나도 한때는 확실한 무게를 지니고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한껏 부푼 부피도 느끼며
군청색 셔츠를 펄럭였지
마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그렇게
누군가의 안에서 언제까지라도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바람의 무게와 질량을 측정하는 저녁 / 오새미
덩굴장미를 만지고 온 바람이
피에 젖은 손바닥을 보여주며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흘리는데
찔레꽃 사연이 박혀있다
발이 묶인 바람은 붉은빛을 띠었고
날개 달린 얼굴은 하얗게
흔들리고 있었다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한 무리의 바람을 토해놓고
무심하게 떠나버리는 구름버스
내일의 비를 머금고 골목으로 사라진다
허공으로 귀가하는 늦은 오후
낯선 그림자들의 어깨에 걸쳐있는
한 짐 바람의 무게
아무도 짐작할 수가 없어
멀어지는 별빛처럼 스러지는데
가시에 찔렸던 날들의 상처는
가여운 질량을 기록해 놓은 빛바랜 잎사귀
물풀처럼 떠돌다 쓰러지기만 했던
텅 빈 저녁이 쓸쓸하다
밀도 높은 하루가 쌓이고
밤은 바람에 밀려
어둠의 가시를 퇴적하다 잠든다
바람에 제 발등을 찍힌 저녁
바람의 측량사는 얼굴이 없어
가시에 찔린 표정만 날아다닌다
말의 무게 / 이심훈
말을 많이 한 날은
소태 씹은 듯 입이 쓰겁다.
입술보다 먼저 마음이 나서서
온갖 너스레 떨었음을 몸이 안다.
겁 많은 개가 먼저 짖어댄다.
많이 짖어댄 개일수록 꼬리 사려
마루 밑 구석에서 제 발을 핥는다.
돼지두루치기를 먹다가 깜짝 놀랐다.
부드럽게 양념으로 버무린 살코기에
이가 시큰하도록 씹히는 오도독뼈
생각 없이 내뱉은 무수한 말들에도
혓바늘만 하게 돋은 어감의 차이로
세월 마디에 뼛조각들 섞여 있겠다.
씨앗과 말은 퍼지는 습성이 있다.
푸새들 씨앗은 익어 제풀에 퍼지고
사람들 말씨는 설익어 멋대로 퍼져
100g 남짓 핸드폰을
내려놓는 퇴근 주머니가 가볍다.
온종일 주고받은 말의 무게를
어림짐작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날개의 무게 / 조용미
모든 순간에는 끝이 있다
저 나비도 그걸 알고 있다
비오는 날이면 늘 나비들이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복사꽃 옆을 지나다 다시 돌아왔다
날개를 접고 꽃잎 아래 매달려 있다
더듬이와 암술이 구분 되지 않는다
큰줄흰나비 날개가 다 젖어 있다
무거워진 날개가 나비의 영혼을 붙잡고 있다
몸이 곧 영혼인 걸 너도 이제 알게 되었을 테지
무거워진 날개도 날개일 수 있는지 생각에 잠겨 있다
날개 때문에 날 수 없게 되었다
접은 날개로 깊은 사유에 들었다
나비와 나는 서로를 느끼고 있다
젖어가는 옷을 입고 나도 조금씩 무거워졌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빗속에 함께 있다
옷 한 벌의 무게 / 김다명
개미가 진딧물의 복부를 톡톡 건드린다
진딧물이 복부를 들어올려 배설하는 투명하고 달콤한
액즙,
개미는 그것을 열심히 받아먹는다
진딧물은 오로지 개미를 위해 액즙을 내어주는 걸까
개미가 아니더라도
진딧물에게는 찐득찐득한 저것이
꼭 배설되어야만 하는 것이라면,
개미가 진딧물에게는 고마운 존재인가
오직 개미의 촉각에만 반응하는 관계,
저것을 사랑이라 알고 있는 나와
저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연선택적 본능이라고 하는 너,
사이
각자 다른 종의 약한 신체구조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진딧물과 개미도
다른 종의 본능을 이용하려고 노력한 것뿐이다,
라는 다윈의 학설을 믿어야 한다면
오늘부터 나는 너라는 옷 한 벌을 벗는다.
숟가락 무게를 달다 / 배정숙
우리의 심장은 둥글고 소박하지만 한 생이 통째로 매달려도 끄떡하지 않는 힘도 가졌으며 본심과 달리 매운 맛이나 쓴맛을 보여줄 때도 있습니다
우리와의 관계에서 우연이란 없으며 우리의 노예가 되는 사람에겐 명징한 족쇄가 되고 주인이 될 때 꽃이 됩니다 그러나 가장 객관적인 이력을 좋아합니다
태어나 우리를 잡는 법을 배울 때 맹종도 따라 배우게 되는데 드물게는 저를 거부하는 자가 시위의 도구로 삼기도 합니다 인간은 우리 앞에서 숙연하고 겸손하게 눈금을 읽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저를 놓고 신기루 같은 착시현상에 무너지기도 하고 좀생이처럼 타협하는 세상 이야기를 저녁 상머리에서 주워듣곤 하여 제 귀는 아주 밝답니다
하지만 제가 제일 듣기 좋은 말은 우리를 하나 더 놓는다고 하는 것인데 이 말이 우리의 피돌기를 따뜻하게 합니다 보리죽뿐인 소반 위에 할머니꺼 삼촌꺼 먼촌 고모뻘까지 우리가 놓이던 그때가 그리운 이유입니다
우리는 밥그릇과 화친하는 관계인데요 사람들은 밥그릇을 가지고 싸움을 하지만 우리들 앞에서는 흉악한 이도 높은 분도 둥글게 입을 엽니다
이승을 떠난 삶의 오랜 진술도 저를 닮은 부드러운 곡선입니다
무게에 관하여 / 권혁웅
이곳에는 너무 많은 당신이 있다 지하철이 금호를 지날 즈음 비스듬히 앉아서 제 중심을 나와 나누는 사람, 당신은 내게 너무 무겁다 나란히 앉아 해탈한 자들처럼 고개 끄덕이는 이들, 그들의 몸은 그들에게도 너무 무겁다 힘겹게 제가 그은 반 원 안에 챙겨넣는 머리들,
옥수에 오자 지하철은 다리를 건넌다 지하를 전전하던 生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되리라 당신에게도 언젠가는 안식이 있으리라 경로석에 앉아, 나는 당신을 향해 있으니, 외면하라 당신이 나를 외면하라… 떠밀려 오는 당신이 나는 힘겹다
그러나 흘러가는 것은 당신의 힘인가? 당신은 이곳의 드난살이를 설명할 수 있는가? 이곳에는 너무 많은 당신이 있어, 우리의 입김은 만수산 드렁칡처럼 서로 얽힌다 우리도 이같이 얽혀… 를 생각할 즈음 지하철은 압구정에 와서, 다시 지하로 들어간다 이 역은 승강장과 출입문 사이가 넓어 발이 빠질 염려가 있다
영혼의 무게 / 강인한
하루하루 나의 하느님은
눈금 하나만큼씩 키가 줄어
사십 삼 킬로그램의
피와 뼈로 남았다
극약 같은 햇빛 속에 떠오르는 산
황토빛 정읍의 산
무심한 어깨가 삭아 내리고
아픔도 없이
조금씩 증발하는 내 안의 물.
슬픔의 무게 / 강인한
-- 불꽃 23
눈 속에 박힌 어둠이 아프다.
깊이깊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이 아픔의 모래알,
생의 허무를 말하는 그대 마음이 오늘 밤
꽃인 듯 슬프다.
살아갈수록 우리들 슬픔의 무게도
더욱 무거워지리.
제가 지닌 슬픔의 무게로
익은 과일은 땅에 떨어지지만,
나뭇잎이 날리듯
한 장 슬픔의 무게로 떨어져 누울
그 땅을 나는 알지 못한다.
타고 남은 재보다 가벼이
나의 노래 또한 사라질 것을.
살 속에 박혀 빠지지 않는
아픔이여, 어둠이여.
눈꺼풀의 무게 / 하 린
이것의 무게를 가늠하는 건 눈동자의 소관
마지막 순간 무언가를 전하려고
한번 떴다 감았던 눈꺼풀
얼마나 무거웠으면 저렇게 굼뜬 기척을
처음으로 내게 내밀었을까
자본의 목적과 술의 방향을 해석하려고
전 생애를 탕진했던 아버지
그 비틀거림을 이해하는데 반생을 맴돌았던 나
방치 위에 방치를 덧씌운 날들
눈동자 안에 갇힌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꺼풀이 열릴 때마다
빠져나가지 못한 분노가 부글거려도
끝까지 맨정신을 껴입고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
아, 비굴한 목격을 내게 던져놓고
인정사정없이 암전과 한 몸이 되어 버리다니
죽은 자들이 자꾸 술을 권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고 했던 말은
결국 아버지가 아버지를 벗어나려는 변명이었을까
단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한 변방을 삼킨 채
왜 혈족이 다 모일 때까지 견뎠던 것일까
죽음 직전의 눈동자가 던져준 유언을
상징으로 만나고 말았으니
이젠 유언의 여운이 되어 떠돌아야 할까
나도 하나뿐인 장르 밖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몸속에 허망한 울타리를 세운 채
나의 배역이 악역으로 치닫지 않도록 단속하며
순간순간이 자꾸 먹구름을 불러오더라도
꺼풀이 열림과 닫힘을 반복하는 동안
가장 적극적인 반성 아니면 증언이 되어
가난한 자의 심장 안에 갇힌 것들이
우후죽순 자라나는 것을 방치할지 모른다
그러니 묘혈도 말할 수 있다면 눈꺼풀을 가져야 한다
죄다 유령이 될 수 있도록…
다음 대상의 무게를 구하시오 / 류진
단, 저울을 세 번만 써서 찾아야 합니다
바람을 낳고 가벼워진 허파와 같이
둥실, 떠오르고 싶었는데
나를 올린다 장작을 씹는 불과 균등하기 위해
들판을 구르는 별과 공평하기 위해
비파나무는 비파라는 추를 매단다
이 여름에 증발하는 죄를 발표하기 위해
지옥은 꼭 하마 모양 구멍이었다
팔다리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어봤지만
도무지 내 모양과는 맞지 않아서
단, 나를 세 번만 짓눌러 찾아야 합니다
그럼 꼭 바람 새는 부레 같았지
고아만 생각하면 창틀에 튀어나온 나사못이 생각나
그럼 머리를 돌려 조여야지
땅밑에 나란히 파묻은 수형자같이
무언가 버려진 그 우물에서 태어나기 위해
거기 버린 울음엔 어느 음계도 와서 달라붙지 않는다
어떤 고아도 와서 매달리지 않는다 단,
세 번만 두들겨 찾아야 합니다
다 울고 나니 쪼그라든 호두와 같이
어느 소리가 더 무겁게 떨어집니까
두 열매를 동시에 떨어뜨리면
떠나는 풋콩처럼 공중에 다시 떠올랐다
팔과 무릎을 구겨 넣었습니다 내 웅크린 품속이
내 모양과 맞나 한번 보기 위해
그럼 기린 모양의 돌이 녹아내리기도 했지요
남해바다 어딘가에서
앙앙앙앙
앙앙앙앙
ㅡ시집『앙앙앙앙』(창비, 2020)
무게 / 한인준
어머니가 나에게 꽃을 선물해주었다 어머니
이건 어머니잖아요
나는 어머니를 벽에 걸어두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말했다. 어머니는 낡았고 감상적이래
나는 벽을 돌아보지 않았다
벽이 무너진다
무너진 벽을 언제 돌아보았나. 어머니가 허공에 걸려 있다. 마른다. 부서진다
나는 가벼워지는 거란다
말씀 좀 그만하세요
무거워지니까
내 방에는 바닥이 없잖아요
괜찮아, 나는 발이 없단다. 발은 언제나 발의 주변만을 남기고 사라져
말씀 좀 그만하세요
어머니
이건 어머니가 아니잖아요. 어머니는 허공에서 말없이 꽃을 그린다
그 꽃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게 / 백무산
시내버스에 앉아 졸고 있으려니
차가 기우뚱 쏠리면서 서서 졸던
살찐 사람의 무게가 사정없이 내 가슴을 밀어붙인다
그 당황한 무게의 여운이 얼룩처럼
몸에 남는다 연민처럼 번진다
모든 절박한 것은 무게다
슬픔의 모든 것은 무게에서 배어나온다
견디기만 해왔던 무게
들어내려고만 해왔던 그 무게에서
언제나 허덕여온 무게
벗어버리고 싶던 짐짝
초월을 꿈꾸던 중력
나의 배후에 수줍게 실려 있던 그 무게
그런데 이렇게 쾌활한 무게라니
묵직하니 실리는 무게의 실감이여
긍정적인 무게라니
나를 덜어내는 무게라니
공(空)의 무게 /김윤이
당신의 입술은 반짝이지만 함께 할 수 없는 날들처럼 무겁습니다 그러니 약속을 정할까요 우리가 꽉 부여잡던 손이 이젠 빛바랬다고 그때까지 나는 덩그러니 놓인 하늘을 보고 약돌 같이 단단한 햇빛을 그러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무심코 어둠을 튕겨내고 있었습니다 간헐적으로 깊어지는 물수제비 때문에 나는 주름의 깊이가 보인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난번, 어두워지던 침묵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수면이 야트막한 돌바닥에 누워 이미 죽은 꽃잎을 밀어 올릴 때 당신은 지루한 듯 발치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쉬잇! 내가 펼친 손가락 끝으로 가만 숲의 구릉지가 매달려갑니다 당신의 그을린 얼굴은 보이지 않고 일제히 호선으로 늘어선 나무 열매만 잡힐 듯 잡힐 듯합니다 그렇게 물 속 깊이 드리우는 것은 별일이 아니라고 이내 나는 어둠을 옆에 앉히고 되뇌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상하게도 말입니다 함께일 수 없는 것을 나는 훔쳐버린 것 같다고
달의 무게 / 김용택
달은 무슨 힘으로
자기의 무게를 버틸까
그래서 간다고
곁에 누우며
아내가 말했다
먼지의 무게 / 이산하
여기저기 불길 속으로 머리들이 터졌다.
사방으로 흩어진 뇌수를 개들이 핥아먹었고
아이들은 붉은 잿더미를 파헤쳐 금붙이를 찾았다.
인간이 재로 바뀌는 건 두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가난한 집의 시신들은 장작 살 돈이 부족해
절반만 태운 채 강물에 버려지기도 했다.
그들은 언제나 머리를 가장 먼저 불태운 다음
마지막으로 두 발을 태웠다.
나는 한동안 생각을 지탱한 머리와
세상을 지탱한 발을 비교하며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다 재처럼 풀썩이고 말았다.
인간이 어떤 것의 마지막에 이른다는 것
그 지점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먼지의 무게를 재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
밤이 뜸 들어가는 저녁마다 난 여전히
시를 짓듯 죄를 지었고
죄를 짓듯 시를 지었다.
오늘따라 논물이 강물보다 더욱 깊어가는 것도
단지 먼 길을 돌아온 세월 탓만은 아니리라.
영혼의 무게/이원규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재는 것은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과 같다
-웨인 왕 감독의 영화 r스모크J중에서
만약 그대가
3.2킬로의 신생아로 태어났다면
살아생전 영혼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부음보다 빠르게 배달된
영안실 꽃의 무게와 같지는 않을까
아니, 신생아 때의 몸무게에서
조화의 무게를 뺀 만큼의?
그렇다면 그대 영혼의 무게는
마이너스일 확률이 더 높을지 모른다
그만큼 헛살았거나 차라리
안 산 것만 못하다는, 오오 진정하시길
조화가 많이 배달될수록
이승의 죄가 많은 경우 허다했으니
-이원규 시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중에서-
리어카의 무게 / 박경희
리어카 바퀴가 주저앉았다
켜켜이 쌓인 주름살 같은 상자가
안간힘을 다해 도로 한복판에서 벗어나려 한다
늘 벗어나려 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바퀴의 그늘
끌어도 끌어지지 않는 상자의 무게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한나절 그늘을 받아낸다
푹 수그리고 앉았던 자리에
늙은 그림자는 꼼짝을 하지 않는데
홑겹의 낡은 옷이 휘청거리며
거리를 밀고 간다
묵묵히 바닥만 내려다보던
늙은 그림자가
스러지지 않고 어제도 오늘도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몸무게를 다는 방법 / 유홍준
하루종일 중얼거리기만 하는 사람 최경서씨는 정신병원 안정실에 갇혀 있다네 똥오줌도 그냥 옷에다 칠칠 밥풀도 마찬가지 입술 주위에는 또 무엇이 잔뜩 돋아서울긋불긋 솔직히 나는 저 입 속에 약을 넣어주는 일이 싫어 투약시간이 싫다네 아무리 안 묻히려고 해도 결국에는 묻히고야 마는 최경서씨의 타액이 싫어 더러워 하루빨리 퇴원을 하든지 죽든지 했으면 좋겠네 골칫덩어리 골칫덩어리 오늘은 약의 함량을 조절하기 위해 환자들의 몸무게를 다는 날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도대체 정신이 없는 최경서씨를 보듬고 저울 위에 직접 올라가는 것 그래서 거기에서 내 몸무게를 빼는 것 더러운, 냄새나는, 하염없이 침 흘리고 오줌을 싸는 최경서씨를 안고 한 평 반 안정실에서 나는 낑낑
뚱뚱한 거미의 몸무게 재기 / 박성우
거미야, 몸무게 안 재고 뭐 해?
응, 몸무게 재기 전에
거미줄 좀 빼내고 있는 중이야.
줄줄줄 줄줄줄줄
줄줄줄 줄줄줄줄
몸무게를 줄이고 있는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