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하늘의 송편달
안녕 여시들~~~ 광복절 잘 지내고 있나요?
지금은 육지나와 산지 20여 년이 되어가지만
친가 외가 전부 제주도가 본향인 제주도 출신 여시입니다.
친가와 외가 역사를 따라가면서 제주도의 역사도 따라가보자는 생각에 열심히
검색과 논문을 찾아보며 있다가 '고수선 지사'님을 알게 되었어.
그러다 엄마랑 오래간만에 안부전화를 하면서 미주알고주알 콩이야 팥이야~ 하면서
친가와 외가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제주도의 역사를 따라가보게 되고, 고수선 지사님을 알게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 그때 엄마의 대답이 뜻밖이었어.
엄마의 친척 아저씨의 부인되신다는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는 외가에서 할머니 뻘이신거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보면서 외가쪽에 독립운동과 연계되신 분들이 있단 건 알았지만
배우면서 내 워너비가 되어버리신 고수선 여사님께서 멀긴 하지만 친척이시라는 이야기에
자존감이 올라가고 더 애착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
그래서 오늘 광복절 기념으로
베일에 가려졌던 여성 독립운동가 특집 겸, 제주도의 독립운동가 특집으로
고수선 지사님을 소개해 보려해!!!!!
(재미없어도 재미있게 봐주길)
고수선(1898.8.8~1989.8.11)
독립운동가, 의사, 여성운동가, 교육가, 정치인
호: 우당, 우인
이 분이 고수선 지사님이셔.
엄마의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 외가 여자분들이든 남자분들이든 워너비 위인이셨다고 하더라고
근데 나같아도 심장어택 당해서 사모할듯. ㅇㅇ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에서 태어나신 고수선 지사님은
집에서 4km나 떨어진 야학을 몰래다니면서 부모님을 설득해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셨다고 해
이후 신성여학교, 대정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시고
경기도 수원에 있던 권업 모범장 여자잠업(蠶業)강습소 1년 과정을 졸업,
1916년 경성여자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하셨어.
1919년 고종 황제가 승하하자 광장에 나아가 군중들과 함께 곡(哭)하였고,
3·1 독립 만세 운동 때에는 학교 내에서 은밀하게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시위에 적극 가담하셨어.
경성여자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같은 학교에 부설된 사범과에 들어갔으며,
사범과 졸업 후에는 충청남도 논산군의 논산공립초등학교의 교사를 역임하셨지.
그러다 박정식의 부탁으로 상해임시정부 자금을 모으는 일을 하셨는데 370원을 드리고
일본에 쫒기는 신세가 되셨었어.
그러다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장두철의 도움으로 일본 넘어가
요시오카의 의학전문학교를 다니시게 되었어.
하지만 일본은 고수선 지사님을 사상범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지독히 괴롭히며 감시했어.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조선인 학살등으로 심신이 쇄약해지신 고수선 지사님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셨어.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셨어도 3.1 만세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에 잡혀들어가셔 모진 고문을 받으셔야 했다고 해.
그때 연필 등으로 고수선 지사님의 손톱밑을 파고 비트는 고문으로 인해
석방이 되신 후에도 평생 손에 장애를 가지고 사셨어야했어.
(쓰면서도 너무 열받고 화나고 지친다. -_- 일본 개새끼)
하지만 끝내 배움을 포기하시지 않은 고수선 지사님은
석방 이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 1928년 졸업을 하여 의사가 되셨고,
경기도 개성(開成)의 남성의원(南星醫院) 소아과에 근무하셨어.
이때 만난 경성의학전문학교 출신의 김태민(金泰珉)과 결혼하여 귀향하게 되었고,
그때 고수선 지사님의 나이 30세였어.
귀향 후 부부는 조천에 장춘의원(長春醫院)이라는 병원을 개업하셨지.
이후 여전히 독립운동을 돕거나 환자들을 돌보며 사셨고
6.25 전쟁 이후 고수선 지사님은 제주도에
전쟁 고아들을 구휼할 수 있는 홍익보육원·제주모자원을 세우는 등 사회사업을 전개하셨어.
그리고 여성운동을 전개하며 여성의 배움과 권익을 보호하시는데 앞장스셨지.
그리고 도의원과 민의원을 하시며 정치활동도 하셨다고 해.
그 후 1989년 제주도에서 돌아가셨다고 해.
인상 깊었던 것은 그 분의 아드님이신 김률근 선생님은 어린이집을 하시는데
어린이집에 삶을 쏟아부으며 지내시는 이유는 어머님이신 고수선 지사님 때문이라는 거야.
“어머니는 나에게 세상을 보는 사랑의 눈을 남겨 주셨어요.
제가 지금 어린이집을 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함입니다”
라고 하셨대.
그래도 광복도 보시고 이후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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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실 여성운동에 관심있고 독립운동에 관심있고
나름 배웠다면 많이 배운 축에 속하지만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이런 분을 알게되다니 내가 참 부끄러웠어.
그래서 광복절 기념으로 글을 써보게 되었어.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제목에 여성 독립운동가라고 한 것은
차별의 의미보단 차별로 인해 베일에 많이 가려졌던
독립운동가인데 여성일 뿐이었던
그것을 조금 구분하고
더 알리고 싶었던거야.
진짜 개떡같이 말하는 것 같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아주겠지 우리 여시들 ㅜㅡㅜ
첫댓글 멋지다 여시야!!! 저런분이 친척이라니 진짜 자랑스러울 것 같아
여시 너무 자랑스럽겠다!!!!
머시써 ㅠㅠㅠㅠㅠ 넘나 멋지신것 ㅠㅠㅠㅠㅠ야학 몰래 다니신것부터 걍 심장 어택이야. 난 한글도 배우기 싫어서 도망다녔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크흡 ㅠㅠㅠ 위인은 날때부터 다른게 맞는거야
글 잘 읽었어~!!! 여시 완전 자랑스러울듯!!
오ㅠㅠ 멋있어멋있어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넘멋지신분이야!!!!
감사합니다 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