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예복을 벗어던지고는 이 왕궁안에서 나 혼자만 입는 평민복을 입었다.
예복이 답답하다는 것이 아니다. 예복도 예복이지만.. 우리 어머니를 보니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휴우.."
난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덜커덕!
"우욱!"
하필 내가 몸을 던진 곳에는 길리프 숙부에게 받은 무구들이 놓여있었다.
난 길리프 숙부에게 하사 받은 갑옷 등을 꺼내보았다.
겉보기에는 엄청 녹슨 것 같지만 아니었다. 만져보니 녹 같은 것은 묻어나지도 않는다. 군데군데 나 있는 흠집 같은 것도 모조리 위장이었다.하지만 이게 패션이라면 조금... 이해하기 힘들다.
똑똑..
"으음, 접니다, 왕자님."
"아덴? 들어와요."
달칵.
문이 열리더니 얼굴에 약간 붉으스름한 기기가 돌고 있는 아덴이 들어왔다.
나는 갑옷을 내팽개쳐버리고는 아덴에게 다가갔다. 술냄새...
그렇다. 그는 언제나 이랬다.
바보같은 왕 때문에 나의 어머니가 수치심이나 분노 등을 느끼면, 아덴은 꼭 이렇게 술을 마시곤 했다.
"아덴.. 웬 또 술이에요.. 칠십 먹은 노인네가..."
풍기는 술 냄새와, 그가 나와 헤어져 다시 여기 오기 전까지의 시간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폭주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마치 물을 먹듯이 술을 먹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외로 별로 흐트러지지 않는다.
"후후, 칠십 먹은 노인네라고는 해도... 제가 왕자님이나 로리스 녀석 따위보다는 훨씬 셀 겁니다."
"이것도 다 교육과정의 일부이지요. 그리고 뭐 어차피 한달 후엔 마시기 싫으셔도 드셔야 할 경우 많습니다. 으음? 그러고 보니 저건..."
아덴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내가 잠시 살피다가 침대 위에 내팽개쳐버린 갑옷등이 눈에 띄었다.
"바보같은 길리프 녀석... 원래는 성인식 행사 때 주는 것인데 벌써 주다니.. 쯔쯧...
왕자님, 이것들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몰라. 이 갑옷이 풀플레이트야 스플린트야? 그것도 몰라."
나는 검에 대해서는 약간 알고 있지만 나머지는.. 문외한이다. 실제로 접해 본적은 없고 그냥 이런 것이 있다~ 라고만 배웠다.
아덴이 검을 집어들었다. 검을 검집에서 빼내자 스르릉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엄청나다. 내가 알고 있는 우물안 호비트 정도의 지식으로는 명검이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거 날까지 녹슬었잖아 겉도 그렇지만.... 관리를 어떻게 한거야, 이거?"
"녹이 아닙니다. 지금 이 상태로도 웬만한 것은 다 벨 수 있지만..."
아덴은 칼막이 부분과 검날의 봉합부분에 손을 가져가 대더니 어떻게 어떻게 조작을 했다. 그랬더니 검날인 줄 알았던, 녹이 슬어있던 부분이 무슨 허물을 벗듯 벗겨지는 것이 아닌가!
"헉?"
뭐하러 두겹씩이나 칼집을... 이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못할 정도로 새하얀 은빛의 검. 워낙 얇아서 부러지진 않을까?
"미스릴입니다. 이젠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알려진 금속이죠."
호오 미스릴? 우리 랜더즈 왕가에 이런 것이 존재할 줄이야! 정말 놀랍군.
"참, 우리 왕족들은 기사가 되면 일단 성기사로 정해지는 것은 아시죠? 클라이노스를 받드는.."
"음, 알지."
"성기사로 임명 되셔서 신탁을 받으신 후, 클라이노스 신에 대한 신앙심을 깊게 충만하시고 이 검을 잡으시면..."
그순간, 검날이 타오른다. 새하얗게...
"오라 블레이드?"
"네. 흠... 정식 성기사가 아닌 저로서는 약간 무리가 있군요."
그러자 곧 새하얀 불길이 사라진다.
"별도의 신성력을 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깊은 신앙심... 그 신앙심이 극에 달했을때는 생명체의 육신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베어버린다고 하죠. 그래서 이 검의 이름은 소울이터. 물론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이건 보물정도가 아니라 신물이다.
"이거 갖고 있으면 십대일도 장난이겠다. 이거 드워프가 만든거야?"
아덴은 고개를 젓는다.
"날은 드래곤이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세상해... 정말로 신물이나 다름없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용하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진실한 신앙심을 가지기가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아울러 미스릴이라고는 해도 금속은 금속. 혹시 모르니 이 중간 검집을 착용한 채 쓰셔야 합니다."
크극... 그렇다면 위기의 순간에 에잇~ 비장의 카드! 소울이터! 하면서 오라 블레이드를 전개하란 말이지...
덜컥.
"아, 왕자님, 아덴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로리스였다. 그러고 보니 정말 꽤나 늦었다. 내가 시녀를 보낸지가 한참 전인데 말이다.
내가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아덴이 더 빨랐다.
"이 자식아! 비켜! 술상 못 들어오잖아!"
그러고 보니 장관이다. 문뒤에 남녀 시종 열댓명 정도가, 남자 시종들은 전부 술을 나무통째로 하나씩 들고 있었고, 하녀들은 글라스와 위스키 병들, 그리고 가죠오지 말랬던 여러 안주를 들고 있다. 무슨 파티 하는 것 같다.
"자, 자! 빨리빨리 들여오고 왕자님, 칼 얘기는 좀 나중에 하죠."
아덴.. 이 노인네. 술을 보자 사람이 달라진다. 솔직히 말해서 아덴이 술먹는 장면은 여러번 봐 왔지만 칼이 먹는건 처음이다. 미성년은 음주가 금지이다. 때문이었다.
"아, 왕자님. 이리 주세요. 제가 옮기죠."
내가 일어나서 검집을 정리하고 갑옷등을 구석에 두려하자, 주제에 왕자라고 로리스가 그것들을 받아든다. 그순간
"우욱!!"
쿠당탕.
로리스의 손을 거쳐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무구들. 악, 저, 저 칼..
"임마! 이게 뭐가 무겁다고 내팽개쳐, 이런... 이게 어떤 건 줄 알고!"
날 무적으로 만들어줄 소울이터가... 이 무식한 놈.. 정말 화나서 눈물이 나오려한다.
"죄, 죄송합니다, 왕자님. 너, 너무 무거워서 그만..."
"무거워?"
나는 한 손으로 약간 버겁기는 하지만 어쨌든 한 손으로 떨어진 갑옷을 주워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로리스의 눈이 커지더니, 나를 따라해본다.
"으읏!!"
그는 한참 용을 쓰다가 한 손으로는 안되겠는지 두 손으로 힘을 쓴다. 그러자 아주 쉽게는 아니지만 비교적 쉽게 들린다. 하지만 난 한손으로 가능한걸?
"로리스, 요즘 너무 놀았나본데?"
"그럴리가요..? 저도 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는데.."
"로리스, 네 힘이 약해진게 아니야. 왕자님이 세진 것도 아니고."
아덴이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차려지는 술상을 바라보더니 입맛을 쩝하곤 다셨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 그 무구들은, 경량화 마법이 걸려있지. 그 마법들은 상당히 고차원적인 것들로, 랜더즈 왕족의 피가 흐르는 자 에게만 반응하도록 되어있어. 랜더즈 왕가가 아닌 사람들은 두 배 정도의 중량으로 느껴질 걸? 로리스가 낑낑대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칼의 성형자체도 좋은데.. 이 갑옷과 무구에도 그런 것이.. 이거 입고 몸으로 박아도 웬만한 놈들은 나가떨어지겠군. 이것들을 장비하고 싸워서 지면 바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