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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논둑길을 걷고 있는 강을 섬기는 사람들 |
미국을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은 단순한 선거공약이 아니다. 여러 내륙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이슈라고 볼 수 있다. 대운하는 이 모든 사안들을 다룰 수 있는 포괄적인 계획”이라고 말했다. 건설비의 100배를 쏟아 부어 플로리다 운하를 복원하고 있는, 환경의식이 높은 미국인에게 ‘환경에 무지한 대통령’이라는 웃음거리만 제공한 것은 아닐까.
대운하는 아직 분명한 실체가 없지만 새만금을 보면 그 실체가 보인다. 새만금은 전두환 정권의 노태우 정권 창출용 대선공약이었다. 바다와 갯벌을 막는 새만금을 상상 할 수 없었던 것처럼 한나라당의 대운하 대선공약도 뜬금없는 일이었다. 새만금이 바다와 갯벌을 파괴했던 것처럼 대운하는 강과 산을 파괴할 것이다. 그러나 새만금과 대운하는 그 모습, 그 규모가 다르다. 새만금 개발의 우상에 사로잡힌 전북도민 70%가 새만금을 찬성하지만 대운하는 국민 70%가 반대하고 있다.
새만금 일대를 순례하기 위해 1박 2일 동안 해창 갯벌을 찾았다. 강현욱 전 도지사가 도지사 재선을 노리고 청와대에서도 반대한 물막이 공사를 강행한 이후 해창 갯벌은 더 이상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갯벌은 쑥과 망초대의 육지생물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태초의 모습 그대로 갯벌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장승과 솟대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염원을 4대 종단의 기도처가 하늘로 올리고 있었다.
"새만금을 보면 대운하가 보입 니다"삼보일배, 바다와 뭇 생명을 살리기 위한 거룩한 기도의 주인공인 수경스님을 만났다.
“새만금을 보면 대운하가 보입 니다. 시화호가 말해 주듯이 고인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데 어떻게 공업용수로 쓸 수 있겠습니까. 새만금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국책사업의 10-15%는 정치자금으로 흘러갑니다. 청렴결백한 변호사 출신인 모 감사원장이 새만금 감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역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들에서 언론까지 연루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 70%가 반대하는 대운하를 강행하려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20조면 2-3조, 40조면 4-6조가 정치자금입니다. 4년 안에 완공하려는 이유도 정치자금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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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을 신명나게 환영하는 부안 농민회 회원들 |
삼보일보의 출발지인 해창 갯벌에서 길을 따라 ‘강을 섬기는 순례’가 시작되었다. 바지락 백합으로 넘쳐나던 황금의 갯벌에는 파도가 사라져, 잡초만 무성한 황무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방조제는 탁 트인 수평선을 지워버렸다. 그 아픈 바닷가를 지나 산과 들판 사이를 가로질러 부안읍으로 향했다. 이삭이 막 패기 시작한 보리밭을 일렁이는 4월의 봄바람은 67일째인 순례단의 피로와 땀을 식혀 주었다. 부안 핵싸움의 성지인 수협 맞은편에서 풍물패들이 신명나게 마중을 나왔다. 유기농 두부와 김치에 막걸리 잔이 돌았다.
"부안핵폐기장처럼 대운하 사업도 꼭 막아내기를 바랍니다'수협에서 부안성당까지 순례를 시작하며 서대석(반핵부안대책위) 공동대표가 인사말을 했다.
“핵 폐기장, 새만금 등 환경파괴의 대표적 사업이 이곳 부안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핵 폐기장은 군민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해서 저지했지만, 새만금은 막지 못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전 국토의 강을 초토화시킬 대운하 사업까지 추진한다고 합니다. 설마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새만금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초기부터 철저히 대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환경재앙 덩어리 대운하가 강행될 것입니다. 부안핵폐기장처럼 대운하 사업도 꼭 막아내기를 바랍니다.”오후 7시 30분, 부안성당에서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관’으로 ‘생명의 강, 그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가 진행되었다. 강론에서 최종수 신부는 “개발과 성장,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나라.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육식을 시킨 광우병이 의심되는 등뼈까지 수출을 강요한 부시정권이나, 성장을 위해 대운하를 밀어붙이려는 이명박정권이나 속된 표현으로 한통속입니다. 돈과 성장에 환장한 것으로 치자면 부시정권보다 이명박정권이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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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창 갯벌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강을 섬기는 순례단 |
4개 종단의 순례단은 출발지인 기도처가 있는 해창 갯벌로 다시 갔다. 수많은 뭇 생명의 아픔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듣기 위해 하룻밤 여장을 풀었다. 고단한 여정 탓이었을까. 코고는 소리가 멈추어버린 파도소리를 대신해 주었다.
밤사이 순례단을 지켜준 장승에 순례단의 마음을 담은 몇 개의 현수막을 걸었다. 해창갯벌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순례단은 출발지인 부안성당으로 갔다. 푸른꿈 고등학교 학생들과 평화동 성당 신자들과 함께 “어제 서울에서 열린 운하반대기독교행동 발대식에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출발했던 그 시간과는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라는 이필완 목사의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성당을 떠나 원불교 부안교당의 태양광 발전 시설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오전 내내 2003년 삼보일배 여정을 따라 순례를 계속 했다. 새만금 갯벌에 모여지는 큰 물길인 동진강에 이르렀다.
삼보일배의 주인공 김경일 교무가 동진강을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이 강을 따라 2-3시간만 걸어가면 고향 고부입니다. 고기 잡고 물장구치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자연과 함께 자라야 할 아이들에게, 0교시 수업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금수강산을 보고 배우고 느끼는 교육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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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자랑을 하며 웃고 있는 산촌유학센터 아이들 |
탐욕의 논리만 무성한 사회입니다. 돈이 최고라는 가치가 대운하 망상을 가능케 했습니다. 실패한 새만금이 경고하고 있어요. 대운하는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새만금과는 달리 지식인들이 대운하 검증을 철저히 하고 있으니 대운하는 백지화될 것입니다.“ 정읍 상두산 인근에서 발원한 맑은 동진강물이 마을과 들판의 생명을 보듬고 흐르는 동진대교에서 바다와 만나야 하는데, 바닷물이 방조제에 막혀버렸다. 유모차에 탄 채로 순례단과 함께 걸었던 5개월 된 예은이가 아빠 품에 안겨 동진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이 순례 중에 만났던 송사리 맑은 눈망울을 닮았다. 태초의 강물처럼 지금의 이 눈빛이 영원하길 기도했다. 그 기도소리를 알아챈 듯 예은엄마(송성란)가 말문을 열었다. 아이의 선한 눈빛처럼 엄마의 염원도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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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와 만경강에서 웃고 있는 예은 |
"경제를 위해 환경을 파괴해도 된다는 천박한 가치관이 무서워요"“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국토를 자기 땅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연은 어른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와 미래 세대의 것이죠. 경제를 위해 환경을 파괴해도 된다는 천박한 가치관이 무서워요.
우리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가야 건강하게 태어나서 경제보다는 환경을, 돈보다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엄마 아빠가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우리 아이가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할게.’ 라고 태교를 했어요.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나 잠을 재울 때도 종종 사람과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말해 줍니다. 우리 아이가 시원하게 머리를 삭발했죠. 운하는 우리 딸에게 물려줄 수 없는 재앙이니까요. 예원아, 대운하는 안 된다고 말해봐!“해는 엄마의 소원처럼 중천이었다. 아직 순례가 닿을 길은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