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로그인 하시고 박진임오승철 검색을 해보세요
아주 긴 장편의 '제주시인 오승철론' 평론글이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타임즈에 처음 공개하는 따끈따끈한 미발표작이랍니다
저는 프린팅해서 보고 있구요...
선생님의 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읽히는지...
한번 두루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 평론은 등단 문학평론가이신 박진임님이 아크로를 통해 처음 공개하는 미발표작입니다. 아크로 기준으로는 상당한 분량의 ‘장편’이므로 시간을 갖고 일독하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미발표작이므로 게재나 인용을 금합니다. <편집자 주>
1. 제주, 아직도 들끓는 마그마.
우리에게 제주는 무엇인가? 제주는 유네스코 10대 자연경관 지정을 고대하는 수려한 풍광의 섬이다. 봄에는 따뜻한 햇살 속에 유채꽃이 만발하고 서귀포에는 겨울에 귤이 주렁주렁 열리고 그 서귀포의 남쪽 바다는 맑고 잔잔하고 신선한 해산물이 연중으로 넘쳐나고 해녀들이 물 속으로 자맥질하는 모습이 남아 있는, 한국 속의 이국 같은 곳이다.
제주는 그 태생부터 한반도와 다르다. 저항과 반역의 열정으로 들끓는 마그마로 몸부림치는 모태에서 태어난 섬이라고나할까? 제주는 곧은 말하기 좋아하여 조정에서 미움을 산 조선의 선비들이 귀양 가는 섬이었고 늘 소외와 반란의 바람을 타고 출렁이는 섬이었다. 1948년에 발생한 4.3 사건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엄청난 비극은 사실 제주가 지녀오던 오래된 소외와 억압의 역사가 극단적인 모습으로 터져 나온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제주 사람들은 남에게 자신의 속을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4.3의 교훈을 내면화한 까닭이라고 한다. 말 한마디에 생과 사가 갈리는 끔찍한 모습들을 목격한 자들이 갖게 되는 자기 검열의 기간은 실로 길었던 모양이다. 현기영의 소설『순이 삼촌』이 80년대 문단에 등장하기까지는 4.3은 구전되는 풍문에 불과했다. 4.3의 기억은 말로는 옮겨지기 힘든 엄청난 트라우마였다. 4.3을 겪으며 제주인은 ‘말’을 박탈당한 채 수십 년을 견디어야 했다. 그것은 단지 외부에 있는 정권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개인들의 자기 검열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죽음으로, 육체적 훼손으로 혹은 정신적 손상으로 인하여 그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었기에 4.3은 재현되지 못한 채 묻혀 있었다. 제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힌 채살아남아 왔다. 김순덕 할머니는 실제로 총탄에 턱을 잃어 말할 수 없었다. 그의 의미화하지 못하는, 분절되지 않는 절규는 그 자체로 김동만의 비데오에 기록되어 증언으로 남아있다. 턱을 하얀 무명천으로 감싼 채 질러내는 그의 소리는 섬찟한 소름으로 바로 보는 이의 육체에 반응한다. 언어, 기록, 역사라는 의미화 또는 재현의 과정을 생략한 채 달려들어 그 참혹한 기억을 나누어 갖게 한다.
제주의 문인들에게 4.3을 증언하는 일은 그리하여 태생적인 업을 갚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주 시인 허영선의 시집, 《뿌리의 노래》는 4.3을 겪으며 상처 받은, 숱한 이름 없는 제주인들의 넋을 하나씩 어루만진다. 허영선의 언어는 제주인의 넋에 바치는 진혼곡이다.
시조 시인 오승철은 시조라는 간결하고 응축된 시 양식을 통하여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제주의 풍광, 신화, 전설, 역사를 그려낸다. 허영선의 자유시가 제주 사람들의 한 맺힌 사연과 기나긴 넋두리를 축약없이 오롯이 담아내려는 시도라면 오승철의 시조들은 허영선 시와 달리 재현과 보존보다 승화를 시도한다. 절제와 생략을 기본 덕목으로 하여 제주인의 삶과 한(恨), 그리고 4.3의 기억을 재현한다. 제주의 수려한 경치와 맑은 공기, 정결한 바다의 빛깔, 한라산의 고고한 기상은 그의 시를 통하여 비로소 그 품격에 값하는 예술적 재현을 얻었노라 단언한다.
오승철의 시편들을 읽으면, 한반도에서 뚝 떨어져 앉은 제주라는 고적한 섬의 거칠고 외로운 바람이 느껴진다. 한적하여 더욱 외로운 섬, 그 섬에서 유독 더 맑게 비치는 햇빛이 느껴진다. 그 햇볕은 왠지 모르게 눈물겹다. 오월이면 노랗게 섬을 뒤덮는 유채꽃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유채꽃은 제주 고유의 것이 아니라는 설이 있고, 그래서인지 오승철 시편에는 유채꽃의 이미지는 거의 드러나지 않기는 하다. 도시에서 머물 곳을 찾지 못하여 제주 섬에 맴돌며 ‘십자가처럼’ 위태롭게 억새 위에 자리 잡은 잠자리들도 떼로 보인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귤 향기가 코 끝에 머무는 듯하다. 조정철과 홍랑의 사랑이 빛을 잃은 채 쓸쓸한 전설로 다시 드러난다. 제주에서도 살아남지 못하여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누이’의 시편들을 통하여, 한국 현대사의 또 하나, 기록에 드물게 남은, 일본으로 이주한 한국인 노동자의 삶을 엿볼 수도 있다. 관광객들의 렌트카가 30분이면 완주하는 5.16도로, 그 도로에도 박정희 정권시절의 현대사의 아린 상처들은 묻어 있다. 이제 제주도에 4.3 기념관이 지어져 4.3의 증거들이 보존되어 있다. 4.3이 공적 역사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는 구체적 증거, 그 상징이 4.3 기념관으로 표현된다면 오승철의 시편들은 독자의 정서에 심인(心印)을 남김으로써 그 역사를 증언한다. 공적 역사가 다 담아내지 못한 매우 개인적인 여운과 틈새, 흔적을 보존하는데 그의 시는 바쳐진다. 바람에 날리는 귤 향기와 함께, 섬 바람에 늘 출렁이는 파도 소리와 함께, 맑은 햇빛아래 꽁지를 늘인 고추잠자리 문양의 심인을... 불에 데듯 소스라치면서도 우리는 그 심인을 받아들이고자 가슴을 내민다. 역사는 기억되어야 하는 것, 아픈 역사는 가슴에 새기고 가야 하는 것...
2. 축산이의 노래
시집 《사고 싶은 노을》에 수록된 〈고추잠자리 6〉에는 ‘축산이’라는 말이 나온다. “눈이 온다. /이 땅에 못 이룬 일 있으시어/ 바다 가까이/ 등을/ 켠/ 동백나무에/ 온 종일 축산이같이/ 비켜 앉는 고추잠자리.“ 시편 마지막에 각주가 붙어 있다. ”제주에는 세상에 원한이 많아 죽어서도 저승에 들지 못하는 영혼을 〈축산이〉 또는 〈죽산이〉 라고 한다. 즉 이쪽이나 저쪽에서 따돌림 당하는 사람을 일컬음이다.“ 축산이라는 말은 오승철과 그의 시의 존재를 규정짓는 첫 번째 표현에 해당한다.
제주가 오래 전부터 선비들이 귀양 가던 곳이었다는 사실은 제주의 고립된 지리적 위치와 더불어 제주가 주변성의 한 표상이 됨을 말해준다. “길이란 길은 죄다 바다에 와 끊기고”(〈고래콧구멍〉) “세월도 밀려 왔다 이문이 없었는지” “사십분, 섬을 돌아도 제 자리인 내 그리움”( 비양도 3)에서 보듯 하릴 없고 적막한 곳이 제주로 그려진다. 그리하여 제주 동굴의 종유석 또한 그리움으로 자란다. “거꾸로 매달린 그리움, 종유석을 키워낸다”( 사나운 동굴) 제주의 쇠똥구리 또한 “남도 끝, 세를 든 세상, 경단처럼 밀고 간다” (송당 쇠똥구리1) 고 묘사한다. ‘세를 든 세상’이라는 표현에 주목하면 그것은 소외의 표현임을 알 수다.
제주는 권력으로부터, 또 경제 개발로부터 늘 소외되어 오던 곳이었다. 《사고 싶은 노을》에 수록된 시 〈돌하르방〉의 ‘천년이 지나도 유배지의 불빛은 낯설기만 한데’에서 보듯 제주는 유배지이며 “죽어도 눈 못 감는 한이 서린 이 변방”이다. 돌하르방이 형상화하는 것은 마지막 연의 종장, ‘어사또 출두는 언제냐,// 절규하던/ 시인아’에서 볼 수 있듯 유배지에서 한을 키우는 존재, 언젠가는 정의를 구현하며 혼탁한 시대를 구원해 낼 어사또의 출두를 기다리다 지친 존재이며, 그것은 곧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시인’은 세상과 타협하길 거부하고 따돌림을 자청하며 영원히 떠도는 영혼의 다른 이름이다. 오승철 시인은 제주도 사람들이 쓰는 ‘축산이’라는 이름으로 제주도 사람들에게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는 소외와 한의 정서를 드러낸다.
살펴보면 제주에선 모두가 축산이다. 어찌하여 역사의 변방, 지리상 한반도의 끄트머리에서도 밀려나 살아가게 된 그 모두가 축산이다. 서정적인 사랑시의 색깔이 완연한 〈철(喆)을 찾아서〉에 보이는 서울 선비 정철 또한 귀양 온 축산이다. 도시 서울에서는 앉을 곳을 찾지 못하여 섬 동네 제주를 찾아 온 고추잠자리도 축산이다. 제주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축산이다. ‘물질’을 하든, 물레를 잣든 온 생애를 노역에 바치고, 더러는 남정네들을 바다에도 바치면서 살아가는 그들이기에... ‘할머님 떠나 보내고’라는 부제를 지닌 〈꽃상여〉에서는 그리하여 “인생은 바람이더라/ 살아보면 살아지더라”하고 노래하고 있다. 단지 견디어 갈 뿐인 삶을 살았던 제주 여인에게 바치는 애달픈 헌사로 이 시는 읽힌다.
낡고 닳은 물레 휘어 감긴 팔십세월,
난간에 떠오르는 달 머리채에 시름 앓더니
한 하늘 스러지던 삼경, 하얀 넋이 떤다.
인생은 바람이더라 살다보면 살아지더라
새기어 아픈 말씀 관빛의 촛불 켰다.
엇갈려 부는 저 바람 속, 청개구리는 어이 울고
옷자락 펄럭이며 소낙비 막아서면
저만치 공동묘지 발가벗고 아물아물
은하강 머리를 풀 듯, 아아, 여울지는 꽃상여여.
--꽃상여--
그러나 고달픈 삶이었다 해도 꽃상여에 실려간 주검이라면 그 주인공은 행복한 제주 여인이라 할 것이다. 〈개닦이〉에는 고기잡이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가장들을 둔 여인네들의 마을이 그려져 있다.
1
바다도 지우지 못한
슬픈 마을이 있다.먼 산 장끼가 우는 날이면,
갯바위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늙은 해녀들의 눈빛
속에서 잡풀이며, 바위부스러기며, 무성한 한이며, 쇳소리로
긁어대는 칠월의 하루해만 길어라.한평생
자맥질에도
못 다 재운 호미 끝2
돌상 무렵 내 고향은
바다에도 아니 든다.해마다 칠월 초닷샛날은 수평선만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물 봉봉
드는 바닷가,
돌아오지 않는 주낙배들.3
친구여, 우리가
부르지 못한 그 이름들이이 저녁 제삿집마다
불빛으로 돋는다해도한사코
바다소리만
무너지는 마을 한 끝.*개닦이: 해녀들이 각종 해조류가 돋아날 수 있도록 1년에 한 두 차례씩 갯바위의 잡풀과 바위부스러기등을 호미로 긁어 닦아내는 작업.
--개닦이--
7월 초닷새날에 고기잡이 나갔던 마을 어부들이 한꺼번에 행방불명된 까닭에 해마다 그날 마을 전체가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슬픈 서사가 이 시에 들어있다. 돌아오지 못한 그리운 님들을 향하여 바다를 내다 보고 앉은 한 무리의 마을 아낙들... 첫 연은 그 여인네들이 낮에는 개닦이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음을 말해준다. ‘무성한 한’이라는 시어가 대변하듯 제주의 척박한 삶에서 고통과 한은 결코 개인의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심 깊이에서 들끓는 마그마처럼 제주 섬 전체에 만연해있다. 바다는 그 사연들을 모르는 척 한결 같이 파도치고 있을 뿐이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에도 바다는 무심하게 출렁일 것이다. 바다 소리를 두고 ‘한사코’‘무너지는’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바다가 그 가슴 아픈 이야기를 삼켜버리고 있음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인생의 다사다난이나 역사의 우여곡절을 전혀 알지 못하는 척, 자연은 늘 그대로이다. 제주 바다는 파도로 몰려와 무너지며 마을의 사연을 지워버리는 무심한 바다이다.
더 한층 한 맺힌 축산이의 노래는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사고 싶은 노을〉에서 발견된다.
제주에서 참았던 눈
일본에 다시 온다.
삽자루 괭이자루로
고향 뜬 한 무리가
대판의 어느 냇둑길
황소처럼
끌고 간다.
파라, 냇둑 공사 다 끝난 땅일지라도
40여년 <4.3땅>은 다 끊긴 인연일지라도
내 가슴 화석에 박힌 사투리를 쩡쩡 파라일본말 서울말보다
제주말이 더 잘 통하는
쓰루하시 저 할망들 어느 고을 태생일까
좌판에 옥돔의 눈빛 반쯤 상한 고향 하늘‘송키’‘송키 사압서’낯설고 언 하늘에
엔화 몇 장 쥐어주고
황급히 간 내 누님아
한사코
제주로 못 가는
저 노을을 사고 싶다.*일본 대판에 있는 쓰루하시(鶴橋)는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제주도민들이 <평야천>공사를 위하여 노역을 갔다가 집단적으로 모여사는 곳이다.
*송키: 야채 반찬거리의 제주어.
--사고 싶은 노을--
제주와 일본의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하여 일본으로 유입된 제주 인구는 역사를 통해볼 때 상당한 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로는 ‘원정 물질’이라는 이름으로 해녀들이 제주 근해를 떠나 이동해가기도 했고 일본이나 사할린등으로의 이주 노동자 또한 꾸준히 존재해왔다고 한다.
위 시에 드러난 누님의 존재는 그러나 각별히 애달프다.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이주가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하여 일본의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왜곡이 배경에 깔려 있다. ‘냇둑길을 황소처럼 끌고’가는 인력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한 식민지 조선인들의 슬픈 풍경화인 것이다. 그들은 일본 땅에서이지만 모국어, 그것도 제주 사투리를 쓰고 살면서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민으로 생을 마감하게 될 사람들이다. 그래서 ‘옥돔’의 눈빛에도 고향하늘이 실려 있고, 일본에 내리는 눈은 ‘제주에서 참았다가’ 다시 오는 눈으로 그려진다. ‘송키’를 팔며 살아가는 고달픈 누이의 삶은 ‘엔화 몇 장’을 벌기 위한 삶이다. 일본 땅에서는 제대로 된 사람 대접 받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이며 모국 땅에서도 잊혀지다시피 한 존재들, 그들이야말로 축산이들이다. 끝내 한으로 남을 목숨이기에 ‘노을’의 이미지 속에서 그들의 운명은 더욱 애타고 간절하게 남는다. 그 노을조차 시인은 ‘한사코 제주로 못 가는’이라고 했다. 노을을 바라보며 고향 생각이 간절하지만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실향민의 애환이 눈물겹게 그려져 있다.
하필이면 눈 내리는 겨울을 시간적 제재로 취하여 시인은 얼어 붙은 겨울 이미지 속에 역사의 질곡을 그려내고 있다. 겨울이 갖는 동결의 이미지는 우리의 망각의 표현일 것이다. 그 동결을 해체하고 파고 드는 언어와 기억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 누이로 대표되는 쓰루하시 한국인들이 마지막 지니고 놓지 않는 고향의 언어와 기억이 잊혀진 역사에 틈입을 만들고 있다면 시인은 이를 증언하면서 우리를 잊혀진 역사의 한 부분으로 다시 초대하는 것이다.
축산이들의 섬, 제주에서 시인은 불빛에서 동정을 찾고 위로를 찾는다.
그 흔한 다방이나 주유소는 없어도
누이야, 날 저물면 돌아오는 점방불빛
이승의 어느 병상에
문안할 일 있느냐.
--송당 쇠똥구리 4--
때로 시인은 슬픔과 위로가 아닌 분노와 저항의 정서를 표출하며 제주의 역사를 증언하기도 한다. 〈송당 쇠똥구리 2〉는 쇠똥구리에 대한 묘사가 한편의 서정적 저항시로 작동하는 것을 보여준다.
잠시 세상의 밥 안 먹겠단 뜻일테다
용눈이 오름 자락 엎어놓은 막사발같이
산 번지 난장 벌이듯
월동하는 저 무덤들봄이면 부화하리 겨울잠 깬 쇠똥구리
나는 봤다 바윗돌로 봉해버린 어느 동굴을
무수한 4.3의 탄흔
그 세월을 나는 봤다한 발의 탄환으로 한 발의 그리움으로
신갈나무 원목에 나도 총을 겨눠본다
숭숭숭 벌집을 낸다
버섯종균 쏘아댄다아, 섬과 섬 사이 저 오름과 오름 사이
대명천지 이 봄날 누가 나를 격발하라
뻘기꽃 낭자한 터에
소리라도 굴리고 싶다.
--송당 쇠똥구리 2--
1연에서 역사의 침묵을 겨울과 겨울잠으로 전면에 배치한 시인은 산등성이에 무수히 생겨난 무덤들을 지적함으로써 4.3으로 인해 생겨난 숱한 억울한 죽음에 대해 증언한다. 2연에서는 봄이면 겨울잠에서 벗어날 쇠똥구리를 증언의 도구로 암시한다. 3연에 이르면 겨울잠에서 깨어나 신갈나무에 구멍을 내는 쇠똥구리와 그 구멍에서 버섯이 피어나는 이미지를 제시하며 결코 영원히 묻혀버릴 수 없는 역사와, 침묵을 넘어 고발과 증언으로 나아가는 역사의 진보를 노래한다. 쇠똥구리에게 ‘한 발의 탄환으로’라는 이미지를 덧입히어 억울한 죽음들에 대한 복수의 역할을 감당하게 한다. 그 분노는 ‘격발하라’는 명령어에서 극대화된다. 자폭이라도 하고 싶은 억울한 감정, '누가 나를 격발하라‘는 선언은 부당한 역사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메시지를 지닌다. ’대명천지 이 봄날‘에서 주목할 것은 대명천지이다. 햇살 밝은 봄날, 태양 아래에서는 진실이 속속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대명천지 이 봄날‘에도 그 잔혹했던 역사의 순간이 침묵 속에 갇혀 있으니 ’격발해 달라‘는 울부짖음이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봄날 들판에는 뻘기꽃이 흐드르지게 피어있다. 꽃이 무리로 핀 것을 두고 ’낭자하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낭자한‘ 것은 필경 피일 수 밖에 없다. 4.3 의 낭자한 피를 지칭하면서 ’낭자한 피‘라고 한다면 시인이 아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빅토르 쉬클로프스키가 말하듯이 문학은 ’낯설게하기‘이다. 시인은 언어를 교묘하게 취환하는 자이다. 오승철은 ’낭자한 피‘와 ’흐드러지게 핀 뻘기꽃‘이라는 두 이종적 모티프를 혼합하고 재배치하여 ’뻘기꽃 낭자하‘다고 노래한다. 그리하여 봄날 무심히 피어난 뻘기꽃 또한 4.3을 증언하게 만들고 있다.
3. 외로움이여, 사랑이여
축산이들의 설움이 보편성의 울림을 지니고 독자에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근원적으로 고독하고 사랑에 목마른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움도 하나의 죄”라고 시인이 노래할 때, 그 노래는 독자 모두의 가슴을 적시고 든다. 〈고추 잠자리 4〉의 1연에서는 고추잠자리를 묘사하며, “못 이룬 들녘의 꿈이/ 십자가로 앉았다”고 노래한다. 장대나 억새에 살짝 머물러 앉은 모습을 그린 것인데 그 잠자리의 가벼운 영혼에서, ‘못 이룬 들녘의 꿈’을 본 것이다. 그 다음 연에서는 그 잠자리의 모습에 시인 자신의 그리움과 그 그리움으로 인한 고통을 투사하고 있다.
...
죄지은 일없으면
이 세상에 살지 말자.
그리움도 하나의 죄
하늘이 준 형벌 앞에
긴 울음
꽁지에 참고
저 혼자 뜬 갈랫길.
--고추잠자리 4--
그 그리움이 단지 시인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것이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움에 울음을 참아 본 적이 없다면 어찌 인생이라 하랴. 시인의 상상력이 참으로 재미있다. 날개는 거미줄처럼 가볍고 주름져 있는데 몸채에 매달린 꽁지는 어울리지 않게 긴 것이 잠자리이다. 그러한 형상을 두고, “긴 울음 꽁지에 참고”있다고 시인은 본 것이다.
사랑은 가을 햇살에 온 몸 드러낸 고추잠자리의 설움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비양도라는 작은 섬에 몰려 와 온 몸 부딪치는 파도에서도 시인은 사랑을 읽는다.
사족이리
섬에 와 무릎 꿇는 하늘도
가을날 신목에 올린
지전도 사족이리
딱 한 번 고백하려고 왔다간다, 바다의 혀.
--비양도 3--
한편, 시 〈엉겅퀴〉에서는 난만히 죽음의 이미지를 흩어 전개한 다음, 느닷없이 사랑을 노래한다. 제사, 이 세상 인연, 봉분, 혼...이들은 모두 죽음을 환기시키는 시어들이다.
‘가메기 모른 시께’ 있었다는 뜻일테 주
숭늉 묻은 밥티 몇 점 얻어먹고 가는 길에
이 세상 인연의 뱃도롱, 끊지 못한 붉은 취기따져보면,
오름들도 헛봉분이 아니던가
리사무소 스피커가
혼 부르듯 하는 날은
천지간 외로운 사랑 딱 한번만
하고 싶다.*가메기 모른 시께: 까마귀 모른 제사의 제주어
*뱃도롱: 배꼽의 제주어
--엉겅퀴--
이렇게 분분한 죽음의 메타포에 이어 돌연히 사랑을 이야기함으로써 시인은 유한자로서의 인간 존재와 삶의 덧없음, 그리고 그 덧없는 삶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해 줄 것이 오로지 사랑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제주 땅에 여기 저기 펼쳐져 있는 오름을 두고 이를 헛봉분이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사람이 죽어 땅에 묻힐 때 봉분이 이루어지고 오름은 바로 그 봉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인은 구체적인 죽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천지에 만연한 죽음의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이다. 리사무소에서 나는 스피커 소리라면 필시 사무적인 방송이련만 시인의 마음은 그 또한 혼 부르는 초혼의 소리로 듣는다. 이 세상 어느 한 귀퉁이에서 또 하나의 목숨이 사위어 떨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생명이 지기 전에, 살아 있는 자여, 사랑하라!” 시인은 절규하고 있는 듯하다. “내 목숨이 하나이듯이 내 사랑도 하나입니다” 하고 이해인 시인이 노래한데 반해, 시인은 유사한 정서를 두고, ‘천지간 외로운 사랑’이라고 했다. 하늘과 땅, 그 사이에 너와 나...
그런데 제주에는 ‘천지간 외로운 사랑’의 한 전범이 있어 전설처럼 제주 사람들은 이를 나누어갖고 있다. 서울에서 귀양 갔던 선비 조정철과 그 와의 연분을 목숨 걸고 간직했던 홍랑의 사연이 그것이다. 세월의 풍화과정을 거쳐 이제는 비석의 이름자조차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은 그 사랑의 흔적을 두고 시인은 노래한다.
아무래도 하늘에 한 번
하소할 일 있었나보네
은하도 걸린다는 백록담까지 와서
뿌리로 돌을 녹이며
꽃대 올린 돌매화지상에서 가장 작은
그 나무 앞에 서면
조선 선비와 섬처녀 연분난 적소의 밤
바위도 이백년 풍상
그 사랑을 툭 놓쳤네.굴러 동강난 바위 ‘조정 趙貞’만 남아 있네
하늘 앉은 못물에 얼비치는 저 꽃들
한 세상 못 달랜 허기
환한 기약 하겠네
--‘철(喆)’을 찾아서- 조정철과 홍랑--
압축된 시에 징후처럼 드러난 서사의 모티프를 찾아보면 이러하다. 백록담 언저리에 바위에서 자라는 아주 작은 매화 나무 한 그루가 있어 조정철과 홍랑의 사랑을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백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제는 바위는 무너져 조정철의 이름 석 자 중 마지막 자는 사라지고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간절했던 사랑의 전설은 남아 이 세상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연분, 다음 세상에서는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기약을 갖게 한다. 백록담 맑은 물에 비치는 매화 꽃은 바로 그들의 못다 이룬 사랑의 표상으로 환히 피어있다.
4. 안으로 삼킨 언어
2009년에 발간된 시집 《누구라 종일 홀리나》의 서문에서 오승철 시인은 간단히 이렇게 쓰고 있다. “21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다니까/ 어느 시인이, 제주어로// ”저, 쉐 잡아먹을 간세!“...// 자서에/ 뭘 더 보태랴. 2009년 8월 오승철.” 매력적이다. 우선 21년동안 시집을 내지 않았다는 것도 매력적이고 이렇게 말을 줄여 쓰는 것도 시인의 품위에 걸맞게 느껴진다. 언어의 연금술사이며 동시에 경제학자가 시인이므로... 과작하는 시인이 드문 한국 시단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오승철 시인의 독창성은 발표작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 편만으로도 독자를 매료시킨다는 바로 그 점에 있다. 따지고 보면 시인은 대표작 한 편으로 기억될 따름이다. 나머지는 다 우수리다. 소월은 〈진달래꽃〉으로, 미당은 〈화사〉나 〈귀촉도〉로 기억될 따름이다. 시조 시인 유제하는 〈낮달〉 한 편으로도 오래도록 필자의 기억에 남아 있다. 서벌은 〈어떤 경영1〉로 남고, 김상옥은 필자에게는〈구두〉로 남는다. 문무학은 〈바람〉으로 기억할 시인이다. 오승철의 시편에는 오려서 붙여두고 싶은 절묘한 부분들이 더러 많다. 아껴 쓴 언어가 주는 깊은 울림이 거기에는 있다.
...
세월이야 이승에 두고
사람이 가는 거다
무덤은 또 한 생의 징검다리 같은 거
...
--더덕밭 너머--
‘더덕밭 너머’의 한 부분과 더불어 ‘화살깍지벌레’는 순간의 포착을 통한 강렬한 이미지의 발현이 시조 양식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시편으로 기억된다.
수확 끝난 과원에
겨울비가 꽂힌다
잎새 뒤에 숨었던 귤도 그것은 못 피해서
촉촉촉
경락에 박힌다
속수무책 저 빗살들.--화살깍지벌레--
이렇듯 오승철 시는 매우 축약된 언어를 부리며 단단한 이미지를 구현해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시는, ‘셔’이다. 시집으로 묶을 때 포함되지 않은, 2010년 발표작이며 2011년 중앙시조대상의 영예를 시인에게 안겨준 “‘셔’는 ‘아껴 쓴 언어’라는 맥락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솥뚜껑 손잡이같네 오름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한 번 묻는 말 “셔?”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빨라
“안에 계셔?” 그 말조차 다 흘리고 지워져
마지막 겨우 당도한 고백 같은 그 말 “셔?”
*‘안에 계셔?’라는 뜻의 제주 말. 제주에서는 사는 것이 각박하고
바람이 거칠어 줄여서 ‘셔?’라고 함.
제주에서는 표준어로 소통하지 않는다. 한마디의 단말마로도 그들은 충분히 서로를 이해한다. 소외와 억압의 긴 역사를 살아내면서 나누어 갖는 동병상련의 정은 언어의 규칙을 파괴하고도 몸과 마음으로 서로를 알아차리게 한다. 전 언어적인, 언어 이전의 (prelingual) 소통체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격동의 역사 속을 통과하며 주어진 삶을 살아내느라 안으로 삼켜버린 언어... 제주 사람들만이 알아 듣는 외마디 말들이나 외침 같은 소리들은 언어의 자국이거나 흔적이거나 파편, 혹은 언어의 징표로 들릴 뿐, 표준어의 기준에서 보자면 온전한 언어가 아니다. 그들의 고통은 ‘메께라’ 한 마디에 실리고 그들의 관심과 애정은 ‘셔?’로 충분하다.
메-!
메-께!
메-깨라!
메-시께라!
메-시께라!
메-께라!
메-께!
메-!
수화기 저편에서도 입술 끝에 묻은 소리필시 그 소리는 사십구재 지내는
망장포구 휘파람새 울음공양 같은 거
이 세상 선뜻 못 뜨는 숨비소리 같은 거
...
--메-께라!--
거친 제주의 바람과 고달픈 삶이 제주 사람들에게서 언어를 줄여 쓰게 한 것이라고 한다. 그에 더하여 현대사의 한 부분, 모진 살육의 역사가 또 그들로 하여금 언어를 불신하게 했을 것이다. 시는 줄여선 언어의 예술이다. 줄이고 줄인 언어, 어쩌면 제주의 말은 그 자체가 시일 것이다. 제주 토속어로 빚어지고 제주 사람들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는 오승철의 시들은 한국 현대시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이다.
한국 시단에서 오승철 시인의 존재를 간단히 특징지으라면 영국 영어권 시단의 예이츠요, 신대륙 미국 문학의 윌리엄 포크너에 비견될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예이츠와 포크너는 중심이 아닌 변방, 지배가 아닌 소외의 경험으로 글을 쓴 예술가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그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는 피식민인이 지니는 궁핍과 설움의 정서를 맑은 기상과 순수한 언어로 정화시킨 시인이다. 문명의 중심지에서 평생을 산 영국 신사 T.S. Eliot, 그가 대표하는 영국의 정서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소박하고 순수한 서정이 예이츠의 시에서는 드러난다. 포크너 또한 문명과 산업으로 대표되는 북부의 타자, 북부의 은밀한 식민지 남부의 작가였다. 남부가 지닌 패배와 상실의 정서가 포크너 문학의 생명력이다. 포크너 문학은 독특한 색깔로 미국 문학의 한 페이지를 채운다. 식민지의 우울이 예이츠 시에 맑은 색채를 보태는 것처럼, 미국의 주류 문학에서 찾을 수 없는 독창성을 소외된 남부가 포크너에게 부여한 것처럼, 오승철의 시에는 소외된 지역, 변방의 독특한 색채가 생생하게 실려 있다.
오승철 시인의 시에는 한반도 육지의 시인들이 흉내 낼 수 없을뿐더러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미지와 서정이 발견된다. 이름하여 섬 사람의 사랑이요 한이요 절망이요 고통이다. 그것들은 때로 제주가 지닌 억압의 역사를 실어내기도 하고 한 개인의 삶의 애환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 모두의 뿌리는 슬픔과 한에 닿아 있다. 그 슬픔과 한은 독자의 정서를 순화시킨다.
박진임 (국문 82, 문학평론가, USC 교환교수)
---
첫댓글 '장편'을 읽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나도 어제 자료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 글이 올라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산꿩님, 맨입으론 안 될 것 같습니다.ㅎㅎ 축하드립니다.
어제 카페 출석 못했는데 경사가 이런 경사가...축하드려요. 선생님...제 가슴이 봉봉봉~
단숨에 읽어 내렸습니다. 영국의 시인 예이츠와 미국 문학의 윌리엄 포크너에 비견되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는 박진임 평론가의 말에 저도 기꺼이 한 표를 보냅니다. 즁심이 아닌 변방에서 40여년의 시간을 한결같이 달려온 선생님의 열정과 정성이 이제 햇빛을 보나 봅니다. 선생님께서 평소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의관을 정제하고 제를 모시는 제관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저로 하여금 시를 대하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주었습니다. "그리움도 하나의 죄" (고추잠자리4) 선생님의 작품 중에 제가 첫번째 암송했던 작품인데 박진임 평론의 제목이 되었네요.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건필하시길 빌겠습니다.
대표작 한 편을 제외하면 그 시인의 작품은 모두가 우수리다는 박진임 평론가의 말을 깊이 되새깁니다. '송인영 시인'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는 시인이 될지..지켜보겠습니다.
오래전 부터 언어의 연금술사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선생님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박진임 평론가의 중편 소설 분량의 평론을 단숨에 읽었습니다.그 어느 평론가 보다도 선생님의 시를 바라보는 눈이 섬세했습니다.선생님, 저는 옆에서 한 편의 시를위해 받치는 그 열정과 시를 대하는 태도 부터 시작해 많은
연금술사? 연금 탄 돈으로 술 사라고?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선생님의 시에는 가슴에 와 닿는 글귀가 많지만 등단작인 "귀한 것일수록 버리는 마음가짐"이란 시귀가 시를 처음 배울때 부터 지금까지 저 가슴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 선생님 덕분에 오늘 아침...좋은 공부했습니다. 대표작 한 편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우수리다...되새기겠습니다.
선생님의 시가 제대로 평가 받는거 맞죠. 같이 배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