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토요일,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학자 기념] 요한 6,60ㄴ-69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꾸준히 만나 대화를 나누고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친교의 깊이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그 기본적인 과정을 소홀히하면 자연스레 둘 사이의 관계가 소원해지다가 결국엔 단절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은 주님과 맺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에 소홀해져 ‘냉담’중인 분들에게 언제 다시 주님께 돌아오실거냐고 물으면, 십중 팔구는 ‘지금은 바빠서 그럴 여유가 없다’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고 시간이 남으면 그 때 가서 지금 제대로 못한 만큼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다’고들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만나지 않아 소원해진 관계가 어느 날 갑자기 회복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색함과 불편함이, 죄송함과 양심의 가책이 점점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어떻게든 그 분과 함께 머물러 있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중 다수가 그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생명의 빵’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을, 당신 살을 먹고 당신 피를 마시라는 그분의 말씀을 당최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어 불편하다고 투덜거리며 그분 곁을 떠나버립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은 그분 곁에 머무르며 그분을 자주 만나야 커지는 것인데, 그분 말씀을 듣기가 불편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그만 둘 생각만 하고 떠날 이유만 찾으니, 주님과 함께 머무르는게 점점 더 불편해지다가 결국엔 그 불편함을 감당할 힘도 용기도 의지도 모두 사라져버려 주님으로부터 도망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착잡해진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너희도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 힘든 내 말을 듣는거 자체가 불편하고 거북하냐? 그래서 내 곁을 떠나 적당히 안주하고 대충 넘어가도 눈 감아주고 그냥 넘어가주는 세상 속에 머무르고 싶으냐?’ 그러자 스승님의 슬픔과 착잡함을 헤아린 베드로가 그분께 이렇게 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로하고 기분 맞춰드리려고 적당히 둘러댄 말처럼 들리는 이 말 속에 ‘참된 앎에는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심오한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먼저 믿어서’ 그 믿음 안에서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은 실망과 상처에도, 고통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분 곁에 머무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그리고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 감당해야 할 손해와 희생을 먼저 알아보려고 하는 이들은 자신의 기대와 다른 주님의 모습에 실망감과 불편함을 느껴 그분 곁을 떠나고 그렇게 참된 진리와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주님을 따르는 길이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베드로의 대답을 절실한 기도처럼, 진솔한 신앙고백처럼 반복해서 바쳐보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말고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저희는 주님의 것이고 주님도 저희 것이니, 주님 말고는 갈 데 없는 저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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