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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문학관] 83화 봄봄 | (1983/05/07) < 1:49:53
봄 봄 /김 유 정
"장인님! 인젠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
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장차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 하고 꼬박이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그만 벙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최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 년이면 삼 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했어야 원 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박이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님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일만 해왔다. 그럼 말이다, 장인님이 제가 다 알아차려서,
"어 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만 장가들어라."
하고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 봐서 지레 펄펄 뛰고 이 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데릴사위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 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 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언젠가는 하도 갑갑해서 자를 가지고 덤벼들어서 그 키를 한번 재 볼까 했다마는, 우리는 장인님이 내외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마주 서 이야기도 한마디 하는 법 없다. 우물길에서 언제나 마주칠 적이면 겨우 눈어림으로 재보고 하는 것인데 그럴 적마다 나는 저만큼 가서,
"제―미 키두!"
하고 논둑에다 침을 퉤, 뱉는다. 아무리 잘 봐야 내 겨드랑(다른 사람보다 좀 크긴 하지만) 밑에서 넘을락말락 밤낮 요 모양이다. 개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 크는지, 한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아하, 물동이를 자꾸 이니까 뼈다귀가 움츠러드나 보다, 하고 내가 넌짓넌짓이 그 물을 대신 길어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하러 가면 서낭당에 돌을 올려놓고,
"점순이의 키 좀 크게 해줍소사. 그러면 담엔 떡 갖다 놓고 고사드립죠니까."
하고 치성도 한두 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돼먹은 킨지 이래도 막무가내니…… 그래 내 어저께 싸운 것이지 결코 장인님이 밉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모를 붓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또 싱겁다. 이 벼가 자라서 점순이가 먹고 좀 큰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못한 걸 내 심어서 뭘 하는 거냐. 해마다 앞으로 축 불거지는 장인님의 아랫배(가 너무 먹은 걸 모르고 냇병이라나, 그 배)를 불리기 위하여 심곤 조금도 싶지 않다.
"아이구 배야!"
난 물 붓다 말고 배를 쓰다듬으면서 그대로 논둑으로 기어올랐다. 그리고 겨드랑에 꼈던 벼 담긴 키를 그냥 땅바닥에 털썩, 떨어치며 나도 털썩 주저앉았다. 일이 암만 바빠도 나 배 아프면 고만이니까. 아픈 사람이 누가 일을 하느냐. 파릇파릇 돋아 오른 풀 한 숲을 뜯어 들고 다리의 거머리를 쓱쓱 문대며 장인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가운데서 장인님이 이상한 눈을 해가지고 한참을 날 노려보더니,
"너 이 자식, 왜 또 이래 응?"
"배가 좀 아파서유!"
하고 풀 위에 슬며시 쓰러지니까 장인님은 약이 올랐다. 저도 논에서 철벙철벙 둑으로 올라오더니 잡은 참 내 멱살을 움켜잡고 뺨을 치는 것이 아닌가.
"이 자식아, 일허다 말면 누굴 망해 놀 속셈이냐, 이 대가릴 까놀 자식?"
우리 장인님은 약이 오르면 이렇게 손버릇이 아주 못됐다. 또 사위에게 이자식 저자식 하는 이놈의 장인님은 어디 있느냐. 오죽해야 우리 동리에서 누굴 물론하고 그에게 욕을 안 먹는 사람은 명이 짜르다 한다.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그를 돌아세 놓고 욕필이(본 이름이 봉필이니까), 욕필이, 하고 손가락질을 할 만치 두루 인심을 잃었다. 하나 인심을 정말 잃었다면 욕보다 읍의 배참봉 댁 마름으로 더 잃었다. 번이 마름이란 욕 잘 하고 사람 잘 치고 그리고 생김 생기길 호박개 같아야 쓰는 거지만 장인님은 외양에 똑 됐다. 장인께 닭 마리나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 때 품을 좀 안 준다든가 하면 그해 가을에는 영락없이 땅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돈도 먹고 술도 먹이고 안달재신으로 돌아치던 놈이 그 땅을 슬쩍 돌아앉는다. 이 바람에 장인님 집 외양간에는 눈깔 커다란 황소 한 놈이 절로 엉금엉금 기어들고, 동리 사람들은 그 욕을 다 먹어 가면서도 그래도 굽신굽신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내겐 장인님이 감히 큰소리할 계제가 못 된다. 뒷생각은 못 하고 뺨 한 개를 딱 때려 놓고는 장인님은 무색해서 덤덤히 쓴 침만 삼킨다. 난 그 속을 퍽 잘 안다. 조금 있으면 갈도 꺾어야 하고 모도 내야 하고, 한창 바쁜 때인데 나 일 안 하고 우리집으로 그냥 가면 고만이니까. 작년 이맘때도 트집을 좀 하니까 늦잠 잔다고 돌멩이를 집어던져서 자는 놈의 발목을 삐게 해놨다. 사날씩이나 건숭 끙, 끙, 앓았더니 종당에는 거반 울상이 되지 않았는가.
"얘, 그만 일어나 일 좀 해라. 그래야 올 갈에 벼 잘 되면 너 장가들지 않니."
그래 귀가 번쩍 띄어서 그날로 일어나서 남이 이틀 품 들일 논을 혼자 삶아 놓으니까 장인님도 눈깔이 커다랗게 놀랐다. 그럼 정말로 가을에 와서 혼인을 시켜 줘야 원 경우가 옳지 않겠나. 볏섬을 척척 들여 쌓아도 다른 소리는 없고 물동이를 이고 들어오는 점순이를 담배통으로 가리키며,
"이 자식아 미처 커야지. 조걸 무슨 혼인을 한다고 그러니 원!"
하고 남 낯짝만 붉게 해주고 고만이다. 골김에 그저 이놈의 장인님, 하고 댓돌에다 메꽂고 우리 고향으로 내뺄까 하다가 꾹꾹 참고 말았다.
참말이지 난 이 꼴 하고는 집으로 차마 못 간다. 장가를 들러 갔다가 오죽 못났어야 그대로 쫓겨 왔느냐고 손가락질을 받을 테니까…….
논둑에서 벌떡 일어나 한풀 죽은 장인님 앞으로 다가서며,
"난 갈 테야유, 그 동안 사경 쳐내슈."
"너 사위로 왔지 어디 머슴 살러 왔니?"
"그러면 얼찐 성례를 해줘야 안 하지유. 밤낮 부려만 먹구 해준다 해준다……."
"글쎄 내가 안 하는 거냐? 그년이 안 크니까……."
하고 어름어름 담배만 담으면서 늘 하는 소리를 또 늘어놓는다.
이렇게 따져 나가면 언제든지 늘 나만 밑지고 만다. 이번엔 안 된다 하고 대뜸 구장님한테로 판단 가자고 소맷자락을 내끌었다.
"아 이 자식아, 왜 이래 어른을."
안 간다고 뻗디디고 이렇게 호령은 제 맘대로 하지만 장인님 제가 내 기운은 못 당한다. 막 부려먹고 딸은 안 주고 게다 땅땅 치는 건 다 뭐야…….
그러나 내 사실 참 장인님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전날 왜 내가 새고개 맞은 봉우리 화전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았느냐. 밭 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 붕, 소리를 친다. 바위 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몸살을 아직 모르지만) 병이 나려고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
"이러이! 말이! 맘 마 마……."
이렇게 노래를 하며 소를 부리면 여느 때 같으면 어깨가 으쓱으쓱한다. 웬일인지 밭 반도 갈지 않아서 온몸의 맥이 풀리고 대고 짜증만 난다. 공연히 소만 들입다 두들기며,
"안야! 안야! 이 망할자식의 소(장인님의 소니까) 대리를 꺾어 줄라."
그러나 내 속은 정말 안야 때문이 아니라 점심을 이고 온 점순이의 키를 보고 울화가 났던 것이다.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 된다. 그렇다구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십 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몽툭한 것이 내 눈에는 헐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 중에는 감참외가 제일 맛 좋고 예쁘니까 말이다. 둥글고 커단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아따 밥만 많이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 아니냐. 한데 한 가지 파가 있다면 가끔가다 몸이(장인님은 이걸 채신이 없이 들까분다고 하지만) 너무 빨리빨리 논다. 그래서 밥을 나르다가 때없이 풀밭에서 깻박을 쳐서 흙투성이 밥을 곧잘 먹인다. 안 먹으면 무안해할까 봐서 이걸 씹고 앉았노라면 으적으적 소리만 나고 돌을 먹는 겐지 밥을 먹는 겐지…….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지 성한 밥채로 밭머리에 곱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 내외를 해야 하니까 저만큼 떨어져 이쪽으로 등을 향하고 웅크리고 앉아서 그릇 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다 먹고 물러섰을 때 그릇을 와서 챙기는데, 그런데 난 깜짝 놀라지 않았느냐. 고개를 푹 숙이고 밥함지에 그릇을 포개면서 날더러 들으라는지 혹은 제 소린지,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
하고 혼자 쫑알거린다. 고대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무슨 좋은 수가 있는가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자말로,
"그럼 어떡해?"
하니까,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떡해……."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발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질을 친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떻게 되는 셈판인지 맥을 몰라서 그 뒷모양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 사람도 아마 그런가 보다, 하고 며칠 내에 부쩍(속으로) 자란 듯싶은 점순이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런 걸 멀쩡하게 안직 어리다구 하니까…….
우리가 구장님을 찾아갔을 때 그는 싸리문 밖에 있는 돼지우리에서 죽을 퍼주고 있었다. 서울엘 좀 갔다 오더니 사람은 점잖아야 한다고 웃쇰이(얼른 보면 지붕 위에 앉은 제비 꼬랑지 같다) 양쪽으로 뾰족이 뻗치고 그걸 에헴, 하고 늘 쓰다듬는 손버릇이 있다. 우리를 멀뚱히 쳐다보고 미리 알아챘는지,
"왜 일들 허다 말구 그래?"
하더니 손을 올려서 그 에헴을 한번 후딱 했다.
"구장님! 우리 장인님과 츰에 계약하기를……."
먼저 덤비는 장인님을 뒤로 떠다밀고 내가 허둥지둥 달려들다가 가만히 생각하고,
"아니 우리 빙장님과 츰에."
하고 첫번부터 다시 말을 고쳤다. 장인님은 빙장님 해야 좋아하고 밖에 나와서 장인님 하면 괜스레 골을 내려 든다. 뱀두 뱀이래야 좋으냐구 창피스러우니 남 듣는 데는 제발 빙장님, 빙모님, 하라구 일상 당조짐을 받아 오면서 난 그것도 자꾸 잊는다. 당장도 장인님 하다 옆에서 내 발등을 꾹 밟고 곁눈질을 흘기는 바람에야 겨우 알았지만…….
구장님도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퍽 딱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구장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 그럴 게다. 길게 길러 둔 새끼손톱으로 코를 후벼서 저리 탁 튀기며,
"그럼 봉필 씨! 얼른 성례를 시켜 주구려, 그렇게까지 제가 하구 싶다는 걸……."
하고 내 짐작대로 말했다. 그러나 이 말에 장인님은 삿대질로 눈을 부라리고,
"아 성례구 뭐구 계집애년이 미처 자라야 할 게 아닌가?"
하니까 고만 멀쑤룩해서 입맛만 쩍쩍 다실 뿐이 아닌가.
"그것두 그래!"
"그래, 거진 사 년 동안에도 안 자랐다니 그 킨 은제 자라지유? 다 그만두구 사경 내슈……."
"글쎄, 이 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사실 장모님은 점순이보다도 귀때기 하나가 작다.)"
장인님은 이 말을 듣고 껄껄 웃더니(그러나 암만해두 돌 씹은 상이다) 코를 푸는 척하고 날 은근히 곯리려고 팔꿈치로 옆 갈비께를 퍽 치는 것이다. 더럽다. 나도 종아리의 파리를 쫓는 척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그 궁둥이를 콱 떼밀었다. 장인님은 앞으로 우찔근하고 싸리문께로 쓰러질 듯하다 몸을 바로 고치더니 눈총을 몹시 쏘았다. 이런 상년의 자식! 하곤 싶으나 남의 앞이라서 차마 못 하고 섰는 그 꼴이 보기에 퍽 쟁그라웠다.
그러나 이 밖에는 별반 신통한 귀정을 얻지 못하고 도로 논으로 돌아와서 모를 부었다. 왜냐면 장인님이 뭐라고 귓속말로 수군수군하고 간 뒤다. 구장님이 날 위해서 조용히 데리고 아래와 같이 일러 주었기 때문이다. (뭉태의 말은 구장님이 장인님에게 땅 두 마지기 얻어 부치니까 그래 꾀었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않는다.)
"자네 말두 하기야 옳지, 암 나이찼으니까 아들이 급하다는 게 잘못된 말은 아니야. 허지만 농사가 한창 바쁜 때 일을 안 한다든가 집으로 달아난다든가 하면 손해죄루 그것두 징역을 가거든! (여기에 그만 정신이 번쩍 났다.) 왜 요전에 삼포말서 산에 불 좀 놓았다구 징역 간 거 못 봤나? 제 산에 불을 놓아도 징역을 가는 이땐데 남의 농사를 버려 주니 죄가 얼마나 더 중한가. 그리고 자넨 정장을(사경 받으러 정장 가겠다 했다) 간대지만 그러면 괜시리 죄를 들쓰고 들어가는 걸세. 또 결혼두 그렇지, 법률에 성년이란 게 있는데 스물하나가 돼야 비로소 결혼을 할 수 있는 걸세. 자넨 물론 아들이 늦을 걸 염려하지만 점순이루 말하면 이제 겨우 열여섯이 아닌가. 그렇지만 아까 빙장님의 말씀이 올 갈에는 열일을 제치고라두 성례를 시켜 주겠다 하니 좀 고마울 겐가. 빨리 가서 모 붓던 거나 마저 붓게, 군소리 말구 어서 가."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끽소리 없이 왔다.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은 지금 생각하면 뜻밖의 일이라 안 할 수 없다. 장인님으로 말하면 요즈막 작인들에게 행세를 좀 하고 싶다고 해서 '돈 있으면 양반이지 별게 있느냐!' 하고 일부러 아랫배를 툭 내밀고 걸음도 뒤틀리게 걷고 하는 이 판이다. 이까짓 나쯤 두들기다 남의 땅을 가지고 모처럼 닦아 놓았던 가문을 망친다든지 할 어른이 아니다. 또 나로 논지면 아무쪼록 잘 봬서 점순이에게 얼른 장가를 들어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자면 결국 어젯밤 뭉태네 집에 마슬 간 것이 썩 나빴다. 낮에 구장님 앞에서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고 빈정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맞구두 그걸 가만둬?"
"그럼 어떡하니?"
"임마 봉필일 모판에다 거꾸루 박아 놓지 뭘 어떡해?"
하고 괜히 내 대신 화를 내가지고 주먹질을 하다 등잔까지 쳤다. 놈이 본시 괄괄은 하지만 그래 놓고 날더러 석윳값을 물라고 막 지다위를 붙는다. 난 어안이 벙벙해서 잠자코 앉았으니까 저만 연방 지껄이는 소리가,
"밤낮 일만 해주구 있을 테냐?"
"영득이는 일 년을 살구도 장갈 들었는데 난 사 년이나 살구두 더 살아야 해."
"네가 세 번째 사윈 줄이나 아니? 세 번째 사위."
"남의 일이라두 분하다 이 자식아, 우물에 가 빠져 죽어."
나중에는 겨우 손톱으로 목을 따라고까지 하고 제 아들같이 함부로 훅닥이었다. 별의별 소리를 다 해서 그대로 옮길 수는 없으나 그 줄거리는 이렇다.
우리 장인님이 딸이 셋이 있는데 맏딸은 재작년 가을에 시집을 갔다. 정말은 시집을 간 것이 아니라 그 딸도 데릴사위를 해가지고 있다가 내보냈다. 그런데 딸이 열살 때부터 열아홉, 즉 십 년 동안에 데릴사위를 갈아 들이기를, 동리에선 사위 부자라고 이름이 났지마는 열 놈이란 참 너무 많다. 장인님이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 고로 그 담 딸을 데릴사위를 해올 때까지는 부려먹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머슴을 두면 좋지만 그건 돈이 드니까, 일 잘하는 놈을 고르느라고 연방 바꿔 들였다. 또 한편 놈들이 욕만 줄창 퍼붓고 심히도 부려먹으니까 밸이 상해서 달아나기도 했겠지. 점순이는 둘째딸인데 내가 일테면 그 세 번째 데릴사위로 들어온 셈이다. 내 담으로 네 번째 놈이 들어올 것을 내가 일도 참 잘하고 그리고 사람이 좀 어수룩하니까 장인님이 잔뜩 붙들고 놓질 않는다. 셋째딸이 인제 여섯 살, 적어두 열 살은 돼야 데릴사위를 할 테므로 그 동안은 죽도록 부려먹어야 된다. 그러니 인제는 속 좀 차리고 장가를 들여 달라구 떼를 쓰고 나자빠져라, 이것이다.
나는 건성으로 엉, 엉, 하며 귓등으로 들었다. 뭉태는 땅을 얻어 부치다가 떨어진 뒤로는 장인님만 보면 공연히 못 먹어서 으릉거린다. 그것도 장인님이 저 달라고 할 적에 제 집에서 위한다는 그 감투(예전에 원님이 쓰던 것이라나, 옆구리에 뽕뽕 좀먹은 걸레)를 선뜻 주었더라면 그럴 리도 없었던 걸…….
그러나 나는 뭉태란 놈의 말을 전수이 곧이듣지 않았다. 꼭 곧이들었다면 간밤에 와서 장인님과 싸웠지 무사히 있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딸에게까지 인심을 잃은 장인님이 혼자 나빴다.
실토이지 나는 점순이가 아침상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는 오늘은 또 얼마나 밥을 담았나, 하고 이것만 생각했다. 상에는 된장찌개하고 간장 한 종지, 조밥 한 그릇, 그리고 밥보다 더 수부룩하게 담은 산나물이 한 대접, 이렇다. 나물은 점순이가 틈틈이 해오니까 두 대접이고 네 대접이고 멋대로 먹어도 좋으나 밥은 장인님이 한 사발 외엔 더 주지 말라고 해서 안 된다. 그런데 점순이가 그 상을 내 앞에 내놓으며 제 말로 지껄이는 소리가,
"구장님한테 갔다 그냥 온담 그래!"
하고 엊그제 산에서와 같이 되우 쫑알거린다. 딴은 내가 더 단단히 덤비지 않고 만 것이 좀 어리석었다, 속으로 그랬다. 나도 저쪽 벽을 향하여 외면하면서 내 말로,
"안 된다는 걸 그럼 어떡헌담!"
하니까,
"쇰을 잡아 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
하고 또 얼굴이 빨개지면서 성을 내며 안으로 샐죽하니 튀들어 가지 않느냐. 이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게망정이지 보았다면 내 얼굴이 어미 잃은 황새새끼처럼 가엾다, 했을 것이다.
사실 이때만큼 슬펐던 일이 또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은 암만 못생겼다 해도 괜찮지만 내 아내 될 점순이가 병신으로 본다면 참 신세는 따분하다. 밥을 먹은 뒤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가려 하다 도로 벗어 던지고 바깥 마당 공석 위에 드러누워서 나는 차라리 죽느니만 같지 못하다 생각했다.
내가 일 안 하면 장인님 저는 나이가 먹어 못 하고 결국 농사 못 짓고 만다. 뒷짐으로 트림을 꿀꺽, 하고 대문 밖으로 나오다 날 보고서,
"이 자식아! 너 왜 또 이러니?"
"관격이 났어유, 아이구 배야!"
"기껀 밥 처먹고 나서 무슨 관격이야, 남의 농사 버려 주면 이 자식아 징역 간다 봐라!"
"가두 좋아유, 아이구 배야!"
참말 난 일 안 해서 징역 가도 좋다 생각했다. 일후 아들을 낳아도 그 앞에서 바보 바보 이렇게 별명을 들을 테니까 오늘은 열 쪽이 난대도 결정을 내고 싶었다.
장인님이 일어나라고 해도 내가 안 일어나니까 눈에 독이 올라서 저편으로 힝 하게 가더니 지게 막대기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걸로 내 허리를 마치 들떠 넘기듯이 쿡 찍어서 넘기고 넘기고 했다. 밥을 잔뜩 먹고 딱딱한 배가 그럴 적마다 퉁겨지면서 밸창이 꼿꼿한 것이 여간 켕기지 않았다. 그래도 안 일어나니까 이번엔 배를 지게 막대기로 위에서 쿡쿡 찌르고 발길로 옆구리를 차고 했다. 장인님은 원체 심청이 궂어서 그렇지만 나도 저만 못하지 않게 배를 채었다. 아픈 것을 눈을 꽉 감고 넌 해라 난 재미단 듯이 있었으나 볼기짝을 후려갈길 적에는 나도 모르는 결에 벌떡 일어나서 그 수염을 잡아챘다마는 내 골이 난 것이 아니라 정말은 아까부터 부엌 뒤 울타리 구멍으로 점순이가 우리들의 꼴을 몰래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말 한마디 톡톡히 못 한다고 바보라는데 매까지 잠자코 맞는 걸 보면 짜장 바보로 알 게 아닌가. 또 점순이도 미워하는 이까짓 놈의 장인님 나하곤 아무것도 안 되니까 막 때려도 좋지만 사정 보아서 수염만 채고(제 원대로 했으니까 이때 점순이는 퍽 기뻤겠지) 저기까지 잘 들리도록,
"이걸 까셀라 부다!"
하고 소리를 쳤다.
장인님은 더 약이 바짝 올라서 잡은 참 지게 막대기로 내 어깨를 그냥 내리갈겼다. 정신이 다 아찔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엔 나도 온몸에 약이 올랐다. 이 녀석의 장인님을, 하고 눈에서 불이 퍽 나서 그 아래 밭 있는 넝 알로 그대로 떠밀어 굴려 버렸다. 조금 있다가 장인님이 씩, 씩, 하고 한번 해보려고 기어오르는 걸 얼른 또 떠밀어 굴려 버렸다.
기어오르면 굴리고, 굴리면 기어오르고, 이러길 한 너덧 번을 하며 그럴 적마다,
"부려만 먹구 왜 성례 안 하지유!"
나는 이렇게 호령했다. 하지만 장인님이 선뜻, 오냐 낼이라두 성례시켜 주마, 했으면 나도 성가신 걸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나야 이러면 때린 건 아니니까 나중에 장인 쳤다는 누명도 안 들을 터이고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바짓가랑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움켜잡고 매달렸다. 악, 소리를 치고 나는 그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 빙장님! 빙장님!"
"이 자식!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아! 아! 할아버지! 살려 줍쇼, 할아버지!"
하고 두 팔을 허둥지둥 내절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 보다, 했다. 그래도 장인님은 놓질 않더니 내가 기어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진 까무러치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맸다. 그러다, 얼굴을 드니(눈에 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짓가랑이를 꽉 움키고 잡아나꿨다.
내가 머리가 터지도록 매를 얻어맞은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가 또한 우리 장인님이 유달리 착한 곳이다. 여느 사람이면 사경을 주어서라도 당장 내쫓았지 터진 머리를 볼솜으로 손수 지져 주고, 호주머니에 희연 한 봉을 넣어 주시고 그리고,
"올 갈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 암말 말구 가서 뒷골의 콩밭이나 얼른 갈아라."
하고 등을 뚜덕여 줄 사람이 누구냐.
나는 장인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어느덧 눈물까지 났다. 점순이를 남기고 이젠 내쫓기려니, 하다 뜻밖의 말을 듣고,
"빙장님! 인제 다시는 안 그러겠어유."
이렇게 맹세를 하며 부랴사랴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갔다.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장인님을 원수로만 여겨서 잔뜩 잡아당겼다.
"아! 아! 이놈아! 놔라, 놔."
장인님은 헛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짓궂이 더 댕겼다마는 장인님이 땅에 쓰러져서 눈에 눈물이 피잉 도는 것을 알고 좀 겁도 났다.
"할아버지! 놔라, 놔, 놔, 놔놔."
그래도 안 되니까,
"얘 점순아! 점순아!"
이 악장에 안에 있었던 장모님과 점순이가 헐레벌떡하고 단숨에 뛰어나왔다.
나의 생각에 장모님은 제 남편이니까 역성을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순이는 내 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소해서 하겠지―---대체 이게 웬 속인지(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아버질 혼내 주기는 제가 내래 놓고 이제 와서는 달려들며,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하고 내 귀를 뒤로 잡아당기며 마냥 우는 것이 아니냐. 그만 여기에 기운이 탁 꺾이어 나는 얼빠진 등신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도 덤벼들어 한쪽 귀마저 뒤로 잡아 채면서 또 우는 것이다.
이렇게 꼼짝도 못하게 해놓고 장인님은 지게 막대기를 들어서 사뭇 내려조겼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지도 않고 암만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점순이의 얼굴만 멀거니 들여다보았다.
"이 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해?"
******************
)
오전에 춘천역 도착하여 소양강댐부터 구경하고
소양2교를 건너 소양강처녀상 그리고 공지천까지
여유롭게 산책하였음.
남춘천역을 출발한 지 5~6분 후 김유정역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리자 비교적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새로운 철로가 깔리면서 저만큼 물러선 옛 김유정역은
아주 작은 간이역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녹슨 옛 철로
에 머물고 있는 기차는 흐른 세월에 대한 추억을
더듬게 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건가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곳을 서성
대고 있는 건가. 알 바 없구나~ 나를 이곳으로 이끌게
한 마음을 나 역시 알 수 없듯이..
오늘 이 시간은 마치 산골나그네가 된 것처럼 주어진
시간만큼이라도 발길 닿는 곳에 머물며 절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과연 무엇인지 마음을 들여다보려 한다.
비록 허당이 될지언정 나름의 의미있는 시간이다
아직도 늦은 태양의 열기가 머물고 있는 유정이야기
숲을 빠져나와 신작로를 건너 김유정문학촌으로 가는
중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교과서와 참고서를 제외
하면 읽은 책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남아수독 오거서와 너무나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아
오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다문다독다상량함을 은근히
흠모치 않았던가.
지금 이 순간, 조금 들뜬 맘으로 마치 선비라도 된 양
일부러 뒷짐 지고 팔자걸음을 걸으며 모처럼의 여유를
누리려고 애쓴다.
역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내 뒤엔 보이지 않는다. 현대풍의
초가가 금방 눈에 들어오고 입구에서 안내도를 보며
어딜 먼저 볼 것인지 잠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상경할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서울나그네의
맘은 어느새 금병산 자락을 오르고 허당이 된 내
발걸음은 순서없이 바쁘고 눈길은 따로 놀고 있다.
다행히 적당히 옹기종기 모여진 문학촌이라 몇십 분
만에 외형은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으니 도로 좌측에
있는 김유정생가와 전시관을 살펴보리라~
김유정 기념전시관은 그의 생가터 바로 옆쪽에 있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니 이미 수십 여 관람객이 문학
해설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고 몇 명은 조용히 움직
이며 전시된 작품에 대한 줄거리 및 생애와 관련된
내용들을 눈여겨 살펴보는 듯하다. 나는 해설사의
설명에도 귀를 기울이며 그가 쓴 소설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음을 비로소 알게 되고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읽어보리란 생각을 갖게 된다.
봄봄과 동백꽃, 금 따는 콩밭, 만무방, 산골나그네를
읽은 적 있으나 지금은 줄거리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상당히 재밌었다고 말할 수 있음이 다행이다
좀더 오래 머물며 그의 작품에 대해 더 알고 싶지만
맘이 바빠지기에 전시관 몇몇 곳에 휴대폰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으로 마무리 자세를 취하게 된다. 해설사
의 열정적 해설과 질의응답을 뒤로하고 전시관을
슬며시 빠져나와 빠른 걸음으로 물레방앗간과 생가
그리고 우물터와 작은 연못 속의 연꽃들을 대충 눈에
담고 있다. 봄봄의 주요 인물 셋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모형을 보며 점순이의 작은 키를 절로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동백꽃에서의 닭싸움 장면 역시 잊었던
기억을 조금은 되살리게 한다.
김유정의 소설들을 전시관 안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바 있기에 가을쯤에 이곳을 다시 오게
되면 읽지 않았던 책 몇 권쯤을 구입하려고 한다
내가 자기계발서 또는 신서에 무척 둔감하고 책값
투척에 좀 인색하지만 무뎌진 감성을 자극하고
활성화 시킴에 있어서 한국 단편문학이 좋을 것
이란 생각을 이곳에서 갖게 된다.
너무 늦은 시간 김유정역으로 왔기에 안 바빠야 할
사람 중에 하나인 나만이 유독 잰걸음이다 혹시나
하나라도 더 보고자 하는 맘에 문학촌 가장 위쪽에
있는 실레이야기길 안내도 앞에 서서 내용은 다
읽지도 않고서 폰으로 찍으며 금병산 쪽을 대충
바라본다. 그리고 당시 산골나그네의 모습을 어렴
풋이 떠올리며 금병산 저 산길을 올해 가을쯤 걸어
보리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서울로 출발하기 전
약 30분 정도의 여유는 근처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 하리란 생각으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적당한 곳을 물색하여 들어갔지만
하필이면 김치 담그기에 열중이다.
다행히 길 건너편에 닭갈비 간판이 보이기에 그쪽
으로 들어가서 가평잣막걸리와 막국수를 주문한다
순식간에 배를 채운 후 김유정역을 향해 걷는다.
금병산도 다시 한 번 쳐다보고 역 앞에서 요란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는 두 여자에게도 시선이
끌린다. 어느새 춘천행 기차가 풀랫폼으로 접근한다
(춘천행 기차를 타는 이유는 남춘역에서 용산행
itx청춘열차를 타기 위함이다)
잠시 후 남춘천역에 내려서 건너편 승차하는
곳으로 이동하여 용산행 청춘열차에 오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xbidNKc-3Ao
[TV문학관] 38화 산골 나그네 (1982/04/17) < 2:04:51
산골나그네/ 김유정
밤이 깊어도 술군은 역시들지 않는다. 메주 뜨는 냄새와 같이 쾨쾨한 냄새로 방 안은 괴괴하다. 웃간에서는 쥐들이 찍찍거린다. 홀어머니는 쪽떨어진 화로를 끼고 앉아서 쓸쓸한대로 곰곰 생각에 젖는다. 가뜩이나 침침한 반짝 등불이 북쪽 지게문에 뚫린 구멍으로 새드는 바람에 반득이며 빛을 잃는다. 헌 버선 짝으로 구멍을 틀어막는다. 그러고 등잔 밑으로 반짇그릇을 끌어당기며 시름없이 바늘을 집어든다.
산골의 가을은 왜 이리 고적할까! 앞 뒤 울타리에서 부수수 하고 떨잎은 진다. 바로 그것이 귀밑에서 들리는 듯 나직나직 속삭인다. 더욱 몹쓸 건 물소리, 골을 휘돌아 맑은 샘은 흘러내리고 야릇하게도 음률을 읊는다.
퐁! 퐁! 퐁! 쪼록 퐁!
바깥에서 신발 소리가 자작자작 들린다. 귀가 번쩍 띄여 그는 방문을 가볍게 열어젖힌다. 머리를 내밀며,
"덕돌이냐?" 하고 반겼으나 잠잠하다. 앞뜰 건너편 수퐁을 감돌아 싸늘한 바람이 낙엽을 뿌리며 얼골에 부딪친다. 용마루가 생생운다. 모진 바람소리에 놀라 멀리서 밤개가 요란히 짖는다.
"쥔 어른 계서유?"
몸을 돌리어 바느질거리를 다시 들려 할 제 이번에는 짜장 인끼가 난다. 황급하게 "누구유?" 하고 일어서며 문을 열어보았다.
"왜 그리유?"
처음 보는 아낙네가 마루 끝에 와 섰다. 달빛에 비끼어 검붉은 얼굴이 해쓱하다. 추운 모양이다. 그는 한 손으로 머리에 둘렀던 왜수건을 벗어들고는 다른 손으로 흩어진 머리칼을 싸담어 올리며 수줍은 듯이 쭈뼛쭈뼛한다.
"저어, 하룻밤만 드새고 가게 해주세유."
남정네도 아닌데 이 밤중에 웬일인가, 맨발에 짚신 짝으로. 그야 아무렇든,
"어서 들어와 불 쬐게유."
나그네는 주춤주춤 방 안으로 들어와서 화로 곁에 도사려 앉는다. 낡은 치맛자락 위로 비어지려는 속살을 아무리자 허리를 지그시 튼다. 그리고는 묵묵하다. 주인은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밥을 좀 주려느냐고 물어보아도 잠자코 있다.
그러나 먹던 대궁을 주워모아 짠지쪽하고 갖다주니 감지덕지 받는다. 그리고 물 한 모금 마심 없이 잠깐 동안에 밥그릇의 밑바닥을 긁는다.
밥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주인은 이야기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미주알고주알 물어보니 이야기는 지수가 없다. 자기로도 너무 지쳐 물은 듯싶은 만치 대구 추근거렸다. 나그네는 싫단 기색도 좋단 기색도 별로 없이 시나브로 대꾸하였다. 남편 없고 몸 붙일 곳 없다는 것을 간단히 말하고 난 뒤,
"이리저리 얻어먹고 단게유" 하고 턱을 가슴에 묻는다.
첫닭이 홰를 칠 때 그제야 마을갔던 덕돌이가 돌아온다. 문을 열고 감사나운(억세게 사나운) 머리를 디밀려다 낯선 아낙네를 보고 눈이 휘둥그렇게 주춤한다. 열린 눈으로 억센 바람이 몰아들며 방 안이 캄캄하다. 주인은 문 앞으로 걸어와 서며 덕돌이의 등을 뚜덕거린다. 젊은 여자 자는 방에서 떠꺼머리 총각을 재우는 건 상서럽지 못한 일이었다.
"얘 덕돌아, 오늘은 마을 가 자고 아침에 온."
가을할 때가 지엇으니 돈냥이나 좋이 퍼질 때도 되었다. 그 돈들이 어디로 몰리는지 이 술집에서는 좀체 돈맛을 못 본다. 술을 판대야 한 초롱에 50~60전 떨어진다. 그 한 초롱을 잘 판대도 사날씩이나 걸리는 걸 요새 같아선 그잘냥한(알량한) 술군까지 씨가 말랐다. 어쩌다 전일에 펴놓았던 외상값도 갓갖다줄 줄을 모른다. 홀어미는 열벙거지가나서 이른 아침부터 돈을 받으러 돌아다녔다. 그러나 다리품을 들인 보람도 없었다. 낼 사람이 즐겨야 할 텐데 우물쭈물하며 한단 소리가 좀 두고보자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날이 양식은 딸리고 지점집에서 집행을 하느니 뭘 하느니 독촉이 어지간지 안음에랴…….
"저도 인젠 떠나겠세유."
그가 조반 후 나들이옷을 바꾸어 입고 나서니 나그네도 따라 일어서다 그의 손을 잔상히 붙잡으며 주인은,
"고달플 테니 며칠 더 쉬어가게유." 하였으나,
"가야지유, 너머 오래 신세를……."
"그런 염려는 말구" 라고 누르며 집 지켜주는 셈치고 방에 누웠으라, 하고는 집을 나섰다.
백두고개를 넘어서 아말로 들어가 해동갑으로 헤메었다. 헤실수로 간 곳도 있기야 하지만 맑았다. 해가 지고 어두울 녘에야 그는 홀부들해서 돌아왔다. 좁쌀 닷 되밖에는 못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돈 낼 생각은커녕 이러면 다시 술 안 먹겠다고 도리어 얼러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만도 다행이다. 아주 못 받느니보다는 끼니때 가지었다. 그는 좁쌀을 씻고 나그네는 솥에 불을 지피어 부랴사랴 밥을 짓고 일변 상을 보았다.
밥들을 먹고 나서 앉았으려니까 갑자기 술꾼이 몰려든다. 이거 웬일인가. 처음에는 하나가 오더니 다음에는 세 사람, 또 두 사람. 모두 젊은 축들이다. 그러나 각각들 먹일 방이 없으므로 주인은 좀 망설이다가 그 연유를 말하였으나 뭐 한 동리사람인데 어떠냐, 한데서 먹게 해달라는 바람에 얼씨구나 하였다. 이제야 운이 트이나보다. 양푼에 막걸리를 딸쿠어 나그네에게 주어 솥에 넣고 좀 속히 데워 달라 하였다. 자기는 치마꼬리를 휘둘러가며 잽싸게 안주를 장만한다. 짠지, 동치미, 고추장, 특별안주로 삶은 밤도 놓았다. 사촌동생이 맛보라고 며칠 전에 갖다 준 것을 아껴둔 것이었다.
방 안은 떠들썩하다. 벽을 두드리며 〈아리랑〉찾는 놈에, 건으로 너털웃음 치는 놈, 혹은 수군숙덕하는 놈 - 가지각색이다. 주인이 술상을 받쳐들고 들어가니 짜기나 한 듯이 일제히 자리를 바로잡는다. 그 중에 얼굴 넓적한 하이칼라 머리가 야리가 나서 상을 받으며 주인 귀에다 입을 비켜대인다.
"아주머니 젊은 갈보 사왔다유? 보여주게유."
영문 모를 소문도 다 듣는다.
"갈보라니 웬 갈보?" 하고 어리뻥벙하다 생각을 하니 턱없는 소리는 아니다. 눈치 있게 부엌으로 내려가서 보강지 앞에 웅크리고 있는 나그네의 머리를 은근히 끌어안았다. 자, 저 패들이 새댁을 갈보로 횡보고 찾아온 맥이다. 물론 새댁 편으론 망칙스러운 일이겠지만 달포나 손님의 그림자가 드물던 우리 집으로 보면 재수의 빗발이다. 술국을 잡는다고 어디가 떨어지는 게 아니요, 욕이 아니니 나를 보아 오늘만 좀 팔아주기 바란다 - 이런 의미를 곰살궃게 간곡히 말하였다. 나그네의 낯은 별반 변함이 없다. 늘 한 양으로 예사로이 승낙하였다.
술이 온 몸에 돌고 나서야 됫술이 잔풀이가 난다. 한 잔에 5전, 그저 마시긴 아깝다. 얼군한 상투박이가 계집의 손목을 탁 잡아 앞으로 끌어당기며,
"권주가 좀 해. 이건 뀌어온 보릿자룬가."
"권주가? 뭐야유?"
"권주가? 아 갈보가 권주가도 모르나. 으하하하." 하고는 무안에 취하여 푹 숙인 계집 뺨에다 꺼칠꺼칠한 턱을 문질러본다. 소리를 암만 시켜도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만 기울일 뿐 소리는 모샇나보다. 그러나 노래 못하는 꽃도 좋다. 계집은 영 내리는 대로 이 무릎 저 무릎으로 옮아앉으며 턱밑에다 술잔을 받쳐 올린다.
술들이 담뿍 취하였다. 두 사람은 곯아져서 코를 곤다. 계집이 칼라 머리 무릎 위에 앉아 담배를 피워 올릴 때 코웃음을 흥 치더니 그 무지스러운 손이 계집의 아래 뱃가죽을 사양 없이 웅켜잡았다. 별안간 "아야" 하고 퍼들껑하더니 계집의 몸뚱아리가 공중으로 도로 뛰어오르다 떨어진다.
"이 자식아, 너만 돈 내고 먹었니?"
한 사람 새두고 앉았던 상투가 콧살을 찌푸린다. 그리고 맨발 벗은 계집의 두 발을 양손에 붙잡고 가랑이를 쩍 벌려 무릎 위로 지르르 끌어올린다. 계집은 앙탈을 한다. 눈시울에 눈물이 엉기더니 불현듯이 쪼록 쏟아진다.
방 안에서 왱마가리 소리가 끓어오른다.
"저 잡놈 보게, 으하하하."
술은 연실 데워서 들여가면서도 주인은 불안하여 마음을 졸였다. 겨우 마음을 놓은 것은 훨씬 밝아서다.
참새들은 소란하게 지저귄다. 지직 바닥이 부스럼 자국보다 질배없다. 술, 짠지쪽, 가래침, 담뱃재 - 뭣해 너저분하다. 우선 한 길치에 자리를 잡고 계배를 대 보았다. 마수거리가 85전, 외상이 2원 각수다. 현금 85전, 두 손에 들고 앉아 세고 또 세어보고…….
뜰에서는 나그네의 혀로 끌어올리는 인사.
"안녕히 가십시게유."
"입이나 좀 맞치고 뽀! 뽀! 보!"
"나두."
찌르쿵! 찌르쿵! 찔거러쿵!
"방아머리가 무겁지유? ……고만 까불을까."
"들 익었세유, 더 찧어야지유."
"그런데 애는 어쩐 일이야……."
덕돌이를 읍에 보냈는데 날이 저물어도 여태 오지 않는다. 흩어진 좁쌀을 확에 쓸어 넣으며 홀어미는 퍽이나 애를 태운다. 요새 날치가 차지니까 늑대, 호랑이가 차자 마을로 찾아 내린다. 밤길에 고개 같은 데서 만나면 끽소리도 못하고 욕을 당한다.
나그네가 방아를 괴놓고 내려와서 키로 확의 좁쌀을 담아 올린다. 주인은 그 머리를 쓰담고 자기의 행주치마를 벗어서 그 위에 씌워준다. 계집의 나이 열아홉이면 활짝 필 때이건만 버케된 머리칼이며 야윈 얼굴이며 벌써부터 외양이 시들어간다. 아마 고생을 진한 탓이리라.
날씬한 허리를 재빨리 놀려가며 일이 끊일 새 없이 다구지게 덤벼드는 그를 볼 때 주인은 지극히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일변 측은도 하였다. 뭣하면 딸과 같이 자기 곁에서 길래 살아주었으면 상팔자일 듯싶었다. 그럴 수 있다면 그 소 한 마리와 바꾼대도 이것만은 안 내놓으리라고 생각도 하였다.
아들만 데리고 홀어미의 생활은 무던히 호젓하였다. 그런데 다 동리에서는 속 모르는 소리까지 한다. 떡거머리 총각을 그냥 늙힐 테냐고. 그러나 형세가 부치므로 감히 엄두도 못 내다가 겨우 올 봄에서야 다붙어 서둘게 되었다. 의외로 일은 손쉽게 되었다. 이리저리 언론이 돌더니 남촌 산에 사는 어느 집 둘째딸과 혼약하였다. 일부러 홀어미는 40리 길이나 걸어서 색시의 손등을 문질러보고는,
"참 애기 잘도 생겹세!"
좋아서 사돈에게 칭찬을 뇌고 뇌곤 하였다.
그런데 없는 살림에 빚을 얻어가며 혼수를 다 꼬매놓은 뒤였다. 혼인날을 불과 이틀 격해놓고 일이 고만 빗났다. 처음에야 그런 말이 없더니 난데없는 선채금 30원을 가져오란다. 남의 돈 3원과 집의 돈 5원으로 거추꾼에게 품삯 노비 주고 혼수하고 단지 2원 - 잔치에 쓸 것밖에 안 남고 보니 30원이란 입내도 못 낼 소리다. 그 밤, 그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넋 잃은 팔을 던져가며 통밤을 새웠던 것이다.
"어머님! 진지 잡수세유."
새댁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끔찍이 귀여우리라. 이것이 단 하나의 그의 소원이었다.
"다리 아프지유? 너머 일만 시켜서……."
주인은 저녁 좁쌀을 쓸어다가 방아다리에 깝신대는 나그네를 걸삼스럽게 쳐다본다. 방아가 무거워서 껍적이며 잘 오르지 않는다. 가냘픈 몸이라 상혈이 되어 두 볼이 새빨갛게 색색거린다. 치마도 치마려니와 명지저고리는 어찌 삭았는지 어깨께가 손바닥만하게 척 나갔다. 그러나 덕돌이가 왜포 다섯 자를 바꿔오거든 첫 대 사발화통된 속곳부터 해 입히고 차차 할 수밖엔 없다.
"같이 찝시다유."
주인도 남저지 방아다리에 올라섰다. 그리고 찌껑 위에 놓은 나그네의 손을 눈치 안 채게 살며시 쥐어보았다. 더도 덜도 말고 그저 요만한 며느리만 얻어도 좋으련만! 나그네와 눈이 그만 마주치자 그는 열적어서 시선을 돌렸다.
"퍽도 쓸쓸하지유?" 하며 손으로 울 밖을 가리킨다. 첫 밤같은 석양판이다. 색동저고리를 떨쳐입고 산들은 거방진 방아소리를 은은히 전한다. 찔그러쿵! 찌러쿵!
그는 나그네를 금덩이같이 위하였다. 없는 대로 자기의 옷가지도 서로서로 별러 입었다. 그리고 잘 때에는 딸과 진배없이 이불 속에서 품에 꼭 품고 재우곤 하였다. 하지만 자기의 은근한 속심은 차마 입에 드러내어 말은 못 건넸다. 잘 들어주먼이어니와 뭣하게 안다면 피차의 낯이 뜨듯한 일이었다.
그러자 맘먹지 않았던 우연한 일로 인하여 마침내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나그네가 온 지 나흘 되던 일이었다. 거문관이 산기슭에 있는 영길네가 벼 방아를 좀 와서 찧어달라고 한다. 나그네는 줄밤을 새우므로 낮에나 푸근히 자라고 두고 그는 홀로 집을 나섰다.
머리에 겨를 뽀얗게 쓰고 맥이 풀려서 집에 돌아온 것인 이럭저럭 으스레하였다. 늙은 다리를 끌고 뜰 앞으로 향하다가 그는 주춤하였다. 나그네 홀로 자는 방에 덕돌이가 들어갈 리 만무한데 정녕코 그놈일 게다. 마루 끝에 자그마한 나그네의 짚세기가 놓인 그 옆으로 질목채 벗은 왕달짚세기가 왁살스럽게 놓였다. 그리고 방에서는 수군수군 낮은 말소리가 흘러져 나온다. 그는 무심코 닫은 방문께로 귀를 기울였다.
"그럼 와 그러는 게유? 우리 집이 굶을까봐 그리시유?"
"……."
"어머니도 사람은 좋아유…… 올해 잘만 하면 내년에는 소 한 마리 사놀 게구, 농사만 해도 한 해에 쌀 넉 섬, 조 엿 섬, 그만하면 고만이지유…… 내가 싫은 게유?"
"……."
"사내가 죽었으니 아무튼 얻을 게지유?"
옷 터지는 소리. 부스럭거린다.
"아이! 아이! 아이! 참! 이거 노세유."
쥐 죽은 듯이 감감하다. 허공에 아롱거리는 낙엽을 이윽히 바라보며 그는 빙그레 한다. 신발소리를 죽이고 뜰 밖으로 다시 돌쳐섰다.
저녁상을 물린 후 시치미를 딱 떼고 나그네의 기색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젊은 아낙네가 홀몸으로 돌아다닌대두 고상일 게유. 또 어차피 사내는……."
여기서부터 사리에 맞도록 이 말 저 말을 주섬주섬 꺼내오다가 나의 며느리가 되어줌이 어떻겠냐고 꽉 토파를 지었다. 치마를 흡싸고 앉아 갸웃이 듣고 있던 나그네는 치마끈을 깨물며 이마를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두 볼이 빨개진다. 젊은 계집이 나 시집가겠소, 하고 누가 나서랴. 이만하면 합의한 거나 틀림없을 것이다.
혼수는 전에 해둔 것이 있으니 한시름 잊었다. 그대로 이앙이나 고쳐서 입히면 고만이다. 돈 2원은 은비녀, 은가락지 사다가 각별히 색시한테 선물 내리고…….
일은 밀수록 낭패가 많다. 급시로 날을 받아서 대례를 치렀다. 한편에서는 국수를 누른다. 잔치 보러온 아낙네들은 국수 그릇을 얼른 받아서 후룩후룩 들여 마시며 색시 잘났다고 추었다.
주인은 즐거움에 너무 겨워서 추배를 은근히 들었다. 여간 경사가 아니다. 뭇 사람을 삐집고 안팎으로 드나들며 분부하기에 손이 돌지 않는다.
"얘 메누라! 국수 한 그릇 더 가져온."
어째 말이 좀 어색하구먼…… 다시 한번,
"메누라 얘야! 얼른 가져와."
서른을 바라보자 동곳을 찔러보니 제물에 멋이 질려 비드름하다. 덕돌이는 첫날을 치르고 부썩부썩 기운이 난다. 남이 두 단을 털 제면 그의 볏단은 석 단째 풀쳐나간다. 연방 손바닥에 침을 뱉어 붙이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끅! 끅! 끌! 찍어라. 굴려라, 끅! 끅!"
동무의 품앗이 일이다. 거무투룩한 젊은 농군 댓이 볏단을 번 차례로 집어든다. 열에 뜬 사람 같이 식식거리며 세차게 벼알을 절구통 배에서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얘! 장가들고 한턱 안 내니?"
"일색이드라. 단단히 먹자. 닭이냐? 술이냐? 국수냐?"
"웬 국수는? 너는 국수만 아느냐?"
저희끼리 찧고 까분다. 그들은 일을 놓으며 옷깃으로 땀을 씻는다. 골바람이 벼깔치를 부옇게 풍긴다. 옆 산에서 푸드득 하고 꿩이 날으며 머리 위를 지나간다. 갈퀴질을 하던 얼굴 넓적이가 갈퀴를 들고 씽급하더니 달려든다. 장난꾼이다. 여러 사람의 힘을 빌리어 덕돌이 입에다 헌 짚신 짝을 물린다. 버들껑거린다. 다시 양 귀를 두 손에 잔뜩 움켜잡고 끌고와서는 털이 놓인 볏무더기 위에 머리를 틀어박으며 동서남북으로 큰절을 시킨다.
"야아! 야아! 아!"
"아니다, 아니야. 장갈 갔으면 산신령한테 이러하다 말이 있어야지. 괜스리 산신령이 노하면 눈깔망난이 내려보낸다."
뭇 웃음이 터져오른다. 새신랑의 옷이 이게 뭐냐. 볼기짝에 구멍이 다 뚫리고…… 빈정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덕돌이는 상투의 먼데기를 털고 나서 곰방대를 피어 물고는 싱그레 웃어치운다. 좋은 옷은 집에 두었다. 인조견 조끼, 저고리, 새하얀 옥당목 겹바지, 그러나 아끼는 것이다. 일할 때엔 헌 옷을 입고 집에 돌아와 쉬일 참에나 입는다. 잘 때에는 모조리 벗어서 더럽지 않게 착착 개어 머리맡 위에 놓고 자곤 한다. 의복이 남루하면 인상이 추하다. 모처럼 얻은 귀여운 아내니 행여나 마음이 돌아앉을까 미리미리 사려두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야말로 29년 만에 누런 이 조각에다 이제야 소금을 발라본 것도 이 까닭이었다.
덕돌이가 볏단을 다시 집어올릴 제 그 이웃에 사는 돌쇠가 옆으로 와서 품을 앗는다.
"얘 덕돌아! 어 내일 우리 조마댕이 좀 해줄래?"
"뭐 어째?" 하고 소리를 뻑 지르고는 그는 눈 귀가 실룩하였다.
"누구보고 해라야? 응? 이 자식 까놀라."
어제까지는 턱없이 지냈단대도 오늘의 상투를 못 보는가!
바로 그날이었다. 웃간에서 혼자 새우잠을 자고 있던 홀어미는 놀래어 눈이 번쩍 띄었다. 만뢰 잠잠한 밤중이다.
"어머니! 그거 달아났세유. 내 옷도 없구……."
"응?" 하고 반마디 소리를 치며 얼덜김에 그는 캄캄한 방 안을 더듬어 아랫간으로 넘어섰다. 황망히 등장에 불을 대리며,
"그래 어디로 갔단 말이냐?"
영산이 나서 묻는다. 아들은 벌거벗은 채 이불로 앞을 가리고 앉아서 징징거린다. 옆 자리에는 빈 배게뿐 사람은 간 곳이 없다. 들어본즉 온종일 일하기에 피곤하여 아들은 자리에 들자 그만 세상을 잊었다. 하기야 그때 아내도 옷을 벗고 한자리에 누워서 맞붙어 잤던 것이다. 그는 보통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새침하니 드러누워서 천장만 쳐다보았다. 그런데 자다가 별안간 오줌이 마렵기에 요강을 좀 집어 달래려고 보니 뜻밖에 품안이 허룩하다.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다. 그제서는 어레짐작으로 우선 머리맡 위에 놓았던 옷을 더듬어보았다. 딴은 없다.
필연 잠든 틈을 타서 살며시 옷을 입고 자기의 옷이며 버선까지 들고 내뺏음이 분명하리라.
"도적년!"
모자는 광솔불을 켜들고 나섰다. 부엌과 잿간을 뒤졌다. 그리고 뜰 앞 수풀 속도 낱낱이 찾아봤으나 흔적도 없다.
"그래도 방 안을 다시 한번 찾아보자."
홀어머니는 구태여 며느리를 도둑 년으로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거반 울상이 되어 허벙저벙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마음을 가라앉혀 둘쳐보니 아니면다르랴, 며느리 배게 밑에서 은비녀가 나온다. 달아날 계집 같으면 이 비싼 은비녀를 그냥 두고 갈 리 없다.
두말 없이 무슨 병폐가 생겼다. 홀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덜미를 집히는 듯 문밖으로 찾아 나섰다.
마을에서 산길로 바져나온 어귀에 우거진 숲 사이로 비스듬히 언덕길이 놓였다. 바로 그 밑에 석벽을 끼고 깊고 푸른 웅덩이가 묻히고 넓은 그 물이 겹겹 산을 에돌아 약 10리를 흘러내리면 신연강 중턱을 뚫는다. 시새에 반쯤 파묻혀 번들대는 큰 바위는 내를 사고 양쪽으로 질펀하다. 꼬부랑길은 그 틈바귀로 뻗었다. 좀체 걷지 못할 자갈길이다. 내를 몇 번 건너고 험상궂은 산들을 비켜서 한 5마장 넘어야 겨우 길다운 길을 만난다. 그리고 거기서 좀더 간 곳에 냇가에 외지게 잃어진 오막살이 한 칸을 볼 수 있다. 물방앗간이다. 그러나 이제는 밥을 찾아 흘러가는 뜬몸들의 하룻밤 숙소로 변하였다.
벽이 확 나가고 네 기둥뿐인 그 속의 힘을 잃은 물방아는 을씨년 궂게 모로 누웠다. 거지도 그 옆의 홀이불 위에 거적을 덧쓰고 누웠다. 거푸진 신음이다. 으! 으! 으흥! 서까래 사이로 달빛은 쌀쌀히 흘러든다. 가끔 마른 잎을 뿌리며…….
"여보 자우? 일어나게유 얼핀."
계집의 음성이 나자 그는 꾸물거리며 일어 앉는다. 그리고 너털대는 홑적삼 깃을 여며 잡고는 덜덜 떤다.
"인제 고만 떠날 테이야? 쿨룩……."
말라빠진 얼굴로 계집을 바라보며 그는 이렇게 물었다.
10분 가량 지났다. 거지는 호사하였다. 달빛에 번쩍거리는 겹옷을 입고서 지팡이를 끌며 물방앗간을 등졌다. 골골하는 그를 부축하여 계집은 뒤에 따른다. 술집 며느리다.
"옷이 너무 커, 좀 적었으면……."
"잔말말고 어여 갑시다 펄쩍."
계집은 부리나케 그를 재촉한다. 그리고 연해 돌아다보길 잊지 않았다. 그들은 강길로 향한다. 개울을 건너 불거져내린 산모퉁이를 막 꼽뜨릴려 할 제다. 멀리 뒤에서 사람 욱이는 소리가 끊일 듯 날 듯 간신히 들려온다. 바람에 먹히어 말저는 모르겠으나 재없이 덕돌이의 목성임은 넉히 짐작할 수 있다.
"아 얼른 좀 오게유."
똥끝이 마르는 듯이 계집은 사내의 손목을 겁겁히 잡아끈다.병들은 몸이라 끌리는 대로 뒤툭거리며 거지도 으슥한 산 저편으로 같이 사라진다. 수은빛 같은 물방울을 품으며 물결은 산 벽에 부닥뜨린다. 어디선지 지정치 못할 늑대소리는 이 산 저 산에서 와글와글 굴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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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8일(토)
용산역에서 09:30분 청춘열차를 타고 10:40분쯤
강촌역에서 내려 출구를 빠져나온다.그리고 18:12
분에 출발하는 열차표부터 구한 후에 역 주변을 배회
하며 초가을 분위기로 물들고 있는 역 아래의 마을과
주변 산을 먼 시선으로 바라다본다.
출구를 함께 빠져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제 갈 길로
사라지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몇몇은 남아 있다.
10:46분 춘천으로 가는 열차에 오른 후 잠시 뒤에
김유정역에서 하차하여 편의점부터 들러 중간 크기의
생수 한 병과 담배를 구입한 후 벤치에 앉아 역 정면을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김유정 문학마을로 접어
든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 건지 마을을 오가는
사람은 뜸하다. 나 역시 3주 전에 둘러본 적 있었기에
길가의 몇 곳만 대충 구경하고선 김유정 실레이야기길
입간판 안내도를 보며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를 생각
하며 조금 더 가까워진 금병산의 능선을 바라본다.
직진 형태로의 접근이 아니라 둥근시계 모양으로 난
동네의 길을 걸으며 어느새 호기심을 갖게 된다.
압축된 안내지도를 통해 낯선 길을 제대로 파악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방향을
제대로 잡기 위해 신경을 쓰게 되고 작은 이정표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파란하늘 아래 빛나는 햇살을 안고 동네 길목에 핀
코스모스는 작은 바람에도 반갑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코스모스를 보며 문득 어릴 적 놀던 동네를
떠올리며 잠시 향수에 젖어든다. 시골마을에 현대
식으로 지어진 책과 인쇄 박물관이 우뚝 들어섰건만
선뜻 들어갈 맘이 내키지 않는 건 아마도 사전정보
부족함과 주차차량 외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어느새 흙길로 접어들고 그 길을 따라서
잠시 걷노라니 초목이 무성한 산길로 이어진다.
산에서 보게 되는 첫 이정표와 안내도가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금병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있다. 평평한 곳에 자리를 깔고 무언가를
먹으며 힐끔 날 쳐다보는 남녀의 시선을 뒤로하고
그늘 가득한 산길을 걸어간다. 꽤 많이 걸은 듯한데
채 2km도 걷지 않았음을 시간을 확인하니 알게
되어 총총걸음이다.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꽃
길을 걸으며 주변의 나무들을 살핀다. 생강나무에
핀 노란 꽃은 몇 해 전 어느 봄날 강화도의 야산에서
보긴 했는데 그리 관심을 두진 않았던 기억이 난다.
문득, 김동리의 단편소설인 역마에 등장하는 성기와
계향이가 어느 여름날 지리산 자락의 칠불사를
오르는 장면을 왜 여기서 생각하게 되는가..그건
아마도 읽은 소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암튼 남녀가 둘이서 산으로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ㅎ나는 지금 혼자지만 내게도 오늘
재미난 일이 일어나길 은근히 상상해 본다.
약간은 촌티나지만 복스럽게 생긴 점순이를 닮은
누군가가 내 옆을 지나가는지 잘 살펴봐야 겠다
볕이 강한 송전탑 아래에 서서 문학마을 쪽을 바라
보지만 여기선 아직 잘 보이진 않는다. 괜스레 우뚝
선 철탑을 우러러보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철탑이
이어진 마을마다 뜨겁거나 미지근한 옛사랑 이야긴
있었으리라. 사랑하라 마치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당가. 산길에서의
남자란 가끔 산짐승보다 무서운 존재일 수 있다
내려오는 걸음걸이로 봐선 여자다. 양 손에 막대기를
짚고서 내려오는 폼이 왠지 그럴싸하다. 걸음을
의도적으로 늦추고서 가까이로 다가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려 했으나 모자와 안경 쓴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ㅎ 상상속의 점순이를
생각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음이 다행이다.
삼천포로 퐁당 빠지려든 맘을 지우고 다시 길을
오른 지 몇십 분쯤 되었을 때 사람소리가 들리고
그곳엔 실레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와
안내지도가 길 옆에 서 있다. 등산로 옆 한 곳에
자리를 잡은 여자 6~7명이 모여 음식을 먹고 있다.
전망대에도 무언가를 먹고 베낭을 꾸리는 사람들이
있다. 시선외면모드로 전망대에 올라 서서 마을 쪽을
내려보지만 나무와 나뭇잎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는다
전망대에서 내가 먼저 내려왔지만 곧이어 그 일행들도
내 뒤쪽에 붙어서 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걸음을 좀더 재촉하니 뒤쪽이 조용하다.
갈림길 팻말이 보이는 오른편에도 휴식 중인 사람이
여럿 보인다.
팻말엔 금병산정상까지(2.37km, 소요시간 70분).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길임을 알수 있기엔
고작 몇십 분이면 실감하게 된다. 족히 20도 이상의
가파른 길은 폭이 좁고 돌 많고 잡초가 무성하다.
자주 숨을 몰아쉬며 걸으며 혹시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지 가끔 뒤돌아보게 된다.
때론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가쁜 숨을 죽이려 애쓴다.
평상시 평지만 걷다가 산을 오르려 하니 이제껏 써
먹던 근육과는 다른 곳에 과부하가 걸려서 꽤
힘들다. 숨은 왜 헐떡거린다냐~ 술과 담배에 찌든
폐부가 앓는 소리를 낸당 ㅎㅎ암튼 일보횡보
이보전진의 우스운 자세로 산을 오르고 있다.
불과 800여 미터를 오르며 힘들어 하는 나를 비웃기
라도 하듯이 이젠 완만한 내리막이 나타난다.
바위 뒤쪽으로 기어가는 뱀이 보인다. 연한 갈색의
뱀은 낙엽 사이로 몸을 반쯤 노출시키고 움직이지
않는다. 궁금증이 발동하여 뱀의 상체를 물병으로
누른다. 매끄러운 피부를 자랑하듯이 몸을 꿈틀대며
빠져나가지만 다시 한 번 물병으로 누르며 뱀의
날름거리는 검은 혀를 보고 있다. 기어이 몸을 빼낸
뱀은 사족아 날 살려란 모습으로 숲으로 사라진다
다시 한 번 더 급경사 구간을 만나게 되지만 이젠
별로 힘들지 않다. 너무 멀리 보지 않고 서너 발짝
앞만 보며 걸음에 요령을 불어넣으니 효율적이다.
어라 남녀 칠세부동석을 무시하고 바짝 붙어 술
마시며 다정했던 목소리는 내가 그들 옆을 통과할 때
사무적인 목소리로 바뀐다. 나도 이곳에서 쉬고
싶지만 조금 더 올라가게 된다. 내가 쉬고 있을 때
좀전 봤던 그 둘은 내 옆을 지나가며 등산하기 딱 좋은
날인데 사람들이 많지 않다 라고...ㅎ나는 문득
외로운 생각이 든다.
좀전까진 몰랐지만 어느새 금병산 정상이 가깝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그 두 사람의 얼굴을 저절로
보게 된다. 남자에 비하여 여자의 얼굴이 훨씬
젊은 모습이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데 냄새를
풍긴다. 소주 냄새 비슷하다. 전망대에 올라서자.
전혀 예상치 못한 탁 트인 공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춘천시가지의 풍경과 외곽에 자리
잡은 마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귀가 편칠 않다.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타인에겐 무신경한 한 남자 때문이다
베낭을 의자에 내려놓으며 그 사람를 쳐다보게 된다
내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에 자랑을 듬뿍
담은 통화도 서슴지 않는다. 비록 햇볕 뜨거운 곳에
앉았지만 나 역시 경치 좋은 이곳에서 쉽게 내려
가지 않으련다. 캔커피에 빵을 먹으며 짐짓 여유를
부리며 그 사람의 언행을 예의주시키도 한다
목소리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고 듣고 싶지 않은
풍악은 그대로 이어지고 통화는 끝나지 않았지만
결론이 짐작된다. 이제껏 허풍에 가득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3일이 멀다하고 15kg의 베낭을 지고 이곳에 온다
는데 그대의 뱃살은 찐빵처럼 부풀었고 작은 베낭은
쪼그라든 어린이 책가방 같아라 ㅎㅎ
나도 누군가에게 뻥을 치고 싶다란 생각이 든당
정상 전망대를 내려오며 13:45분임을 확인
한다. 하산코스로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팻말을 보며 김유정역(4.35km. 95분)으로 가리란
생각을 하며 하산길로 접어든다. 이 코스는 산골
나그네의 길이다.
산등성이에 난 길을 따라서 걷고 있지만 좀처럼
좌우로 시야가 확보되질 않아 앞쪽을 주시하며
걷게 된다. 몸이 앞으로 쏠리는 급경사에선 발에
제동을 걸게 되어 걸음이 그다지 빠르지 않지만
내 뒤쪽에도 앞쪽에도 사람이 보이질 않아 이젠
편안한 마음의 나그네가 된 듯싶다. 노랗게 핀 꽃을
보려 걸음을 늦추기도 하고 다시 올 가능성이 적은
이 산길을 기억하려 지나온 뒤쪽도 보지만 멀리까진
볼 수 없다. 3~40분쯤이 흘렀을 즈음 팻말 앞에
서서 다시 한 번 더 거리를 확인하고 안내도를 보며
방향을 가늠한다. 여기서 김유정역까지는 1.7km이다
하산 중에 만난 잣나무숲은 하나의 선물처럼 기분을
좋게 만든다. 아무도 없는 여기서 편히 누워 남가
일몽에 빠지고 싶다.
높은 잣나무 위에서 매미소리가 울려퍼진다
쭉쭉 곧게 뻗어 오른 잣나무 아래에 누웠으나 이런
저런 생각들이 하나 둘씩 머릿속을 채우는 듯한데
아주 경이롭거나 경탄할만한 그런 생각들은 떠오
르질 않고 쓸모없거나 잡다한 것뿐이다.
나란 존재가 갑작스럽게 비범한 인물로 탈바꿈할 수
있으랴만 지금껏 여전히 피상적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여 일보의 전진도 없다. 눕지 말고 장좌불와로
용맹정진을 꿈 꾸는 건 고사하고 낮잠 자지 않고
골똘히 뭔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용한 거지.
맴맴맴맴 고치 자아지~~ 맴맴맴맴 고치 자악지~~
매미소리가 하필이면 내 귀엔 이렇게 들려온다야 ㅎㅎ
지상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슬픔을 토해내는 울음이다. 매미들아 짝짓기는
제때 완료 했느냐~ 후세는 남기고 가야지~
어디선가 툭 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는 걸로 봐선
다람쥐나 청설모가 잣나무 위에서 가지를 건드려
오래 되어 말라빠진 껍데기 잣을 떨구었으리란 생각을
하며 저 높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장대를 휘둘러 잣
을 떨구던 바짝 바른 체격의 북한출신의 사내들을
떠올리게 된다. 강한 체력과 밝은 시력 그리고 담력이
요구될 것이리란 생각을 하며 마지막 연기를 뿜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봇짐을 매고 동네를 향해 걸어간다.
산자락 들국화도 담장 옆에 핀 선홍색 장미도 길가의
코스모스와 해바라기도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가 있다
봄봄과 동백꽃에서의 점순이.. 점순이가 유명세를
탔구나~ 점순이닭갈비집으로 들어가 막걸리 마시고
싶은 생각이야 있지만 아직은 밝은 낮이요 혼자 개폼
잡고 마시기엔 어울리진 않노라. 여기서 상행선을
타고서 가평이나 청평으로 가서 마시는 게 효율적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잣나무 아래서 너무 오래 있었기에
기어코 15:51분 열차를 눈앞에서 놓치게 된다
다음 차는 16:22분에 있다. 강촌에서 미리 표 끊은
itx열차시간은 18:12분이니 문득 계산이 복잡함을
느낀다. 가평 자라섬에서 막걸리축제가 열리고 있단
걸 알지만 역에서 2km이상 떨어진 곳이라 오갈 때의
시간을 고려한다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청평역에서 열차표를 다시 구할 수밖에 없잖는가.
청평에서 약 2시간의 자유가 확보 되리란 막연한
즐거움 속에 어디로 갈 것인지를 뻔하게 떠올리며
22분에 도착한 전동열차에 오른다.
전동열차가 북한강을 가로질러 가평으로 진입하고
있을 때 자라섬 곳곳은 돔형 흰지붕들로 덮혔고
주차장과 그 주변으로 차들이 빼곡하다. 가평역에서
승차한 일행들의 얼굴은 붉으스럼하고 배는 하나같이
불뚝하다.ㅎ 막걸리를 잔뜩 마셨음을 그들의
대화를 통해 충분히 짐작 할 수 있다.이곳에서
막걸리축제가 열렸기 떼문이리라
잠시 후 청평역 도착을 알린다. 출입구를 빠져나와
곧장 용산행 itx열차표(18:52)부터 끊는다.
입석이지만 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
강촌에서 미리 끊었던 표를 반환구에 넣으니
6백원 차감된다. 역 건너편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서 아이스커피 한 잔을 마신다.
청평역 뒤쪽에 있는 설레임공원은
작년 이맘때보다 덜 예쁜 모습이다. 그렇건 말건
인위적으로 꾸민 곳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기에
차도를 따라서 청평교 있는 곳까지 천천히 걷는다.
차도와 자전거길이 만나는 곳에서 조종천을 보게
된다. 서쪽으로 기울고 있는 해는 가끔 구름에
묻히며 마지막 빛을 발산하며 물비늘을 만들고 있다.
익숙한 걸음으로 둑 아래 냇가로 내려가 마치 무슨
할 일이 있는 것처럼 이리저리로 시선을 바쁘게
움직인다. 나의 부산한 행동에 물가에 앉았던 새
한 마리 날개를 퍼득이며 청평교 위쪽으로 날아간다.
낚시 하기에 적당한 수위를 보이고 있는 냇물은
눈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맑고 물속에서 움직이는
고기떼도 잘 보인다. 내가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
봤던 징검다리 아래의 돌 주위를 살핀다. 물살 센
곳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사력을 다하여 점핑하던
송사리들을 떠올리며 다시 웃음 짓는다. 이젠 그때
보다 좀더 커 보이는 물고기들이 머무르고 있다.
냇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곁으로 바짝 다가가진
않지만 그들이 물속에 넣어 둔 어망은 빈 듯하고
베낭 옆에 미끼를 놓아두고 긴 낚싯대를 들고 있는
저 여인은 누구당가. 혹시 점순이를 여기서 만나는
건 아닌가 하여 근접하여 얼굴이라도 살펴볼까 하는
맘속 장난끼도 저물었기에 점잖게 그저 먼 데서
휴대폰에 풍경과 함께 담는다. 석양이 지는 냇가
에서 낚시하는 여인의 모습이 담겼음 했는데
낚싯대를 놓고 급히 돌아설 줄이야~ 아마도 미끼를
갈아끼우려한 동작이겠지. 내가 부지런을 떨며 걸음에
속도를 붙이게 되는 건 문득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냇가에 퍼졌던 어스럼이 강둑으로 올라서자 다시
환해지는 건 서쪽에서 좀더 동쪽 호명산 가까이로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거다. 나는 지금 청평안전
유원지로 가기 위해 둑으로 다시 올라선다.
조종천 유원지 쪽은 아직도 석양이 머물고 있다.
주말이라 펜션과 민박집 주변엔 저녁을 준비하는
젊은이들과 물에서 공놀이 혹은 물놀이 즐기는
모습들이 여름 막바지의 활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수심이 깊은 곳은 연한 녹색을 띈 채 호수처럼
잠잠하다. 하류 쪽 철교 위로 열차가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가고 석양 속에 물빛은 붉은 기운을 담는다.
냇가 나무 탁자에 앉아 막걸리 반 병을 마시고 일어
선다. 제방길에 비스듬히 기대어 피어난 코스모스가
유난히 예쁘다. 내가 좋아하는 벤치가 있는 곳까지
둑을 따라서 걸으며 고즈넉함을 즐기고 있다.
호명산에서 내려온 등산객 일행이 냇물 위의 돌다리를
건너오고 더 먼 곳에선 청평역을 통과하여 춘천으로
향하는 기차가 작은 소리를 남기며 사라진다.
둑 옆의 벤치에 잠시 머물다가 상행할 준비를 하며
시간을 확인한다. 그리고 청평역을 향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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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회자정리 키 만큼이나
글도 사진도 길다
금병산 .호명산 모두 계곡의 물도 많고 아름다운 산이지
구룡폭포도 멋지고
백세주 마을에서 더덕구이에
막걸리 한잔은 영원히 잊지못할 맛
회자정리 친구의 글을 보면서
예전 추억들을 소환해 본다
(회자정리한테 구룡폭포.백세주 마을 강추)
소설도 잘읽고
세세한 설명과
사진들을 통해서
오늘도
힐링하고 간다
고마워
즐거운 나날들 되길~~
눈으로 볼 수 없는 바이러스가 사람과의 만남을 경계하게 만들고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니
너나없이 답답한 심정. 하필이면 확진자 입원
중인 호흡기내과 간호사로 근무 중인 딸내미 건강도 염려스럽고 의대생인 아들도 실습기간에 차질이 생겼으니 요즘 내맘도 편칠 않네.
이젠, 사람들 적은 곳을 택하여 돌아다니는
것마저 모친에게 문제소지 만들까봐 조심하게
되다 보니 심신의 컨디션이 좋질 않다네.
마냥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닌 것 같고
어쨌건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난제로다. 꽃
피는 봄은 가까이로 왔고 짦은 봄의 향연을 놓치게 되는 건 아닌지 조금은 우울하여라 ㅎㅎ
이틀 동안 외출 않고 지냈더니 사는 맛이
별로라서
@회자정리 점심 먹고선 안양천변으로 후다다^닭
날아가리다. 햇볕 쬐고 바람 쐬면 기분
좋아지리라~ 봄비 님도 오늘 하루 기분
좋게 보내시길요. 저 위에 추천한 장소는
춘천 갈 때 한번 택해 보리다. 아 글고
김유정의 단편, 봄봄과 영상도 추가하여 올려둘 테니 시간날 때 함 보셔라^^
@회자정리 오늘 강변 걷기엔 참 좋은 날씨같다
미세먼지도 없고~~
잘 다녀오고
바깥의 봄 향기 많이 맡고 오셈
한번에 왕창 올리기보다는 여러번으로 나눠서 올려주면
고맙겠는데.....ㅎ
@봄비사랑 오늘 날씨는 좋았는데..데 ㅎㅎ
왕창 말고 나눠서요
알겠음이요~ㅣ좋은 하루로 마감킬요
얼마전부터 수십 년 전에 봤던 티비
문학관 시청 중이랍니다~
@회자정리 난 여행 프로 좋아한다
대리 만족도 하고
한번 가보리라 계획도
세워보고~~
오늘도 건강하게
좋은곳 소개 많이 해주셈
@봄비사랑 '08년부터 '14년까진 먼 곳으로 짧겐 2~3일
길겐 4~5일 정도 여행 다니는 재미가 좋았는
데.. 이젠 그 긴 세월만큼 본가에서 멀리 벗어
날 수 없으니 꽤 답답치만 그나마 서울에서 가까운 곳은 다닐 수 있으니 그로써 만족하리라
마치 수구초심인 양 가끔 옛 여행지 사진과 글 등장시킬 터이니 흥미롭게 봐주셩 ㅎㅎ
@회자정리 당연 고맙징~^^
회자정리 같은 친구가 있어서
60쥐방에 불이 안 꺼지고
밝게 빛나고 있다
며칠 전,
이 글 모두 읽었다.
참 글 맛깔지게 써놓았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