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42:18]
삼일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 형들이 옥에 갇힌지 삼 일만에 요셉은 그들에게 인정을 베풀었다. 즉 그는 지금 까지 철저히 애굽인으로 행세하였으나 이제는 하나님 을 이해하는 자로 처신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사용된 엘로힘 이라는 하나님 명칭은 요셉의 형들에게 친근한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요셉에게 이내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이 정작 족장들의 언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여호와 라는 하나님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끝 까지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시 34:12]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 `생명을 사모하고'가 `살기를 소망하고'를 뜻하고 `장수하여'가 문자 그대로 `오랫동안 사는 것'을 뜻하므로 원래의 문자적 의미는 `많은 날들을 사랑하다'임 이 구절들은 결국 `장수한다'는 뜻의 강조형이라고 할 수 있다
시편에서 유사한 개념의 반복은 강조이다. 사실 땅 위에서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은 인간의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망이며 그것을 바라는 일은 결코 악이 아니다. 분명 성경은 장수를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모두의 관심사에 대해 운을 떼므로써 청중으로 하여금 이어질 내용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있다.
[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 여기 기록된 희생의 원리는, 일반 사회에도 적용되는 진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자들의 지켜야 할 원리를 보여주신다.
곧, 이 말씀은, 믿는 자들이 자기 자신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만 따라가야 하는 신령한 희생의 도리를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으니 만큼(24 절), 우리는 우리 자신을 따르지 말고(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말고)그만 따라가야 된다.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업을 위한 자기의 죽으심에 대하여 말씀하신 뒤에는, 이어서 그를 믿기(따르기) 위한 우리의 희생을 권고하시곤 하셨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란 말은, 자기 힘으로 자기 생명을 구원하려 하는 자를 가리킨다. 이제 예수님의 속죄의 구원을 이루실 것이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기 생명의 구원을 그에게 맡기고 그만 믿고 따라야 된다. 그리하지 않으면 그들은 생명을 잃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는 듯이 주님만 사랑하며 바라보아야 구원을 얻는다.
사람이 이렇게 되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용이하게 그렇게 되는 길이 있다. 벴겔은 말하기를, "우리의 영혼이 우리 자신의 생명을 미워함에 도달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푹 적시움이 있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본문: 전도서 12장 13절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 12장 13절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를 단적으로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솔로몬의 지혜가 집약된 결론으로, 삶의 헛됨을 탐구한 끝에 도달한 하나님 중심의 삶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존 웨슬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성화의 삶,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웨슬리는 인간의 본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이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구절을 웨슬리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성경 구절을 참조하여 현대적 적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길을 모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