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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文貞姬 (1947. 전남 보성 출생)
학력 : 진명여고 졸
동국대 국문학과 졸. 동 대학원.
서울여대 대학원 - 문학박사.
경력 : 2007년 ~ 現, 고려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2005년 ~ 現. 동국대학교 예술대 문예창
작과 석좌교수
등단 : 진명여고 재학시 시집 <꽃숨> 출간
1969년 [월간문학]지 <불면>. <하늘>
수상 : 1976년 제 21회 현대문학상 수상.
2004년 제16회 정지용문학상
2008년 제28회 올해의최우수예술가상
문학부문상 -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화장化粧을 하며 / 문정희 입술을 자주색으로 칠하고 나니
즐거운 밀림의 노래 / 문정희
남자를 위하여 / 문정희
마흔 살의 시 / 문정희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 문정희
남편 /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물 만드는 여자 / 문정희
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몸이 큰 여자 / 문정희
저 넓은 보리밭을 갈아엎어
몸은 원래 그 자체의 음악을 가지고 있지*
몸을 자신을 태우고 다니는 말로 전락시킨
* 미국의 심리분석학자 클라리사 P. 에스테스가 한 말.
오빠 / 문정희
이제부터 세상의 남자들을
집안에서 용돈을 제일 많이 쓰고
오빠!
오빠라는 말로 한방 먹이면
모처럼 물안개 걷혀
나를 어지럽히던 그 거칠던 숨소리
오빠로 불리워지고 싶어 안달이던
오빠! 이렇게 불러주고 나면 헐떡임이 사라지고 오히려 두둑한 지갑을 송두리째 들고 와
조등이 있는 풍경 / 문정희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어머니는 80세까지 장수했으니까 우는 척만 했다 오랜 병석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가 죽었다 내 엄마, 그 눈물이 그 사람이 죽었다 저녁이 되자 더 기막힌 일이 일어났다 내가 배가 고파지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내 위장이 밥을 부르고 있었다 누군가 갖다준 슬픈 밥을 못 이긴 척 먹고 있을 때 고향에서 친척들이 들이닥쳤다 영정 앞에 그들은 잠시 고개를 숙인 뒤 몇 십 년만에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니, 이 사람이 막내 아닌가? 폭 늙었구려." 주저없이 나를 구덩이 속에 처박았다. 이어 더 정확한 조준으로 마지막 확인 사살을 했다 "못 알아보겠어. 꼭 돌아가신 어머니인 줄 알았네"
탯줄 / 문정희
대학병원 분만실 의자는 Y자였다
성스러운 순간이라 말하지 말라
드디어 두 생명 사이에는
가장 처음이자
얼마 후
나의 아내 / 문정희
* 미당의 시 **매릴린 옐름, <아내>
손의 고백 / 문정희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계와 시계 사이 / 문정희
이 아침 고장 난 시계 속에 눈을 뜬다
" 응 " / 문정희
햇살 가득한 대낮
오직 심장으로 너와 네가 만든 땅 위에
파 뿌리 / 문정희
크고 뭉툭한 부엌칼로 파 뿌리를 잘라낸다 결혼은 왜 시를 닮으면 안되는가 나 오늘 파 뿌리를 잘라낸다
아침 이슬 / 문정희
키 큰 남자를 보면 / 문정희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걸고 싶다
성공시대 / 문정희
어떻게 하지? 나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
제비를 기다리며 / 문정희
제비들을 잘 돌보는 것은 우리집 가풍
러브호텔 / 문정희
밤(栗) 이야기 / 문정희
석남꽃 / 문정희
새벽 두 시인데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청담사거리를 찾다 지쳐
죽어서도 석남꽃 머리에 꽂고
내 불면의 가지 끝에 검은 눈썹달이
세상에는 왜 이리 길을 묻는 사람이 많을까요
<문정희 시인>
시집 『남자를 위하여』『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나는 문이다』외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수상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
목숨의 노래
당신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습니다
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두고
목숨을 내걸었습니다
목숨의 처음과 끝
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습니다
맨발로 당신과 함께
타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타오르다 죽고 싶었습니다
손톱
지는 저녁해를 마주하고 앉아
팔순 어머니의 손톱을 자른다
벌써 하얀 반달이 떠오르는
어머니의 손톱을 자르면
세상의 바람 소리도
모두 잘리어나간다
어쩌면 이쯤에서
한쪽 반달은 이승으로 떨어지고
또 한쪽은 어머니 따라
하늘로 가리
시시각각으로 강물은 깊어가는데
이제 작은 짐승처럼
외로운 어머니의 등
은비늘처럼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톱이 피울
저 먼나라의 꽃은
무슨 색일까?
무슨 꽃이 어머니의 꽃밭에 피어나
날마다 그녀가 주는 물에
나처럼 가슴이 젖을까.
흔들리며 흔들리며
팔순 어머니의 손톱을 자른다.
순간
찰랑이는 햇살처럼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버리고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시간 2
갈수록 갈수록
멀기만 하다.
너는 내게 있어
흐르는 물이 아니었다.
소용돌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좋았다.
위로 치솟을 땐
어지러웠고
부서져내릴 때는
신이 났다.
그 몰락조차도
재미있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 속에 빠져
부드러이
죽어갔다.
알몸노래
- 나의 육체의 꿈
추운 겨울날에도
식지 않고 잘 도는 내 피만큼만
내가 따뜻한 사람이였으면
내 살만큼만 내가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내 뼈만큼만 내가 곧고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그러면 이제 아름다운 어른으로
저 살아 있는 대지에다 겸허히 돌려드릴 텐데
돌려드리기 전 한번만 꿈에도 그리운
네 피와 살과 뼈와 만나서
지지지 온 땅이 으스러지는
필생의 사랑을 하고 말 텐데
우리들 마음속에
빛은 해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그대 손을 잡으면
거기 따뜻한 체온이 있듯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 있는
사랑의 빛을 나는 안다.
마음속에 하늘이 있고
마음속에 해보다 더 눈부시고 따스한
사랑이 있어
어둡고 추운 골목에는
밤마다 어김없이 등불이 피어난다.
누군가는 세상은 추운 곳이라고 말하지만
또 누군가는
세상은 사막처럼 끝이 없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무거운 바위 틈에서도 풀꽃이 피고
얼음장을 뚫고도 맑은 물이 흐르듯
그늘진 거리에 피어나는
사랑의 빛을 보라
거치른 산등성이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을 보라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는 하늘
해보다 눈부시고
따스한 빛이 아니면
어두운 밤에
누가 저 등불을 켜는 것이며
세상에 봄을 가져다주리.
유리창을 닦으며
누군가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는다
창에는 하늘 아래
가장 눈부신 유리가 끼워 있어
천 도의 불로 꿈을 태우고
만 도의 뜨거움으로 영혼을 살라 만든
유리가 끼워 있어
솔바람보다도 창창하고
종소리보다도 은은한
노래가 떠오른다
온몸으로 받아들이되
자신은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는
오래도록 못 잊을 사랑 하나 살고 있다
누군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아서
맑고 투명한 햇살에
그리움을 말린다.
유쾌한 사랑의 노래
대장간에서 만드는 것은
칼이 아니라 불꽃이다
삶은 순전히 불꽃인지도 모르겠다
시가 어렵다고 하지만
가는 곳마다 시인이 있고
세상이 메말랐다고 하는데도
유쾌한 사랑도 의외로 많다
시는 언제나 천 도의 불에 연도된 칼이어야 할까?
사랑도 그렇게 깊은 것일까?
손톱이 빠지도록 파보았지만
나는 한번도 그 수심을 보지 못했다
시 속에는 꽝꽝한 상처뿐이었고
사랑에도 독이 있어
한철 후면 어김없이
까맣게 시든 꽃만 거기 있었다
나도 이제 농담처럼
가볍게 사랑을 보내고싶다
대장간에서 만드는 것은
칼이 아니라 불꽃이다
율포의 기억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 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밭때문이었다
뻘 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숨 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저 무위(無爲)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
성자처럼 뻘 밭에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건지는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별 이후
너 떠나간 지
세상의 달력으론 열흘 되었고
내 피의 달력으론 십년 되었다.
나 슬픈 것은
네가 없는데도
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
끼니 오면
입 안 가득 밥알 떠넣는 일이다.
옛날 옛날에
그 사람 되어가며
그냥 그렇게 너를 잊는 일이다.
이 아픔 그대로 있으면
그래서 숨막혀 나 죽으면
원도 없으리라
그러나
나 진실로 슬픈 것은
언젠가 너와 내가
이 뜨거움 까맣게
잊는다는 일이다.
전보
나는 너에게
전보가 되고 싶다
어느 일몰의 시간이거나
창백한 달이 떠 있는
신새벽이어도 좋으리라
눈부신 화살처럼 날아가
지극히 짧은 일격으로
네 모든 생애를 바꾸어 버리는
축전이 되고 싶다
가만히 바라보면
아이들의 놀이처럼
싱거운 화면, 그 위에 꽂히는
한 장의 햇살이고 싶다
사랑이라든가
심지어 깊은 슬픔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전보가 되고 싶다
젊은 날
새벽별처럼 아름다웠던 젊은 날에도
내 어깨 위엔
언제나 조그만 황혼이 걸려 있었다
향기로운 독버섯 냄새를 풍기며
손으로 나를 흔드는 바람이 있었다
머리칼 사이로
무수히 빠져 나가는
은비늘 같은 시간들
모든 이름이 덧없음을
그때 벌써 알고 있었다
아! 젊음은
그 지느러미 속을 헤엄치는
짧은 감탄사였다
온 몸에 감탄사가 붙어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른 잎사귀였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는
광풍의 거리
꿈과 멸망이 함께 출렁이는
젊음은 한 장의 플래카드였다
그리하여
나는 어서 너와 함께
낡은 어둠이 되고 싶었다
촛불밖에 스러지는
하얀 적막이 되고 싶었다
젊은 사랑
- 아들에게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 분 살고 계시나 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나는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네가 어렸을 땐
우리 사이에 다만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사탕 한 알에도
우주가 녹아들곤 했는데
이제 쳐다보기만 해도
훌쩍 큰 키의 젊은 사랑아
너와 나 사이에는
무슨 신이 한 분 살고 계셔서
이렇게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를까.
제비를 기다리며
제비들을 잘 돌보는 것은 우리집 가풍
말하자면 흥부의 영향이지만, 솔직히
제비보다는 박씨, 박씨보다는
박씨에서 쏟아질 금은보화 때문이지만
아시다시피 나는 가풍을 잘 이어가는 착한 딸
처마 밑에 제비들을 두루 잘 키우고 싶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강남에도
제비들이 좀체 나타나지 않아
지하철역에서 복권을 사서
주말이면 허공으로 날리기도 하고
참다못해 빈 제비집에 손을 넣었다가
뜻밖에 숨은 뱀에게 물리기도 한답니다
포장마차에서 죽은 제비다리를 구워먹으며
시름을 달래며
솔직히 내가 기다리는 것은
박씨거나 박 속에서 쏟아질 금은보화가 아니라
물찬 제비!
날렵하게 사모님처럼 허리를 감고
한바퀴 제비와 함께 휘익! 돌고싶은 것은
누구보다 당신이 더 잘 아시겠지
찔레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횐 찔레꽃으로 피워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 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뽀족한 가시로
슬퍼 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찬밥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1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누가 남긴 무우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럭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키 큰 남자를 보면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을까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 보고 싶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눈썹에
한 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늘을 조금씩 갉아먹고 싶다
누에처럼 긴 잠 들고 싶다
키 큰 남자를 보면
축복의 노래 - 문 정 희
사랑의 이름으로 반지 만들고
영혼의 향기로 촛불 밝혔네
저 멀리 반짝이는 아름다운 별 하나
둘이 함께 바라보며 걸어가리라
오늘은 새 길을 떠나는 축복의 날
내딛는 발자국마다 햇살이 내리어
그대의 맑은 눈 빛 이슬 매쳤네
둘이서 하나되어 행복의 문을 열면
비바람인들 어이 눈부시지 않으리
추위인들 어이 따스하지 않으리
아아 오늘은 아름다운 약속의 날
사랑의 이름으로 축복하리라
돌아가는 길 - 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첼로처럼 살고싶다 - 문정희
하룻밤 쯤
첼로처럼 살고싶다
매캐한 담배연기 같은 목소리로
허공을 긁고싶다
기껏해야 줄 몇개로
풍만한 여자의 허리 같은 몸통 하나로
무수한 별을 떨어뜨리고 싶다
지분 냄새 풍기는 은빛 샌들의 드레스들을
넥타이 맨 신사들을
신사의 허세와 속물들을
일제히 기립시켜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치게 하고 싶다
죽은 귀를 잘라버리고
맑은 샘물을 길어올리게 하고 싶다
슬픈 사람들의 가슴을
박박 긁어
신록이 돋게 하고 싶다
하룻밤 쯤
첼로처럼 살고 싶다
사랑 신고 -문정희
사랑은 자주 불법 위에 터를 닦고
행복은 무허가 주택이기 쉽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철거반이 오기 전에
마치 유목민의 천막처럼
이내 빈 터만 남으니까
가끔 불법 유턴을 하여
위반과 비밀 위에 터를 닦지만
사랑을 신고할 서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를 발명했는지도 모른다
오늘 밤 그런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은 진실로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문득 이 도시의 모든 평화가 위조 같다
어떤 사랑으로 한번
장렬하게 추락할 수 있을까
맹목의 힘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볼까
사람들이 가끔
목젖을 떨며 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한 사랑, 진정한 고통, 진정한 희망은
어떤 서류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오늘 밤 그런 생각을 해본다
돌아가는 길 - 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 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수목사이로 - 문정희 시인
왜 나는
저 쭉 쭉 뻗은
수목들을
서방삼을 생각을 못 했을까
손가락을 쫙 펴고
뜻도 없이 어깨에 힘을 주고 서 있는
아이들 그림만 쳐다보았을까
시간은 레먼 같은 것
처음엔 향긋한 냄새도 풍기지만
찔금찔금 눈물도 나게 하지만
그러나 벗기고 나면 아무것도 안 남느니,
하늘을 찌를 듯한
검초록을 두르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수목이나 서방삼아
크낙새 같은 새끼들이나
주르르 낳았어도 좋았을 것을
크낙새 같이 귀한 자식들
퍼덕퍼덕 길러 봐도 좋았을 것을
사람의 가을-문정희
나의 신은 나입니다. 이 가을날
내가 가진 모든 언어로
내가 나의 신입니다.
별과 별 사이
너와 나 사이 가을이 왔습니다.
맨 처음 신이 가지고 온 검으로
자르고 잘라서
모든 것은 홀로 빛납니다.
저 낱낱이 하나인 잎들
저 자유로이 홀로인 새들
저 잎과 저 새를
언어로 옮기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 이 가을
산을 옮기는 일만큼 힘이 듭니다.
저 하나로 완성입니다.
새, 별, 꽃, 잎, 산, 옷, 밥, 집, 땅, 피, 몸, 물, 불, 꿈, 섬
그리고 너, 나
이미 한 편의 시입니다.
비로소 내가 나의 신입니다. 이 가을날
물새 - 문정희
저물녘 석모도 앞바다에 떠 있는
저 물새는 한채의 암자 같다
깊고 푸른 멍 같은 바다를 깔고 앉아
가파른 물살을 잠재우는 것을 보라
쉴새없이 기우뚱거리는 마음
차가운 심연에 담그고
부르튼 발로 자맥질하여
물 위에 암자를 세운 저 새는 누구일까
나인지도 모른다
산허리를 돌아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내려오는 시간
날개로 허공을 밀며 천리를 달려온 저 새는
지금 움직이지 않고
홀로 또 천리를 가고 있다
이렇게 말해도 될는지
생이란 물 위에 뜬 하루라
바람의 발목을 잡고 출렁이는
생이란 끝없는 물음인지도 모른다
고달픈 아랫도리 물에 담그고
문득 좌선에 든 저물녘
물 위에 뜬 암자를 향해
나는 조바심처럼 돌을 들어
힘껏 화두 하나를 던진다
바다의 살점이 불끈 고통처럼 치솟는다
날개를 펼치고 암자는
불현듯 먼 하늘로 사라진다
연인에게 --문정희
연인아, 여름이 오면
손잡이가 빨간 가위 하나 들고 와
함부로 뻗친 가지 척척 잘라다오
부질없는 내 열망을 잘라다오
수북이 땅 위에 나뭇가지 쌓이면
그 가지로 허공에다 새집 한 채를 지어다오
바람 불 때마다 흔들리며
노래를 알처럼 까는
새 한 마리 키우리라
한밤중에 ―문정희
한밤중에 번개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단숨에 내 심장에서
붉은 루비 같은 죄들을 꺼내
검은 하늘에 대고 펄럭이었다
낮 시간 동안 그토록 맑은 햇살을 풀어
푸른 숲과 새들을 키우던
저 산이 보낸 거라고는 믿기 어려운
번개가 한밤중에 나를 찾아왔다
부들부들 떨고 잇는 내 심장에서
붉고 선명한 루비들을 꺼내
검은 하늘에 뿌렸다
내일 아침 나의 침대에는
한 사람의 죄수가 밤새
깊고 슬픈 자술서를 쓰다
쓰러져 있으리라
문정희 시인의 시는 술술 잘 읽혀 내려간다. 관념적인 상징이나 작위적인 기교 없이 원초적 본능에 충실하게 씌어진 솔직하고 건강한 시를 생산해 내기 때문이다. 인용시 「한밤중에」서도 ‘한밤중에 번개가 나를 찾아왔다’는 일상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번개와 천둥의 원인을 밝히는 과학적인 설명에 상관없이 번개 치는 밤이면 누구나 죄의식에 한 번쯤 사로잡혀 보았을 것이다. 번갯불이 번쩍하고 공포의 순간인 몇 초가 지나면 벼락 떨어지는 소리, 천둥소리가 한바탕 나고 누군가 나대신 죄값을 치르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몸을 낮추거나 눈을 감고서라도 공포의 순간을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문정희 시인은 한밤중 찾아온 번개를 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한다. 번개의 칼로 심장에서 죄들을 끄집어내도 피하지 않는다. 두렵고 끔찍한 장면이 ‘붉은 루비 같은 죄들’이라는 환상적인 표현으로 보상을 받는다. 그의 죄의 모습은 투명하고 빛이 아름다운 일급 보석인 루비인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짓는 죄가 무슨 죄가 될 수 있느냐는 신에 대한 항변의 대가물이기 때문이다. 신이나 초인(超人)이 아닌 이상, 모든 인간은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인간은 신의 입장에서 보면 숱한 죄의 덩어리로 보이겠지만, 피조물인 인간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만들어 낸 조물주에게 따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낮에는 맑은 햇살을 풀어내고 푸른 숲과 새들을 키우며 자신의 피조물들을 자랑하던 신(산으로 상징된)이 한밤중에 어떻게 그 죄값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인지, 시인은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들은 신이 각인시킨 원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시인의 심장에서 신은 죄를 끄집어내 검은 하늘에 뿌린다. 검은 하늘에 던져진 붉은 루비는, 즉 죄의 실체는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한 사람의 ‘죄수’가 되어 밤새도록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깊고 슬픈 자술서를 쓰’며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번개나 천둥이 요란하게 치는 밤이면 누구나 원죄의식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너의 죄를 고백하라고 하늘에서 호통을 치는 것 같은 소리로 들릴 때도 있었을 것이다. 문정희 시인은 이러한 인간의 원죄의식을 자연현상을 통해 명료하게 그려내, 벗어날 수 없는 원죄의식에 대한 절망감과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게 한다.
사랑만을 위해 꿈꾸는 완전한 고립
― 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이 시는 5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사랑의 노래, 사랑을 위한 노래이다. 흔히 사춘기(思春期)에 들어선 젊은이들이 부르는, 사랑을 위한 '소망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쉽고 평이한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화자는 줄거리를 어렵게 이끌어가려고 애쓰지 않는다. 자신의 일기장 한켠에 적어두고 싶은 비망록(備忘錄)처럼 화자는 숨김없이 솔직한 감정들을 쏟아놓고 있다.
화자는 시라는 구조나 틀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대신에 감정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맡긴다. 화자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얗게 눈이 덮인 겨울, 사람들의 감탄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변해갈 때에도 화자는 자신이 설정한 고립의 자리, 즉 '동화의 나라'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을 생각하며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그러나, 화자는 현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도 않은 상태이고, 화자가 눈부신 고립을 꿈꾸며 한겨울 한계령을 넘어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미완성의 노래일 수밖에 없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못 잊을 사랑을 생각하며 미완성이나마 한바탕 사랑의 노래를 지어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이제 다섯 개의 연을 따라 화자가 부르는 연가(戀歌)를 살펴보기로 하자. 화자가 그리고 있는 동화의 나라에서 함께 사랑의 노래를 불러보아도 좋으리라.
먼저, 첫째 연에서 화자는 하나의 꿈을 꾼다. 화자에게 있어서 그 꿈은 장난삼아 꾸어보는 꿈일 수도 있고, 현실의 외로움을 타개할 운명의 사람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고 싶은 절박한 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체적인 흐름을 통해 볼 때, 진지하고 절박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 절박함은 화자의 톡톡 튀는 '끼'에 뒤덮여 보이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화자는 대뜸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어한다. 화자는 자신이 처해 있는 삶에 확실한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특별한 사건을 꿈꾸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뜻밖의 폭설이다. 화자는 구차하게 계획된 삶보다는 운명처럼 묶여 돌아가는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뜻밖의 폭설이라는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에 묶여들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뜻밖의 폭설을 기대하고 있지만, 화자가 설정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미루어 볼 때, 화자에게 있어서 폭설은 결코 '뜻밖의' 것이 될 수가 없다. 화자가 못 잊을 사람과 함께 한계령을 넘는 시간적인 배경이 한겨울이고, 공간적인 배경으로 설정된 한계령은 겨울철에 가장 많은 눈이 내리는 곳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화자에게 못 잊을 사람이 있어서 함께 고개를 넘는다면, '뜻밖의 폭설'이 아닌, 처음부터 화자가 의도하고 있는 일상적인 폭설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화자는 능청스럽게도 '뜻밖의 폭설'을 운운하며 자신이 꿈꾸는 사랑을 색다르고 운명적인 것으로 부각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4행 이하에서 화자는 폭설을 만나 벌어질 제반 상황들을 소개한다. 가장 객관적인 보도 역할을 하는 뉴스들은 앞다투어 기록적인 폭설을 알리고, 쌓인 눈 때문에 자동차들은 제 기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야단법석을 피운다. 그러나, 7행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자는 그 무질서한 현장 속에서도 은근히 자신의 꿈을 꾸고 있다. 그 상황이 좀더 악화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 인간의 힘으로는 얼마간 극복할 수 없는 그 자연이 주는 한계를 못 이긴 척 받아들이며 묶이고 싶어 안달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화자는 다른 사람들의 불편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을 위한 짜릿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2연은 화자의 작은 소망이 좀더 구체화되고 있다. 그(혹은 '그녀', 이하 '그'로만 표기)에게 고립은 오히려 눈부신 것이다. 그가 꿈꾸던 대로, 모든 것들이 눈 속에서 단절되어 오갈 수 없는 한계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화자에게 있어서 그 나라는 동화의 나라이다. 그가 꿈꾸었던 대로 모든 일들이 척척 풀려나가는 행복한 나라이다. 이제 화자가 꿈꾸는 것은 물리적으로 그의 발이 묶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운명이 묶이는 것이다.
이러한 화자의 소망은 못 잊을 사람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상황이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악한 상황을 빗대어 창조적으로 사랑을 만들어나가려는 화자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오직 사랑만을 꿈꾸고 사랑만을 생각하는 화자의 지고한 사랑에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3연에 들어서 화자는 날이 어두워지자 하얗게 쌓인 눈에 취해 감탄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공포로 변하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은 이제 저마다 두려움의 모습들을 드러내기 시작하지만, 그럴수록 화자는 그 시간이 신나기만 하다. 그가 꿈꾸던 완전한 고립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현실 속에서도 도리어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못 잊을 사람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헬리콥터가 출동한다. 그러나, 화자는 자신을 구조하기 위해 하늘을 선회하는 헬리콥터를 향해 자신의 위치를 알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눈 속에 꼭꼭 숨어 그 고립의 순간을 즐기겠다는 것이다. 헬리콥터가 인명 구조를 마치고, 눈 속에서 먹이를 찾지 못한 야생의 새들과 짐승들을 위해 먹이를 뿌릴 때에도 구조 요청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화자에게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4연은 3연의 내용과 연결되는 것으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구조를 요청하지 않고 고립의 상황 속에 남아 있을 것을 다시금 반복하고 있다. 산은 폭설 속에서도 살아 있다. 나무들은 폭설 속에서도 살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화자 역시 시퍼렇게 살아 있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고 생명의 힘이다.
전쟁터에서 젊은 군인들의 심장을 향해 포탄을 퍼부어 대던, 무섭고 무자비하던 헬리콥터들이 이제는 역할을 바꾸어 생명을 살려내기 위해, 사람만이 아닌 야생의 동물들에게까지 자비롭게 일용할 양식을 뿌려줄 때에도 화자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주는 인위적인 혜택을 거부하고, 화자는 자연이 가져다 준 운명, 즉 폭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자신에게 닥쳐온 폭설이 결코 시련이나 아픔이 아니라, 도리어 축복의 순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 축복의 순간을 즐기면서 흥분된 마음으로 몸둘 바를 몰라하는 화자의 모습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나오지 않는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오직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진정 그 사람과 함께 운명을 같이할 사람은 흔치 않으니, 우리의 삶 속에서 뜻밖에 찾아오는 아픔과 시련은 우리가 누군가를 진실하게 사랑하는지 시험하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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