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납만 잘해도 집이 한결 커 보인다
수납을 잘하려면 참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우선 이사를 하고 나면 큰 물건을 제외한 살림살이들은 제자리를 미리 생각해 가며 정리해야 수월하다. 일단 빈 수납공간에 넣고 나서 정리를 시작하면 이중 일이 될 수 있다. 이때 수납에 필요한 수납용품들을 미리 생각해서 준비하면 정리가 좀 더 쉬워진다. 수납할 때는 내 나름의 기준이 있다. 먼저 장식을 위한 수납과 밖으로 드러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숨기는 수납, 두 가지를 확실히 구분한다. 새 집에 이사하고 나서 한 달여 간 나는 수납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휴일이 아닌 날은 출근을 해야 하니 때로는 퇴근하고 나서 한 군데를 시작하다 보면 거의 새벽 서너 시가 될 때도 있었다. 수납에 필요한 마땅한 용품이 없거나, 다음 날 회사 일이 걱정되어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겨우 멈추는 적도 많았다. 정리해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나름 신이 나서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누가 시킨다고 그런 일이 그리 재미있을까?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해결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수납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한 수납은 내가 일하면서 살림하는 긴 세월 동안 편하게 집안일을 하게 해주고, 시간도 절약해 주는 것으로 정직하게 보답한다.
나는 출근하기 전 바쁜 와중에도 반드시 집 안의 모든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고 정리한 후 나가는 습관이 있다. 그래야 출근한 뒤에도 마음이 편하고, 또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 준비를 할 때도 수월하며 혹 저녁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은 더욱 편안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눈에 보이는 물건이나 서랍과 붙박이장 안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물건들, 하다못해 액세서리나 화장품 같은 것들도 잘 정리되어 있으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모든 물건들을 잘 정리한 뒤에는 쓰고 난 물건을 항상 제자리에 다시 두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수납은 집 꾸미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수납에도 계획이 필요하다
26년간 내가 했던 일은 항상 디스플레이와 큰 연관이 있었다. 디스플레이는 우선 고객들의 눈에 띄도록 멋지게 꾸미는 것이 기본이다. 그 밖에도 많은 제품들을 색상이나 스타일, 사이즈별로 잘 구분해서 매장에 진열해야 하고 창고에도 여분의 물건을 잘 정리해 두어야 필요할 때 빠른 시간 안에 찾을 수 있다.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시즌이 지나 재고를 파악하다 보면 아쉽게 남은 제품들이 발견되곤 한다. 매장에서 좋은 디스플레이를 위해 집기들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처럼 집 수납에도 계획이 필요하고, 계획에 따른 수납용품들이 준비되어야 한다.
처음에 이사해서 제대로 수납을 마치기까지 거의 한 달이 걸린 이유는 원래 뭔가를 하면 끝을 보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하는 수납용품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원하는 수납용품들을 사기 위해서 온 마트와 인터넷을 뒤진 시간을 생각하면 한 달 걸려 수납을 마친 것이 꼭 내 성격 탓은 아니리라. 어쨌든 많은 시간 들여 발품을 판 만큼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수납의 편리함을 만끽하면서 산다. 이사를 하고 가장 구하기 어려웠던 물건 중에는 괜찮은 모양의 작은 사다리도 있었다. 외국 잡지나 매장들에서는 흔히 본 것들인데 국내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조금 비슷한 것을 사서 쓰고 있는데 이유는 부엌 시스템장의 가장 윗부분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보통은 의자를 끌어다 놓고 물건을 꺼내 쓰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때 튼튼하고 접기 쉽고, 펼쳐놓아도 예쁜 작은 사다리가 있다면 부엌장 맨 위칸도 쓸모 있는 수납공간이 된다. 살림을 잘 알고, 사는 사람을 생각한다면 아파트를 지을 때 작고 예쁜 사다리를 손 닿기 쉬운 곳 한쪽 벽에 붙여놓아 주부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텐데…….
똑똑한 수납의 기술
깔끔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여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망이다. 주부들에게 집을 새로 장만할 때 가장 바라는 점을 물으면 대부분 수납공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을 한다. 이는 수납공간이 적어서 정리를 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이 그 정도로 많은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무엇보다 밖으로 드러내어 장식하고 싶은 물건과 가리거나 숨겨야 할 물건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들이에 초대받아 가보면 선물로 받은 세제와 두루마리 휴지들이 집 안에 넘쳐난다. 때로는 공간이 남는 곳을 찾다 현관에 쌓아두는 경우도 있다. 집 전체가 창고가 아닌 이상 최소한 휴지는 다른 수납공간을 찾아 넣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집 꾸미기도 필요 없는 물건들은 처분하고, 수납할 수 있는 것들은 적절한 장소를 찾아 모두 넣은 후 시작해야 한다. 우리 여성들도 세안과 기초화장을 한 뒤에 색조 화장을 하고, 속옷을 입은 다음 겉옷을 입고 그 후에 예쁜 액세서리를 하지 않는가? 나의 가족이 사는 집을 꾸미는 일도 이렇게 기본 순서가 있어야 한다. 제한된 공간 안에 숨기고 싶은 것을 모두 숨기려면 체계적인 수납이 필요하다.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러면서 수납공간은 좀 더 많이 확보하게 된다. 이렇게 수납을 하다 보면 처음엔 깔끔하고 편리해진 것만을 느끼지만 더 시간이 지나 생활화되면 한결 아름다워진 나의 공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