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진행 중인 '컨텐츠 리뉴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존 큐티의 구성 방식을 개정하고 있습니다. 아래 형식은 확정된 것이 아니며, 더 나은 방향을 계속 모색하고 있습니다. ]
죄의 본질과 과녁의 비유
죄의 뜻은 ‘과녁을 빗나가다’라고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죄’를 뜻하는 헬라어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쓰인 것이 ‘하마르티아’이며 그 단어의 뜻이 ‘과녁을 빗나가다’입니다. 제가 처음 이 정의를 들었을 때, ‘내가 무슨 양궁선수도 아니고 과녁을 빗나갔다고 죄라니?’라는 생각이 들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과녁을 빗나갔다’라는 것은 ‘과녁의 정중앙을 맞추지 못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목표물이 있는데 그것을 맞추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목표가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과녁의 정중앙, 즉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나를 향해 최선의 것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는 과녁의 정중앙을 빗나간 것을 뜻하는데, 로마서 3장 23절은 죄 때문에 이르지 못한 과녁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죄란 하나님의 영광을 제외한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의 모든 것은 과녁의 정중앙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상태였습니다. 에덴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가지셨던 뜻이자 그들에게 주신 최선이었습니다. 실제로 에덴의 뜻은 ‘기쁨’이며, 영어로는 joy가 아니라 pleasure로, ‘쾌락’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이므로 부정적 의미의 쾌락이 아니라,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로서 기쁨보다는 즐거움에 가까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류에게 주신 것이자 과녁의 정중앙, 목표의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벗어난 모든 것이 곧 ‘하마르티아’, 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삶
은혜를 깨닫고 난 뒤에도 여전히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볼 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살 필요가 없는데. 더 좋은 것을 누리면서,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그런데 제가 이런 내색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상대는 대부분 상처를 받습니다. 마음 깊이 더 나아질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왜 이렇게 사십니까, 더 큰 일에 부르심을 받으셨는데”라고 하면 그것을 정죄와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계획은 너무나 크고 무궁무진한데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그냥저냥 만족하며 살거나 겪지 않아도 되는 문제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죄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신 계획,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최선에서 벗어난 모든 것입니다. 그 안에서 안주하든, 괴로워하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아버지 하나님은 긍휼을 가지시고 그 긍휼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를 계속 하나님의 최선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런 나를 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용서와 사랑, 긍휼로 대하시다니! 저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 더 가까이 가서 그분을 알고 싶다!”
이렇게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아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최선에 더 가까운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최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적하실 때, 우리가 가진 사전으로 죄를 해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지신 사전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볼 때 그 지적은 정죄가 아니라 더 좋은 것으로의 초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자녀야,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 더 좋은 것이 준비되어 있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적하실 때(죄의 진짜 뜻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죄감을 느끼며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라고 반응한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그 죄 가운데서 괴로워하는 우리를 향해 긍휼로 가득 차십니다. 그래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에서 말하는 ‘그렇게’, 즉 죄의 비참함이 클수록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은혜는 더욱 큽니다.
이것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그렇다면 “죄가 더하면 은혜가 더하니 죄 가운데 머물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죄가 더한 곳에 풍성히 부어지는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최선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이지, 죄의 비참함 속에 계속 머물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순한 죄 고백이 아닙니다.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선하고 좋은 것이구나. 나는 여기서 돌이켜 그곳으로 간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시는 긍휼이 점점 더 줄어드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를 향한 하나님의 뜻, 저에게 준비하신 최선에 점점 더 가까워져서, 그 거리가 멀수록 커지는 하나님의 긍휼이 점점 더 작아져도 되는 삶, 저는 그 삶을 선택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적용
1. 죄가 하나님의 영광 외의 모든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다는 말씀이 내 삶에 어떤 의미로 확장되는지 묵상해 보세요.
2. 죄와 하나님의 영광을 더 깊이 이해한 상태에서,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이 어떻게 다가옵니까?
오늘의 선포
나는 하나님의 영광 외의 모든 것에서 구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