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시 사이에 서다
여름이 깊어지면 꽃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계절을 증명한다. 봄꽃처럼 서둘러 피었다가 짧게 떠나는 꽃이 있는가 하면,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견디며 오래 피어 있는 꽃도 있다. 배롱나무꽃이 그렇다. 한여름의 열기 속에서도 가지마다 붉은 꽃을 매달고 백일 가까이 피고 또 피어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꽃을 백일홍이라 불렀다.
그날도 배롱나무는 한창이었다. 짙은 초록 잎 사이로 진분홍 꽃송이들이 구름처럼 피어 있었다. 한 송이가 아니라 수많은 꽃이 모여 하나의 붉은 물결을 이루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가느다란 가지가 흔들렸고, 햇살은 꽃잎 사이를 들락거리며 여름의 시간을 반짝이게 했다.
그 아래에 섰다. 붉은 한복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올렸다. 머리에는 작은 장식을 꽂고 옷고름을 여몄다. 거울 앞에서는 조금 화려한가 싶었던 붉은빛이 꽃나무 아래에 서자 뜻밖에도 자연스러웠다. 꽃과 옷의 색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한 풍경 속으로 스며들었다. 손을 내밀어 배롱나무 가지를 가만히 잡았다. 꽃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토록 강렬한 붉은빛을 품고 있으면서도 꽃잎은 얇고 부드러웠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렸다. 강렬함과 여림이 한 몸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사람도 그러하지 않을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살아가지만 마음 한쪽에는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여린 꽃잎 몇 장을 품고 있다. 견디는 동안 단단해졌지만, 단단해졌다고 해서 여린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작은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이고,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앞에서도 오래 머물게 된다.
배롱나무 곁에는 시비가 서 있었다. 검은 돌 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돌은 말이 없었지만 그 위의 글은 오랜 시간을 건너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가 남긴 몇 줄의 문장은 꽃과 바람을 만나 다시 읽힌다. 문득 꽃과 시는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은 향기로 기억되고 시는 언어로 기억된다. 꽃은 피었다 지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남고, 시인은 떠나도 그가 남긴 문장은 또 다른 사람의 가슴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쓴다는 것도 꽃을 피우는 일과 닮았다.
한 편의 글이 태어나기까지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계절이 여러 번 지나간다. 어떤 문장은 오래 묵혀야 나오고, 어떤 이야기는 너무 아파서 쉽게 꺼낼 수 없다. 마음속에서 몇 해를 돌고 돌아 어느 날 비로소 한 줄의 문장이 되어 밖으로 나온다. 처음 글을 쓰던 때에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었다. 아름다운 표현을 찾았고 남들이 감탄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오래 쓰다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아름다운 문장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 싶어졌다.
잘 쓴 글보다 따뜻한 글, 읽고 난 뒤 누군가의 마음 한쪽에 조용히 머무는 글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하루를 보낸 사람이 내 글 한 줄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꽃도 그렇다. 배롱나무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지나가는 사람이 사진을 찍든 그냥 지나치든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의 때가 오면 피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때가 되면 꽃잎을 내려놓는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아름답다. 사람은 때때로 너무 많은 것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뒤처진 것은 아닐까, 지금 이 길이 맞는 것일까.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다른 사람의 눈을 빌려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정작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꽃은 남의 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배롱나무는 장미가 되려고 하지 않고 연꽃은 국화의 계절을 탐내지 않는다.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빛깔로 피어난다.
사람에게도 자기만의 빛깔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노래로 마음을 전하고, 누군가는 그림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누군가는 음식을 만들어 사람을 위로하고, 누군가는 묵묵히 밭을 일구며 계절을 살아낸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세상은 언제나 한 권의 책이다.
시장 골목의 상인에게서 삶을 읽고, 오래된 나무에서 세월을 읽는다. 길가에 핀 민들레에서도 이야기를 발견하고, 비 오는 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에서도 문장을 건져 올린다. 그래서 글을 쓴 뒤부터 세상을 조금 천천히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꽃 앞에서 멈추고, 오래된 돌담의 갈라진 틈을 들여다보게 된다. 새 한 마리가 물가에 서 있는 모습에도 눈길이 머문다. 세상에 아무 의미 없이 존재하는 풍경은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저마다 한 편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배롱나무도 그랬다. 꽃이 한꺼번에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핀 꽃이 지면 다른 꽃이 이어서 피어난다. 지고 피기를 거듭하며 나무 전체가 오랫동안 꽃을 품는다. 그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한 사람이 평생 빛나는 순간만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다. 잘되는 날이 있으면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날도 찾아온다.
하지만 한 송이가 졌다고 나무의 꽃이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늘 하나의 꿈이 저물었다면 내일 다른 꿈이 피어날 수 있다. 한 길이 막혔다고 삶 전체가 막힌 것도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피고 지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젊음이라는 꽃이 지나간 자리에는 또 다른 꽃이 핀다. 예전에는 나이가 든다는 것을 무언가를 잃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세월은 얼굴에 흔적을 남기는 대신 마음에 깊이를 준다. 빨리 걷는 힘을 조금 가져가는 대신 천천히 바라보는 눈을 준다.
젊은 날에는 꽃만 보였다면 이제는 꽃을 피운 나무가 보인다. 땅속의 뿌리를 생각하고, 수많은 비바람을 견딘 가지를 바라본다. 아름다움의 뒤편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웃음 뒤에는 그가 지나온 수많은 날이 있다. 눈물도 있었을 것이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시간을 건너 오늘 웃고 있다면 그 웃음은 젊은 날의 웃음과는 다른 빛을 가진다.
나는 꽃나무 아래에서 웃었다. 기뻤던 날도, 힘들었던 날도, 글 한 줄을 붙잡고 밤을 지새웠던 순간도 모두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글은 늘 삶보다 한 걸음 늦게 왔다. 먼저 살아내고 나서야 문장이 되었다. 아픔도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글이 되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마음이 가라앉은 뒤에야 비로소 한 문장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글쓰기는 기억을 다시 살아보는 일이면서 동시에 지나온 삶과 화해하는 일이기도 했다. 쓰면서 이해했고, 쓰면서 놓아주었다. 그렇게 한 편씩 쌓인 글은 내 삶의 작은 나이테가 되었다.
배롱나무 가지가 다시 흔들렸다. 꽃잎 몇 장이 바람에 날렸다. 어떤 꽃잎은 시비 위에 내려앉고, 어떤 꽃잎은 풀밭으로 떨어졌다. 시비 위에 내려앉은 붉은 꽃잎을 바라보았다. 돌 위에는 오래 남을 문장이 있고 그 위에는 곧 사라질 꽃잎이 있었다. 하나는 오래 남고 하나는 금세 사라질 것 같지만,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른다. 돌에 새긴 글도 읽는 사람이 없다면 침묵할 것이고, 한순간 떨어진 꽃잎도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다면 오래 살아 있을 것이다. 결국 무엇이 오래 남는지는 시간만이 결정하지 않는다. 마음이 기억하는 것이 오래 남는다.
사람도 언젠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름도 얼굴도 흐려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 힘들 때 내밀었던 손, 함께 웃었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글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내 이름보다 문장 하나가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어느 날 우연히 한 편의 글을 읽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만났다고 느낀다면, 그래서 잠시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그것이면 충분하겠다.
해가 조금 기울었다. 배롱나무꽃의 붉은빛이 한층 깊어졌다. 한복 자락에도 오후 햇살이 머물렀다. 꽃과 사람과 시비가 한 풍경 안에서 잠시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꽃을 바라보았다. 배롱나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 침묵 속에서 한마디가 들리는 듯했다. 피어 있는 동안 너의 빛깔로 살아가라고.
남보다 화려할 필요도 없고, 남보다 오래 피어 있을 필요도 없다. 자신의 계절이 왔을 때 자신의 꽃을 피우면 된다고.
시도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 대신 써 줄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언어로 피워내는 일.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삶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우리는 저마다 한 번뿐인 자신의 문장을 써 내려간다. 때로는 지우고 다시 쓰고, 문장이 막혀 오래 멈춰 서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만의 이야기를 완성해 간다.
나는 꽃과 시 사이에 오래 서 있었다. 한쪽에는 피었다 지는 생명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돌에 새겨진 언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문득 알 것 같았다. 꽃은 져도 피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 않고, 사람은 떠나도 사랑했던 시간이 없어지지 않는다. 글 또한 책장을 덮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건너가 또 다른 생각과 기억을 피워낸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꽃을 보고, 글을 쓰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 모른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다해 피어나기 위해. 배롱나무에서 꽃잎 하나가 천천히 내려왔다. 나는 손을 펴 그 작은 붉음을 받아 보았다. 한없이 가벼운 꽃잎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한 계절이 온전히 손바닥 위에 내려앉은 듯했다.
꽃과 시 사이에 서 보니 알겠다. 삶이란 오래 남기 위해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피어 있는 오늘을 온전히 살아냄으로써 오래 남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