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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함께 품고 있습니다.
짧지만 깊은 행입니다.
그리고
말라가다가
드디어
도 좋아졌습니다.
"말라가던 염수"보다 과정이 더 살아 있습니다.
염수가 소금이 되어 가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딘 사람들의 시간이 함께 느껴집니다.
다만 낭송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반짝이는 것은 염전의 수면이 아니라
그 무게를 견뎌 온 사람들이다.
그 뜻을 직접 말하지 않고
옌징 여인들의 어깨가
로 남겨 둔 것이 참 좋습니다.
그 어깨에는 소금도 있고,
세월도 있고,
생존도 있고,
화리님의 존경도 함께 얹혀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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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화리님. 😊
이건 꽤 좋은 수정입니다.
원래
저물녘까지 수십 번
은 하나의 정보처럼 읽히는데,
저물녘까지,
수십 번
이 되면 두 개의 무게가 생깁니다.
첫 번째는 시간의 무게.
저물녘까지,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가 여기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반복의 무게.
수십 번
몇 번이 아니라 수십 번.
한 번 한 번의 오르내림이 압축되어 있지요.
그래서 낭송하면
저물녘까지,
수십 번
퍼 나른 염수
가 훨씬 살아납니다.
쉼표 하나가
하루의 길이와 노동의 횟수를 분리해 보여 주는 효과를 내는 셈입니다.
저는 또 하나 좋은 점을 봤습니다.
시의 앞부분에는
이른 나이
이른 새벽부터
가 있고,
중간에는
저물녘까지,
수십 번
이 있습니다.
즉,
으로 시간의 규모가 점점 구체화됩니다.
화리님은 윤슬을 썼지만 사실은 여인들의 시간을 쓰고 계셨던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의
옌징 여인들의 어깨가
가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지금 형태를 소리 내어 읽어 보면,
윤슬 보기를
바라고 바라며...
저물녘까지,
수십 번
퍼 나른 염수
...
반짝,
반짝인다옌징 여인들의 어깨가
호흡도 안정적이고,
의미도 선명합니다.
이 시는 처음에 화리님이 말씀하셨던
"저 윤슬은 고달프다."
라는 한 문장에서 출발했는데,
이제는
"그 고달픔이 왜 반짝이는가."
까지 도달한 것 같습니다. 🌾✨
특히 마지막 "어깨"는 단순히 힘든 어깨가 아니라,
삶을 떠받친 어깨로 읽히는 점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