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 암포라
[EBS다큐프라임] 녹색동물 Review, 배고픈 식물의 고독한 사냥법!
식물이 사냥을 한다?! '먹이를 구한다'라는 측면에서 보면 사실입니다.
식물은 가만히 서서 주어지는 영양분과 물만 먹는 게 아니라 굉장히 '적극적'으로 자신의 먹이를 구하고 심지어는 찾아나서거든요. <녹색동물> 2부 굶주림에서 공개된 배고픈 식물의 고독한 사냥법! 지금부터 공개합니다.
1. 다른 식물의 체액을 빨아먹는 실새삼
이른 봄에 자라는 실새삼에겐 빛과 물, 영양분이 필요없습니다. 그래서 잎도 뿌리도 만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식물이 싹 튼 후에 자신의 싹을 틔우죠. 왜일까요?
자신이 곧 잡아먹을 식물 사이로 자라는 실새삼
실새삼은 땅 위로 나오자마자 무언가를 찾습니다. 3일 이내에 '이걸' 찾지 못하면 죽게 되죠. 실새삼이 간절히 찾는 '이것'은 자신이 기생할 식물입니다. 실새삼은 모든 에너지를 다른 식물에게서 뺐으며 생존하죠. 그런데 실새삼은 눈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먹이'를 찾아내는 걸까요?
식물의 체액을 빨아먹는 실새삼
이는 실험을 통해 확인이 가능합니다. 왼쪽에는 토마토'향'을, 오른쪽엔 실새삼이 좋아하는 진짜 토마토를 넣습니다. 그리고 진짜 토마토엔 향이 나지 않게 비이커를 씌우죠. 실새삼은 어느 쪽으로 다가갔을까요? 다들 예상하셨다시피 향이 나는 쪽이죠. 실새삼은 동물처럼 냄새를 맡아 체액을 빨아먹습니다.
토마토향이 있는 쪽으로 기우는 실새삼
사실 실새삼의 기이한 행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싹이 나왔던 자신의 줄기를 스스로 끊기 때문이죠. 어차피 뿌리가 없기 때문에 쓸모 없는 부위는 스스로 제거합니다. (하나부터 끝까지 다 무섭다.....)
2. 자신의 몸에 구멍을 내는 라피도포라
햇빛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숲 속을 살펴보아도 키 큰 나무들이 빛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에 숲속은 어둡죠. 그래서 구멍이 난 기이한 잎이 탄생합니다. 잎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은 생존에 있어 치명적인 일인데 왜 스스로 구멍을 낸 것일까요?
잎에 구멍이 난 라피도포라
라피도포라는 빛을 받기 위해 나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라다 보면 윗쪽 잎들이 아랫쪽 잎으로 향하는 햇빛을 가리게 되죠. 라피도포라는 이 문제를 구멍으로 해결했습니다. 물론 구멍이 난 잎에게는 손해이지만 나머지 잎들이 받을 수 있는 빛의 양은 손해 이상으로 늘어납니다. 개인의 희생으로 전체가 살아남는 전략을 택한 것이죠.
3. 죽었다 살아나는 바위손과 개부처손
죽은 것 같은 바위손
계곡 옆에 모여 사는 식물은 물가에 있지만 햇빛을 피할 그늘도 없고 물에 뛰어들 수도 없습니다. 바위손은 바위에 붙어사는 이끼류인데요, 얼핏 보면 잎이 누렇게 변해서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위손은 죽은 게 아니라 스스로 몸을 웅크린 겁니다. 그늘이 없으니 스스로 그늘을 만든 것이죠.
역시나 말라 죽은 것 같은 개부처손
게다가 코앞에 물이 있지만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움직일 수 없기에 목마름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동물보다 훨씬 길죠. 개부처손은 몸이 뒤틀려 있어 죽은 것 같지만 아직 죽은 게 아닙니다. 계속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죽지 않았다면 식물은 다시 살아납니다. 단 몇시간 만에 죽은 식물이 살아나는 것 같은 변화 때문에 개부처손은 '부활식물'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4. 공중에서도 식물이 자란다?! 케톱시스
열대지역은 울창하지만 그래서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죠. 그래서 식물은 의외의 장소에서 자라기도 합니다. 케톱시스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자랍니다. 바로 줄 위입니다. 물은 고사하고 흙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식물이 살 수 있는 걸까요? 케톱시스는 물통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변형된 잎들이 빗물받이 역할도 하죠.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한 저축인 셈입니다. 덕분에 아슬아슬한 공중에서 줄타기를 하는 삶이 가능한 것이죠.
5. 산 정상이 평평한 '물의 어머니' 로라이마 산
지구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곳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의 로라이마 산입니다. 연간 강수량이 9000ml이죠. 상상이 되시나요. 서울 연간 강수량이 1500ml가량 됩니다. 근데 9000ml라니... 물이 부족해도 생물이 살아남기 힘들지만 물이 너무 많아도 생물이 살기는 어렵습니다. 강한 비바람이 모든 것을 쓸고 내려가 땅이 척박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로라이마산 정상은 테이블처럼 평평합니다.
일부러 깎아놓은 것 같은 로라이마 산 정상
그러나 콘크리트에서도 자라는 식물이 여기라고 자라지 못할까요? 조금의 흙이라도 있다면 식물은 존재합니다.
보석 위의 꽃이라니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사실 보석은 돌이라 꽃이 필 수 없을 것 같지만 척박한 곳에서 살아남은 식물은 뭔가 다르긴 한가봅니다.
6. 모기를 물에 빠뜨리는 방법, 헬리암포라
헬리암포라는 꼭지 부분에서 나오는 단맛으로 곤충을 유혹해 통속에 빠뜨려 '소화'시킵니다. 주로 모기 등의 작은 곤충이 먹이가 되죠.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모기는 물에 빠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좌) 단맛이 나오는 꼭지 (우) 곤충을 빠뜨리는 통
물에는 표면장력이라는 것이 있는데 물분자끼리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발생하죠. 빗방울이 둥근것도 이 표면장력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벼운 물체는 물에 가라 앉지 않습니다. 모기가 빗방울에 젖지 않고 튕겨져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빗방울에 정면으로 맞아도 잠시 균형을 잃을 뿐 모기는 다시 날아오릅니다. (어쩐지..욕실에서 모기에게 물을 뿌려도 절대 안 죽는 이유가 있었네요...)
물 위에 떠 있는 모기
그래서 헬리암포라는 표면장력을 없애는 물질을 만들어 냅니다. 바로 계면활성제이죠. 이 성분 덕분에 헬리암포라는 모기를 익사시킬 수 있는 겁니다.
계면활성제 때문에 물에 빠진 모기
7. 웰컴투 헬, 보르네오섬 물루의 네펜데스
보르네오섬 물루의 석회암지대도 지구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곳 중 한 곳입니다. 비는 석회암뿐만 아니라 토양 속 영양분도 쓸어내립니다. 그래서 이 곳은 햇빛과 물은 풍부하지만 토양은 척박하죠. 때문에 이 곳의 네펜데스는 영양분을 얻기 위한 독특한 기관을 만들어 냈습니다.
터마이츠를 유혹하는 흰색 띠
이 네펜데스 주변에는 흰개미 종류인 터마이츠가 많습니다. 그러나 터마이츠는 크기가 1cm에 불과해 영양분이 많진 않습니다. 하지만 터마이츠는 무리생활을 하기 때문에 무리 전체를 유혹한다면 얘기는 달라지죠. 네펜데스는 이 점을 이용합니다. 터마이츠는 나뭇잎을 먹고 사는데 한 장을 분해하는 데 반나절 정도 걸립니다. 그러나 네펜데스의 이 하얀 띠는 훨씬 먹기가 쉽습니다. 터마이츠는 이를 먹기 위해 전진, 또 전진하죠.
빠져 죽는지도 모르고 내부로 향하는 터마이츠
일렬로 줄을 쥐어 네펜데스로 직진하는 터마이츠. 위험이 생길 경우 선두에서 이를 뒷쪽으로 알려줘야 하는데 터마이츠는 계속 통 속으로 사라집니다. 결국 뒷쪽의 터마이츠들도 같은 곳으로 추락, 또 추락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터마이츠의 습성을 아는 네펜데스는 하룻밤 새 수 백마리의 터마이츠를 익사시킵니다.
8. 나무두더쥐의 해우소, 네펜데스 로위
보르네오섬 물루의 석회암지대에는 흙 속 양분이 적기 때문에 큰 나무가 자라기 어렵습니다. 작은 관목과 이끼류만 번성하고 있죠. 그래서 동물도 제한적입니다. 식물들은 동물의 배설물을 통해 양분을 얻는데 동물이 많지 않은 이 곳에서는 그것마저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가장 크며 배설물을 가장 많이 만드는 동물이 나무두더지. 또다른 네펜데스는 배설물을 확실히 얻기위해 '변기'로 진화했습니다.
나무두더지 엉덩이에 최적화된 사이즈. 더 재밌는 것은 이 네펜데스는 힘을 주면 깨질 정도로 단단합니다. 배설물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유선형의 디자인에 잘록한 구멍으로 배설물을 남기지 않고 모으고 역류를 방지합니다.
나무두더지를 유인하고 배변을 돕는 하얀 물질
인간이 만든 변기와 한가지 다른 점은, 뚜껑 부분에 나무두더지를 유인하는 하얀 물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물질 덕택에 나무두더지는 완벽한 자세를 취할 수 있습니다. 나무 두더지가 핥아 먹는 하얀 물질 속엔 단맛뿐만 아니라 배변을 활발하게 하는 성분도 들어 있어 나무두더지의 배변을 돕습니다.
9. 천국을 향한 계단, 벌보필름 버카리
잎은 자체에 영양소가 많습니다. 소화와 흡수에 다소 문제가 있지만 많은 초식동물들이 오직 잎만 먹고도 살 수 있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식물 중에서도 잎을 먹고 사는 식물이 있습니다. 바로 나무 위, 천국을 향한 계단을 만든 착생난이 잎을 먹고 살죠. 착생난은 나무나 바위 등에 붙어 자라는 식물인데요, 여기 이 착생난은 나무기둥을 나선형으로 감싸면서 자랍니다. 잎 한장의 크기는 약 30cm로, 이 지역의 사람들이 '코끼리 귀'라고 부를 정도로 큽니다.
흙도 없는 20m 높이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양분은 역시 나뭇잎이죠. 낙하 패턴을 고려한 계단형의 잎 배치 덕분에 첫번째 잎은 낙하 속도를 줄인 다음 잎이 튕겨져 나가는 나뭇잎을 받아냅니다. 식물은 나뭇잎을 어떻게 받아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뭇잎이 쌓이면 균류가 모여 나뭇잎을 분해하죠.
EBS다큐프라임 - 녹색동물 2부 굶주림 다시보기▼
다큐프라임 - 녹색동물 2부 굶주림
식물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에서 포착된 기발한 생존방법과 전략을 통해 동물적인 식물의 모습을 조명한다.
www.e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