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원(還元)
환원의 사전적 의미는 ‘본디 상태로 되돌아감’이며 과학적 의미는 ‘산화된 물질을 본디의 상태로 되돌리는 과정’이라고 한다. 환원은 주고받는(give-and-take) 의미로 물질이든 재화든 재능이든 취한 것을 사회로 되돌리며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환원의 의미를 잘 실천하는 나라가 복지 국가로 국민의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이다. 달포 전에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여러 나라를 다녀왔다. 그들 나라들은 행복 지수가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제 대국이면서 왜 행복 지수는 밑바닥일까 늘 궁금했었다.
그들 나라를 둘러보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회 ‘환원’ 제도였다. 국민소득의 60%를 세금으로 환수하여 그것으로 국민을 위한 사회복지 제도에 쓰이고 있음을 알았다. 자국민에게만 보장된 것이 아니라 관광객에도 환원의 의미를 베풀고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이 넘어져 팔을 다쳤다. 병원에 가서 진료하고 치료하는데 무료였음에 다들 놀라워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자기의 곳간에 채우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탈세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으니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들은 각자 재능과 소질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여 즐겁게 일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경쟁에서 치열하게 싸워 이기기 위한 교육이다. 무슨 일이든 우열을 가리고 줄 세우기를 한다. 그러하니 어찌 행복할 수 있으랴. 결국은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게 되어 불행할 수밖에 없으리라.
환원의 의미를 가르쳐주신 분이 전직 학교의 교장 신부님이었다. 그분은 가톨릭 사명으로 시골에 학교를 세우시고 교사(校舍)의 한 모퉁이에 거처를 마련하여 검소하게 사셨다. 구두가 너덜너덜한데도 덜덜거리며 신고 다니셨다. 그러면서 학생을 위한 일이라면 아낌없이 내놓으신 분이시다. 학교를 굴지의 명문 학교로 발돋움한 공로로 경향신문 1회 ‘사도대상’을 받으셨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직장생활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그때는 경쟁의식에 삶의 여유가 없었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며 직분 상승을 해야 하고, 다른 반 아이와 비교도 하여야 하니 말이다. 지금은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 내 삶을 스스로 설계하면서 쉬엄쉬엄 가니까 오히려 시간의 화살은 더 빠르게 가는 것 같다.
경쟁이 없고 여유가 있으니 뒤돌아볼 기회도 생긴다. 앞다투어 가는 것이 아니라 뒤도 돌아볼 여유, 즉 환원의 의미를 실천할 수 있다. 물질적 가치를 초월하여 정신적 영적 가치에 의미를 두며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는 일에 마음이 쏠리고 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 25) 이 말씀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환원하지 않음을 탓하는 말씀이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이웃을 위해 내놓는 것이 우리가 행복으로 가는 구원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