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5일 묵상 본문 : 사도행전 7장 51절 - 8장 1절 - 온전한 관계를 세우는 복음의 능력으로 참 만족과 평안, 기쁨과 담대함을 전하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밤새 비가 오고 이제는 낮에 폭염이 예상되는 일기를 맞습니다.
순식간에 변화되는 날씨를 바라보며 세상의 흐름을 느낍니다.
매번 변화되는 상황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수고가 인생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안식이 없고 오직 주의 품에서만 안식이 있음을 믿습니다.
날마다 주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는 자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함을 얻게 하시고 주의 보좌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의 은혜를 힘입어 믿음의 삶을 살게 하시고 복음에 연합된 자 되게 하옵소서.
육신의 연약함으로 부르짖는 주의 자녀들을 기억하사 강건함으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1 사울은 그가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본문 해설
자신이 하고자 했던 변론이 끝난 스데반은 당시 자기를 재판하고 있던 유대 지도자들을 향해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악에 대해서 지적한다.
스데반은 그들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선포하면서 그들은 과거 그들의 조상들이 행한 것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며 행동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박해했으며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한 자들을 죽였고 현재의 백성들은 그 의인(그리스도)을 잡고 살인한 자가 되었음을 선포한다.
그리고 당시 백성들은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고 거역했음을 선포한다.
이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은 율법을 천사를 통해 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데 그러나 실제 구약에서는 천사가 아닌 모세를 통해 전달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모세는 그분의 말을 들으라고 선포했지만(신18:15,18)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을 듣지 않고 거역하며 죽이는 일에 동참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말을 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지만 오히려 스데반을 향해 이를 갈며 분함을 표출함으로써 회개가 아닌 스데반을 죽이려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이때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바라보니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있음을 선포한다.
이는 예수님이 위엄과 영광으로 하나님과 같은 영광을 누리고 있음을 의미하며 그리스도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선포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는데 이는 스데반이 하는 말을 듣지 않으려는 태도였으며 스데반의 말이 신성모독적 발언이라고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그를 예루살렘 성 밖으로 데려갔고 신성모독죄에 해당하는 형벌로 돌로 치려고 했으며 이를 위해 증인을 세우고 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게 된다.
당시 이스라엘은 사형집행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는데 이는 스데반 같은 자는 크게 알려진 자가 아니어서 로마의 관리들이 잘 알지 못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알게 되었다고 해도 당시 빌라도의 정치적 입지가 불안했기 때문에 이 일을 문제 삼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옷을 벗은 자들이 스데반을 돌로 쳤고 스데반은 부르짖으면서 주 예수여 자신의 영혼을 받아달라고 간구하고 무릎을 꿇고 자신을 죽이는 이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하며 죽는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기도했던 기도의 내용과 유사하며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누가는 그가 죽었다는 표현이 아닌 잠들었다고 표현함으로써 성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깨어 부활에 이르는 자임을 증거 한다.
이 일을 지켜본 사울은 그 일이 마땅하다고 여기게 되었고 이 일로 예루살렘 교회에는 큰 핍박이 일어나 사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도들은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으로 흩어지게 된다.
나의 묵상
기득권을 가지고 세상의 것으로 마음을 채우며 살았던 종교 지도자들은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고 있음을 지적당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들은 마음과 귀에 할례, 즉 하나님 백성의 표식이 없음을 지적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듣지 않으려고 하며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의지도 없음을 드러낸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필요하지 않은 존재이며 자신들의 생각과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패역한 인생으로 살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육신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가 진정한 주의 백성임을 제시한다.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2:28,29)
이는 성령께서 그 마음을 바꾸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지 않으면 모든 인생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아가게 되며 그 결과는 심판과 죽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 시대의 지도자들은 그들 스스로 모세의 제자(요9:28)로 여기며 율법을 지키는 일에 마음을 다했던 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율법의 의미도 모른 채 종교적 행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데반이 그들의 허점을 정곡으로 찌르자 마음에 찔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는 쪽으로 가지 않고 스데반을 죽이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이미 예수님과의 대화 가운데 나타난 모습이었으며 예수님은 그들이 결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예언적으로 선포하셨다.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요5:39~47)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알기 위한 마음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올 때가 많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마음으로 올 수도 있고 예수님도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나온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 고쳐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나 이런 반복적인 자기 필요를 채우는 신앙은 끝내 믿음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육신의 필요를 채우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진리를 알고 깨닫는 일에 목적을 두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온전한 관계를 맺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는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 하는 것도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바른 관계를 세우는 것이 되어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연구를 자기만족에 목적을 둔다.
그래서 사람의 영광을 구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으로 만족을 삼기에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지 못하면서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날 나의 삶에서도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보다 세상이 가르쳐준 교훈을 전하고 세상의 이야기로 감동을 주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살았음을 고백하게 된다.
이런 모습을 결국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길이었으며 생명이 아닌 목마름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게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알고 진리를 알 때 사람은 상황에 매이지 않는 자가 된다.
왜냐하면 변함없는 진리를 담고 있기에 방황하지 않게 되며 요동하는 상황에서도 진리를 붙잡는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비참함은 상황에 있지 않고 깨어진 관계에 있다.
그래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자는 사람과도 바른 관계를 맺는 자가 되며 그 관계 속에서 상황을 극복하고 인내하며 승리하는 모습을 가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깨어진 관계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오셨으며 사람은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를 맺음으로써 변화되는 상황에서 벗어나 참 진리를 붙잡고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스데반은 깨어진 관계를 지적하고 바른 관계를 세우도록 독려하다가 시기하는 유대지도자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도 그는 결코 흔들림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웠으며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자신을 지키시고 변호하시며 온전케 하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향해서도 예수님처럼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면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신앙의 참 기쁨은 행위에 있지 않고 바른 관계에 있다.
그래서 복음을 통해 성도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얻고 기쁨을 누리게 될 때 진정한 기쁨을 소유하며 사는 자가 된다.
그리고 그 기쁨이 있을 때 나타나는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과도 바른 관계를 맺는 능력이 되어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 모습을 가지게 된다.
이것을 모르고 살던 지난 시간은 방황과 고민이 반복되었고 기쁨이 없는 사역으로 인해 지치고 힘들며 목적을 상실한 배와 같이 표류하는 모습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그 방황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 복음이며 주와 온전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만드신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다시 한 번 고백하게 하신다.
오늘도 주의 복음을 통해 스데반이 소유하고 경험했던 평안과 기쁨을 함께 누리는 자가 될 수 있음을 고백하며 나의 삶, 그리고 지체들의 삶에 풍성하게 나타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복음을 모르고 살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아가며 갈등과 분열, 방황과 목마름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됩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그러했으며 오늘날 복음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모든 인생이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됨을 고백합니다.
그 방황과 분열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복음의 진리를 따라 주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며 살게 하심이 큰 은혜요 감사의 조건이 됨을 고백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마음에 담고 흔들리거나 방황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하시고 그 진리를 바르게 전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생각과 계획은 늘 무너지고 헛되며 관계를 깨어지게 만듭니다.
사람의 계획으로 살지 않고 복음의 은혜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께서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주의 복음을 선포하며 주의 인도하심을 다라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해 주시고 가장 좋은 길,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방황하지 않고 기쁨으로 주의 길을 가도록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