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사는 길 / 김 난 석
어느 사이버 친목회의 회원들을 따라 산행에 나서봤다. 가며 오는 산길을 따라 다정하게 나누는 인사말들이 정겹다.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는 인연들이지만 더러는 이런 산행 모임에서 만났던 모양이다. 치열한 삶의 한복판을 지나 여유를 즐기는 모습들이 넉넉해 보인다. 이웃이 있어 더 즐거워하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내가 있음을 확인하고 즐거워하는 것일 게다. 그들 옆에 나는 얼마나 오래 머물 것이며 그들은 또 내 옆에 얼마나 오래 머물 것인가?
내다볼 수 있는 분명한 것은 사이버세상은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있다는 것이요, 거기 접속하면 오늘의 회원들과 조우할 수 있다는 것일 테니 영원성은 바로 거기에 있다. 불자들은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사찰로 모여든다. 기독인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로 모여든다. 사찰이나 교회는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있을 것이요, 거기 들어서면 오늘의 불자들이나 성도들이 모여 있고 부처님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바로 영원성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자연과 우주라는 큰 울타리 안에 들어서보자. 나뭇잎이 한들거리다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고, 이듬해 다시 새싹으로 돋아난다.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는 동안 태양이 떠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 이어서 달이 떠오른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요, 거기 들여다보면 자연이나 우주는 오늘의 모습으로 우리를 반길 뿐이니 무엇이 없어졌다 무엇이 생겼다 할 것도 없다. 바로 영원성이 거기에 있는 것이요 사랑의 순환만이 있을 뿐이니 나를 거기에 얹어 놓으면 영원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 몸은 내가 아니니 나는 이 몸에 갇혀있지 않네
나는 경계 없는 생명이니 태어남도 죽음도 없다네 “
불란서의 플럼 빌리지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 베트남 스님의 말이다. 우리의 존재를 시간과 공간의 좌표로 나타내보면 어찌 될까? 시간은 수직의 좌표에서 직선을 그리며 위아래로 흐른다. 공간은 중심점에서 좌우로 번진다고 할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좌표에서 굳이 나의 좌표를 찾는다면 한 점 티끌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상하 좌우에서 유아독존이겠지만 한없는 고독도 느낄 것이요, 생성과 소멸에 따라 환희와 공포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위와 아래, 좌와 우의 연관성에서 자신의 좌표를 찾고 있음을 본다. 불가(佛家)의 연기설(緣起說)은 바로 이것이리라. 시간축으로 볼 때 나는 내가 아니라 위로는 조상이고 아래로는 후손이 될 것이요, 공간축으로 볼 때 나는 내가 아니라 나를 있게 한 물이며 불이며 공기며 흙이며 자연일 것이다. 그런 고로 이 몸은 내가 아니니 나는 그 안에 갇혀있지 않음을 보는 것이리라. 그런고로 이 몸은 경계 없는 자유자재의 드러남이니 탄생도 소멸도 없다고 하는 것이리라.
한 줄기 빗물이 꽃에 스며들면 빗물은 꽃으로 나토는 것이 되고 한 송이 낙화가 흩어져 땅에 스며들면 꽃은 대지로 나토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우린 어찌 얽혀 가없는 삶을 살아갈까? 우린 어찌 얽혀 아름다움으로 환생할까? 가며오며 걷는 산길에 떨어져 짓밟히고 있는 나뭇잎만도 아닌 새로 돋아난 나뭇잎만도 아닌 든든한 나무들의 둥치를 어루만지면서 허둥대는 카오스(chaos)가 아닌 코스모스(cosmos)의 영원한 삶을 생각해 본다.
(지난여름 백운대를 오르며)
어제는 회원들과 함께 금오산에 오르리란 약속에 따라 아침을 서둘렀다. 태풍 우쿵이 이만치 올라오고 있다는 일기예보가 있기에 등산복은 배낭에 집어넣은 채 투박한 블루 진 바지와 노타이를 걸쳐 입고 집을 나섰으니 비바람 칠 것이 뻔했기에 함께 어울려 나들이라도 해보리란 생각에서였다. 7시에 서울을 출발해 11시경에 도착한 금오산 언저리의 날씨는 가벼운 등산정도는 가능할 정도의 가는 비가 내릴 뿐이었다. 경북 구미시와 칠곡군 북삼면, 그리고 김천시 남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는 금오산. 소백산맥의 지맥에 속한 산으로 중국의 오악(五嶽) 중 하나인 숭산(崇山)에 비해 손색이 없다하여 남숭산이라 불리다가 지금은 금오산이라 불린다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다양해 와불산, 수양산, 소금강이라거나 필봉, 귀봉, 거인간, 노적봉, 운봉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운다고 한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는 빗줄기가 나뭇잎에 내려 사르륵사르륵 소리를 내는 바람에 어깨가 젖는 줄도 모르고 한참이나 오르다보니 어느새 투박한 불루 진의 바짓가랑이까지 젖어 올라 발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이젠 안전을 챙겨야 할 때라고 느껴 하산을 생각했으나 함께 정상에 오르자는 일행의 채근에 따라 무거운 걸음을 참으며 계속 오르기로 했다. 케이블카가 올려다 준 산중턱에서부터 두어 시간 넘게 오르니 해발 976미터의 정상에 다다라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이란 현판이 내걸린 처마 밑에 이르렀으니 이 문에 들어서기만 하면 동국 제일이 되는 것이던가? 산 정상에 문을 세워놓은 것도 흔한 일이 아니거니와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이라 하면 동쪽나라에서 제일가는 문이란 뜻이겠지만 그것이야 문을 세운 사람의 생각일 따름이니 나도 이게 무슨 문인지를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아야겠다.
문(門)이란 드나들거나 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시설을 말한다. 흔히는 대문, 방문, 창문 등과 같이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게 되어있으나 기념, 환영의 뜻으로 세운 독립문, 개선문, 아치(arch) 등과 같이 늘 통하게 되어있는 것도 있다.
넓은 뜻으로 사물이 출입, 경유하는 곳을 문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등용문이나 좁은문이란 것들이 그것이요, 난관을 관문(關門)이라 말하고 출세의 관문을 뚫으면 승승장구한다고도 한다. 뒷문은 집의 뒤쪽이나 옆으로 난 문을 말하지만 정당하지 못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해결하는 길을 뜻하기도 하며, 뒷문으로 입학했다거나 뒷문으로 들이민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열녀문(烈女門)은 열녀를 표창하여 세운 문을 말하며 홍살문은 능이나 묘 또는 궁전, 관아 등의 정면 입구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을 말한다.
산문(山門)이라 하면 산의 어귀를 말하거나 절 또는 절의 바깥문을 말하지만 절 안으로 들어가는 곳엔 흔히 일주문(一柱門)을 세워놓는데, 분별없는 경지에 들어간다는 의미를 전해준다. 금강문(金剛門)은 양쪽에 금강신(金剛神)을 세워놓은 절문을 말하고 사천왕문은 절을 지키는 의미에서 동서남북의 사천왕(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을 만들어 좌우에 세운 문을 말한다.
해탈문(解脫門)은 미망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방법이 되는 선정(禪定)으로 공(空), 무상(無相), 무원(無願)의 상태를 말하며 이와 달리 해탈문을 산문(産門)이라고도 하여 해산하는 여자의 음부를 말하기도 한다. 고생문(苦生門)이라면 고생을 당할 운명을 말하며 입문(入門)이라 하면 스승의 문에 들어가 제자가 됨을 말하거나 어떤 부문에 처음으로 들어감을 말한다.
삶의 마디마디에서 자신의 특별한 의지를 행동에 옮길 땐 길에 나섰다 하고 그 길에 완전히 들어서면 문에 들어섰다고도 한다. 그러기에 바른 길로 가라는 말은 바른 의지를 행동으로 바르게 옮기라는 뜻이요, 고생문이 열렸다 함은 바르지 않은 길로 들어서 난관에 봉착했음을 말한다.
돌이켜보면 지난날들의 숱한 길과 문을 거쳐 그나마도 용케 여기까지 온 셈이다. 지난날들이야 되돌릴 수도 없는 것, 이젠 어느 문으로 들어서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니 가쁜 숨조차 조용히 가라앉는다. 문일랑 거기 놔두고 어서 내려가자. 어둠이 내리기 전엔 내려가는 거다. 가서 흩어진 낙수(落穗)를 주워 모으고 검부러기나 날려 보내야 하겠다.(2006년 8월 20일)
어느 글벗으로부터 안부 전화를 받았다. 요즘 왜 움직임이 없느냐는 거다. 그래서 목하 치아 임플란트 시술 중이라 했지만, 이제 이 나이쯤 되면 으레 겪는 고통이다.
그래도 카페의 여기저기 글은 골고루 읽고 즐기고 있다. 우리 카페 초창기에 운영자를 해봤기에 카페의 게시판을 모두 둘러보게 마련인데, 그러다가 글이 없는 게시판엔 무엇이든 글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다행히 수필방은 글이 끊이지 않기에 읽기만 하고 지나가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
어느 회원의 금오산 등정기를 읽었다. 52년 생이면 이제 75세인데 적은 나이도 아니면서 그 높고 험한 산을 올랐던 모양인데,. 나는 64세에 올랐었지만 그때도 참 어려웠던 기억이다. 이젠 스스로 낮추어 오르리라 하니 그래야 맞는 것 같다.
산에 오르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카페생활하는 것도 함께 손잡고 가기도 하고 앞뒤로 서서 가기도 하고 좀 떨어져서 가기도 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라면 어떤 형태이든 교감과 공감대가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위 회원과 긴 시간차로 금오산에 올랐지만 나의 금오산 등정기를 위에 꺼내봤다. 이렇게 육신으로 마음으로 기억으로 영원을 사는 거다.
첫댓글 석촌선배님 오랜만에 글을 올리셨네요. 연만한 연세에도 아직 산을 오르신다니 참으로 건강이 대단하십니다. 그동안 건강관리를 잘 하셨다는 반증이네요. 깊은 사유의 글 잘 읽었습니다 ㅡ
고맙습니다.
좋은 글 , 잘 읽었습니다
석촌님은 임플란트 시술중이라는 글을 읽었었는데 ~~ㅎ
시술 잘 받으시고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빌겠습니다ㅎ
그랬나요?
몇해전에 해외여행하고 돌아오니
이 네개가 빠지데요.
그게 1차였죠.
이번엔 세개가 빠져서 시술 중인데
아파도 자기 치아로 지내라는 사람도 있고
일찍 임플란트 하라는 사람도 있는데
어떤게 맞는지 모르겠데요.
@석촌 이빨은 흔들리고 아프면 결국 빼야 됩디다 충성
@태평성대 맞아요, 그러면서 살아가는 거지요.
언덕저편님으로부터 안부를 들었는데 고생이 많으시지요. 저는 작년에 6개월 걸려 어금니 두 개를 임플란트 했었는데 식생활 불편이 컸었습니다. 힘드셔도 애써 골고루 잘 잡수시고 기운 잃지 마세요.
금오산은 제 본관인 선산 가까이라 친숙한 산이랍니다.
대구나 금오산이나 거기서 거기이니
추억이 많겠지요.
더구나 선산 가까이라니 생각이 많이 나겠어요.
석촌님은 영원한 카페회원입니다.
어느 분의 금오산 등정 이야기를 읽자,
석촌님께서 어제 금오산 등산을 했다는 내용이
마치 함께 한 것처럼 헷갈리게 합니다.
18년 전의 이야기를 마치 어제처럼...
치아를 인플란트로 교체 하신다고
놀고 지낼 분은 아니지요.
석촌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렇게 찾아대는 분들이 있으니
석촌님은 행복한 나들이를 하시는 것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들이 많이 하셔요.^^
한밤 자고 나니 통증은 가라앉았네요.
안부를 물어주니 고맙지요.
그래서 글로 화답해봤네요.
사실 아픈 거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지만
좋은 척 하면서 살아가야겠지요.ㅎ
수필집
본문글 잘읽고 갑니다.
순간에서
영원으로
모든 종교는 포괄적으로 사랑이다
Jesus Christ
맞아요, 사랑이요 관심이지요.
고맙습니다.
@석촌
()형님.건행하시길 바래요
예전 양띠방 모임서 한두번 뵙지요 .
요즘은 한그루의 사과나무가 임플란트지 싶어요...
모쪼록 건강 잘 챙기시길 기원드립니다.
그런가요...?
그렇기도 하겠네요.ㅎ
그런데 사고는 미리 예방해야겠지만
자연소멸은 어쩔수 없어요.
안부 물어주는 사람이 많으니 석촌님은 잘 살은 분입니다.
건강 하셔서 자주 글 올려 주세요.
그런가요?
카페 덕분일 겁니다.ㅎ
임프란트?
이게 쉬운일이 아닙니다
아프고 귀찮구 힘듭니다
빠른 쾌유를 빕니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그거 이야기하면 누구나 자유스러울 사람은 드물겁니다.
그래도 잘 괸리해나가야겠지요.
석촌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임플란트 시술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지요.
제 남편도 이태전에 대대적인 공사를 했는데
기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들고ㅎ 고생
많이 했어요.
저도 죽 끓여대기 바빴구요.
시술 잘 받으시고 새해엔 더욱 건강하셔
건필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부군이 선배되신다는 뜻이겠네요.
그걸 거울 삼아서 해솔정님은 관리를 더 잘 해보세요.
이빨치료.참 힘든겁니다. 두렵구요. 먹지도 잘 못하구요. 몇달간 잘 참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지요 뭐.
정기일요산행방에서 원정산행으로 저번 주
금오산행이 있었어요.
선배님은 2006년도에 다녀오셨네요.
역시 관념적 사고가 깊은 선배님의
산행기를 읽고나니 고수님같다는
생각이 넘나 많이 들어서요.
부럽기도하고 그런데요.
사람마다 자신의 고유의 색깔은 있는거죠
선배님^^
맞아요.
하늘은 푸르고
땅은 누렇듯
저마다 색깔이 있지요.
나무랑 님은 푸릇푸릇
봄날의 새순 색이라 할까요?
그런데 손주가 보는 할머니 나무랑님은
빨갛고 말랑말랑하게 익은 감 색깔이라 할겁니다.ㅎ
영원을 사는 길 읽으면서
석촌 선배님의 건강하심을 알고 갑니다
1월도 막바지이네요
더욱 건강하시어
행복한 병오 년 보내시길 기원 드립니다
네에.고마워요.
저도 전문을 정독했습니다.
비범하신 사유로 영원이 사는 길에 대한 소감을 설파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치아가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아무쪼록 시술 잘 받으시고 건치로 백세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그러지말고
가끔이라도
글 하나씩 선물 하셔.
길가의 돌맹이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네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