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되었다.
5월 중순에 문재인 대통령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내었으니 대략 2주가 지났다. 지난 시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을 최고정책결정자인 대통령의 관점에서 회고해보고 그 회한을 직접 대담 형식으로 기록하는 것은 예전에 없었던 일이기에 그 자체로 평가 받길 바랬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외교한 것을 심하게 비난 받고 있다. 이런 죽비도 없을 것이다.
나는 “건강한” 토론의 기회가 있길 바랬다. 그건 헛된 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물고 뜯었다. 개중에는 원문을 읽지 않고, 대통령을 북한의 대변인이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다. 원문을 읽지도 않은 만큼 그들의 비난은 한마디로 무식했다. 무식. 얼마나 사람을 용감하고 무모하게 하는 말이던가.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의 회고록과 비교하며 대통령의 회고를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건 차라리 앞 부류의 사람들 보다 정성을 들였고, 치밀하였다. 문제는 미국인들의 회고를 마치 정답인 것처럼 제시하며 대통령의 회고를 거짓이거나 허풍으로 깍아내렸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회고와 미국 장관급 인사들이나 그 이하의 사람들의 회고를 더 신뢰하는 듯한 모습을 보니, 객관성은 없었다. 이쯤되면, 그들에게 “문재인” 자체가 부정하고 싶은 존재는 아니겠는가 싶다. 아니면, 미국 사람들 말이라면 일단 믿고 보는 그들의 습성인가. 슬프다.
이제 우리는 하늘을 보면서 북한의 오물풍선이 우리동네에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이제는 똥과 오물이 가득담긴 북한발 풍선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진짜 평화인가? 웃프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했던 평화는 가짜였던가?
그 때는 이렇게 유치한 것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북한을 관여하고 압박하여 협상장에 머물게 하는 방법과 미국이 그 궤도에 머물게 하는 방법을 걱정하였고 많은 부분은 실행에 옮겼다. 비무장지대에 양측의 감시초소를 없애기 시작했고, 판문점에서 양측 병력의 무장을 해제했고, 연평도와 백령도의 어민들은 안전히 조업할 수 있었고, 철원, 연천, 고성의 주민들은 평화의 둘레길에 관광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북측 지도자 조차 미북정상회담 장소와 교통편 걱정을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상의하던 시대였다. 그야말로 꿈을 꾸던 시기였다. 그 평화가 불안하였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평화의 꿈을 꾸던 시기였다. 지금 꿈은 사라졌다,
우리가 공을 몰아 골대 앞에 가져다 주었는데, 공격수가 골을 못 넣었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그것이 잘못과 옳음을 따져야 할 일인가? 다시 그 찬스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 궁리하고 연습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진정한 프로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데 넌 왜 골을 못 넣게 공을 몰아주었냐?라고 비난하는 팀에게는 미래가 있을까?
병자호란 시기, 주화파는 청과 화친하여 조선을 보전하자고 했다. 그들의 주장은 옳았다 그들이 조선의 국권을 지켜냈다. 청을 배척하고 명을 섬기자는 척화파는 실질적 대안이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 평화를 만든 주화파는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 비난은 척화파들이 주도가 되어 지금의 말로 치면 인민재판하듯이 몰아갔다. 그들이 그럴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화파가 만들어낸 평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전히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몇백년전이나 지금이 같다. 절치부심도 없고, 희망도 없고. 평화도 없이, 서로를 헐뜯고, 물어뜯는 야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시간의 끝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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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였길래…“일본, 윤 정부에 ‘욱일기 문제없다’ 합의 요구”
일 언론 “초계기 협상 막판 쟁점”…윤 정부 반대로 무산
한·일 정부가 5년 넘게 양국 군사 협력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초계기 갈등’의 재발 방지 대책에 1일 합의한 가운데 협상 과정에서 일본 쪽이 ‘자위대의 욱일기 사용이 문제가 없다’는 점을 한국이 확인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침략 전쟁의 상징’으로 여겨져 한국에서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욱일기의 공식 사용을 일본이 합의하자고 나선 것은 도를 넘은 모습이다.
요미우리신문은 2일 ‘초계기 갈등’과 관련해 “한·일 협상 최종 국면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 일본 ‘자위함기’(욱일기) 문제였다”며 “일본 쪽이 ‘자위함기 게양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고 한국 쪽에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한국 쪽이 (초계기 갈등) 합의 보류도 불사하겠다며 강경하게 나와 결국 일본 쪽이 합의(문)에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양보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가 한국의 강한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욱일기 사용’을 합의하자고 윤석열 정부에 요구한 것은 최근 한-일 관계의 변화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골칫거리였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등 쟁점에 대해 한국 여론의 반대에도 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참에 묵은 과제들을 해결하겠다는 분위기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 군사 협력 확대를 명분으로 전임 문재인 정부와 달리 한국에서 욱일기 사용을 허용해 준 것도 영향을 줬다. 지난해 5월 한국에서 열린 다국적 해양차단훈련 ‘이스턴 엔데버 23’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이 욱일기를 달고 부산항에 입항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해 5월 사례를 거론하며 “윤석열 정부가 당시 자위함기 게양을 허용했다. 함기에는 문제가 없다고 (이미 한국에서) 평가한 것이라고 (일본에선) 정리가 됐다”고 강조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10월엔 한국 정부가 제주 국제관함식에 참가하려던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에 욱일기 게양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자, 일본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불참을 통보한 바 있다. 한국은 욱일기를 ‘전범기’,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으로 생각해 사용 자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자국의 상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도 아주 예외적으로 해상자위대 함정이 한국 해군이 주최한 국제관함식에 욱일기를 게양하고 참석한 적은 있다.
욱일기는 일본 정부가 1870년 5월 일본 육군의 정식 깃발로 결정했다. 가로 134.2㎝, 세로 152.5㎝의 네모 속에 태양을 상징하는 빨간 원인 ‘히노마루’를 중심으로 주변에 16개의 광선을 쏘는 모습이다. 1899년 해군의 군함기로도 채택된 욱일기는 육군과 달리 히노마루의 모양이 왼쪽으로 좀 치우쳐 있다. 이후 일본 정부는 1954년 자위대를 만들어, 자위대법 시행령을 통해 옛 일본 해군의 군함기를 자위함기로 채택했다. 자위대법에 따라 자위대 선박은 자위함기를 일장기와 함께 게양해야 한다.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욱일기를 내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91942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탑승한 일출봉함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배에 걸렸던
조선수군 대장기 재현한 디자인 깃발 내걸었다고 지X발X을 떨었던 게 일본입니다.
근데 욱일기는 문제 없다?
생산가능인구 늘리려 노인들 ‘은퇴 후 이민’시키자는 국책연구기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자가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해 은퇴한 노인들을 해외로 이주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통계적으로 피부양인구 수를 줄여 생산가능인구를 확보하자는 주장인데 국가주의적인데다 노인 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정기 간행물 <재정포럼> 5월호를 보면,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은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에서 한국의 인구 문제를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정의하고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은퇴 이민’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장 연구위원은 “사전적 준비가 전제조건”이라면서도 “노령층이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하여 은퇴 이민 차원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면 생산가능인구 비중을 양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인들의 폴란드 은퇴 이민 사례나 유럽인들의 태국 은퇴 이민 사례 등을 고려해보면 국제 경험이 풍부한 미래의 노년층에게는 은퇴 이민도 충분히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가주의적인데다 반인권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해외 일부 노인들의 은퇴 이민은 경제적 여유 등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이유에서 비롯됐다.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해 국가 정책 차원에서 노인 이민을 장려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노인들은 나가라는 얘기이지 않나. 노인에 대한 차별이고 폭력”이라고 말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299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