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정몽구 현대 · 기아차그룹 회장, (가운데)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우) 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현대 왕자의 난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다툼)
당시 2000년 3월 현대그룹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왕자의 난'은 한국 재벌의 부끄러운 실상을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사건입니다.
당시 병환이 깊어 와병중이던 현대그룹의 창시자 故 정주영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뒤 경영대권을 차지하기 위해 정회장의 둘째 아들 정몽구(現 현대 · 기아차그룹 회장), 5번째 아들 몽헌(현대 아산 회장) 두 아들이 벌인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을 보통 왕자의 난이라고 부릅니다.
(정회장의 첫째아들은 70년대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고 당시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몽구회장이 첫째아들입니다.)
- 발단 : 당시 현대그룹은 정주영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은퇴한 후 정몽구, 정몽헌 형제의 불안한 투톱 공동회장제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왕자의 난의 시작은 2000년 3월 14일, 정몽구 현대 공동회장이 정몽헌 회장의 최측근 심복이었던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전보시키는 보복성 내정인사가 최초의 시발(始發)점입니다.
- 전개 : 그 다음날인 15일, 故 정몽헌 공동회장은 인사보류 지시하고 24일에는 현대 구조조정위원회가 정몽구 공동회장의 면직을 발표합니다. 26일에는 정몽구, 몽헌 공동회장이 인사문제를 놓고 발표를 거듭 번복합니다. 3월 27일에는 현대그룹 사장단들의 모임인 현대경영자협의회에서 故 정몽헌 회장을 단독회장으로 승인합니다.
당시 몽구, 몽헌 두 회장은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입원중이던 '왕회장' 정주영 회장을 기자회견장에까지 불러내 '공개 낙점'을 하도록 하고, 아버지의 서명을 먼저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문서까지 들이대며 싸우는 모습이 보도되어 현대그룹의 집안 싸움을 국민들에게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 절정 : 2000년 5월 25일, 정주영 명예회장이 계열사 지분정리와 현대차 지분 매입발표를 해서 26일에는 현대 전 계열사의 주가가 폭락합니다. 결국 정부와 채권은행단은 현대그룹에 지배구조개선, 경영진 문책 등을 요구합니다. 결국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건설과 중공업, 현대아산의 이사직 포기를 발표하고 5월 31일에는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구, 정몽헌 회장이 3부자 퇴진이라는 경영개선계획을 발표합니다.
- 결말 : 결국 이 왕자의 난은 故 정주영 명예회장 죽고난 뒤,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와 관련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서비스 등의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분가하면서 끝을 맺게 됩니다.
왕자의 난 이후 故 정몽헌 회장은 현대아산과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건설 등 숫적으로 많은 기업을 거느리고 있으나 정몽구 회장이 이익도 많고 튼튼한 기업들을 챙겨 실리적으로 많은 이득을 얻었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첫댓글 저 집안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저 집안 아들이 사고 1명 빼고 둘 뿐인가요? 정몽준은 이름이 없네용?
자세히는 모르지만 정몽준은 어머니가 다른분으로 알고 있는데요..또 위에 형들이 워낙 탄탄하다 보니깐 거기까지 갈모가 없었던것 같습니다.
정몽준은 경영쪽보다는 정치와 축구쪽으로 잡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그래도 현대중공업 하나만 해도 대단하죠
알짜는 정몽구 회장이 다 가지고 갔죠.. 볼때마다 씁쓸합니다 현대건설은 어찌될지 두고봐야겠습니다
볼때마다 궁금한건 재벌가엔 왜이리 사고가 많은지.. 현대가, 삼성가 모두 아들, 막내딸 다 자살한거 아닌가요 자살비율로 따져도 높군요
고 정주영 회장이 정몽헌 씨를 많이 예뻐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그래서 현대를 정몽헌 씨에게 물려주었다는데.....(무려 5번째 아들임에도)
정몽근 명예회장이 저 풍파 속에서 자기 위치를 굳건히 다진 것 같네요.
현대그룹보면 좀 아쉬운게 다툼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에서 삼성을 견제할수있는 위치가 될수있었을것같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