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
2022.03. 통권447호
부산&부산사람 * <시민시대 초대석>
40년 지역음악가, 문화유목민으로 살아온 외길
음악평론가·문화유목민 정 두 환
“음악은 상상력의 산물이며 공유하는 것이다.” - 다양한 문화·예술의 통섭이 필요한 시대
홍정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우수를 하루 앞둔 겨울의 끝자락에서 정두환 음악평론가의 일터이자 놀이터인 부산공고의 연구실을 방문했다. 그 곳은 겨울이 주는 휴식이 아닌 쉼 없이 새로운 일과 도전을 준비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겨울이란 혹독한 계절마다 귀중한 지혜를 만나게 되는 충전의 시간인 듯 보였다.
음악은 흐르는 시간성 위에서 진행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시간예술이다. 40년간 음악가의 외길을 걸어온 정 평론가는 “음악은 상상력의 산물이며 모두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공유’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다. 예술은 결코 특정인이 소유할 수 없다는 인식과 상상력의 바탕 위에서 그 모두를 아우르며 공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보다 많은 사람이 음악을 소유가 아닌 공유하고 동행하길 바란다.
다양한 이력, 열정과 봉사의 음악 활동
그의 이력은 다양하고 특이하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을 전공했고 또다시 대학원에서 철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의 삶은 고교 및 대학에서 강의와 연주,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지역음악인 양성에도 힘을 쏟아왔다. 음악 세계에 입문한 이후 줄곧 경계를 넘나들며, 연주가, 작곡가, 지휘자, 평론가, 강연자, 컬럼니스트, 음악방송 진행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음악 활동을 펼쳐왔다. 음악가에서 인문학자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거듭나며 웬만한 사람은 한 분야도 해내기 어려운데 그는 거침없이 내닫아왔다. 거쳐가는 중·고교 및 대학에서 그는 주목을 받으며 화제를 낳는다.
그의 음악 활동에서 ‘처음’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된다. 열정과 새로운 시도가 넘쳐난다는 방증이다. 2005년 4월 시민자치예술단인 ‘을숙도 교향악단’을 주도하여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를 맡았다. 한국 최초로 노동부와 협력해 시민들에게 문화를 향유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청년 실업 해소에도 기여하고자 했다. 또한 시민과 함께하는 생태·환경 오케스트라를 표방하고자 했으며, 호주 시드니에서 해외환경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사비를 들여 대규모 음악회를 열어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문화를 체험하게 한 적도 있다.
2003년 부산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지역 방송오케스트라 ‘부산CBS 심포니 오케스트라’, 2013년 처음 결성된 ‘정두환의 음악친구들 오케스트라’와 함께하고 있으며, 2019년 새롭게 구성된 ‘부산CBS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3·1운동 100주년 하나되는 대한민국’ 음악회에서 첫선을 보였다. 또한 2020년에는 ‘두레라움 윈드오케스트라’를 결성해 전문 관악인들의 예술 활동과 관악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고 잇다. 음악을 인문학, 나아가 실천의 영역으로 확장하며 음악으로 봉사의 삶을 실천해온 공로로 2020년 ‘제21회 부산문화대상(문화예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과 도전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2030 부산 월드엑스포 유치 성공 기원 음악회, 콘서트 오페라 ‘카르멘’, 세대별 문화공감 2021 가족클래식 콘서트, 금정하모니아21 사회공헌 음악회, 부산 자원봉사자 초청 ‘위로와 위안’ 음악회, 도서관 인문브런치 등 공연 행사들을 지휘, 감독, 해설하며 쉼 없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화요음악강좌 – 2000년 ‘좋은음악 & 좋은만남’으로 시작
정두환의 화요음악강좌 ‘좋은음악 & 좋은만남’은 지난 2000년 3월부터 매주 화요일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무료 음악강좌이다. 초보자들에게 클래식의 높은 벽을 허물고 새로운 재미에 젖어들게 하는 곳으로, 20년째 명맥을 이어온 유일한 지역문화·예술의 산실이다.
화요음악강좌는 정두환 음악평론가와 동격이다. 몸이 아파서 입원해 있어도, 아무리 멀리 있어도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음악강좌로 돌아왔다. 지난 2020년 6월에는 20주년 기념 740회 강좌를 열었다. 한 개인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전문 강좌를 20년째 이끌어온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2020년 4월부터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을 떠나 새 둥지 서면 영광도서 문화홀에서 출발하게 되었으나, 코로나 여파로 잠정적으로 휴강 상태에 있다.
강의 주제는 음악에만 머물지 않는다. 음악을 바탕으로 철학, 역사, 미학 등 인문학 전반을 넘나들기도 하고 미술, 영화, 연극, 건축, 사회과학 등을 망라하며 다양한 주제의 문화예술을 파고들기도 한다. 같은 주제가 한 번도 없으며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그의 음악강좌는 강한 중독성이 있다. 이야기와 함께 하는 음악감상과 해설로 열어가는 강좌는 대중들을 그만큼 솔깃하게 만들어 골수팬을 만들기도 한다.
그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은 ‘동행’이다. “나눔이 아니고 동행이다. 나눔은 가진 자가 못가진자에게 베푸는 의미이지만 동행은 동등한 사람이 함께 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마음으로 20여 년 무료 음악강좌를 이끌어왔고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음악세계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것, 시민들과 공유하고 동행하는 것, 정두환의 ‘좋은음악 & 좋은만남’이 갖는 의미는 그렇게 깊었다.
‘문화유목민’의 삶 – 음악공동체와 동행하며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우리는 문화유목민이다. 가다가 오아시스를 만나면 여장을 풀고 한바탕 놀이를 한다. 그런 다음 다른 오아시스를 향해 길을 재촉한다.” 프랑스 태양극단의 여제 아리안 므누스킨의 말이다. 지금 머물고 있는 오아시스에서 싱싱한 날개짓을 하며 뭇 장르를 넘나드는 신나고 자유로운 경험이 넘실댄다. 여기에서 발동된 무대와 객석의 공감과 소통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문화유목민’이라 부른다. 어느 한 분야에 안주하지 않는 그에게 적합한 말이다. 인간은 원래 유목민으로 떠돌다가 정착하는 순간 삶의 방식이 바뀌며 개인의 욕망은 소유와 극대화, 공유의 최소화로 치달았다. 그러나 유목민은 적게 소유하고 많이 공유하는 사고 방식의 삶을 유지했다. 화요음악강좌는 음악을 매개로 한 인문학적 담론을 통해 자신이 지닌 것을 공동체와 공유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나간다는 문화유목민의 정서를 표현하며 실천하는 장이다.
유목민의 삶은 혼자일 경우가 많은 목자의 삶이며, 가축을 위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문화유목민은 부산의 많은 곳, 다양한 곳을 찾아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부산문화, 특히 공연예술을 보다 좋은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하는 동행자를 만나 함께 문화예술의 꿈을 키우고자 했다. 마침내 부산의 예술인들이 모여 공연예술 문화의 새로운 대안을 찾아보고자 지난해 12월 ‘문화유목집단동행’이 결성되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려 합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 먼 길을 동행하고자 합니다.”
‘동행’은 세상의 사람과 평화를 위해 종합예술을 관객과 함께 동행하고자 하는 마음, 예술인들의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며 동행하는 마음, 그리고 예술의 소중함을 공유하며 함께 누리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뭉친 단체이다. 지난해 12월 12일에는 문화유목집단동행 창립기념음악회를 열어 ‘동행’의 첫 출발을 알렸다.
그는 “열심히 살았던 문화유목민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며 자신이 해온 일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40년 세월의 강을 건너 문화유목민의 삶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며 그가 보여준 열정과 노고에 봄빛을 담아 담담한 위로를 건네본다.
― 부산 문화예술의 여건과 환경을 개선할 전략이 있다면.
문화예술은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철학의 현장이다. 여기에 반드시 포함해야 할 중요 요소는 작은 문화 공간의 활성화이다. 작은 문화예술 공간은 클래식 음악 중심의 공연 공간, 개인이 운영하는 갤러리나 전시장, 소규모 영화상영관, 인문공간 등을 포함한다. 작은 공연장의 역할은 큰 공연장이 주지 못하는 특별한 예술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삶의 풍요로움을 제공해준다. 돌아보면 예술의 공유할 많은 작은 공간들이 부산에 있었지만 엄청난 재정적 압박 등으로 한동안 거의 사라졌다. 우리 사회는 이런 작은 예술공간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어 이제라도 정부, 지자체, 의회 등이 소규모 공연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책을 연구, 개선하고 실행해야 할 시점이라고 여겨진다.
― 오래 전부터 부산지역을 ‘문화의 불모지’라고 부르고 있다.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부산은 흔히 영화의 도시라 불리지만, 무용, 음악, 연주 등 공연이 쉼 없이 열리고 있는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부산 곳곳에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 인프라는 이미 충분히 구축되어 있어 노다지로 변모될 수 있다. 더 이상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가 아니라 문화의 노다지라 할 수 있다. 불모지는 여전히 개척지라고 할 수 있으므로 여기에 문화예술인들의 할 일이 많다. 문화 노다지로 일구기 위해서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국제적인 문화시설을 짓고 문화행사를 여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문화의식을 높이고 삶의 곳곳에 문화가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시내 곳곳의 작은 음악회, 전시회가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붐비게 만들어야 하며, 시민과 예술인들이 함께하는 동행을 통해 즐길 수 있는 문화현장을 더욱 늘리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지역에서 자라온 음악가와 지역 인재를 키워주는 직업을 충실히 해야 한다. 부산의 밝은 미래 인재들이 서울로, 외국으로 떠나는 현실을 돌아보며 문화적 토양만들기 작업을 하는 지역 예술인들을 소중히 여기며 희망과 의욕을 심어주어야 한다. 여건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지역예술인들을 위한 지역 기업이나 재단, 기관의 메세나 역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이다. 이에 부산시와 시의회 차원에서 소외된 문화예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모색하며 세밀한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