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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어디에도 오래 마음을 두지 않네. 휴대용 라이터처럼."(영화 <4차원> 중에서)
베트남에서는 '찡 틴 민 하'라고 발음되었을 이름이 먼 나라를 떠돌아 트린 T. 민하라는 국적불명의 발음으로, 양국의 성씨 체계를 교란하며 한국까지 건너왔다.(트린은 한자어 정(鄭)씨에서 유래한 성씨로 베트남에선 '찡'으로 발음한다. 민하는 베트남식으로 성을 이름 앞에 쓰고 있다.) 트린 T. 민하. 1952년 태생.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와 영화 작업을 해왔다. 가야트리 스피박, 찬드라 모핸티 등과 함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이론가로 꼽히며, 실험적인 영상으로 미술계와 영화계에서도 이름이 높다. 현재 UC 버클리 대학에서 영화학과 여성학을 강의하고 있다. 픽션을 차용한 실험적 다큐, 아시아 여성의 목소리를 담다 "여자는 세 번 변한다. 결혼 전에는 아가씨, 결혼 후에는 노예, 나이 들어서는 늙은 원숭이"(베트남 속담) (영화 <그녀 이름은 베트남> 중에서) 대표작 <그녀 이름은 베트남>(1989)은 베트남과 미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여성 다섯 명의 인터뷰로 구성된 작품이다. '아시아 안에서의 여성', '전쟁 속 착취당하는 여성'을 증언하고 남성 중심 역사에서 수동적으로 소외되어온 여성의 위치를 되짚는다. 인터뷰는 '다큐멘터리'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극'이다. 민하가 오랜 선행작업을 거쳐 수집한 자료들을 대본으로 재구성한 형식이다. 식민지 여성은 백인 중심의 페미니즘과 남성씨족공동체 중심의 탈식민주의 운동 양쪽에서 모두 타자에 타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까닭에 관객들은, 미국에서 엘리트 이주 여성으로 살고 있는 민하의 목소리가 이들 '하위주체(서발턴 subaltern)'의 목소리를 정리하고 대변해 줄 거라고 기대하기 쉽다. 보통 다큐멘터리라면, 다섯 여성의 구술사 위로 '이주 여성의 역사' 등을 서술하는 '깔끔한 편집'을 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덧입혀져 흘러나오는 민하의 독백은 영상 해설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다큐멘터리의 객관성을 우리는 어디까지 확보할 수 있는가. 그게 과연 진실인가"
김연호 아이공 대표가 설명한다. "트린 민하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절대로 울음이(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죠. 기승전결이 명확히 전개되어 감성을 자극하고 때로 신파조로 느껴지기도 하는 '역사의 대의'라는 게 없습니다. 역사라는 것이 기술을 하는 자의 관점에 따라서 100명이면 100명의 이야기로 새롭게 구성되고 읽힐 수 있다는 (역사 자체에 대한) 객관화의 여지를 줍니다." 여성의 디아스포라를 말하기, 치유의 여정 민하는 <그녀 이름은 베트남>을 찍기에 앞서 <재집합>(1982), <벌거벗은 공간: 지속되는 삶>(1985)을 돌아왔다. 인류학, 민속학의 가장 큰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인들, 그중에서도 '역사'라는 단선적 시간 속에 '이미지로 대상화'되었던 여성들을 찍었다. 이러한 시도는 이후의 <4차원>(2001)으로도 이어졌다. <4차원>에서 민하는 일본으로 장소를 옮겨 잘 구획된 철도를 따라 여행한다. 신사와 가부키, 인공정원, 그리고 소녀들의 루즈삭스에 이어 축제(마츠리) 중 짙은 화장을 한 여성들을 클로즈업한다. "사람도 자연처럼 다듬어진다. 성인 여성의 역할이 사회에서 폄훼되는 것을 보고는, 모든 소녀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여자도 남자도 아닌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민하는 '디아스포라(모국을 떠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를 체험한 이주 여성이며, 미국이라는 다민족 체계 속에 소수인종으로 살고 있다. 같은 이미지를 사용하더라도 관점 자체가 다르다. 영상 위로 덧입힌 독백은 이들에 대한 해석이 아닌, 민하 자신의 치유를 위한 여정에 가깝다. 이주여성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다 한편 김연호 대표는 민하에게서 탈식민주의나 여성주의가, '주제'가 아닌 (새로운 정체성이라는 주제의) '하나의 소재'가 될 수도 있음'을 읽는다고 말한다. "민하는 여성의 디아스포라를 기존 다큐멘터리, 극 형식과도 다른 실험적 관점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민하는 아시아성을 끌어안는 이주여성의 새로운 정체성을 시도하고 있어요. 이주여성으로서의 '아시아'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끼우는 오랫동안 섹스 워커로 일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그걸 기억하지 않아, 말하지 않아.(...) 끼우 이야기의 결말은 내지 않을 거야." (<사랑의 동화> 중에서) 영화는 불현듯 '쨍그랑' 깨지듯 신경을 건드리는 음향과 함께 끝나버린다. 관객들은 당혹감 속에 한동안 낯선 음향과 함께 뜨는 자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객 이아무개 (24·여·서양화 전공)씨는 25일 상영이 끝난 뒤,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나 편집이 전혀 예상되지 않는 영화다. 상투성과 거리가 멀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의도된 낯설음일까? 도대체 한국 관객은 '베트남 여성'과 어떻게 만나야 하겠느냐는 우문에 김 대표는 반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주여성들을 지나치게 '그들'로 만들어왔지 않나요?" 여성 이주는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빈국에서 부국으로 이주하는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어느덧 종종 '꼬마제국' 별명을 다는 한국에도 이주 여성의 숫자가 많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트린 민하'가 아닌 100명의 이주 여성이, '하나의 역사'가 아닌 '100명의 일기'로 자기 목소리 내기. '우리'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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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늘...다쿠멘타리도 아니구 시사도 아니고 마음의 양식을 넓혀주는글 고맙습니다....
훌융하신 여성 운동가 꿈은 이루어 진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