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의 절정에
시샘하듯 내린 눈으로
높고 깊은 산들은 일대 장관을 연출하고 있군요.
하나님의 솜씨는 과연 어느 것에 비할 바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L형제님,
그 동안 직장에도 적잖은 변화가 생긴 듯 합니다.
H집사님도 다른 지사로 발령이 났더라고요.
형제님의 경우
부서의 특성상 유경험자가 필요하기에
발령이 보류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이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 출발 했으면 합니다.
환경에 매이기보다는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이를 성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자세'라고 말하지요.
태산준령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도전해 넘어가는 것이지요.
힘이 들어도 피해 가는 것에 비해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겠지요.
그런 경험은 연단이 되어서
남은 신앙여정에 크게 유익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관점이지요.
이제 형제님에게는
시간의 여유를 찾거나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없는 시간, 바쁜 일정을 쪼개서라도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가져보려는
배가의 노력과 애씀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드린 기도 내용이
우리가 기대하는 바 대로 응답되지 않았다면
그 상태에서 하나님의 원하심이 다른 데 있음을 깨닫고
현실에 순응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재정립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사도 바울도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 씩이나 간구했습니다(고후12:7-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그의 원대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전혀 뜻밖의 응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란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의 연약한 육체의 상태가
오히려 하나님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할 수 있는
믿음 강화의 절호의 기회가 된다는 응답이셨습니다.
이후부터 바울은
자신의 연약을 통해
하나님의 더욱 풍성한 은혜와 강함이 역사되고 있음을 깨닫고
오히려 연약을 자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9절하).
현실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통찰하고 이에 적극 순응한 것이지요.
이런 자세야말로 참 성도라면 마땅히 취할 바른 신앙의 도리가 아니겠는지요.
자신의 연약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을 만끽할 수 있다는 확신에 근거해서 말입니다.
반면에
우리들 대부분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빌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작심한듯 반응하지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데 전력투구를 마다 않지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지의 여부를 외면한 채 말입니다.
기도의 본질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일 진대
이제 주어진 현실을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수납해
하나님과의 신앙관계를 새롭게 재정립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일에
최선의 경주가 필요할 줄 압니다.
이 일에 함께 지혜를 구하시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