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로프 (Nicolay Ivanovich Vavilov)는 누구인가?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 강 정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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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로프는 내가 대학교 일학년 때인 1973년에 재배학 강의시간의 “재배학원론” 책에 딱 2장에 언급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재배개설”이라는 장에 “작물의 기원과 발달”이라는 소장에 “작물의 원산지”라는 제목으로 De Candolle과 함께 아래와 같이 언급되어 있다.
“Vavilov(1926, 1951)는 분화식물 지리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식물종과 변종간 계통적 구성의 다양성과 그 지리적 분포를 상세히 연구하였다. 또한 세포학적 특징과 교잡 및 병해 저항성까지도 연구하였으며 고고학, 사학, 언어학 등에 나타난 사실도 참고하였다”. 그가 원산지로 추정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식물종의 유전자분포의 중심지(gene center)를 찾는 것이었다. “중심지에서는 그 식물종의 변이가 가장 풍부하고, 다른 지방에 없는 변이도 보이며, 또 원시적인 우성형질도 많이 보이나 중심지에서 멀어지면 열성형질이 많이 보이는데, 이 열성형질은 중심지에는 없는 경우도 많다.”
그 당시 수업시간에는 그냥 지나쳤으나 15년 후 1988년 영국의 버밍햄대학교에서 유전자원학을 공부하면서부터 진짜로 바빌로프를 만날 수 있었다. 바빌로프는 주요 농작물의 발상지를 밝히기 위하여 세계 5대륙을 대상으로 식물유전자원을 수집하여 “식물지리적 미분법”을 이용하여 재배식물의 기원을 밝힌 생물학자, 유전학자, 지리학자, 탐험가, 농학자, 육종가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바빌로프와 그의 연구소에 대하여는 1999년 국제식물유전자원연구소(IPGRI)에서 발간된 “Vavilov and his Institute- A history of the world collection of plant genetic resources in Russia by I.G Loskutov"에 잘 언급되어 있다.
바빌로프는 모스크바 농업연구소를 졸업한 후 러시아 농무성 응용식물분류국에서 일하면서 1916년 첫 탐험으로 이란 및 파미르 지역에서 밀, 보리, 호밀 근연야생종의 탐색, 수집을 실시하였다. 1921년(34세)에는 응용식물분류 및 육종과 실장에서 패트로그라드 소재 응용식물 분류국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1924년(37세)에 응용식물 분류국이 응용식물 및 신작물연구소로 확대 개편되어 소장으로 지명되었다. 1926년-1927년에 걸쳐 지중해연안 그리고 아프리카 아비시니아 고원 지역을, 1929년에는 중국·일본·한국을, 1930년에는 미국,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를, 1932년-1933년에 걸쳐 캐나다, 미국, 큐바, 멕시코, 에쿠아돌, 페루, 볼리비아,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등을 탐험하였다.
바빌로프는 세계 각지의 재배식물 및 근연 야생종을 수집, 연구하여 “하나의 종에서 관찰된 특성은 다른 종에서도 비슷한 특성을 보이며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속 일수록 그 유전적 변이의 유사도가 크다” 라는 “유전변이의 상동계열의 법칙(1920)”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재배식물은 커다란 분류군에서 순차적으로 작은 군으로 다시 유전적 변이의 구성별로 세분하고 그 결과에서 재배식물의 변이형의 분포지도를 작성하는 “식물지리적 미분법”을 확립하였다. 또한 다양한 변이가 집중되어 있는 지역을 종과 변종의 기원중심지로 하여 “중심지에는 우성형질을 가진 기원식물이, 그로부터 떨어진 원격지에는 열성형질을 가진 변이계통 식물이 많다”라는 “ 재배식물의 기원중심지(1926)”를 발표 재배식물의 발상지를 7대 중심지(1940)로 나누었다.
바빌로프가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세계를 무대로 식물유전자원을 탐색, 수집하여 그들의 특성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평가하여 작물의 원산지를 밝히고, 수집한 자원을 어떻게 증식하여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을까? 심히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러시아 빼째르부르크 소재 바빌로프 연구소를 몇 차례 방문하였다.
바빌로프가 한창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시기에는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났다. 그 결과 볼셰비키파를 이끄는 브라디밀 레닌이 혁명에 성공하여 소비예트 연방공화국의 수상이 되어 1924년 까지 통치하였다. 바빌로프는 이 기간 동안 레닌으로부터 바빌로프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사회주의 농업을 위해 세계의 가장 우수한 식물유전자원을 도입하여 러시아 농업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 올리라는 주문을 받았다.
바빌로프연구소는 소비예트 연방을 비롯 세계 전역의 180개 지역에 탐험대를 파견하였고, 바빌로프 자신도 직접 52개국 탐험을 통해 광범위한 탐색수집을 실시하였다. 바빌로프연구소는 1940년 까지 엄청난 연구인력과 연구예산을 지원받았다.
즉 바빌로프 당시 연구소 규모는 400개 연구실험실이 쏘비예트 연방공화국 전역에 분포하고 있었으며 연구원이 2만명에 달했다고 하였다. 따라서 세계 전역에서 수집된 자원은 작목별로 또한 분야별로 전문 연구실험실로 보내져 작물 원산지를 구명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는 한편, 수집된 자원은 일련번호와 저장번호를 부여한 후 작목별로 잘 적응되는 지역을 선정하여 연구소 지역시험장에 보내져 몇 해 동안 기본특성조사, 심층특성조사를 거쳐 보존자원으로 관리하였다.
1940년 8월, 바빌로프는 루이셍코 학파에 대한 반대 급부로 소련 비밀경찰, KGB에 체포되어 1943년 1월 사라토프 감옥에서 굶어서 죽었다.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밀, 옥수수 등의 작물유전자원을 찾아서 천신만고로 5대륙을 탐험한 바빌로프는 아이러니칼 하게도 영양실조로 굶어서 죽은 것이다.
2001년 11월 바빌로프연구소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 연구소에서 보존하고 있는 바빌로프 유물관을 살펴보았다. 그가 쓰던 책상, 의자, 펜, 돋보기, 램프 등이 잘 보관되어 있었고 식물유전자원 수집시 사용했던 여러 가지 장비, 도구들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마치 지금이라도 바빌로프가 살아있는 것처럼.....
나는 방명록에 “꿈에 그리던 바빌로프 박사를 만나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는 1929년에 일본을 방문하면서 한국도 함께 둘러 보았는 데 부산에서부터 신의주까지 기차로 이동하면서 몇몇 곳에 들러 밀, 콩, 팥, 녹두, 동부, 호박 등을 수집하였다. 바빌로프는 이듬해 인 1930년에 한국 수집자원을 등록 하였고, 바빌로프 연구소는 그후 7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수집된 한국원산 자원을 보존하고 있다.
참고문헌
1. Vavilov, N. I. 1922a. The law of homologous series in variation. J. Genetics Ⅻ : 47-89 (English).
2. Vavilov, N. I. 1926a. The centers of origin of cultivated plants. Works of Applied Botany and Plant Breeding 16(2), 248p (Russian, English).
3. Vavilov, N. I. 1992 Origin and Geography of Cultivated plants. Transl. by Doris Love. Cambridge University Press, 498p (English).
4. IPGRI. 1999. Vavilov and his Institute- A history of the world collection of plant genetic resources in Russia by I.G Loskutov. 188p (English).
『참고자료』
N.I. Vavilov 박사 프로파일
□ 바빌로프(Nicolay Ivanovich Vavilov)의 일생
○ 1887년 11월 25일 - 모스크바 상인의 아들로 탄생
○ 1911년(24세) - 모스크바 농업연구소 졸업
○ 1913년(26세) - 러시아 농무성 응용식물분류국 근무, 영국의 W. Bateson 교수에게 사사
○ 1916년(29세) - 첫탐험으로 이란 및 파미르 지역 탐색수집 실시
○ 1917년(30세) - Saratov 대학 농학과 교수 임명
○ 1921년(34세) - St. Petersburg 응용식물분류국 책임자로 지명됨
○ 1924년(37세) - 식물분류국을“응용식물 및 신작물연구소”로 확대
아프가니스탄 탐험으로 러시아지리학회 금상수상
○ 1930년(43세) - “바빌로프 식물산업연구소(VIR)”로 개칭
○ 1940년 8월(53세) - 루이셍코 학파에 대한 반대급부로 체포됨
○ 1943년 1월 26일 - Saratov감옥에서 56세에 기아로 죽음(일생을 마침)
□ 바빌로프의 업적
○ 식물유전자원 주요탐색수집 실시
- 주요 농작물의 발상지를 밝히기 위해 러시아지역과 해외지역을 대상으로 100회의 수집을 실시함
- 주요 탐색수집 지역은 이란(1916),미국,중남미(1921, 1930, 1932),
지중해 및 에티오피아(1926-1927), 아프가니스탄(1924) 등 임
○ “식물 지리적 미분법”을 이용 재배식물의 기원을 밝힘(1924)
- 세계 농작물 기원 중심지 : 3곳((1924)→5곳(1926-1927)→6곳(1929-1930)
→7곳(1931)→ 8곳(1934-1935)→7곳(1940)
○ “변이내에서 상동계열의 법칙” 논문발표(1920)
○ “재배식물의 기원중심지” 책 발간(1926)
□ 바빌로프 식물산업연구소(VIR)의 내역(바빌로프 박사 당시)
○ 연구조직 : 2만명 직원,400개 연구실험실(쏘비에트연방공화국 전역에 산재)
○ Genebank 설립 : 1940년까지 16만점의 종자 및 영양체자원 보존유지
○ 식물유전자원 도입 및 수집
- 사회주의 농업을 위해 세계의 가장 우수한 식물자원 도입
- 쏘비에트연방을 비롯 세계 전역 180개 지역에 탐험대 파견
N.I. Vavilov 박사를 생각하며
- 바빌로프 박사 자신이 직접 52개국 탐험을 통해 광범위한 탐색수집 실시
□ 바빌로프의 재조명
○ 1955년 - 바빌로프 박사 명예 회복됨
○ 1967년 - 바빌로프 연구소 레닌훈장 받음
○ 1975년 - 바빌로프 업적으로 인민우정훈장 받음
○ 1987년 - 바빌로프 박사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세계의 40개국 과학자 St. Petersburg에 모임
□ 재배작물의 세계 기원 중심지(바빌로프 박사에 의함)
첫댓글 가. 중국지역 나. 남아메리카 지역 다. 중앙아시아 지역 라. 지중해 연안 지역 이번에 유기농기사 11번 문제인데...저는..틀렸음... 이거 중국지역이죠?
저는 기사가 아닌 산업기사를 쳐서 보기가 어떻게 나와있는지 잘모르지만 부민사책에 보면 벼는 힌스탄두 지역이라고 나와요.
벼는 힌스탄두 지역이구 쌀보리는 중국지역이에요~
이거 공무원 시험 재배학 문제집에서 본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