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집약적이고 고비용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유는, 실사 영화로서는 구현이 불가능한 세계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제작된 실사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애니메이션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거론하는 것이 의미없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3D 애니메이션 [아이스 에이지]는 실사 영화와는 출발부터 차원이 다르다. 빙하시대를 무대로 실사 영화를 만들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 양대 산맥인 디즈니와 드림웍스 체제에, 폭스가 당당하게 끼어들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아이스 에이지]의 성공 때문이다. 이제 시장은 더욱 복잡해졌다. 디즈니 독주 시대가 끝나고 [슈렉]의 드림웍스에 이어 폭스까지 가세했으니 관객들은 훨씬 더 재미있는 애니메이션들을 보게 될 것이다. 확실히 자유경쟁 체제는 질좋은 작품을 생산하는 원동력이다.
[아이스 에이지]의 시간적 배경은 2만년전. 아무리 자연사박물관을 뒤져도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상당 부분은 상상력에 의존해야만 한다.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지금까지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동물들이다. 거대한 몸을 자랑하는 털복숭이 맘모스, 게으름뱅이 나무늘보,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는 호랑이. 이 세 마리 동물들이 가족에게서 떨어진 인간의 아기를 되찾아주는 긴 여행을 떠난다.
문제는 서사적 내러티브의 독창성에 있는데, 사실 [아이스 에이지]는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대립적 축도 미약하고 극적 전개에서도 새로움을 찾아볼 수는 없다. [슈렉]의 전복성과 올바른 정치적 상상력에 미치지 못한다. 대신 롤러코스터를 타는 짜릿함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빠른 속도의 컷으로 강공 드라이브한다. 이성적 판단이 들어서기 이전에 관객들을 화면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제작진들의 내공이 그만큼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맘모스와 나무늘보의 버디 무비 스타일 에, 음모의 눈빛을 갖고 있는 호랑이가 끼어들면서 발생하는 삼각축의 대립관계와 긴장감이 영화적 탄력성을 유지해 간다. 빙하시대 동물들의 사실감 넘치는 캐릭터는 그 탄력성이 느슨해질만 하면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아이스 에이지]는 가족애와 휴머니즘의 강조라는 할리우드의 고전적 가치규범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성공 포인트이기도 하다. [슈렉]같은 전복적 상상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난한 극적 전개를 감각적이고 재치있는 영상으로 끌고간 것이 흥행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