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호색이 노도의 3월을 덮고 있었다. 마을을 한 바퀴 휘돌아 만난 것은 현호색 자줏빛 꽃물결이 삼백 년을 설렁이며 부추긴 쩌렁쩌렁한 적막. 이 엄청난 고요만이 이곳이 한때 적소(謫所)였음을 말해준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인적 하나 없었으나, 다행히 산자고가 가리킨 길을 따라 서포(西浦)의 처소에 이른다. 남은 것이라곤 자그만 우물과 집터뿐. 탱자가시 둘러친 울타리도, 부귀영화의 극점에 다다른 양소유(楊小游)의 자취도 찾을 길이 없다.
물론, 양승상과 여덟 선녀가 운우지정(雲雨之情) 나누던 취미궁(翠微宮)을 보리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잡목 뒤얽히고 한삼덩굴 널브러진 이 폐허가 서포가 살던 곳이라니 저절로 코끝이 찡해온다. 고대광실 취미궁은 고사하고 초가삼간 세우기도 어려운 외진 곳. 찔레가시에 발목을 긁히며 서포가 팠다는 우물에 이르니, 물은 이미 마르고 바닥에는 낙엽만 수북하다. 부귀영화 한몸에 누린 양승상이 만년에 문득 깨달아, '진시황의 아방궁 풀더미에 덮이고, 한무제의 무릉은 구름 너머 아득하며, 양귀비와 노닐던 현종 황제 화청궁엔 빈 달빛뿐이라.'며 한탄하던 모습 우물 가에 어른거린다.
세상사 일장춘몽 아는지 모르는지, 봄 햇살은 그저 따사롭기만 하다. 지척지간 남해도엔 서남풍이 부는지 단애의 청솔 일제히 술렁이고, 열 길 아래 싯푸른 여울에는 물결의 실핏줄이 어룽진다. 무심한 새소리 오히려 처연하여 마른 풀 깔고앉아 귀를 세우니, 단걸음에 여울을 뛰어넘는 서포의 애달픈 마음 스르릉스르릉 거문고 소리 되어 울려온다. 십여 호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산중턱에 띠집을 지은 서포의 심중을 헤아릴 것도 같다. 눈앞에 우뚝 선 남해 금산 저 너머 아득한 한양 땅에 계실 어머니. 천만리 머나먼 곳을 향한 격렬한 그리움이 그를 이곳에 세웠으리라.
서포는 노도에 가극안치(加棘安置)되어 『구운몽』을 썼다고 한다. 부침을 거듭하던 몸 겨우 추슬렀으나 늘그막에 다시 기사환국(己巳換局)에 휘말려 남해의 외로운 섬에 유배되었으니, 피었다 스러지는 구름 같은 것이 인생임을 절절히 느꼈을 터. 부당한 무리가 득세하고 공맹의 도 천하에 펼 수 없으면 마땅히 세상에서 물러나 죽림에 숨어야 했거늘, 무엇 때문에 이 날 이 때까지 아웅다웅 정쟁(政爭)에 매달렸던가? 내 한 평생이 헛되고 헛되고 또 헛되지 아니한가? 이런 마음이 여름날 먹구름처럼 일어 하룻밤에 『구운몽』을 지었으리.
그러나 따지고 보면 소설이란 가공지설(架空之說),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니, 현실이 일장춘몽이라면 소설은 현실보다 더 헛된 꿈일 뿐. 인간의 말은 잠시 눈귀를 넘나들다 시간의 지층 너머로 사라질 따름이니, 글을 짓는 일이야 바람에 흩어지는 뜬구름보다 허망한 것. 그것을 알면서도 서포는 왜 인간의 말을 버리지 않고 굳이 『구운몽』을 지어 세상에 남겼을까? 일백 년 인간사 다 헛되고 헛되나 혈육의 정만은 차마 끊을 수 없었던가? 가춘운, 계섬월 희롱하던 양승상의 한 생이 그예 성진(性眞)의 남가일몽에 불과하니, 진리를 깨치지 못한 우리네 필부필부야 어찌 남쪽 가지의 개미집을 벗어날 수 있으리오. 그러니 어머니께서는 이 한심한 삶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인간 세상의 모든 변화는 다 꿈 밖의 꿈이니, 한 마음으로 불법(佛法)에 나아가 극락 세계의 만만세 무궁한 즐거움을 누리옵소서. 이것이 『구운몽』을 지어 어머니께 올린 까닭의 전부일까? 서포는 현실과 허구 사이에 가깝고도 먼 어떤 인과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삶이란, 언어란, 실재인 동시에 허구라고 느낀 것은?
어쩌면 서포는 격동의 시대를 견디며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었는지 모른다. 그는 조선이 오랑캐라 멸시하던 청나라에 무릎을 꿇던 해에 태어난다. 생원이던 아버지 김익겸이 국치에 분개하여 자살한 뒤였다. 그러니 서포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이야기로만 듣고, 무수히 듣고 자랐을 터. 하지만 당대에는 아버지가 규정한 가치관이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끊임없는 청나라의 간섭은 아버지라는 유교적 질서를 회복할 수 없는 꿈으로 못박았다. 아버지는 부재하는 허상일 뿐. 주자학적 질서는 정체성을 잃었고 조정에는 피바람이 그치지 않았으며, 민중의 힘이 성장하여 계급구조가 와해되고 있었다. 있어야 할 것과 있는 것 사이의 격심한 간극을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사실과 헛것이, 진실과 거짓이 뒤얽혀 난장판을 이루게 마련이다. 삶의 길은 짙은 안개로 덮이고, 집단적 이념의 틈을 비집고 의식이 분화하면서 개인주의가 고개를 내민다. 다양한 가치관들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서포가 살아간 시대가 이러했음에도 『구운몽』에는 별다른 갈등이 없다. 『사씨남정기』와 전혀 달리, 인물들 사이에 격한 대립도 없고, 당대 조선의 실상을 배후에 깔지도 않는다. 양소유가 승승장구하며 여덟 미인을 만나는 디딤돌로서 곧 해결될 사건들이 배치될 뿐이다. 서포는 왜 이런 세계를 그렸을까? 명석한 서포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그런 것은 아닐 터. 물론 현실과 전혀 상반된 이러한 꿈꾸기는 문학의 기본 틀들 중 하나이긴 하지만, 아버지가 못다 이룬 뜻을 허구에서나마 완벽하게 실현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유배의 한과 현실에 대한 회한은 너무 쉽게 양소유의 욕망으로 빨려든다. 서포가 살았던 치욕의 세월에 반해 양소유가 머문 지상은 사치의 극점이다. 절대가인 여덟 선녀는 하나같이 양승상을 따르고 취미궁의 주연은 그칠 줄 모른다. 그러나, 서포는 끝내 궁궐로 돌아가지 못하고 유배 3년 만에 노도에서 세상을 떠난다.
이 너무나 극적인 대비 뒤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지 않을까? 우물 가를 서성이다 우연히 서포의 일기라도 발견한다면 색다른 사실이 밝혀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와서 그런 사건이 일어날 리야 없겠지만, 당시에는 찾을 수 없었던 의미를 지금 관점에서 새롭게 생각해볼 수는 있을 터. 만약에, 영양공주 정경패의 아리따운 혼백이 서포를 어여삐 여겨 아지랑이 타고 홀연히 나타나 귀떨어진 책 한 권 주고 간다면, 거기에는 아마 이런 이야기가 들어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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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색이 노도의 3월을 덮고 있다. 자줏빛 꽃바람 곳곳에서 술렁이는데, 단칸 초가에는 팽팽한 적막만이 감돈다. 초가 아래 여울에는 푸른 물결 잔잔하고, 눈앞의 남해도엔 서남풍이 부는지 청솔가지 휘청인다.
장희빈의 일을 간하다가 우암(尤庵) 선생이 화를 입고, 내가 귀양을 온 지도 반 년이 넘었다. 조정에는 여전히 모리배뿐인데, 하늘은 아직도 아무런 말이 없다. 그 동안 남도의 몇몇 선비들이 찾아와 안부를 물었지만, 멀고 먼 한양 땅이라 무슨 일이 있는지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다.
하루 한 끼 죽을 먹으며 곡식을 아꼈으나, 귀양길 따라나선 가노(家奴)가 애써 짊어지고 온 양식도 바닥이 났다. 작은 섬에 삼면이 가파르니 배를 타지 않으면 해물도 구하기가 어렵다. 주공처럼 빈 낚시 드리우며 때를 기다릴 수만 없는 처지라, 산나물을 뜯어 햇볕에 말리고 소나무 껍질을 벗겼다. 마을 아낙들이 몇 안 되는 밭뙈기에 붙어 부지런히 봄나물 캐는 걸 보니 백성들도 주린 배를 채우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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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 가뭄이 오래 가는지 양식 구하기가 어려워 패물을 내놓아도 쓸 데가 없다. 초목이 말라 산나물도 얻을 수 없어 솔잎을 돌에 갈아먹고 송기죽만 마신 지 오래라 얼굴이 누르팅팅 부어오른다.
힘을 내어 우물을 더 깊이 팠다. 습습한 기운에 몰려든 벌레는 잡아도 잡아도 끝없이 우글거린다. 저것들도 생명이라 어찌 물이 귀하지 아니할까 싶어 그냥 두기로 작정하였다. 목숨이 걸린 상황이니 인간도 하찮은 벌레를 이길 수가 없다.
하루 한 끼로 연명하는 날이 많아서 오후가 되면 벌써 머리가 어지럽다. 정신이 몽롱해지면 귀양길 내려오며 삭였던 분노와 가솔을 그리워하는 마음 되살아나 헛것이 보이기도 한다. 하루 밤낮을 꼬박 환몽 속에서 헤매다 가까스로 깨어난 적도 있다. 염라대왕이 보이기도 하고 선녀가 나타나기도 한다. 아무래도 몸을 추스릴 방도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여기서 헛되이 죽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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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이 말라 송기죽도 끓일 수 없어 사흘을 굶고 누웠다가, 어제 저녁에야 솔잎을 돌에 찧어 입술을 적시고 겨우 몸을 세워 마을에 내려갔다. 물 한 동이를 얻었으나 가져올 힘이 없어 망연히 바라보니, 그 집 아이 하나가 나서서 들어다주었다. 기다시피 돌아와 물 한 그릇 떠먹고는 몽유(夢遊)에 빠졌다.
비몽사몽간에 당(唐) 천자를 알현하니, 천자께서 승상을 제수하시고 큰 연회를 베푸셨다. 산해진미 가득하고 절세가인 춤을 추니, 고운 향내 천지에 퍼지고 미친 흥이 절로 인다. 높은 대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니, 녹양방초 푸르르고 맑은 퉁소 소리 사해에 퍼져 태평성대 호시절이 눈앞에 장대하다. 유하주(流霞酒) 가득 부어 종일토록 잔을 기울이니 신선이 따로 없다.
밤새 몽유 속을 헤매며 경국지색을 희롱하다 문득 잠을 깨니, 비록 하룻밤 춘몽일 뿐이나 눈앞에 보는 듯 생생하고 소매에 묻은 향내 아직도 흩어지지 아니하였다. 정신을 차려 내려다보니 때묻은 도포를 입은 채 찌그러진 갓을 베고 누운 꼴이 영락없는 거지였다. 이에 느낀 바 있어, 송기죽을 넘치게 끓여두고 종일토록 붓을 들어 소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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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노가 먼 길을 다시 내려왔다. 보리와 쌀 두 말을 지고 와서 허기는 면할 수 있게 되었으나 물이 없어 걱정이다. 양식을 축낼까 저어하여 돌아가는 가노 편에 이야기책을 부쳤다. 어머니 심정을 헤아리면 눈물이 저절로 쏟아진다. 이 헛것이 그나마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헛것과 실재가 호접몽(胡蝶夢)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시고 근심을 덜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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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긴 가뭄 끝에 큰비가 내려 가노가 파놓은 우물이 무너졌다. 처음 벽련(碧蓮) 포구에 들어서서 노도를 바라보니 그 크기가 손바닥만하여 물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백성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마을을 피해 살만한 곳이 있나 섬을 둘러보니, 다행히 고을 현감이 가르쳐준 동쪽 사면 중턱에 완만한 골이 있고 가히 물을 얻을 만하였다. 가노를 시켜 샘을 파니 한 종지만큼 물이 고였다. 그 곁에다 터를 고르고 단칸 띠집을 세웠다. 아침 나절에만 햇빛이 드는 응달이나 북풍을 막고 비를 피하기엔 안성맞춤이다. 마을에서 망치와 톱을 빌려 며칠 동안 나무를 베어 다듬고 기둥을 세우니,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팔목이 부어올랐다.
그때를 생각하며 오늘은 종일 우물을 청소하고 돌을 쌓았다. 띠집은 손댈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초여름 햇살이 따가워 땀이 쏟아졌다. 옷을 벗어던지고 아침에 해둔 식은밥을 물에 말아 늦은 점심을 달게 먹었다. 불현듯, 일을 하지 않은 날은 먹지 말라시던 영명사(永明寺) 스님의 말씀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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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습한 바닷바람이 불어 조개나 캘까 하고 출렁이는 앵강만의 벽련 포구를 바라보며 마을 앞 바닷가로 내려가니, 아이들이 놀다가 보고는 '노자먹고 할배 오신다.'고 킬킬거린다. 놀고먹는 게 전부가 아니지만, 온종일 어구를 챙기거나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을 보면 내 처지야 놀고먹는 게 틀림없다.
이들의 삶을 보면 사대부가 하는 짓이란 참으로 맹랑하다. 한때 읽었던 몇 권 서책에 기대어 남의 글자를 빌어 시를 짓고 하찮은 재주를 뽐내니, 어찌 앵무가 사람 말을 흉내내어 시끄러운 소리를 그치지 않는 것과 다르랴. 나무하는 아이와 물긷는 아낙이 부르는 노래에는 그 수고로움이 배어 있으니, 이것이 오히려 성정을 바르게 드러내는 참문학이 아니겠는가? 문자가 무엇이든 삶을 담아내지 않으면 문학이라 할 수 없을지라, 심심파적으로 읽는 이야기책이라도 품격이 있고 삶의 법도가 있어야 할 터. 하물며 사대부의 문장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아이들에게 천자문 노래나 가르치며 놀다가 도리어 아이들이 딴 홍합을 얻어서 돌아왔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기껏 이런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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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가 끝난 듯하여 마을 사람에게 패물 하나를 주어 겨울 날 양식을 부탁하였다. 남해도가 지척이지만 유배온 몸이라 탱자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침에 마을 아낙 하나가 밭에서 배추를 뽑아 한 소쿠리 들고 왔지만 사양하였다. 산나물 말린 것에다 한 줌 곡식을 풀어 죽이나 쑤고, 간장 종지 하나면 그만이다.
긴 겨울의 무료함이 두렵기도 하지만, 다정리에서 온 한 선비가 서책 몇 권과 함께 귀한 종이와 먹을 주고 가서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거칠어진 손과 어두운 눈으로 붓을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지붕을 고치고 벽을 발라야 하는데 시일이 급하다. 좁은 섬에서 부족한 땔나무를 구하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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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미조리에 사는 늙은 선비가 아들을 데리고 인사를 하러 왔다. 말린 가자미 한 두름을 내놓고는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기를 보고는,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고사가 있는데, 혹 연어생목(緣魚生木)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하였다. 나는 혹 절간의 목어를 말하는가 싶어 생각해 보았으나 이치에 맞지 않아 무슨 말인지 물었다. 선비가 답하였다.
"남해도 북쪽에 창선도라는 섬이 있는데, 대벽 마을을 지나 조금 가면 바닷가 넓은 땅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섰습니다. 둥치는 두 아름이 넘고 높이가 다섯 자요, 길이가 동서로 일곱 자라 심히 장대합니다. 땅이 거칠고 바닷바람이 많아 다른 나무는 한 그루도 없는데 수백 년 된 이 왕후박나무만 홀로 기품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부터 내려오는 말이, 어느 어부가 진주만에서 큰 고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뱃속에 금빛 씨앗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이상히 여기고 혹 용왕의 미움을 받을까 염려하여,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고기를 바닷가에 묻었는데 그 자리에서 이리 큰 나무가 자랐답니다. 그러니 연어생목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이 선비가 고기가 변하여 나무가 된 신비를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고기와 나무는 그 본생이 다르니 어찌 고기가 나무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겠는가? 뱃속에서 썩어 한 토막 비늘이나 되었으면 몰라도, 아직 소화가 되지 않았으면 나무의 씨 그대로인 것이다. 만물은 이(理)에 따라 생겨나나 기(氣)가 모여 실체를 갖추는데, 기가 다르면 그 형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나무가 고기가 되고 고기가 나무가 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내가 듣자하니, 남해도의 물건리 사람들이 방조림(防潮林)으로 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바다 가까이에 있어 자연히 그늘이 지고 씨앗이 떨어져 고기가 몰려든다고 하였다. 아마도 이 고기도 이런 어부림(魚付林)의 씨앗을 먹은 지 오래지 않아 잡힌 것이 아닐까 한다. 늙은 선비는 바로 눈앞에 있는 본지풍광(本地風光)의 실재를 버리고, 책이나 남의 말을 좇아 권리풍광(卷裏風光)의 헛것을 취하니, 사실과 말이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연어생목이 아니라 연어득목(緣魚得木)입니다."
하였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알아듣고는 과연 그러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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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하는 일 없이 땔나무나 분지르다 금산 이마에 비친 저녁 노을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귀한 초를 헛되이 태우며 어머니 생각을 하였다. 그리움에 휩싸이면, 소유와 성진 어느 쪽이 내가 선 자리인지 가려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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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 내렸다. 지붕과 우물덮개의 눈을 털어내고 초가 주변의 눈을 치우니 한겨울 짧은 해가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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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과 『소화시평(小華詩評)』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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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이 저물어간다. 어제 또 폭설이 내려 금산이 푸른 은빛을 띠고 있다. 북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 마음 더욱 외롭게 한다.
눈 녹인 물로 먹을 갈아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마음 가는 대로 붓을 놀리는 것이니 『서포만필(西浦漫筆)』이라 이름할 참이다. 남은 겨울 동안 마무리하자면 서둘러야 하리라.
하지만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세상의 참과 거짓을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평생 나라를 위해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았지만, 오로지 그 길이 옳다고 믿고 충정을 다 바쳤지만, 이제금 그 신념이 바른 것인지, 내 성정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이 진실로 진실로 절실하였다면, 때를 모르고 헛되이 벼슬길에 나아가 몸을 더럽히고 근심을 더하여 불효를 저질렀겠는가? 이렇게 뒤엉킨 생각의 실타래를 풀기 어려울 때면 차가운 눈에다 얼굴을 비비고 만물의 이치를 되돌아본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선명한 논리가 뒤따르는 관념일수록 불안한 느낌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많다.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뿐이다. 내 언젠가 성진으로 돌아갈 운명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지금 여기에 없는 헛것일 따름이다. 그러하니 때로는 진리도 헛되며, 허구도 참진리가 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 잠시 머묾[小游]은 그 자체로 부정할 수 없는 실재다. 실재가 곧 진실이고 바른 질서라 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의 삶과 사유는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돌아가면 불태우리라 생각했던 『구운몽』을 이제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한 헛된 잡서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역사에 해를 끼칠지, 다른 가치를 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만필을 끝낼 때쯤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그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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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포만필』을 마무리하였다. 마음이 글 안으로 다 스며들어 가슴이 텅 비었다.
정월 대보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현호색 싹이 돋았다. 밭둑에는 꽃다지와 냉이, 곰보배추도 제법 파랗다. 남도의 봄은 빠르다. 한양이라면 어림없는 일. 남해도에서 날아온 새들이 북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을 보고 방으로 들어왔다.
정경패가 준 책은 이쯤에서 뒤가 떨어져 나가거나 글씨가 흐려 보이지 않아야 맛깔스런 이야기가 된다. 천하절색 난양공주가 뒤따라와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지만, 그러면 모든 비밀이 세상에 펼쳐져 점점 홍진의 때가 쌓일 것이라, 말이 가지는 내포와 우주의 신비가 훨썩 줄어들 터. 게다가 일 년 반 정도 남은 서포의 생애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러운 일도 아니다. 어부들을 통해 민중의 삶을 실체로서 인식하게 되었을 테고, 노동을 몸 속 깊이 받아들였으며, 몇 권 책을 더 지었을 터. 어머니의 부음을 받고는 사흘 낮밤을 흐느껴 음식을 입에 댈 수 없었고, 날마다 북쪽을 향해 머리를 땅에 두드리다 『정경부인 윤씨 행장』을 쓰며 겨우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그러다가 몸이 급격히 쇠약해져 몇 며칠을 방에서 나오지 못할 때가 많아지고, 더 이상 글도 쓰지 않았다. 간혹 대낮에도 꿈에 취한 듯 귀신에 홀린 듯 바닷가 기슭을 아슬아슬 춤추듯이 나다녀, 마을 아낙들이 비명을 지르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맘때쯤 서포는 이미 신선에 가까워졌는지 모른다. 아무리 혼몽해도 정신이 들 때마다 붓을 들던 그가 갑자기 필을 놓은 것도 수상하다. 그렇다고 이전에 쓴 책을 불태우지 않은 것을 보면 인간의 말을 버린 것도 아닐 터. 왜 서포는 더 이상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영양공주가 준 마지막 기록에도 보면 그는 끝내 인간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말은 허구로 꾸며서도 존재의 집을 지을 수 있고, 실재하지만 금방 사라져버리는 헛것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서포는 그 미묘한 사이, 실재와 허구의 경계선에서 파동치는 강렬한 빛의 흔들림을 읽어냈는지 모른다. 그가 만난 그 어떤 우주의 비밀이 불립문자였기 때문인지, 혹은 어처구니없게도 붓이 다 닳아버려 기록을 못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도 지켜본 이가 없으니 죽는 순간에 무슨 말을 했는지 어쨌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마을 사람이 우연히 그의 주검을 발견했을 때는 죽은 지 며칠이 지난 뒤였다. 곧바로 노자니 언덕에 초분장(草墳葬)을 하였고, 몇 달 뒤 가족들이 와서 이장하였다. 서포는 그렇게 노도를 떠났다.
그리고 삼백 년 뒤 어느 봄날, 한 사내가 따스한 햇살 아래 앉아 서포가 지었던 띠집을 허공에다 다시 세우고 허물며 한 나절을 보냈다. 꽃가지 꺾어 받들던 여덟 선녀의 사랑이 남풍에 흐느끼는 소리 들으며, 그는 오래 환몽에 빠져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백일몽을 털고 일어나 초분장을 하였다는 노자니 언덕으로 발길을 돌린다. 어떻게 이 섬까지 포크레인이 들어왔는지 가파른 산길을 넓히고 어설픈 대리석 계단이 새로 놓였다. 하긴 자본의 위력이 적소라고 미치지 않을손가. 포크레인 삽날에 허망하게 잘려나간 해송이 허옇게 속살을 내보이고 있다. 저것도 한 삶일진대 현실은 이리 냉혹하다. 서포도 당대의 어지러운 삽날에 밀려 머나먼 남해 고도로 귀양을 왔을진대, 이제 그로 인해 다른 생이 삽날에 깔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다시 삼백 년 뒤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초분을 한 자리에는 큼직한 무덤이 있다. 아마도 서포를 기리기 위해 집안이나 관청에서 단장한 것이리라. 어쨌건 서포의 주검은 거기 없다. 무덤이지만 무덤이 아닌 헛묘[虛墓]다. 실재하는 무덤이 무덤이 아니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문득 내려다보니 섬 주위로 부서지는 포말이 노도를 허공으로 띄워올리는 듯하다. 둥둥 떠서는 허공으로 사라지는 섬. 현실에서 아득히 멀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벽련 포구로 돌아가자는 뱃고동 소리를 듣고서야 서둘러 내려가며 생각한다. 어쩌면 노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남해와 앵강만 사이에 떠 있는, 우리가 본 섬은 헛것이 아니었을까? 아니, 아니다. 우리는 모두 섬에 유배된 존재들이다. 섬 안에 갇혀 있으므로 섬인 줄 모르고 섬을 찾아 헤매는 존재들. 서포가 노도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준 삶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서포는 세상을 넘어선 성진도, 세상 욕망을 모두 짊어진 양소유도 아니었다. 소유로서 존재하며 소유를 넘어서고자 한 삶, 섬 안에 있으면서도 섬에서 벗어난 존재!
통통배로 불과 십여 분 거리인데 벽련 포구에 가까워지자 노도는 벌써 희미하게 저녁놀 속으로 사라진다.
후기(後記).
노도에 다녀온 지 거의 십 년이 되었다. 나는 아직 승천하지 못했고, 그때 받았던 기묘한 느낌과 백일몽도 그대로 내 몸에 남아 있다. 소문을 들으니 마을 입구에 '김만중의 유허'라는 비석이 서고, 집터와 헛묘도 깨끗이 단장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노도에서는 이제 서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어려울 터. 요즘 들어 많은 이들이 서포의 유적지라 하여 노도를 찾는다지만, 나는 다시 노도에 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난 노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허구와 실재 사이에 부유하는 섬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 노도에 갔다 와서 몇 년 뒤, 우연히 나는 정현종의 짤막한 시를 만났다. 일상에 빠져 있으면서 헛것의 진실을 읽어내는 눈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나는 기꺼이 정현종의 섬에다 노도를 겹쳐 놓았다. 한 동안 사람들 사이로 바닷물이 출렁이며 흘러가는 이명과 환시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만중의 구운몽을 첨접햇을때 나는 어린소녀였던것이..세월 무척 지나 다시 접햇을땐 서른을 훌쩍넘긴 노망난달탱이..구운몽의 맥을 다시 짚어가며 호흡을 가라앉힐때 나는 열이 조금 났던것도 같고 아하..그러냐..일장춘몽이 무엇이더냐..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인..허구와 실재속에서의 나는.. 또 당신은..누구인지...
첫댓글 날마다 부딪고멍들고...우리 사는 이곳도 사실은.. 섬 아닌가요.. (몽돌샘~ 특별하게 다가오는 글 이었습니다 ...눈 떠보니 모든게 꿈이었다 할지라도.. 생의 어느 기막힌 반전을 밑천삼아.. 미지의 섬에 가서 양식걱정없이 한달만 살고싶군요ㅋㅋㅋ..)
나 한 점 섬이고 싶다
<한국문학> 2004 봄호에 실을 산문 원고입니다. 서포라는, 이미 없는 존재를 되살리면서 허구와 실재의 관계를 나름대로 생각해본 글입니다. (그 섬에 가고 싶당^^)
만중의 구운몽을 첨접햇을때 나는 어린소녀였던것이..세월 무척 지나 다시 접햇을땐 서른을 훌쩍넘긴 노망난달탱이..구운몽의 맥을 다시 짚어가며 호흡을 가라앉힐때 나는 열이 조금 났던것도 같고 아하..그러냐..일장춘몽이 무엇이더냐..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인..허구와 실재속에서의 나는.. 또 당신은..누구인지...
윽, 서른에 노망? 그럼 난 지금 거의 사망? 아, 내가 헛것인 줄 이 글 쓰면서도 몰랐는데, 우리 달탱이님이 날카로운 비수로 가슴 한가운데를 도려내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고 멀건 안개만 스물스물 피는 걸 보니 이제사 자신이 허깨비인 줄 알것네... ㅠㅠ
4월에 발표될 원고를 여기서 미리 접하게 되니 한없이 싱싱하옵니~ .. (내 안에도 안개창고가 있는지 ..가슴이 스멀스멀..한것이 거리가 온통 쵸코렛바구니로 보입니~~.. ㅋㅋ )
봄호니까 3월, 꽃바람 부는, 춘삼월 호시절^^
바람재님!,,인사올립니다,,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즐거운 월요일 맞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 좋은 나날 되세요. 봄꽃 필 날 가까워지니 마음이 들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