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간다. 한국에 돌아갈 날짜를 정해놓고
나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지나가는 말로 시작된 여행이야기가 눈 앞에 다가왔다. 우리의
목적지는 카자흐스탄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바라보예라는 지명의 휴양지인데 수도인 아스타나에서 차를 타고 2-3시간 정도 가면 나온다.
큰 호수와 산과 소나무가 빼곡히 자리한 곳이다. 더운 여름에 어디를 가나 싶기도 하고, 1년동안 그래왔듯 여행은 커녕 어떠한
여유도 허락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자만 어쩌면 갈 수 있는 기회가 다신 없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우리는
기대 반 걱정 반을 짊어지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에 먹을 거리과 개인 짐들을 싣고 기차가 출발하자 다들 들뜬
마음이 더해진 것 같았다. 바라보예까지는 알마티에서 바로가는 기차가 있다. 우리는 25시간동안 타고갈 기차에서 무얼하나 걱정했지만
현지인 아이들과 인사와 이야기도 나누고, 게임도 하고, 눈을 감았다 뜨니 아스타나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30분 정도 정차하는
아스타나 역에 내려서 사진을 찍었다. 하루종일 씻지 못한 얼굴들로 사진을 찍고 다들 서로 얼굴을 보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사진을 찍고 기차가 혹여 나를 두고 떠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재빨리 기차에 올라탔다. 4-5시간 후면
이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바라보예다. 비가 오진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기차에서 내리고 보니 햇빛이 너무 강해서 눈을 찌푸릴
정도였다. 바라보예 역에서 숙소까지는 택시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한다. 우리는 총 13명이 함께 했는데 택시 4대를 빌려 편하게
숙소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현지식이 제공되는 호텔보다 우리가 스스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카테지, 한국의
팬션과 같은 곳을 예약했다. 밖에서 우리 숙소를 안내해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호텔의 외관을 보고 일주일동안 생활하기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팬션에 들어가고 나니 모두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팬션은 2층집으로 방도 무려 거실을 제외하고 6개나 됐다.
우리 13명이 뛰어다녀도 될만한 깨끗하고 넓은 숙소에 감탄하며 우리는 하루넘게 씻지 못한 얼굴들을 씻고 저녁 준비를 했다.
기차에서 라면과 빵으로 끼니를 대신했던 터라 그렇게 웃고 떠들던 목소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식탁앞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설거지는
기차에서 했던 게임에 진 친구들이 하고 나와 몇몇 친구들은 숙소 앞 호수에 산책을 나갔다. 저녁노을과 선선히 부는 바람,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소나무, 그리고 호수는 25시간이 넘는 여행길의 피곤함을 싹 가시게 해주는 것 같았다. 곧게 뻗은 소나무가
빽빽히 있어서 그런지 공기도 너무 맑았다. 산책 후에 영화를 보고 과일도 먹고, 내일부터는 어떠한 재미있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식사당번들의 기상소리에 다들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아침 식사를 했다. 우리는
월요일에 도착을 했는데 하필 시장이 쉬는 날이라 음식재료를 다 구입하지 못해 일부 친구들은 시장에 가고 나머지 친구들은 그곳에서
간단히 받을 수 있는 치료들을 알아보러 갔다. 그 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실내수영장과 체조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치료사를 만나 평소에 어디가불편한지 상담한 후 소독이나 마사지등을 무료내지 700텡게 안쪽으로 받을 수 있다. 그곳
에는 매일매일 말타기, 등산, 바라보예 관광, 아스타나 관광 등 프로그램이 제공되는데 참여하려면 별도의 돈을 지불해야한다. 우리는
일단 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에 있는 돌을 보는 비밀의 돌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해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또다른 호수에
도착하자 호수 한 가운에데 돌이 있었다. 우리는 팀을 짜서 배에 올라탔는데 노를 젓는게 쉽지 않아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배를 탔다. 비밀의 돌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보는 위치에 따라 그 돌의 모양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한쪽으로는
젊은 여자의 모습, 나이든 여자의 모습, 악어, 거북이, 뱀 등의 모습들이 보이니 신기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런 풍경을 본다
하더라도 별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텐데 같이 탄 현지인들이 설명을 해줄때마다 보이는 돌의 모습에 감탄을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팬션에 돌아와서 저녁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앞에 호수에 나가서 물놀이를 하기로 했다. 호수의 바닥은
진흙으로 되어 있어서 푹푹 빠지는 발에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바람이 불어 날씨가 조금 춥기는 했지만 서로 바다에 빠뜨리고
빠지고 나니 추위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물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인들과는 좀 다르게 카자흐스탄의 현지인들은 물놀이를
할때 항상 수영복을 착용하고 수영을 주로하는데 외국인들이 와서 위 아래 옷을입고 수영도 아니고 서로 물싸움하기에 바쁘니 현지인들이
구경하느냐고 우리 주위로 몰려들었다. 다음 날 아침, 새벽에 비가 내려서인지 선선했다. 우리는 아침식사후 성경공부를
한뒤 별다른 계획이 없어 물놀이를 나갔다. 오늘은 팀을 짜서 축구, 피구를 하면서 진팀이금요일 식사당번을 하기로 했다. 맨발로
뜨거운 모래위를 뛰어다니고 나니 어느새 땀이 줄줄, 냉큼 물로 향했다. 그렇게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혼자 산책을 나갔다. 아름다운
바라보예의 풍경을 사진에 담고 싶어서기도 하고 이제 한국에 돌아가서 해야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고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지도 모른채 초조해하며 바쁘게 살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면서 또, 이제 얼마
안있으면 다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보고 생활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어쩌면 한국과 비교하며 이렇게 사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카자흐스탄 민족의 삶이 맞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느냐고 바쁘게 사는 현대 한국인들 삶과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에 대한 돈과 시간을 아까워 하지 않는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삶을 어느 것이 옳다 틀리다
말할 수 있을까? 미래를 생각하며 준비하고 사는 삶이 매우 중요하지만 현재가 없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를 즐길 수 없는데
미래의 삶은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한 노력. 지금은 그저 짐을 내려놓고 다신 돌아오지 않는 지금
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생각과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문득 여유로워 보이는 현지인들을 보니 괜히 나도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거 같았다. 목요일 오후에는 근처 바라보예 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바위나 산에 얽힌 설화들을
이야기 하면서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그 중에 한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마을에 한 청년이 살았다고 한다. 아주 작은마을이었는데 어느
날 그 마을에 적들이 침입해왔다. 그 마을에 어느 남자도 그 적들에게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 청년이 그 적들을
혼자서 맞서 싸웠다. 계속되는 적들의 침입에 청년은 눈이 멀고 부상을 당했다.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던 그 청년은 마지막 적들의
침입에 두팔로 마을을 감싸 안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청년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잠을 자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저 멀리 보이는 산의 모양이 정말 사람이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카자흐스탄 사람들다운 설화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해 공원에서 카자흐스탄 전통옷을 입어보았다. 알마티에도 기회가 있겠지만 그 곳을 배경으로
찍으니 정말로 광야에서 사는 카자흐스탄 사람 같았다. 지나가던 현지인들도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인사하며 지나갔다.
지금도 많은 사진 중에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든다. 드디어 가는 날, 우리는 토요일 새벽 3시 기차를
타야했기 때문에 금요일에는 숙소를 따로 신청하지 않고 우리가 있을 수 있는 시간을 12시까지였다. 아침 10시부터 말을 타러 갈
사람들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어렸을 때 타보고 처음 타는 말이라서 무섭기도 했지만 말들이 얼마나 튼튼하고 큰지 호기심이
생겼다. 다른 친구들 말은 건강해보이고 키도 큰데 유독 내가 탄말은 눈도 충혈되고 비실비실 거려서 모두들 웃고 나는 말이 풀썩
주저 앉을까봐 타는 내내 얼마나 걱정 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한 40분 정도 말을 탔다. 중간중간 말이 풀을 먹을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했던 처음과는 달리 몇분이 지나자 이제 풀을 먹는 말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말을 다 타고 나니 농장에 낙타
한마리 그리고 포니가 있었는데 포니를 탔던 친구가 덜덜 거리면서 가는 모습을 보고 모두 연신 웃어댔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에 있던 일행들이 벌써 짐을 다 꾸려놓고 있었다. 우리도 각자 집을 챙겨 호텔에 맡긴뒤 발로 밟아서 타는 배를 타고 나니 벌써
저녁이 되었는데 가기전에 우리는 아무 일 없이 일주일을 보낸 마지막 날을 자축하기 위해 샤슬릭을 먹고 각자의 소감을 말했다. 다들
일주일동안 서로 알지 못했던 모습도 보고 한국에서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새벽기차를 타고 짐을 싣고 자려고 보니 벌써 동이트려는지 하늘이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 아직 하루를 더 가야되는
기차안에서 또 어떤 인연을 만날지 기대하며 잠들었다. 다음날은 기차로 한 두시간 이동하는 사람들이 자주 탔는데 탈때마다
우리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카자흐스탄에 대해서 얘기했다. 한국이었으면 모른 사람에게 말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텐데 매번 말도
걸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현지인들에게 그 짧은 시간동안 정이갔다. 한국과 비교도 해보고 또 카자흐스탄의 민족의 발전을 위한
생각들을 조곤조곤 말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알지못할 자부심이 깃들여져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어느덧 알마티에
도착했다. 다들 지쳤지만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
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들에게서 본받을 만한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현실과 삶의 비범함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사는지 배우는 것이다.» 1년동안 지내면서 이들의 민족성에 대해 속으로 비판도 해보고 한국과 비교도 해보고 했지만
이번 여행으로 이들이 살아가는 방법과 마음을 감히 내가 평가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보다 조금 더딘 경제발전이
이들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보단 이들의 민족에 대한 사랑과 여유로움을 그대로 바라봐주는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남들과 여깨를 견주어 뒤 돌아볼 시간도 없이 앞만보고 달려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무엇을 위해 내가 가고
있는지 지금 나는 어느 곳에 있는지 여유를 가지고 생활하는 내가 됐으면 좋겠다. 카자흐스탄에서 불합리한 일로 서러움을 겪기도 했고
또 즐거운 일들,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 수많은 일들 중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낀 이번 여행이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