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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로에서 공연을 한 편 보았다. 신랄한 세태풍자와 우당탕탕 치고받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버무려진 그 공연은, 뭐랄까, 주최측에서는 연일 매진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지만 그 평가가 다소 과장되게 느껴졌었다. 공연만을 놓고 보자면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작품이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올 즈음 일말의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공연 중간 중간 맨 뒷좌석에서 터져 나온 박장대소 때문이었다.
게다가 요즘 소비자들이 좀 똑똑한가. 산업화 이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군중들이 휴대전화와 메신저, 인터넷, 이메일 등의 네트워크 기기로 완전무장해 이슈를 생산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들을 조금 유식한 말로 ‘스마트 몹 Smart Mob’이라고 한다. 〈가상공동체Virtual Community〉란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미국의 하워드 라인골드에 의해 유래된 명칭이다. 애초에 스마트 몹은 정치적 의미에서 출발했다. 지난 99년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된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 항의하는 군중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시위를 조직한 것이나 2001년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1백만 명이 넘는 군중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연락수단으로 삼았던 것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스마트 몹의 활동이 경제 분야에서 능동적인 소비자 혹은 소비자 간 네트워크로 그 존재감을 급속히 확산시키고 있다. 극성스런 아줌마들이 입소문을 통해 좋은 상품을 구매하듯 스마트 몹은 온라인을 통해 실질적인 상품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적극적인 소비자의 권리를 찾아간다. 백과사전이 제공하는 단편적인 지식에만 의존하던 과거의 군중들과는 달리 스마트 몹은 자신들의 실질적인 지식과 사례를 모아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나 휴대폰을 구입하고 싶다면 인터넷 검색 창에 키워드만 입력해 보시라. 수많은 스마트 몹이 몸소 올려놓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체험 사례와 구입 정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스마트 몹은 기업의 마케팅 대상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기업의 마케팅 활동에 직접 참여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제품 아이디어를 제시하는가 하면, 원하지 않는 제품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혹독한 평가를 내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한 불매운동도 불사하지만, 일단 그들의 입맛에 맞는 상품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단결한 소비자들의 행동은 이제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의 실력행사도 서슴지 않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비자 아날로그 휴대전화 시절 ‘폰짱(가장 인기있는 핸드폰)’으로 통했던 모토로라의 ‘스타택’이 대표적인 예다. 스타택은 96년 첫선을 보인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휴대전화 시장을 휩쓸었지만 첨단 핸드폰에 밀려 98년 단종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스타택 온라인 동호회가 30여 개가 넘을 정도로 매니아층이 두터운 데다 이들 동호인들이 스타택의 부활을 끊임없이 요구해 모토로라 측에서도 최근 고객들의 요구를 반영, 새로운 버전의 스타택 모델을 출시하기로 했다. TV 프로그램 시청자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인터넷 폐인을 양산하기도 했던 다모 신드롬에 이어 대장금에서는 한상궁 마마님 살리기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으며(덕분에 한상궁 마마님은 드라마 7회 분량 동안 수명을 연장한 것은 물론 극중 참수형을 당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유배 중 죽는 것으로 내용이 변경되기까지 했다) 가족 시간대 선정적인 주제를 들고 나오는 드라마(인어 아가씨, 회전목마 등)는 여지없이 시청자들의 조직적인 항의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처럼 스마트 몹의 출현은 기업의 마케팅 전선을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기업들은 제품 기획 단계부터 고객들을 참여시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공할 속도로 확산되었다 사라지는 스마트 몹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촉수를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겉만 번지르르한 과대광고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소비자들은 이미 지나친 과대광고에 식상할 대로 식상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소비자들 자신이 집단적으로 조직화한 정보와 행동력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에 영향을 미칠 만큼 강력한 존재로 부상했다. 실질적인 정보가 공유되는 인터넷 세상에서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려면 이젠 그들의 입소문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의 입을 연다? 지나가는 행인의 옷을 벗긴 것은 더욱 세게 밀어붙이는 바람의 힘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옷을 벗게끔 유도했던 태양의 열기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글│전채연 missing010@hotmail.com |
출처 : http://www.brai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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